抵抗權
right of resistance
반항권(反抗權)이라고도 함.
기본권을 침해하는 국가의 공권력 행사에 저항하는 개인 또는 국민의 권리.
개념에 대해서는 견해가 대립되어 있다. 그 하나는 오로지 실정법 이외의 질서를 근거로 하여 실정법상의 의무를 거부하는 저항행위를 문제로 하여 그것을 정당하다고 하는 주장을 가리켜 저항권이라고 한다. 이처럼 오로지 초실정법적· 자연법적인 존재로서 저항권을 생각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실정법 속에 저항권을 규정해도 그것은 고작 정치적 의미를 가질 뿐이며, 법적으로는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이에 반해 하나의 실정법상의 헌법옹호의무를 근거로 하여 그 자체로서는 합법적으로 성립하고 있는 실정법상의 의무를 거부하는 저항행위를 문제로 하는 입장에서는 그와같은 저항의 권리는 실정법상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된다. 이와 같이 2가지의 '저항권'은 각각 다른 논리구조를 가지며, 별개의 문제가 될 수 있는 성질을 가진다. 실정법상의 저항권이 헌법보장의 한 형태임에 반해 자연법상의 저항권은 실정법질서 그 자체를 변혁하는 혁명권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실제 역사상에서도 저항권의 이름 아래 이들 2가지가 각각 등장하고 있다.
역사
유럽의 저항권의 원류로서는 그리스도교 사상과 봉건제 지배구조를 들 수 있다. 한편에서는 그리스도교적 저항권 사상은 대립하면서 의존했던 교권과 속권의 이원성을 배경으로 하여 종교상의 의무·질서를 근거로 한 세속권력에의 저항을 말하며 자연법적 저항권의 원형이 되었다. 또 한편에서는 상호적 성실 의무에 바탕을 둔 유럽의 봉건사회의 지배구조는 실정법상의 저항권을 만들어내는 기반이 되었다. 여기에서는 법이란 '지난날의 좋은 법'이며, 군주가 그와 같은 현행실정법을 파기하려 할 때, 신하는 '지난날의 좋은 법'을 유지하기 위해 저항할 권리를 가지게 된다. 마그나 카르타에서 영국 국왕은 자기가 법적 의무를 위반할 때는 바론(수봉)들이 저항할 권리를 가짐을 인정했고, 바론들이 선택한 25인의 대표자가 국왕을 감시하는 것에 동의했다.
중세에 들어서 권력분산적 상황이 극복된 근세 절대왕권이 확립되고 실정법 질서가 완결되어감에 따라 실정법상의 저항권은 후퇴·소멸해 가고 여러가지 저항권 사상이 실정법 세계 밖에서 주장되었다.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한 가톨릭 자연법의 입장에서 저항권론은 실정법에 대하여 오히려 타협적인 것이었지만, 칼뱅주의 계보 속에서 주장된 폭군방벌론파의 저항권론, 특히 로크 등 세속화한 자연법의 입장에서 본 저항권 사상은 실정법 비판의 무기로 큰역할을 했다.
로크는 정부의 존재를 사회계약설에 의해 근거 지우고 정부가 신탁에 반하여 인민의 자연권을 빼앗을 때는 인민은 저항의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주장이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 혁명 등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에는 자연법상의 저항권이 기존의 실정법 질서를 복멸하는 혁명권으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저항권은 미국독립선언서나 프랑스의 인권선언 속에서 높이 평가되었으며, 혁명에 의해 성립한 실정헌법질서를 정당한 것으로 만드는 사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저항권이 실정법 속에서 규정되게 될 때, 그것은 새로운 실정헌법 질서를 방위하기 위한 실정법상의 권리로서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인권선언이 '압제에 대한 저항'을 자유권으로서 구가하고, 1791년 헌법이 "헌법제정국민의회는 이 헌법을 …… 모든 프랑스인의 용기에 맡긴다."라고 정했을 때, 자연법에 연원을 둔 저항권이 실정법의 세계에 수용된 것이다. 거기에서의 저항권은 압제에 대항하는 것이었던 '일반의사의 표명'으로서 법률에 대항하는 것일 수 없으며, 인권선언 자체에 "법률에 의해 호출된 또는 체포된 모든 시민은 즉각 복종해야 한다. 그 사람은 유죄이다." 라고 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근대시민혁명에 의해 정초된 입헌적 의미를 가진 헌법의 원리가 19세기에 들어서 점차 제도적으로 정비되어가고 '압제'의 가능성 자체가 극소화되고 따라서 저항 형태에 의한 인권주장의 필요성도 극소화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저항권은 헌법사의 표면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자유민주주의 헌법질서에서 채택하고 있는 권력의 분립, 헌법재판제도, 사법권의 독립, 언론의 자유, 탄핵제도 등은 근대 역사 속에서 자유를 위한 투쟁, 즉 저항권에 의해서 쟁취된 제도로서, 저항권이 이들 제도 속에 흡수되었다는 점에서, '민주제 제도 그 자체가 일종의 제도화한 저항권'이라고 말해지는 것이다.
한편 자연법상의 저항권은 고의로 그렇게 주장되는 것은 아니며,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축으로 하여 실정 헌법 전체를 받치는 민중측의 권력비판 의식이 되어 거꾸로 흐르는 것이 된다. 이같은 역류가 20세기의 입헌주의의 위기에 즈음하여 '합법성을 넘어 정당성이라는 신념'으로서 나타나 파시즘에 대항하는 하나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자연법의 르네상스'의 한 국면으로서의 자연법상의 저항권이 재등장했다. 반파시즘 저항운동의 소산이라고 말할 수 있는 1946년 프랑스 헌법 4월 초안은 "인간을 예속하고 타락하게 하려는 시도, 전세계를 피로 물들이려는 체제에 대하여 자유로운 모든 인민에 의하여 쟁취한 승리의 내일에 프랑스 국민은 모든 인간이 양도할 수 없는 신성한 권리를 가졌음을 다시 선언하며 ……"라고 하여 "헌법에 의해 보장된 자유와 권리를 정부가 침해할 때, 모든 형태의 저항이 가장 신성한 권리이자 의무이다."라고 재천명했다.
이와 같은 경우에도 그것은 시민혁명기의 인권선언과 헌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편에서는 저항의 소산으로서 성립했던 헌법의 정당성 원리의 선언인 동시에 한편에서는 실정법상의 저항권의 규정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저항권의 실정법화에 대해서는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연방공화국이 문제가 되며, 헤센주나 브레멘 주의 헌법이 그 예이다. 또 서독의 연방헌법재판소는 독일공산당 위헌판결에서(1956) 저항권의 존재를 전제로 하여 공산당의 행동이 그것에 적합치 않다는 판결을 했다. 또한 1968년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 개정에 의해 "(헌법질서의) 폐지를 기도하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 모든 독일 국민은 다른 구제수단이 불가능한 경우는 저항의 권리를 가진다."라는 규정을 두었다.
현대적 문제성
실정법상의 저항권 행사의 요건·양태·효과 등은 각각의 실정법에 정해진 것에 의한다. 일반적으로 실정법상의 저항권을 둘러싼 법적인 쟁점은 몇 개의 공리적인 판단기관의 판단에 의해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정법상의 권리인 한 당연한 한계이며, 그러므로 헨센 주 헌법의 저항권 규정을 둘러싸고 말해지듯이 "허락된 저항은 저항이 아니다."라든가 "저항법의 실정법화는 무의미하다"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헌법보장을 위한 실정법상의 한 제도로서 일정한 유효성을 가진 것이다.
그런데 저항권이 논의될 때 자주 '무정부주의의 위험'이 지적되는데, 그보다도 실정법상의 저항권 제도에 있어 문제성은 공권력에 대한 저항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 즉 개인에 대한 저항까지도 저항권의 문제에 포함시키게 되면, 저항권의 역점이 '헌법에 의한 공권력의 구속'에서 '공권력에 의한 개인의 구속'으로 전도된다. 실제로 이러한 조항은 1968년에 '긴급사태헌법'의 일환으로 기본법에 넣어졌다. 이것은 나치즘과 공산주의에 대해 서독에서 말하는 '자유로운 민주기본질서'를 방위하기 위해 "자유의 적에게는 자유를 줄 수 없다"라는 사고방식 위에서 개인에 대한 '헌법충성'을 국가가 요구하는 '싸우는 민주제'의 관념에 대응하는 것이다. 게다가 공권력이 국가에 집중해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마그나 카르타의 경우와 달리 저항하는 주체측이 직접 공적 판결에 관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공권력 판정 그 자체에 대해 역시 저항하려 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과제가 남는 한 실정법을 초월한 저항권의 문제가 등장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저항권을 실정법화하는 것 자체는 가능하며 유용하지만, 실정법화하여 없애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자연법상의 저항권은 성질상 만약 그 요건·양태·효과 등을 실정법상의 권리에 비교하여 구성해 보아도 실정법에 의해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또 실정법상의 보호를 받을 이유도 없다. '법'이란 말은 다의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조직적 강제력에 의해 강제된 듯한 사회규범을 가리켜 부르는 말이라고 본다면, 국가에 공권력이 집중해 있는 현대사회에서 국가기관의 공권적 판정에 역시 저항하고 나아가 현존 실정법질서 그 자체를 거부하려는 저항권은 법적 의미에서의 권리라고는 할 수 없다. 또 저항의 근원이 되는 자연법의 내용도 구체적으로 보면 지극히 다의적이다. 그것이 '인간의 존엄'이라는 지극히 추상적인 명제로 나타날 때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치하여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자연법론자들의 입장에서 그것을 객관적인 행위로서 인정할 수 있다 해도, 가치상대론자의 입장에서 보면 각 사람의 안에서 양심에 비추어 결정한 주체적인 선택의 결과가 되는 것이다.
자연법상의 저항권은 성질상 필연적으로 무정형적인 것이므로 확실히 '무정부주의 위험'이 지적되는 일면이 있다. 그러나 그런 만큼 그 주장자들은 자기의 생명과 양심을 걸고 '합법성에 대항하는 정당성'의 주장일 뿐이라는 자각 위에서 명확한 정치적 책임을 의식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한편 저항권은 국가간에도 행사될 수 있다. 즉 강대국에 의해 정복되거나 식민지 상태에 놓인 약소국이 시도하는 주권회복 운동이 그것인데, 이 경우 한쪽 당사국에 전쟁 능력이 없다는 점에서 전쟁의 개념과는 달리 해석된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에 정복된 많은 약소국가에서 이러한 저항권의 시도가 있었는데, 제1·2차 세계대전 이전에 있었던 일본에 대한 한국의 광복 독립운동도 여기에 속한다.
한국의 경우는 헌법에 저항권의 규정이 없다. 다만 헌법 전문에 삽입된 "불의에 항거한 4·19혁명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문구를 저항권의 명시를 대신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를 저항권에 관한 근거 규정으로 삼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