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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Articles

위기의 남북관계, 북한의 의도는?

<北 '南과 대화 않겠다' 메시지, '6·15 이전으로 복귀' 경고>

기사입력 2008-11-25 02:42 / 한국일보 / 정상원 기자

'남북관계 중단' 파장과 전망

靑관계자 "北버릇 고쳐야" 강공 기조 불변

특별한 변수 없는한 대치국면 장기화 불가피

북한이 24일 통보한 6가지 남북관계 중단조치는 2000년 6ㆍ15 남북정상회담 이전으로 남북관계를 되돌리겠다는 경고다. 특히 정부가 예상했던 것보다 북측의 태도가 강경한데다 정부도 대북정책 기조를 바꿀 생각이 없어 남북 당국 간 대치국면이 지속될 전망이다.

북측이 이날 쏟아낸 각종 압박조치 중 통일부 출신 준당국자들이 일해왔던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 직원 50% 철수를 통보한 것은 남측 당국과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 3월 통일부 당국자가 떠난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를 지켜왔던 코트라 대표까지 사실상 추방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화물열차 운행과 개성관광 중단도 남북관계 단절의 경고로 읽힌다. 개성관광 중단에서는 "우리는 달러 박스도 필요 없다"는 강경한 자세가 엿보인다. 또 1951년 6월 경의선 남북 열차 운행 중단 이후 56년 만인 지난해 12월 운행을 시작했던 개성 봉동역과 남측 문산역 간 화물열차 운행중지 통보도 2000년 남북정상회담 성과가 물거품이 됐다는 측면이 크다.

북측은 또 개성공단 출입을 제외한 남측 인원의 군사분계선 육로 통행도 제한,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남측 민간단체나 경협사업자의 개성ㆍ금강산 지역 방문을 사실상 제한하겠다는 의미다.

북측은 그러나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에 대해서는 여지를 뒀다. "남측 생산업체들의 상주 인원 가운데 경영에 극히 필요한 인원들은 군사분계선 육로 차단 조치에서 일단 제외하기로 했다"고 통보한 대목이 그렇다. 북측은 특히 "우리는 남측 중소기업들이 남측 당국의 무분별한 대결정책의 희생물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며 남측 기업과 당국 간 분리도 꾀했다.

하지만 이 역시 '극히 필요한 인원' '일단 제외한다'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 여차하면 개성공단 폐쇄까지 감행하겠다는 뜻도 담고 있어 상황은 녹록치 않다. 이번 통보가 남북관계 차단의 1단계 조치에 불과하고 앞으로 남측의 대응에 따라 추가 조치를 내놓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제는 정부도 북측의 이런 조치에 굴복할 의사가 없다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2일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북한이 자세를 바꾸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대북 기조를 바꿀 뜻이 없다는 사실상의 지침이다. 청와대 관계자도 "정부가 북한에 굴복하는 모양새를 보이면 안 된다는 기조는 변함 없다"며 "이번 기회에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는 여론이 많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가는 것"이라고 전했다. 내년 4, 5월 북한 식량난이 심각해지면 북한이 손을 들고 대화에 나올 것이라는 계산이다.

남북 간 힘겨루기가 정점에 다다른 분위기이며 특별한 돌파구가 없는 한 남북 대치국면의 장기화가 불가피하다. 북한은 미국의 오바마 신 행정부와의 직접 대화에 기대를 걸고 있는 상태이고 예년에 비해 올해 식량 작황이 괜찮아 당분간 강공 전략으로 일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북한, MB 압박 … ‘핵 담판’ 앞둔 오바마도 겨냥>

기사입력 2008-11-25 03:07 | 최종수정2008-11-25 08:47 / 중앙일보 / 채병건 기자

북한이 24일 지난 10년 동안 일궈온 대표적인 남북 사업들을 일제히 중단하겠다는 초강수를 결국 꺼내 들었다. 개성공단과 개성관광은 대표적인 남북 경협사업이다. 따라서 북한이 개성관광의 전면 중단과 개성공단 상주 인력의 축소 조치를 취한 것은 표면적으론 이명박 정부 압박용이다. 하지만 그 이면엔 북한의 미래를 결정할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등장을 앞두고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해 북핵 담판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성격도 짙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남북 관계 악화는 한반도의 위기 지수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언제나 미국에는 빨리 평화체제를 논의해 북한 체제를 보장해 달라는 우회 메시지가 된다”고 지적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도 “개성공단 축소, 개성관광 중단은 남북 관계 사안이지만 미국까지 변수로 넣으면 '한반도를 바라보라'는 대미 시선 끌기용이 된다”고 말했다.

북한은 대남 압박책을 현실적 손해를 감수하면서라도 지금 써야 할 전략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으로선 비핵화 우선 정책을 고수하는 이명박 정부의 한·미 공조를 막지 못하면 향후 북·미 협상에서도 한국의 '끼어들기'가 예상되는 등 상황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동시에 대남 강경책은 검증과 대화가 혼재된 오바마 진영을 직접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미국에 '양보는 없다'고 알리는 효과를 가져온다. 북한이 직접 대화를 언급한 미국은 건드리지 않은 채 '약한 고리'인 남한을 때렸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의 이번 대남 조치는 오바마 진영이 남한 편을 들지, 북한을 주목할지를 알아보려는 떠보기 성격도 있다”며 “북한은 향후 결국 북핵을 둘러싼 한·미 공조 차단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이 남북 관계 차단에 나선 배경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으로 체제 단속 차원에서 대남 접촉을 차단했다는 지적도 있다.

북한의 이번 조치에선 철저하게 계산한 흔적이 드러난다. 중단이 예고된 경의선 열차 운행은 북한엔 큰 실익이 없었다. 지금도 화물이 없어 '빈 차 운행'하고 있다. 반면 개성공단은 상주인원 축소에 그쳤을 뿐 전면 폐쇄까지 가진 않았다. 매달 북측 근로자 3만5000여 명에게 1인당 최소 60달러씩 월급이 흘러 들어가며 개성을 먹여 살리는 '달러 박스'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 등장 이후엔 남북협력기금이 거의 지원되지 않아 대북 지원단체, 기업인의 방북 사업도 극도로 위축됐다. 따라서 북한이 이들 민간 차원의 육로 방북을 중단시켜도 당장 큰 손해는 없다. 굳이 따지자면 개성관광 중단이 북한엔 그중 큰 돈벌이다. 지난해 12월 시작 이후 관광객 1인당 100달러씩 1000만 달러가량이 이달까지 북한에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미 중단된 금강산 관광(지난해 2000만 달러)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다. 북한의 또 다른 달러 박스인 북한산 모래 채취 사업은 육로가 아닌 바다로 오가기 때문에 이번 차단 조치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공단은 살려 놓은 점과 다음 달 1일 차단을 앞두고 일주일 전에 미리 예고하는 점 등을 볼 때 북한이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관건은 향후 북한의 태도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일단 면밀하게 계산했지만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을 경우 개성공단을 사실상의 운영 불가 상태로 몰고 가는 등의 2차, 3차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북·미 대치가 깊어질 때 핵실험까지 강행하는 벼랑 끝 전술을 예외 없이 구사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북(北), 이(李)정부가 대북(對北)정책 안굽히자 벼랑 끝 압박>

기사입력 2008-11-25 03:17 | 최종수정2008-11-25 14:59 / 조선일보 / 안용현 기자

개성관광 등 중단… 왜?

美 정권교체기 틈타 최대한 남한 흔들기

개성공단 유지는 마지막 카드 남겨둔 것

'개성관광 중단' 등 북한의 24일 대남(對南) 통지는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 간 교류협력을 끊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러면서도 내달 8일 북핵 6자 회담 개최에는 동의했다고 한다. 핵 문제를 매개로 '통미(通美·미국과 통합)'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이명박 정부가 대북 강경노선을 굽힐 때까지 '봉남(封南·남측을 봉쇄함)'의 고삐를 더욱 죄겠다는 뜻으로 분석된다.

개성공단만 살려둔 이유는?

개성공단은 "마지막 대남 협상 카드로 남겨둔 것"(정부 당국자)으로 보인다.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이 남한 정부에 대북정책을 바꾸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등 '남남(南南) 갈등'이 확산될 조건을 만드는 것도 북한의 노림수"(국책연구소 연구원)라는 견해도 있다. 당장 민주당은 이날 "지금이라도 대북정책 기조를 전면 전환해 개성공단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경제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북한은 자국 근로자 임금 등을 포함해 공단으로부터 연간 2500억~3000억원의 수입을 얻는데 공단을 폐쇄하면 이 돈을 포기해야 한다. 김석우 전 통일부 차관은 "북한 경제는 우리 경제 규모의 36분의 1 수준이기 때문에 2500억~3000억원이 북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크다"고 했다. 공단 폐쇄시 뒤따를 대외신인도 추락도 북한에겐 부담이다.

그러나 개성공단 폐쇄는 여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장성급회담 북측 단장이 이날 조치를 '1차적'이라고 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정부 당국자도 "실제 폐쇄될 경우의 대비책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대남 초강수 왜?

북한은 개성관광 중단과 남북열차운행 중단 등 개성공단 폐쇄 외엔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이번에 다 취했다. 일종의 초강수로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처럼 초강수로 나온 데 대해 "그동안 여러 차례 경고도 하고 일부 강경 조치도 취했지만 남한 정부가 처음으로 유엔 대북 인권결의안을 공동 제안하는 등 대북 정책 원칙을 바꾸지 않자 예정된 카드를 한꺼번에 꺼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찔끔찔끔 내놓는 카드로는 남한 정부에 효과가 없다고 판단해"(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남측에 대해서도 벼랑 끝 전술을 쓰는 것"(남주홍 경기대 교수)이란 관측이다.

실제 북한은 이달 들어서만도 지난 12일 군사분계선 육로 통행 차단 경고, 13일 판문점 남북 직통전화 차단 등으로 남북관계의 긴장도를 계속 키워 왔다. 북한은 당시 남한 민간단체의 대북 '삐라'(전단) 살포와, 남한 정부의 유엔 대북 인권결의안 공동 제안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그후에도 삐라는 계속 북으로 날아갔고 우리 정부는 유엔 대북 인권결의안을 포기하지 않았다. 북한의 '협박'이 통하지 않은 셈이다. 정영태 박사는 "북한은 여기서 밀리면 이명박 정부 내내 남북관계 주도권을 남측에 빼앗길 것이란 위기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북한을 둘러싼 대내외적 여건이 나쁘지 않은 것도 북한이 이렇게 나오는 한 배경으로 지적된다. 먼저 올해 풍년이 들고, 미국 등 해외의 지원도 이어져 매년 100만~150만t 정도 부족했던 식량 문제에서 걱정을 덜었다. 당분간 남한에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대북 직접 대화를 공약한 오바마(Obama)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북한에게 호재로 작용했을 수 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정권 교체기인 미국이 움직이기 힘든 상황에서 대남 카드를 최대한 써보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남북 모두 자기 기조와 원칙이 뚜렷하기 때문에 남북관계는 당분간 바닥을 칠 수밖에 없는"(양무진 경남대 교수) 상황으로 갈 것 같다.


<많은 기업 개성공단 끌어들여 南위협때 전략적 활용 지시>

기사입력 2008-11-26 03:22 | 최종수정2008-11-26 11:07 / 동아일보 / 신석호 기자

北통전부 간부출신 장철현 안보전략硏 연구원 주장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역(逆)으로 이용하기 위해 개성공단 건립을 허락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북한 대남 전략을 총괄하는 통일전선부 간부 출신인 장철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은 25일 기자와 만나 “최근 개성공단의 위기는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김 위원장이 공단 설립 당시 구상했던 전략을 현실화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장 연구원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1998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발표하자 “햇볕정책 중에서 수용할 부분은 과감하게 소화하면서 장차 우리의 대외 정책에 역이용하라”며 남북관계와 관련해 세 가지 전략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첫째, 남북 교류는 경제적 이익에만 국한하고, 둘째, 남북 관계는 북-미 관계가 회복될 때까지 과도적으로 진전시키며, 셋째, 햇볕정책이 남한 사회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하라는 지시였다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이런 전략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기획됐고 김 위원장은 2000년 공단을 최종 허락하기 전 통전부에 두 가지 지시를 내렸다고 장 연구원은 전했다. 하나는 개성에 많은 기업을 끌어들여 ‘전략적 필요시’에 남한을 정치 경제적으로 위협하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개성공단을 남측에 개방하는 대신 인민무력부가 철저한 대책을 세우라는 것이었다.

장 연구원은 “김 위원장은 인건비에 너무 욕심을 내지 말고 남한 기업인들이 요구하는 대로 해주는 대신 북한이 군사적인 양보를 하는 것처럼 선전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또 개성공단 설치에 따른 안보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단 지역을 기지화, 요새화하고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의 남편 등을 훈련된 교도지도국(도시 게릴라전을 위해 훈련된 부대) 출신들로 채우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남한에서 10년 만에 보수정권이 들어서자 남북관계를 얼어붙게 할 ‘전략적 필요’가 생겨 개성공단을 위협하는 것이지 남한의 대북정책이나 대북 전단(삐라) 발송 등이 위기를 불렀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장 연구원은 “2004년 탈북해 입국한 뒤 정부 기관에 이런 사실을 여러 차례 알리고 유사시 입주기업들의 재산권을 지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었다”고 말했다.


<‘돈보다 체제가 우선’…北 다시 빗장>

기사입력 2008-11-25 04:54 / 서울신문 / 김미경 기자

북한이 24일 개성관광 중단과 함께 이달 말까지 개성공단 입주업체 상주인원 절반을 축소하고 남측 인원의 군사분계선 통과를 엄격히 제한·차단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남북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이 이미 육로통행 제한, 차단을 예고한 12월1일을 일주일 앞두고 우리측 개성공단 관계자들을 이례적으로 북측으로 불러 면담을 했으며, 7개에 걸친 통지서를 발표하는 등 초강수를 둠에 따라 남북간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갈등이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북한은 지난 12일 남북장성급회담 북측 대표 명의의 전화통지문에서 남측 정부가 6·15,10·4선언을 이행하지 않고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삐라) 살포 등으로 북한 체제가 위협받고 있다는 이유로 다음달 1일부터 군사분계선을 통한 모든 육로통행을 제한, 차단한다고 밝혔다.

당시에도 1차적 조치 등 단계별 행동을 할 것임을 예고했지만 이날 북측의 발표 내용은 1차적 조치로 보기에는 수위가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밝힌 1차적 조치가 예상 외로 강하게 나온 것은 북한이 지난 12일 육로통행 차단을 예고한 이후 준비기간을 줬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최근 통일발언, 유엔 대북 인권결의안 채택 등을 통해 남측의 입장을 최종 확인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향후 2차적 조치는 개성공단 중단,3차적 조치는 모든 남북 관계 단절로 가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북측 입장에서도 개성공단은 외화 벌이의 수단이자 개혁·개방의 상징으로 계속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경제적 실익보다는 정치적 체제 보존을 위해 남북 관계 차단 조치를 택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건강이상설’이 돌고 있는 김정일 체제가 남측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와 6·15,10·4선언 부정으로 위협받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 교수는 “북측에 개성공단은 핵이나 미사일, 판문점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과 달리 미국을 자극하지 않고도 우리측과의 관계를 가장 흔들 수 있는 타깃이 된다.”며 “우리는 개성공단 등을 북한의 경제적 이익 차원으로 접근하지만 북한은 남북 관계가 좋지 않을 경우 오히려 체제 보존을 위협하는 부정적 요인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허문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도 “김정일 체제라면 경제가 아닌 정치적 결정론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남북 관계가 좋을 때에는 실용적으로 북한의 정책 변화를 이끌 수 있지만 남북 관계가 악화될 경우 강경보수파가 득세, 관계를 끝내는 방향을 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허 위원은 이어 “예정된 수순이지만 현재는 남북 관계를 완전히 중단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김정일 후계구도 등 체제 구축을 위해서라도 남북 관계를 완전히 버릴 수는 없는데 남측의 소위 ‘선의의 무시·방관’(benign neglect) 정책에 대한 반기를 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남북 관계가 단절돼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 오기 전에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양 교수는 “북측이 변하기를 기다리기보다 6·15,10·4선언을 포용하고 대화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며 “남북 최고지도자간 의사소통과 결단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특사를 보내고 실무 고위급 회담을 개최, 관계 복원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허 위원은 “북한이 완전히 문을 닫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이라도 정책 조율이 필요하다.”며 “빠르면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는 1월 전, 늦어도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나올 5월까지는 ‘비핵·개방·3000’을 수정하고, 남북 모두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만큼 대결 구도를 버리고 경제난을 함께 풀어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北 잇단 강경조치 배경은>

기사입력 2008-11-26 03:18 | 최종수정2008-11-26 06:42 / 한국일보 / 김광수 기자


김정일 주도 아래 군부·조평통이 메시지 전달"

북한의 최근 초강경조치를 누가 주도하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전면에서 대남 강경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는 군부가 주목된다. 군부는 6일 조사단을 개성공단에 보내 업체들의 철수 가능성을 거론하며 으름장을 놓았고, 12일에는 전화통지문을 통해 "12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을 통한 통행을 차단하겠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군부의 정점에 있는 국방위원회의 입김이 세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하지만 군부가 대남 정책을 주도한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북한에서 핵 문제와 대남ㆍ대미 정책은 무조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뜻을 받들어야 하는 불가침의 영역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군부를 앞세운 것은 남북 관계가 경색돼 있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남측을 좀더 강력하게 위협하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의사 결정에 지장을 줄 만큼 김 위원장의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군부가 혼자 치고 나갔다고 보기는 더더욱 어렵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25일 "북한 권력기관은 각자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단일체"라며 "김 위원장 지시에 따라 이번에는 군부, 다음에는 조평통 이런 식으로 남한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동국대 김용현 교수는 "남북 화해가 아니라 대립전선이 형성돼 있어 다른 기관보다는 군부가 나서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분석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전체적 방향만 제시하고 실제 정책은 당 군부 내각 등이 참여하는 일종의 협의체인 '상무조(TF팀)'에서 결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대남 정책의 경우 노동당 통일전선부에서 각종 분석자료를 기초로 밑그림을 작성해 보고하면 권력기관 간에 치열한 토론을 거쳐 수위와 내용을 정한다는 것이다. 위 아래로 메커니즘이 동시에 작동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