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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Articles

촛불시위 비판

[사설] 비폭력만이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

기사입력
2008-06-28 00:36 / 경향신문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관한 정부의 고시 강행 이후 시위가 격화되면서 우려스러운 양태가 빚어지고 있다. 비록 시위대의 일부가 저질렀다고는 하나 경찰차량을 파손하고, 언론사 유리창을 깨뜨리고, 기자를 때리는 등 불미스러운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서 본란을 통해 ‘쇠고기 촛불집회’가 범국민적 호응을 얻은 요인은 철저한 비폭력주의라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폭력은 어떤 의도에서 나왔든 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해칠 뿐 아니라 정권에 강경진압의 빌미를 준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시위가 과격화 조짐을 보이자 이명박 정권과 보수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색깔론 공세를 펴며 강경대응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일부 폭력성이 있었다 해도 촛불시위의 주류는 여전히 비폭력주의를 견지하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정부·여당이 폭력사태를 빌미로 ‘뼈저린 반성’은커녕 ‘쇠고기 민심’을 일거에 진압하고 정국의 국면 전환을 기도하려 한다면 국민의 절망과 분노는 결코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시민들도 냉정을 잃지 말고 정당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과격 시위자들은 “여태껏 평화적으로 해왔지만 정부가 달라진 게 무엇이냐”고 주장했다고 한다. 정부가 고시를 늦추고 국민을 설득하는 시간을 갖겠다더니 어느새 강경으로 돌아섰고, 촛불시위 자체를 불순세력의 ‘정치투쟁’으로 매도한 것도 과격화를 부추겼을 법하다. 그렇다 해도 분노와 폭력은 전혀 별개 문제다. 어떤 경우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이 쇠고기 문제에 대한 왜곡보도로 국민의 분노를 샀다고 해도 회사 건물에 난입해 기물을 부수고 기자의 취재도구를 빼앗을 때, 항의의 목적은 없어지고 수단의 폭력성만 부각될 뿐이다.

촛불시위는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기만 하던 이명박 정부를 반성케 하고, 미국을 놀라게 했다. 대통령의 사과와 한반도 대운하 건설계획의 사실상 폐기도 이끌어냈다. 그 힘의 원천은 무엇보다 비폭력이다. 평화적 시위라는 전제가 없으면 다수 국민의 참여와 동의를 얻을 수 없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촛불 분노, 한국인의 민족적 자존심 때문'


기사입력 2008-06-13 06:31 / 노컷뉴스 /  워싱턴=CBS 박종률 특파원

뉴욕타임스(NYT)...이틀 연속 대대적으로 보도, 상세한 분석기사 실어

'수많은 한국인들은 왜 미국인들조차 문제삼지 않는 미국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에 항의하며 촛불집회에 나서는가' (Why would thousands of South Koreans join protests about mad cow disease but not ask why Americans are not protesting American beef?)

한국 사람들에게 최근의 쇠고기 사태는 "건강에 대한 위험성과 광우병을 둘러싼 과학적 논쟁,그리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따른 경제적 우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대통령이 강대국의 압력에 어떻게 저항하는가'(whether their leader can resist pressure from superpowers)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결과다.

미국의 대표적 일간신문인 뉴욕타임스가 12일(현지시간) '쇠고기 차원을 넘어선 한국의 분노'(An Anger in Korea Over More Than Beef)라는 제하의 자세한 분석기사를 통해 '한국인들의 민족적 자존심이 촛불시위의 발로'라고 강조했다.

신문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4월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부시 대통령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전격적으로 쇠고기 수입전면 재개방에 합의하는 '정치적 선물'(a political gift)을 안겨주며 양국관계 복원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고 소개했다.

즉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쇠고기 협상'을 마치 과거 조선시대 왕들이 중국 황제에 조공을 바친 것과 같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예전에 한국은 중국에 조공(朝貢)을 바치고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모국어까지 사용하지 못하는등 강대국의 침탈을 당했고, 또 강대국의 냉전논리로 남북이 분단된 역사적 배경을 덧붙였다.

한국인들의 이같은 정서는 지난 12일 이른바 '명박산성'으로 불리는 대형 컨테이너가 광화문에 등장했을 때 "한국의 새로운 국경, 여기서부터 미국의 '한국주'가 시작된다"(This is a new border for our country. From here starts the U.S. state of South Korea)라는 항의문구가 내걸렸다고 신문은 전했다.

또 촛불시위에서 '이명박은 이완용'이라는 구호가 등장하기도 했는데 '이완용은 한국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매국노'라고 소개했다.

신문은 지난해 대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이 이처럼 거센 비난을 받게 된 것은 바로 '미국에 아첨하는 지도자'(a Korean leader kowtowing to the Americans)로 비춰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통령리더십 연구소의 최 진 소장은 '李 대통령이 실용 리더십을 내세우면서 정작 한국인의 민족적 자부심을 간과했다'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민족주의 성향이 너무 강한 것이 문제였다면 李 대통령는 그것이 너무 결여된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타임스는 한국의 지도자들은 이같은 '민족주의 정서'를 적절하게 활용해 왔다면서 6년 전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효순,미선양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에 힘입어 당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노 전 대통령의 이상주의적 정치성향과 경색된 한미관계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면서 한국민들은 실용주의를 내건 이명박 후보에 압도적인 승리를 안겨줬다고 분석했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李 대통령이 과신했다'(Lee was overconfident)면서 '국민들이 노 전 대통령을 거부했기 때문에 반대로만 나가면 될 것으로 생각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인들 사이에는 민족주의(nationalism)와 반미감정(anti-Americanism)이 존재하고 있는데 최근의 촛불 시위는 반미감정이라기 보다는 민족주의에 가깝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타임스는 '한국인들은 과학을 더 공부해야 한다'는 한국 모독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요즘 한국에는 두 명의 반미주의자가 있는데 한 사람은 李 대통령이고 다른 한사람은 버시바우로, 그들의 행동과 말이 반미감정을 쌓이게 하고 있다'는 전상일 서강대 교수의 말을 소개했다.


이문열씨 “촛불집회 본질은 위대하지만 끔찍한 디지털 포퓰리즘 승리”

기사입력 2008-06-11 17:54 / 경향신문 / 한윤정기자

소설가 이문열씨가 최근의 대규모 촛불집회에 대해 “본질은 위대하면서 한편으로는 끔찍한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라고 말했다. 미국에 머물다가 소설 ‘초한지’(전 10권·민음사) 완간에 맞춰 최근 귀국한 이씨는 1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한 뒤 “결코 빈정대는 말이 아니다. 침묵하는 다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침묵이나 방관 역시 하나의 선택이고 동조이다. 이것(촛불집회)을 민의라고 말할 때 거부감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촛불시위에 대한 질문을 받자 “가장 걱정했던 질문인데 막상 물으니 피할 수 없다”면서 “되기 어려운 일을 되게 한 점에서는 위대하고, 또 정말 중요한 다른 문제에서도 이런 게 통하게 된다면 끔찍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번 사태는 먹는 것의 문제는 아니다”라며 “먹는 것이 하나의 빌미가 됐을 뿐이고 감정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사설] 촛불의 힘은 비폭력에서 나온다


기사입력 2008-06-08 19:56 / 한겨례신문

지난달 2일부터 서울시청 앞 광장을 밝히고 있는 촛불의 수가 갈수록 늘고 있다. 6일 시작된 72시간 연속 집회에선 20여만명(경찰 추산 6만5천명)이 보수세력의 방해를 무릅쓰고 서울광장과 세종로 거리를 빼곡히 메웠다. 집회 참여자들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애초 주축이 됐던 청소년들은 물론, 그들의 부모, 조부모 세대도 동참하고 있다. 또 농촌에서 올라온 농민에서부터, 유모차를 끄는 젊은 엄마들, 그리고 성형 카페 회원들까지 과거 시위에서 볼 수 없었던 이들도 속속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모든 세대, 모든 계층이 촛불을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한 달 넘게 타오르고 있는 촛불은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촛불 현장과 그들이 속한 웹상의 공동체에서 이뤄지는 토론을 통해 스스로를 ‘머슴’이라 칭하는 이 정권이 주권자의 뜻을 어떻게 배반했는지 확인한 시민들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자명한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 나섬으로써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했다. 수평적·민주적 의사소통을 통해 무장한 시민들은 경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도 지나치게 비장하지도, 처절하지도 않았다. 물대포에 맞서 비옷과 물총을 준비하고, 경찰이 체포하면 ‘닭장투어’를 즐기면서도 요구는 요구대로 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줬다.

그러나 6일 밤부터 시위의 양상이 격렬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경차의 유리를 파손하고, 쇠파이프를 드는 이들이 나타났다. 구호도 재협상 요구에서 이명박 정권 퇴진으로 바뀌었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일차적 책임은 국민의 평화적 요구에 철저히 귀를 막은 이명박 정권에 있다. 재협상을 요구하며 한달 넘게 평화적 시위를 벌였는데도 이 대통령은 6일 재협상 불가론을 되풀이했다. 그동안 밤샘 시위를 벌여온 시민들이 분노와 좌절감을 표시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번 시위가 다수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비폭력 운동이 갖는 도덕적 힘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권이 늘 폭력시위를 강경진압의 명분으로 이용해 왔던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폭력은 위험하다. 목표 달성이 그리 멀지 않은데, 정권에 빌미를 제공해 상황을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 당장은 답답하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비폭력 정신을 지켜 나가야 한다.


[시론] 과격시위.폭력시위, 절대로 안된다


기사입력 2008-06-08 22:19 / 연합뉴스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화난 시민들이 연일 서울의 도심에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성난 민심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밤 새도록 서울 시청앞과 광화문 거리를 휩쓸고 있다. 날이 갈수록 참가 인원도 늘어나고 참가자들의 신분도 다양해 진다. 그러면서 구호도 쇠고기 문제에 멈추지 않고 `이명박 대통령의 퇴진'을 함께 외치고 있다. 반정부 시위로 변질되어 가는 양상이다. 시위가 과격화, 폭력화하는 조짐도 보여 우려를 낳게하고 있다. 휴일인 8일 새벽 시위 현장에 처음으로 쇠파이프가 등장했다. 지금까지 지속돼 왔던 평화시위가 본래의 모습을 잃게 될 경우, 촛불집회의 순수성을 해치게 될까 걱정이다. 목적이나 의도한 바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시위는 절대 폭력적이거나 과격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정치성은 절대 배제되어야 할 위험 요소다.

현충일 전후로 실시된 `72시간 릴레이 시위'에 경찰의 집계로는 12만여명의 시민이 참가했다고 한다. 행사를 주최한 단체의 집계는 이보다 훨씬 많아 연인원 45만명이 동참했다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시위의 규모가 아닌 시위의 성격과 내용이다. 이 기간 시위 참가자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넘어 대운하와 영어몰입 교육 등 이 정부가 추진중인 정책 전반에 대해 비판과 함께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면서 청와대 진출을 시도했다. 촛불집회가 국민의 건강을 걱정하는 차원에서 마치 정권퇴진 운동을 벌이는 모양새다. 그리고 청와대로 진출 하면서 전경버스를 끌어 내거나 창문을 부수고 경찰과 밤새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 버스 19대와 무전기 등 경찰 장비 80점이 훼손됐고 전.의경과 시민 50여명이 부상했다고 한다. 이중에는 방패에 머리를 찍힌 시민과 골절상을 입은 전경 등 부상 정도가 중한 사람도 8명이나 된다. 참으로 바람직스럽지 못한 현상이다. 과격한 시위가 보다 과격한 진압을 부르는것은 당연한 이치다. 부상자가 속출한 시위를 `저항과 축제가 어우러진 새로운 차원의 시위형태'라는 주최측의 평가는 다소 거북하다. 집회와 시위를 주최한 입장에서 끝까지 비폭력, 평화시위를 유지해 나갈 책임과 의무를 다했다고 자부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시위가 자발적이고 자생적이어서 누구도 통제할 수 없다는 주장은 책임회피 내지 발뺌으로 들린다.

사이버상에서는 시위대의 청와대행을 놓고 의견이 분분한 모양이다. 청와대 앞까지 가서 국민의 뜻을 전달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부터 촛불만 밝힌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등 지지 내용과 공권력과의 마찰을 최소화 해야 한다거나 촛불시위가 토론문화의 장이 되도록 해야한다는 주장,그리고 소수과격 시위자들 때문에 대다수 평화시위 지지자들이 곤경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앞으로의 시위일정을 보면 참으로 불안하다. 6월 항쟁 기념일인 10일에는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대행진'이 계획돼 있다. 뒤이어 `효순.미선양 추모제' `남북공동선언 8주년 기념일' 등 행사가 잇따른다. 거기에다 보수단체들도 나서 촛불시위에 맞불을 놓을 계획이라고 한다. 불법. 폭력시위의 자제를 당부하는 정부당국의 담화는 고육지책으로 느껴진다. 서민경제가 어려운데 시위가 과격화, 장기화 하는것이 무슨 도움이 될 것인지 생각 해보자는 이날 오후의 긴급담화가 어느정도 설득력을 가질지도 의문스럽다. 집회와 시위는 법률에 의해 보장된 민주시민의 권리다. 시민의 권리를 향유하자면 이는 합법적이고 비폭력적인 것이어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절대로 폭력시위는 안된다. 폭력이 폭력을 낳고 그 결과는 누구도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것일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김대중고문 특별기고] 촛불 시위 vs 1인 시위

기사입력 2008-06-08 10:00 / 조선일보

지난 6월3일 오후 2시쯤 서울 청계천광장 주변에서 한 대학생이 '광우병 위험이 지나치게 과장돼 있다'며 미국 쇠고기 수입에 찬성하는 1인 시위를 했다. 그는 곧 주변사람에 둘러싸여 핍박에 가까운 힐난을 당하고 "할 테면 딴 데 가서 하라"는 고함 소리에 부딪혀 시위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신문들은 경찰도 그의 '안전을 우려'해 시위 중단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30일 방송에 출연해 "광우병 파동은 장기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발언한 김문수 경기도지사 역시 반대자들의 맹공에 시달렸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실망'과 '분노'를 표시한 수십 건의 글이 올랐고 전화도 여러 건 걸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쇠고기 문제로 곤혹스럽기는 조선일보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 1면 등에 광고를 실어온 30여개 기업(주로 내수소비재 기업)은 지난 5월27일부터 '조선일보에 광고를 싣지 말라'는 요구와 함께 광고를 계속하면 그 회사 제품의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 '이름 없는 시민'들의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수백명의 이른바 네티즌들은 광고주의 홈페이지를 다운시킬 정도로 격렬하게 공격성 글을 올리고 전화로도 거세게 항의해 일부 회사는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고 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포털사이트인 다음에 '조선일보 광고회사 불매운동 본부' 라는 카페를 재개설해 구체적인 공략작업에 들어갔다. 다음의 토론방인 아고라, 주부들 모임인 82쿡 등 사이트는 매일 조선일보에 게재된 광고 리스트를 올리고 불매운동을 촉구하고 있다. 조선일보뿐 아니라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도 비슷한 공격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화문 주변 '조선일보 가는 길'을 안내하는 조선일보 이정표들은 데모대에 의해 심하게 훼손돼 있다. 글씨가 뭉개져 있거나 그 위에 스프레이를 뿌려 알아볼 수 없게 돼있다.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할 거냐 말 거냐, 또는 광우병 위험이 있느냐 없느냐, 또는 30개월 이상 또는 미만의 월령 표시를 해야 하느냐 마느냐 등의 논의를 떠나서, 또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를 떠나서 우리 사회는 지금 심각한 불신과 왜곡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주장도 경청할 줄 아는 민주사회 시민으로서의 기본적 예의가 실종되고 있기 때문이다. 1인 시위자에 대해 “딴 데 가서 하라”고 윽박지른 사람에게 “당신도 데모 할 테면 딴 데 가서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글로벌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한 장기적 안목을 제시한 김 경기지사로서는 반대자들의 융단공격뿐만 아니라 어쩌면 정치적 피해까지 감수할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과거 독재시절 정치권력은 광고주에게 광고를 주지 말도록 협박해서 동아일보를 죽이려 했었다. 그런 현상이 30여년이 지난 언필칭 민주화된 나라에서 국가권력이 아닌 언필칭 ‘시민권력’에 의해 또다시 복기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슬프고 놀라운 시대착오의 표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인간사회의 특성이다. 다른 견해를 표출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사회의 속성이다. 우리는 다른 견해를 표현하는 것은 차치하고 그것을 품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던 시대를 산 경험이 있다. 그 시대를 독재시대라고 했다. 우리는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르고 이제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시대로 진입했다고 자부해왔다.

사실 일부 국민이 미국산 쇠고기의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반대할 수 있는 것도, 그리고 그 반대를 ‘결사’로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에 대한 다른 견해도 ‘견해’로서 존중해줘야 한다. 그리고 견해의 다름은 토론과 타협으로 해소하거나 조정하는 기술도 함께 배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민주시민의 세 가지 요소를 갖추는 것이 된다.

일부는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다. 쇠고기 문제는 국민 건강과 직결된 문제이고 국민 자존심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단순히 ‘견해 다름’의 차원에서 접근될 문제가 아니라고 말이다. 정부와 권력을 향해서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1인 시위자에게, 조선일보에, 그리고 조선일보 광고주들을 상대로 다른 견해를 갖지 말라고, 아니 가져서는 안 된다며 불매운동으로 강압하는 것은 또다른 독재현상이다.

더구나 정부나 위정자와 다른 견해를 가진 측은 ‘시민권’의 뒤에 숨은 불특정다수이고 그 다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측은 신분과 신원이 드러나 있는 특정인이라고 할 때 고함과 불매와 파손 등의 행위는 비겁하기까지 하다. 자기들은 ‘퇴진’의 깃발을 들고 공권력의 심장부인 청와대로 돌진해도 되고 그것을 저지하는 경찰은 번번이 ‘과잉폭력’의 상습자가 되고 마는 낡은 게임의 방식은 개선해야 한다. 내가 반대하면 당신도 반대할 수 있고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할 때 나의 다름을 인정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긍정했으면 한다. 나만이 옳다는 생각, 나와 다름을 폭력적 방법으로 대응하는 오만이라면 MB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사설] 공권력 테러로 무엇을 바라나


기사입력 2008-06-06 12:06 / 헤럴드경제

불법 촛불시위가 아예 상습화했다. 시위대는 언제부터인가 도로를 완전히 점령, 가두행진을 벌이고 청와대로 진격하는 게 정해진 순서처럼 됐다. 전경 차량을 펑크 내고 정당한 공권력을 행사하는 전.의경을 원수 대하듯 하는 일탈이 영웅 대접을 받는다. 도대체 법 집행이 사라졌다.

공권력에 대한 무시와 비난은 마녀 사냥 식 테러와 다름없다. 지난 주말 이후 인터넷에는 ‘전경이 시위대를 폭행했다’는 식으로 루머가 돌면서 전.의경의 신상자료가 유포됐다. 얼굴사진, 학교, 개인 홈페이지, 연락처가 공개된 해당 전경들에게 네티즌들은 벌떼처럼 “숨어 살아라” 식의 욕설과 협박, 저주를 퍼부었다. 수십 명의 부녀자를 살해한 유영철 같은 흉악범의 얼굴도 공개하지 않는 나라에서 사회질서 유지를 맡은 전.의경이 흉악범 취급을 받는 것이다. 묻지마 테러에 편승, 정체불명의 지방신문사 부장은 ‘20대 여성이 목졸려 살해됐다’는 허위 기사를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이 사람은 인터넷에서 뜨고 싶어서 그런 짓을 했다고 한다. 촛불집회가 불순한 루머에 휘둘리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는 장면이다. 과잉진압 관련자의 문책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청와대 난입을 수수방관해야 하는가. 무정부 사태가 와도 괜찮다는 것인가.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7일 밤까지 ‘72시간 연속 국민행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10일까지 그 열기를 정점에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87년 6ㆍ10 민주항쟁 기념일을 노리고 기획한 것이다. 지금은 민주항쟁의 시대가 아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와 정권퇴진용 투쟁은 엄연히 구분돼야 한다. 5일 밤에도 시위대는 밤 늦도록 세종로 사거리를 완전히 점거했다.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이 뻥 뚫린 것이다. 시위에 동조하지 않는 말 없는 다수를 생각이나 해본 것인가. 법은 민주사회를 유지하는 최후의 보루다.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언젠가 부머랭처럼 되돌아와 자신이 피해를 본다. 합법적으로 허가된 장소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소 판매과장’ ‘이명박의 몽둥이 어청수 경찰청장’이란 식으로 비난하는 것까지야 집회와 표현의 자유로 보자. 하지만 불법 도로점거와 정당한 공권력에 대한 폭행, 전.의경에 대한 명예훼손까지 보호받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