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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Articles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시작된 전 세계 금융위기설과 대한민국의 금융시장

<아이슬란드 디폴트說 확산…업계 2위 은행 국유화>

기사입력 2008년 10월 08일 00:10:01 / 경향신문 / 박지희 기자

러시아 40억유로 자금 지원 추진

유럽의 소국 아이슬란드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첫 희생자가 될 것인가. 대형 은행들이 유동성 위기에 휘말린 아이슬란드가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할 것이라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금융 시스템이 무너질 경우 그 파장이 유럽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7일 위기 타개를 위한 긴급조치로 업계 2위 규모의 란즈방키 은행을 국유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말 업계 3위의 글리트니르 은행 지분 75%를 인수해 국유화한 바 있다. 정부는 또 시장 불안으로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가 빚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은행 예금에 대해 전액 지급을 보장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아이슬란드 중앙은행은 러시아 정부가 40억유로의 긴급 자금을 지원해 주겠다고 제안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원이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며 향후 협상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게이르 하르데 아이슬란드 총리는 6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국가 경제가 세계 금융위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 ‘국가 부도’의 가능성에 직면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아이슬란드 은행들은 그동안 고객의 예금보다 해외 차입에 의존해 덩치를 불려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아이슬란드 3대 은행의 총 자산규모는 지난 6월 말 현재 14조4000억크로나(약 1260억달러)다. 이는 지난해 아이슬란드의 국내총생산(GDP) 1조3000억크로나의 10배가 넘는다. 여기에 아이슬란드의 대외 채무는 2·4분기 말 현재 9조5500억크로나로 GDP보다 7배 이상 많다.

올들어 크로나의 가치는 유로화 대비 44%나 폭락했다. 정부가 유동성 위기에 처한 대형 은행들을 구제해야 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6일 아이슬란드의 국가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두 단계 낮추고 신용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유지했다.


<불안심리 막자”… 각국 공조 ‘금리인하’ 나설듯>

기사입력 2008년 10월 08일 00:06:16 / 경향신문 / 정환보 기자
 
ㆍ미국·유럽 긴급대책 쏟아내
ㆍ美 FRB 기업어음 직접 매입 계획 발표
ㆍ유럽은 개인예금 무제한 지급보증 확산

‘마지막 카드는 금리 인하?’

세계 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지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유럽중앙은행(ECB),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 등이 동시에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시장의 불안심리 확산을 방어하고 유동성 공급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이 공조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다.

AP통신은 중앙은행들이 2001년 9·11 테러 이후 처음으로 금리 문제에 관한 공조에 나설 것이라고 7일 전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 인하에 소극적이던 ECB가 금리를 내릴 경우 이는 5년 만의 일이 된다. 앞서 호주 중앙은행이 16년간 최대폭인 1.0%포인트의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는 소식이 글로벌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미국에서는 이달 중 최소 0.5%포인트 인하를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재무부가 위기 해결의 ‘만병통치약’인 양 들고 나온 700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법안이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FRB는 7일 단기 기업대출 시장의 경색을 완화하기 위해 기업어음(CP)을 직접 매입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뉴욕타임스는 FRB가 은행권 무보증 대출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대책은 미국 은행들이 현재 하루짜리 초단기 대출 자금인 오버나이트에 의존하고 있는 점과 관련이 있다. 금리가 널뛰는 오버나이트에 은행들이 의존하게 되면 안정성에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된다. 은행 파산으로 인한 연쇄 위기를 차단하기 위해 FRB가 무보증 대출이라는 파격적인 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FRB는 연말까지 9000억달러에 이르는 돈을 풀어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계획도 지난 6일 밝혔다. 예금 지급 보증 한도를 10만달러에서 25만달러로 확대한다는 발표도 있었다.

유럽에서는 예금자 보호 조치 강화를 통해 뱅크런(무더기 예금인출 사태)을 막는 데 주력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재무장관들은 7일 룩셈부르크에서 회의를 열고 27개 회원국에 적용되는 예금 지급 보장 한도를 기존의 2만유로에서 5만유로로 높이기로 합의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이로써 회원국들은 5만유로를 최저선으로, 각국 사정에 따라 예금 지급 보장 한도를 정하게 된다. 앞서 6일 포르투갈과 아이슬란드는 은행의 예금 지급을 무제한 보장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달 30일 아일랜드를 시작으로 이달 들어 독일, 덴마크, 스웨덴, 오스트리아, 그리스가 잇달아 예금 지급을 무제한 보장키로 한 데 이은 것이다.

EU 재무장관들은 또 금융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위기에 처한 은행들에 대해 잠정적으로 구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데 합의했다. 자금 경색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금융기관들에 대해 대규모 구제금융을 지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셈이다.

ECB는 7일 올들어 최대 규모인 2500억유로의 자금을 경매 방식을 통해 은행들에 대출했다. 또 성명을 통해 6개월 기한의 민간은행 대출 규모를 지난달 4일 발표한 250억유로에서 500억유로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각국 정부가 이전에는 상상조차 힘들던 파격적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음에도 전 세계적 자금 부족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7일 세계 주요 금융상품의 금리 결정 기준인 리보(LIBOR·런던 은행 간 금리)는 급등세를 보였다. 이날 하루짜리 달러화 리보는 1.57%포인트 오른 3.94%를 기록했다. 3개월짜리 유로화 리보는 0.22%포인트 상승한 4.27%를 나타냈다.


<美대공황 다시 올까 …학자들 “조정 국면” 국민들 “가능성 충분”>

기사입력 2008년 10월 07일 18:27:51 / 경향신문 / 구정은 기자
 
ㆍ高실업률·은행 연쇄도산·가계 파탄 등 닮은 꼴
ㆍ미국인 59% ‘체감 공포’… 불확실성이 더 문제

격렬한 조정 국면인가, 대공황의 전주곡인가.

금융위기가 갈수록 심화되자 미국에서는 1920년대 말~30년대 초의 대공황(Great Depression)이 재현될지 모른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대공황이 다시 올 가능성은 낮다고 말하지만, 일반인들 사이에선 ‘체감 공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CNN방송이 6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10명 중 6명은 “대공황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며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NN은 △25%에 이르는 높은 실업률 △금융기관 연쇄 도산 △노숙자 급증과 가계재정 파탄 등 대공황이 불러온 현상들을 제시한 뒤, 성인 1000명에게 이 같은 일이 재현될 것이라고 보는지 물었다. 응답자의 59%는 ‘가능성이 아주 높다’거나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시사 주간 타임은 최신호에서 대공황 가능성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영국 출신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타임 기고에서 “아직 ‘대공황 버전 2.0’ 단계는 아니지만 역사를 돌아보며 교훈을 얻어야 할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AP통신은 대공황과 80년대 미국 주택대부조합 파산 사태, 그리고 이번 금융위기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분석했다. 29년 10월29일 ‘검은 화요일’로 촉발된 대공황은 증시 거품이 꺼지면서 일어났다. 간헐적인 상승 국면은 있었지만 증시 폭락은 40년대 초반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까지 반복됐다. 소득 감소와 함께 실업률이 치솟고 가계 소비가 줄었다. 돈을 빌려 자동차를 산 미국인 중 빚을 못 갚는 사람들이 속출하면서 금융 위기가 확산됐다. 30년대에 미국에서는 은행 9000여개가 파산했다.

대공황과 현 금융위기는 모두 미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전반으로 옮아간 것도 같다. 대공황 뒤 미국에서는 농산물 가격이 급락했으며 전반적인 디플레이션이 나타났다. 아직 디플레이션이라 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1년 전까지 고공행진을 해온 국제유가는 6일 배럴당 80달러대로 내려갔다. 천연가스와 구리, 알루미늄 등 원자재값과 곡물 가격도 급락했다.

대공황 뒤 각국은 일제히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섰다. 미국은 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도입, 외국 상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의 수출액은 29년 52억달러에서 33년 17억달러로 줄었다. 오늘날에는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 국가들 간 공조가 훨씬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유럽 국가들에서 보이듯 국가별 이기주의도 나타나고 있다.

경제학자들 사이에는 대공황을 이야기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견해가 많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 시카고대 교수는 7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의 실업률은 6%대에 머무르고 있고 국내총생산(GDP)이 하락할 기미도 없다”며 대공황 가능성을 일축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대공황과 현 금융위기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보도했다. 40년대 이래 미국은 10번의 경기침체를 겪었지만 실업률이 가장 높이 올라갔던 81~82년에도 10.8%에 그쳤다. 또 2000~2002년 주가가 50%까지 빠진 적도 있으나, 대공황 때는 무려 90%가 날아갔다. 대공황 때는 미국 은행의 5분의 2가 파산하는 등 지금보다 피해 규모가 훨씬 컸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반면 파이낸셜타임스의 유명 경제분석가 마틴 울프는 최근 칼럼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현 상황이 통제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을 받고 공포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숫자가 아니라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세계 경기침체 국면 진입>

기사입력 2008년 10월 07일 18:26:33 / 경향신문 / 도재기 기자
 

미국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옮아가면서 세계 경제가 침체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세계 증시가 6일(현지시간) 일제히 폭락하며 ‘블랙 먼데이’를 보인 것은 “시장의 글로벌 경기후퇴에 대한 공포를 단적으로 보여줬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이 7일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금융위기가 성장둔화로 이어져 모두에게 큰 고통을 안기는 경기침체로 귀결될 것”이라고 전했다.

세계 경제 1위의 미국은 경기침체를 예고하고 있다고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등 미 언론들이 이날 보도했다. 전미실물경제협회(NABE)는 48명의 경제학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69%가 ‘올해 안에 미 경제가 침체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했다고 밝혔다. NABE 보고서는 “응답자들이 성장률을 3·4분기 1%, 4·4분기 0.1%로 추산하는 등 경기전망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이번 침체는 지난 두 번의 침체기보다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미국의 제조업지수, 실업률 등 각종 경기지표는 악화되고 있다. 러셀인베스트먼트의 어네스트 안크림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경기침체를 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제 침체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로존도 불황을 면치 못하고 있다. 투자 신뢰도를 가늠하는 센틱스지수(10월 현재)가 2002년 지수 도입 이래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는 경기침체를 처음 공식 확인한 아이슬란드는 ‘디폴트 위기설’이 돌자 정부가 비상조치를 선언했다. 덴마크·프랑스가 경기침체 국면으로 진입 중이라는 분석 속에 “독일과 영국도 진입의 문턱에 서 있다”고 가디언 등이 보도했다.

세계 경제의 버팀목으로 평가받아온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도 경기둔화가 우려되고 있다. 시몬 존슨 매사추세츠공대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가) 동시에 경기침체에 진입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아소 다로 일본 총리는 7일 현재의 금융위기에 대해 “1929년(대공황)에 필적한다”며 “유럽도 휩쓸리고 있으므로 일본에도 반드시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소 총리는 또 “서방 선진7개국(G7) 재무장관들이 이번 주 워싱턴 회동에서 금융위기에 대해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IMF는 보고서를 통해 세계적 금융위기에 따른 금융계의 손실 규모가 당초 예상한 1조달러보다 많은 1조40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7일 전화로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와 국제 경제위기 대처 방안을 논의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환율 1320원 돌파…“또 외환위기 오나” 공포 엄습>

기사입력 2008년 10월 07일 18:24:20 / 경향신문 / 오창민 기자
 
원·달러 환율이 1320원선을 넘어서자 외환시장에 공포감이 또다시 엄습했다. 시중은행 외환딜러들은 천장을 뚫고 치솟는 환율로 ‘패닉(공황)’ 상태에 빠져들었고, 고객들은 ‘제2의 외환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달러를 구하지 못한 기업들은 아우성을 쳤고, 환헤지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은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도산의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 ‘키코’ 피해 中企 도산 불안 -

외환당국은 초비상 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외환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 않아 상황을 면밀히 주시할 뿐이었다. 전문가들은 불안심리가 해소되지 않으면 환율이 1500원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최근의 환율 급등은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른 것이어서 외환위기로 치달을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환율 공포 엄습=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달러당 59.10원 폭등한 1328.10원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3일(거래일 기준)간 141.10원 폭등하면서 2002년 4월12일(1332.0원) 이후 6년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 환율은 한때 1350원까지 치솟았지만 오후 들어 주식시장이 상승 전환한 데 힘입어 낙폭이 줄었다. 시중은행 외환딜러는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 부족으로 외화 유동성 우려가 외환위기 공포로 확대되면서 시장의 달러 수급 기능이 완전히 마비됐다”고 말했다.

수입 원자재 결제용 달러 매입을 위해 이날 하루 종일 모니터 앞을 지킨 중견기업 자금담당 직원은 “외환당국의 매도 개입이 이뤄지면 단 100달러라도 사려고,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지만 결국 실패했다”고 밝혔다.

미국에 유학간 자녀에게 송금하기 위해 은행 직원과 상담을 벌인 김모씨(45·서울 광장동)는 “지난주 환율이 1200원대였을 때 달러를 구해 송금했어야 했는데 미루다가 환율 폭등사태를 맞았다”며 “일단 며칠 더 버텨볼 생각인데 달러 값이 더 오르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와 일부 국책연구기관 연구원들에게는 환율과 관련해 발언을 하지 말라는 ‘함구령’이 내려졌다. 기자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도 받지 않거나 전화를 받더라도 외환시장과 관련해서는 일제히 ‘노 코멘트’로 일관했다.

- “1500원까지 오를 가능성도” -

◇제2의 외환위기 가능성 낮아=환율이 치솟고 있지만 시장에는 여전히 달러를 사겠다는 사람만 있을 뿐 달러를 팔겠다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있다. 시장 참가자들 대다수가 당분간 환율이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선물 전승지 연구원은 “공포감이 진정되지 않는 한 환율 오름세가 지속돼 1500원까지 오를 가능성도 있다”며 “외환시장 심리를 안정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최근 상황이 1997년 외환위기 때와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윤덕룡 선임연구위원은 “1997년에는 자본시장을 자유화하면서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가용 외환보유액이 100억달러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며 “현재 달러 부족 현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다 같이 겪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번 환율 폭등은 은행권 달러 수급의 만기 불일치로 인해 발생했기 때문에 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달러약세하의 원화약세 원인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최근 원화가 유독 약세를 보이는 데에는 달러 수급상 만기불일치로 달러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라며 “외환시장의 안정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만기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李대통령 “현 위기 IMF 때와 달라”>

기사입력 2008년 10월 07일 18:31:04 / 경향신문 / 최재영, 오관철 기자

ㆍ국무회의서 철저한 대비책 강조…한·중·일 금융공조도 지시

이명박 대통령은 7일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현재의 위기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와는 다르다”며 “정부가 대비책을 세우고 있고, 기업들이 자구노력을 강화하면 국민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기업들의 자구노력과 함께 정부가 외환보유액과 외화 유동성 확보를 위해 노력 중이고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무엇보다 정부가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 중요하며, 그동안 정부 당국이 그래도 선전하고 있다고 본다”면서 “한·중·일 역내 금융공조 노력을 강화하고 매일 수시로 상황을 점검해 유동성 확보에 차질이 없도록 대비하라”고 관계부처에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또 “지나친 낙관론은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과도한 위기의식으로 불안감을 부추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심리적 요인을 거론하면서 “이런 때일수록 국민도 정부를 믿고 내외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데 힘과 지혜를 모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승수 총리는 이날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전광우 금융위원장,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 박재완 국정기획수석 등이 참석한 가운데 청와대에서 거시정책협의회를 주재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회의 후 “지금 대외여건에 국내시장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시장 참가자들은 합리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참석자들은 또 “필요하다면 감독당국은 외환시장 왜곡 요인을 점검하는 등 시장질서를 회복시키는 노력을 강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당초 이 회의는 재정부 국정감사 때문에 취소됐으나 환율이 비정상적으로 폭등하자 급히 열렸다.

청와대 관계자는 “외환보유액, 외채 등을 감안할 때 외화 유동성 문제는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이달부터 경상수지가 흑자로 개선되는 등 외환수급 상황 등이 개선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한국 외환시장 왜 취약한가…경상수지 적자가 큰 영향>

입력: 2008년 10월 07일 18:20:49 / 경향신문 / 오창민 기자
 
전 세계 통화에 비해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다른 통화에 비해 원화 가치 하락폭이 더 크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외환시장이 취약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7일 삼성선물에 따르면 지난 7월15일 이후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지난 6일 현재 21% 폭락했다. 7월15일은 달러화가 전 세계적으로 강세로 전환된 시점이다.

같은 기간 동안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15% 하락했고, 영국 파운드(-13%), 캐나다 달러(-9%), 인도네시아 루피(-5%), 말레이시아 링기트(-8%) 등도 달러 대비 가치가 떨어졌다. 엔화 가치는 이 기간 동안 달러에 비해 오히려 3% 절상됐다.

이처럼 원화가 유달리 약세를 보이는 데는 경상수지 적자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올 들어 8월까지 126억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이 같은 경상수지 폭은 한국 경제 규모로 볼 때 위험한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아 경상수지 적자폭이 커지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 자금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점도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외국인 투자 비중이 30%대로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또 적립식 펀드 가입 붐으로 내국인들의 주식매수 수요가 계속 들어오고 있어,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주가 폭락에 대한 부담 없이 손쉽게 자본을 빼내갈 수 있다. 선진국 투자자들의 투자 심리가 얼어붙을 경우 국내 금융시장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실제로 최근 4개월간 주식시장에서 외국인들은 주식투자 자금 150억달러를 회수해 달러 값 상승을 부채질했다.

1997~98년 외환위기 경험도 외환시장의 달러 수급을 왜곡시키고 있다. 최근 외화 유동성 문제가 제기되자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은 달러 자산 확보에 나서고 있고, 수출기업들은 보유 중인 달러를 내놓고 있지 않아 ‘달러 기근’을 부추기고 있다.

금융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과거 외환위기에 대한 경험 때문에 외환시장 참가자들의 심리적 동요가 크고, 이로 인해 외환시장에서 지나친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달러 퍼내다 달러 기근… 정부 ‘정책 실패’>

입력 2008년 10월 07일 18:18:56 / 경향신문 / 서의동, 오관철 기자


흐름 역행, 근시안적 개입 연발
투기세력에 오히려 주도권 뺏겨


외환시장에 달러 유동성 부족 현상이 심화된 것은 정부가 국제금융시장의 흐름에 역행하는 근시안적인 외환정책을 편 데다 ‘대증
요법’식 시장 개입을 되풀이한 탓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외환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리면서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효과가 사실상 실종됐고, 외환시장에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외환시장 흐름 역행하는 정책=기획재정부는 지난 5월 외국환 거래 규정을 개정해 투자 목적의 해외 부동산 취득 한도(300만달러)를 폐지키로 하고, 6월부터 적용하기 시작했다. 해외부동산 취득한도 완화는 만성적인 외화 초과 공급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참여정부 시절부터 단계적으로 추진돼 왔던 것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시장 흐름을 거스른 ‘달러 퍼내기’ 정책이 되고 말았다.


재정부는 또 지난달 18일 ‘2단계 기업환경개선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내년 2월부터 2단계 외환자유화 조치를 앞당겨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재정부는 개인 소액 외환거래 자유화, 금융투자회사와 제2금융권의 외환업무 대폭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외국환거래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하지만 불과 이틀 전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신청으로 국제 금융시장 경색이 불보듯한 상황에서 외환자유화 계획을 앞당긴 것은 명백한 정책 실패라는 지적을 받았다.


외환자유화 계획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자 재정부는 7일 “2단계 외환자유화 조치를 당분간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재정부 관계자는 “글로벌 신용경색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외환자유화 조치를 예정대로 추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해 시행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근시안적 대응으로 국고만 축내=재정부는 지난 7월 외국계 은행 한국 지점의 본점 차입에 대한 이자 비용 손비인정 한도를 기존 자본금의 3배에서 6배로 완화했다. 정부가 외국은행 국내지점이 해외 본점에서 달러를 차입할 때 이자의 손비 인정(과세대상 수익에서 제외되는 경비) 한도를 늘려주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1월에는 단기외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외은 지점의 본점 차입 손비인정 한도를 자본금의 6배에서 3배로 축소한 바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환율 급등세를 막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동원해서라도 환율 방어에 나서겠다고 밝힌 뒤 ‘달러 폭탄’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지난달 26일 이후 달러 부족 현상이 실물경제에 파급되기 시작하자 달러 현물이 거래되는 외환시장에 대한 개입을 단행한 데 이어 달러 선물이 거래되는 외화자금시장(스와프시장)에까지 100억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외환시장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정부는 지난 2일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수출입은행을 통해 시중은행에 50억달러를 대출하기로 했다. 당시 재정부 최종구 국제금융국장은 “스와프시장 참여는 거래 상대방을 특정하지 않다 보니 아주 급한 곳과 덜 급한 곳에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지원하는 문제가 있었다”며 외화자금시장 개입의 문제점을 인정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일 한·중·일 재무장관 회의를 추진할 것을 지시한 사실이 공개된 것도 외교관행을 감안할 때 신중치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정책 대응이 혼선을 겪으면서 외환시장의 주도권을 상실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정부가 시계(視界)가 짧은 정책으로 외환시장에 대응하면서 투기세력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부)는 “정부가 외환시장에서 주도권을 잃고 있어 어떤 말을 해도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보유액 줄면 대외신인도 추락으로 진짜 위기”>

입력: 2008년 10월 07일 18:03:37 / 경향신문 / 김세구 기자
 
ㆍ박승 전 한국은행총재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국내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7일 1300원을 돌파했고, 주식시장에서 코스피지수가 1300선으로 곤두박질쳤다. 금융시장의 불안은 점차 실물경제로 옮아 붙으면서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여건)을 약화시키고 있다. 외환시장은 1997년 외환위기의 악몽이 되살아날 정도로 패닉(공황) 상태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외환보유액을 풀며 환율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6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외환보유액이 계속 줄어들게 되면 국제수지 적자와 맞물려 대외신인도가 뿌리째 흔들리게 되고 이럴 경우 진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며 “외환보유액은 손대지 않는 것이 국익에 맞다”고 말했다. 외환당국이 외환보유액을 풀어 시장 개입에 나서는 것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박 전 총재는 또 “세계경제는 15년에 걸친 호황이 끝났고 앞으로 최소 4~5년은 경기가 극도로 침체될 것”이라며 “정부는 성장주의 정책 대신 긴축경제 체제로 전환해 사회 안전망 확충 등 민생 경제 안정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 금융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고 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가 미국의 금융위기를 초래하고 다시 세계로 파급되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패러다임 변화의 변곡점에 서 있습니다. 지난 15년간의 호황은 끝났고, 앞으로 최소 4~5년간은 장기침체 시대가 올 것입니다. 장기호황은 신자유주의 체체 아래서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질서에 의한 효율 극대화, 중국·인도·남미 등 거대 저임금 경제권의 부상에 힘입은 것입니다. 이 시기는 고성장, 저물가, 저금리, 고유동성, 고물가, 고주택 가격, 고 원자재 가격 등 자산 버블(거품)로 특정지워지는 ‘고원(高原)경기’였습니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고비용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데다 세계적인 자산 및 원자재 가격거품이 붕괴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가장 취약한 서브 프라임 모기지에서 곪아터진 것입니다.”

-금융위기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십니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파장을 몰고 온 이유는 우선 미국 부동산의 80%가 은행 대출인 데다 은행 대출을 기반으로 이중, 삼중의 채권이 발행되면서 파생상품시장을 부풀게 했다는 점, 금융감독 기능이 취약한 점 등이 겹쳤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태는 미국 부동산거품 붕괴→미국의 금융위기→미 금융위기의 세계적 파급→세계 실물경제의 장기침체로 진행될 것입니다. 금융위기는 지금 한창 깊은 터널을 통과하고 있고, 완전히 벗어나려면 앞으로 1~2년이 더 걸릴 것입니다. 게다가 세계 실물경제의 침체는 시작 단계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위기상황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세계 경제질서는 저성장, 고물가, 고금리, 저유동성, 저자산가격 시대가 될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7% 성장약속을 했지만 처음부터 실현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고용문제와 민생경제는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성장 정책을 밀어붙인다면 경제위기는 더욱 증폭될 것이고, 민생도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정부는 경기부양과 경제체질 강화, 민생경제 안정 중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등 외환시장이 극도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24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는 한국의 신인도는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정부가 환율을 방치한다고 해도 오르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올라가다가 멈추게 될 것입니다. 외환보유액이 계속 줄어들게 되면 국제수지 적자와 맞물려 대외신인도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 때는 정말 큰 위기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환율이 뛰고 외환이 부족하니까 정부가 외환보유액에 손을 대고 있지만 이래서는 근본적인 해결이 쉽지 않고 자칫 큰 위기를 부를 위험이 큽니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외환보유액에 손대지 말아야 합니다. 국가신인도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환율 상승은 거의 한계점에 왔습니다. 그러나 신인도가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정부는 미봉책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대신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통을 감내하며 위기대응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9일 기준금리를 결정해야 하는데 이런 위기상황에서 금리정책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까.

“금리에 대해서 구체적인 얘기를 하거나 주문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상황에선 고금리 기조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가안정, 국제수지 균형회복, 원화가치 안정을 위해 고금리 기조가 유지돼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중·일 재무장관회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하기보다는 물밑에서 추진하는 것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제의는 옳다고 봅니다. 한·중·일 3개국이 금융협조를 해 위기에 공동대응하는 것은 매우 유효하고, 성사된다면 아주 좋은 일입니다. 중앙은행 차원에서는 일본, 중국과 협조관계가 구축돼 있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니까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미국도 금융위기를 겪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미국 같은 금융위기로 치달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가격은 거래가 잘 안될 뿐 아직도 보합수준이고, 미국보다는 은행대출 비율이 낮습니다. 앞으로 금리가 오를 경우 가계에 압박이 오면서 소비침체→경기침체→민생고통의 악순환이 예상됩니다. 고통은 견뎌내야 하고, 정부와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내핍체제가 필요합니다. 정부가 건설경기가 나쁘다고 경기부양을 통해 해결하겠다고 한다면 부동산 투기의 악순환 사이클이 되풀이될 우려가 큽니다.”

-금융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기조는 어느 쪽으로 지향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저금리, 고환율, 적자재정 정책은 물가상승과 국제수지 악화를 초래하고, 국민경제도 어렵게 할 것입니다. 경제체질 강화와 민생경제 안정에 중점을 둔다면 고금리, 국제수지 개선, 환율안정, 건전재정, 물가안정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정부는 종부세 완화 등 감세정책, 수도권 규제완화 등 양극화를 부추길 정책은 유보하고 사회안전망은 강화해야 합니다. 국내외 경제 여건의 악화는 일과성이 아니라 장기적이고도 지속적인 흐름입니다. ‘소나기’가 아니라 기나긴 ‘장마’입니다. 정부가 현실을 좀더 냉철히 보고 국민에게 내핍을 호소하고,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가장 고통받는 소외계층에 대한 안전망 강화 등 민생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펴야 합니다.”

-정부의 감세정책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내핍체제로 전환해야 할 시기에 정부가 감세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매우 부정적입니다. 국민의 2%에 불과한 집 부자들을 위해 종부세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국민정서와 경제정의에도 맞지 않습니다. 국내에서 빈부격차는 소득격차가 아니라 자산격차에서 초래됩니다. 상위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이지만 자산은 4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종부세는 이런 자산격차 축소에 유효한 정책인 것인데 정부가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되돌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미국식 금융모델이 몰락했고, 신자유주의도 실패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단기적 수익을 극대화하고 전 세계의 돈을 긁어 모아 이중 삼중으로 부풀려 이득을 내는 체제입니다. 하지만 한번 부실이 시작되면 승수효과에 의해 위기가 증폭되는 구조입니다. 미국의 금융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하면 안됩니다. 금융시장 개편 과정에서 이런 문제를 충분히 정부가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의 특징인 무한경쟁속의 적자생존, 단기수익 극대화 모델이 성장을 효율화하는 측면은 분명히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빈부격차 확대와 양극화를 초래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경제질서로 대체되기는 어려워 경제개방을 확대하면서도 양극화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합니다.”

박승 누구인가

1936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다.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청와대 경제수석, 건설부 장관,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한국은행 총재 등 학계와 금융계, 정부를 넘나들며 한국 경제의 발전과 호흡을 같이 해왔다. 서울대를 졸업한 뒤 1961년 한국은행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한은 해외유학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한은 총재로 재직할 당시에는 특유의 ‘뚝심’으로 통화신용 정책의 독립성을 확보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리공고 재학 시절 매일 8㎞를 뛰어서 통학했을 정도로 어려운 성장기를 보낸 때문인지 설렁탕 집을 즐겨 찾는 소탈한 성격이다. 한은 입행 초기 건물에 불이 나자 불을 끄기 위해 물양동이를 들고 지붕에 올라갔던 일은 아직도 한은 직원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세계경제 '경기침체 먹구름'..대공황 재연 우려도>

기사입력 2008-10-07 15:42 | 최종수정2008-10-07 16:18 / 연합뉴스 / 김세진 기자

세계 경제의 하늘 위로 경기침체라는 이름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지난달부터 일부 유럽 국가들의 경제 지표가 심상치않은 조짐을 보여 왔는데, 이달들어 미국에서 구제금융 법안이 발효됐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주가지수는 물론 원자재 가격, 경제 지표, 심리도에 이르기까지 경제 전반에 걸친 경고음이 울려나왔다.

7일 뉴욕타임스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CSM) 등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전미실물경제협회(NABE)가 경제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해 전날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올해 안으로 미국 경기가 침체 상태에 접어들 것이라고 답한 사람이 전체의 69%로 지난 5월 조사때의 56%보다 늘어났다.

유로화 사용 15개국(유로존)의 투자 신뢰도를 가늠하는 센틱스 지수의 10월 수치는 2002년 이 지수가 도입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NABE의 설문조사와 10월 센틱스 지수 발표에서 나타난 공통점은 바로 침체(recession)라는 단어가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지난 두번의 사례에 비해 이번 침체는 더 길어질 것'이라는 진단은 NABE 설문조사의 결과로 나왔고, 센틱스 지수 산출 과정에서도 응답자들이 "침체 상황을 기대한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의 급락은 위기감을 가중시켰다.

뉴욕 시장에서 6일 서부텍사스산 원유 선물 가격이 지난 2월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90달러선 아래로 내려선 것을 비롯해 천연가스와 구리, 알루미늄 등의 선물 가격 역시 크게 떨어졌다.

올들어 한때 몇몇 국가에서 폭동을 불러올 정도로 치솟았던 국제 곡물가격 역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금융 위기가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는 경제 상황의 악순환으로 향하는 일종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의 우려를 전했다.

졸릭 총재는 경제 위기의 여파로 개도국의 수출이 타격을 입으면 개도국으로의 자본 유입 감소와 투자 감소, 성장 둔화, 그리고 기업 활동 위축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 2일자 보도자료를 통해 "경제 활동의 심각하고도 장기적인 하강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암울한 진단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중국이나 인도 같은 신흥국가들이 미국 경제에 대해 비교적 낮은 노출 정도 때문에 아직까지는 직접적인 타격을 받지 않는 양상을 보이고는 있지만 신흥국가들도 금융위기의 파장을 비켜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CSM에 의하면 미국 소재 연구기관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마이클 무사 명예연구원은 신흥국가 전체의 내년 경제 성장률이 5.7%로 지난해의 7.4%나 올해 예상치 6.3%보다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NYT는 경제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경제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인 공조가 이뤄지기는 커녕 단일 통화권이 형성된 유럽에서조차도 경제단위 차원의 대책보다는 자기 나라 챙기기에 급급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신문은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는 물론 과거에 주요 경제 문제에 대해 공동 대처했던 주요7개국(G7) 역시 이번 금융위기에 대해서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의 상황을 1930년대에 미국을 휩쓴 경제 대공황과 비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워싱턴포스트는 '1929년이 다시 돌아왔나'(Is it 1929 Again?)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전체 경제활동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공황 당시보다 훨씬 커졌고 위기 상황에 당국이 신속하게 대응한다는 차이점이 있다면서도 위기 직전에 미국인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빚을 끌어다 썼다는 점, 위기가 놀라울 정도로 신속하면서도 국제적으로 닥쳐왔다는 점 등이 그때와 유사하다고 진단했다.


<달러 가뭄 해소 어떻게>

기사입력
2008-10-08 03:06 / 서울신문 / 문소영 기자

한국이 달러 기근을 해소하는 방법은 네 가지 정도가 있다.

첫째,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한 ‘한·중·일 국제공조’다. 형식이 멋진 국제공조는 외환보유액 규모가 세계 1·2위를 달리는 중국(1조 8088억달러)과 일본(9967억달러)에 한국 정부가 달러를 긴급하게 빌려달라고 부탁한다는 의미다.

특히 일본은 미국 중앙은행과 통화 스와프를 통해 1200억달러를 지원받기 때문에 한국과 달리 충분한 달러 유동성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급전을 빌릴 때 이자가 비싼 사채를 쓸 수밖에 없듯이, 국가간의 거래 역시도 녹록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미국 중앙은행(FRB)이 9개 선진국에 제공한 달러 유동성을 한국에도 제공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미국 FRB는 내년 4월까지 일본·영국 등에 모두 6200억달러를 제공하고 9개 국가의 통화를 받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오는 11일부터 15일까지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합동연차회의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정부측 관계자는 “FRB가 달러 유동성을 공급하는 나라들은 국가신용도가 트리플A(AAA)로 싱글A(A)인 한국과 다르다.”면서 “또한 원화와 달러의 담보가치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통화스와프 대상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국제 무역규모 12위국이 위태로워질 경우 세계 경기에 미치는 파장 등을 강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셋째, 은행·민간이 해외 자산을 매각하는 것이다.6일 정부가 은행을 압박했지만 금융기관들이 해외자산을 얼마나 매각할지는 미지수다. 개인들의 해외펀드 손실에도 불구하고 환매할 경우 국내 달러 사정은 개선될 수 있다. 현재 해외 설정 펀드 규모가 82조 3198억원이므로 전체를 매각한다고 가정하면 800억달러 정도의 외환이 확보된다. 물론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넷째, 경상수지 흑자를 내야 한다. 이를 위한 핵심적인 전제조건은 긴축정책이다. 경제성장률을 5% 이상 높게 잡는 ‘장밋빛 낙관론’에 집착할 게 아니라 3% 성장을 하더라도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하자고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오석태 씨티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외환위기 때처럼 전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해외여행을 자제하고 1달러를 벌고 아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럽 덮친 금융위기, 증시 5% 하락 예사 … 앞다퉈 “예금 무제한 보호”>

기사입력 2008-10-08 02:53 | 최종수정2008-10-08 03:36 / 조민근 기자

유럽을 덮친 금융위기의 파고 속에 각국은 피 말리는 생존 경쟁에 돌입했다. 이들 정부는 은행 예금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앞다퉈 예금에 대해 무제한 지급 보증을 선언하고 나섰다. 하지만 각국의 이런 경쟁적 대응이 '예금 쟁탈전'으로 비화돼 앞으로 공동 보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예금 무제한 보호' 확산=그리스·아일랜드·독일·오스트리아에 이어 6일(현지시간) 덴마크·포르투갈·아이슬란드도 예금 무제한 지급 보증을 들고 나왔다. 페르난도 도스 산토스 포르투갈 재무장관은 이날 “금융 시스템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모든 국민의 예금 지급을 정부가 보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이슬란드 정부도 “국내 모든 상업은행과 지점의 예금에 대해 전액 지급보증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스페인도 동참할 태세다. 페드로 솔베스 재무장관은 “유럽연합(EU) 차원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독자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금 지급보증의 확산에 기름을 부은 것은 독일이었다. 독일의 발표 직후 인근 오스트리아가 따랐다. 최근 보증 한도를 3만5000파운드에서 5만 파운드로 확대한 영국도 고민에 빠졌다. 무제한 보증을 하는 국가로 돈이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럽 내 최대 경제국인 독일이 공조체제를 깼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이에 대해 독일 재무부는 “기업 계좌는 보증 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며, 자본 이동을 촉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은 한발 더 나아가 개별 금융사 지원뿐 아니라 자국 금융권을 보호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페어 슈타인브뤼크 재무장관은 이날 “금융사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개별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독일 금융권에 전체적인 보호막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 국가들이 지급보증을 위한 구체적인 재정 확보 계획을 밝히지 않아 일단 선언만 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일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분석에 따르면 아일랜드가 자국 6개 은행 예금과 부채를 모두 떠안을 경우 국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25%에서 325%로 대폭 늘어나게 된다.

한편 금융사들의 과도한 대외 부채로 국가부도 위기에 몰린 아이슬란드 정부는 이날 금융사들의 경영 방침을 직접 지시하고, 합병·파산을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비상 조치를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게이르 하르데 총리는 “세계 금융위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 국가가 파산할 위기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엇박자 대응' 비판도=EU 27개 회원국은 이날 성명을 통해 “회원국 국민의 예금과 금융시스템을 동시에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계속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AFP는 “EU 경제·재무장관이 룩셈부르크에서 회의를 열고 27개 회원국에 적용되는 예금 지급보장 한도를 종전의 2만 유로에서 5만 유로로 높이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각국의 개별적 예금 보증 선언이 이어지고 있어 공조 다짐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다니엘 그로스 유럽정책연구센터 국장은 “이미 유럽 내 금융시장은 통합돼 있는데 각국 정치인들은 은행이 여전히 국적을 갖고 있는 걸로 아는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미국식 구제금융 계획에도 여전히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날 정상회담을 열고, 금융위기에 맞서 공동 협력하기로 했으나 유럽 내 구제금융 펀드 조성에는 견해 차를 드러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구제금융 펀드 조성에 적극적인 반면 독일은 반대다.

도미니크 슈트라우스 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이날 “세계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은 집단 방어선을 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국 구제금융 이후 한국 대응은 …>

기사입력 2008-10-07 00:36 | 최종수정2008-10-07 00:43 / 중앙일보 / 김정수 기자


미국의 구제금융 안이 드디어 미 의회의 승인을 받았다. 발등의 불은 일단 끌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되면 선진국 내의 금융 경색이 해소 기미를 보일 것이고, 그에 따라 선진국 경기도 안정세를 되찾을 것이다(본지 10월 1일자 E6면 제리리포트). 그런데도 한국 증시와 외환시장은 여전히 패닉(공황) 상태다. 왜 그런가?

◆선진국 경기 회복 성급한 기대는 금물

작금의 구제금융 등으로 선진국의 금융과 경기가 안정되면 우리에겐 분명히 도움이 된다. 그들의 금융 경색이 풀리면 외화자금이 우리 외환과 주식시장으로 돌아오고, 선진국 경기가 진정되면 우리의 수출세가 회복되고, 그 덕에 경상수지가 개선되는 등 직접적으로 외환시장과 경기 안정에 기여할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선진국의 금융 경색이 풀리고 경기 침체가 완화되는 데에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 이상 소요된다. 선진국 경제와 직결된 우리 금융과 경기도 사정이 나아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다. 그 사이에 나라 안과 나라 밖, 그리고 나라 안의 금융과 경기 간의 불황 연결고리(그림 참조) 때문에 우리의 경착륙 위험이 높아질 수 있어서다.

◆갈수록 경착륙 위험 높아진다

우리의 외환·금융시장 경색은 미국 등 선진국의 주택·금융 버블이 꺼지면서 야기된 금융 경색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외화자금이 빠져나가고, 주요 선진국의 경기 불황으로 경상수지가 악화돼 비롯됐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는 달러 고갈과 환율 상승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따라서 주요 선진국의 금융 경색과 경기 침체가 해소되지 않는 한 국내 금융 경색과 경기 불황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더 큰 걱정은 국내 금융 경색과 성장세 둔화가 서로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불황의 연결고리'다. 경기 불황은 가계 및 기업 대출을 부실하게 하고, 이는 금융 경색을 부채질하며, 그 금융 경색은 자금 순환을 극도로 경직시켜 경기를 악화하는 요인으로 되돌아 오는 것이다(이런 상황에서는 원화 자금 고갈과 금리 상승 또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이런 악순환이 그대로 방치되면 금융위기와 경기 경착륙이 야기될 가능성은 높아지는 것이다.

◆급한 불(금융 경색)부터 꺼야

외환·금융시장의 불안과 경색을 해소하는 게 급선무다. 그래야 적어도 국내 금융 경색과 불경기 간의 연결고리를 차단할 수 있고, 그래야 경착륙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 금융 경색을 해소(또는 더 이상의 악화를 억제)하기 위해선 한편으로는 유동성 부족 상태를 해소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계 및 기업 대출의 추가적인 부실을 억제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작금의 미국처럼) 은행이 은행을 믿지 못해 서로 간에 자금을 주고받지 못하는 극단적인 금융 경색 상황을 미연에 피하기 위해서다. 당장 유동성 부족 해소에 정책적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환과 원화 모두 유동성 공급을 시급히 늘려야 할 것이다(그러나 특정 부문이나 특정 금융기관에 집중하기보다는 금융시장 전반에 무차별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또 대출채권의 추가적인 부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금리 기조를 낮은 수준에서 견지해야 할 것이다. 아니, 추가적인 금리 인하 조치를 강요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같이 유동성 경색을 해소하고 부실채권 누증을 저지하려는 금리 기조는 금융 경색이 해소의 길로 접어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러한 대책이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사태가 악화될 때에 대비해 작금의 선진국들처럼 구제금융 내지 부실 채권 매입 등 비상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해 두는 것도 시장 불안을 잠재우는 데 일조할 것이다. 아까운 재원을 시기적 적절성과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경기부양보다는 이 비상체제에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시장의 신뢰를 높여라

시장의 안정, 특히 외환시장의 안정에는 나라 정책에 대한 신뢰 회복이 관건이다. 특히 당국의 재원 동원과 위기관리 체제·능력에 대해 늘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처음부터 위기적 상황이 도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해외의 대형 불안사태가 발생해 국내로 옮겨오는 경우에도 경제적 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고 위기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과단성을 앞세운 잦은 정책 널뛰기, 시장의 흐름에 역행하는 정책수단 동원, 뒷감당할 수 없는 시장에 대한 (구두)개입 등은 모두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짓임을 늘 기억해 둬야 할 것이다.

외환 수급에 관한 한·중·일 국제 공조 체제 강화도 (정부의 금융위기 대응 능력에 대한 신뢰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금융 경색이 풀리고 외환시장이 안정을 되찾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외환 수급 조절 능력이 자주 문제되는 동남아 국가들을 이 국제 공조 체제에 참여시키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금융 규제와 자율화 묘수 찾아야

작금의 (미국) 금융 경색에 대한 원인으로 자주 지적되고 있는 것이 지나친 금융 규제 완화와 부실한 금융 감독이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금융 감독 체제가 인지하고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과도하게 금융 규제를 완화한 것이 사달이었다. 따라서 미국 등 선진국은 (파생상품 등 상품)규제와 (건전성 등) 감독을 동시에 강화할 것이다.

선진국들이 금융 감독과 금융상품 규제를 강화하면 우리도 감독과 규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금융이 선진국 금융과 긴밀하게 연계돼 있고, 우리의 감독 또한 시장 상황에 비해 느슨하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으로선 당연히 금융 감독 능력을 더욱 강화하고, 감독체계를 금융산업 발전 수준에 맞게 세심하게 구축해야 할 것이다.

걱정은 규제 강화 부분이다. 최근의 규제 강화 분위기에 편승해 금융 규제 완화의 발걸음을 멈추거나 금융 규제를 강화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특히 최근 사태가 금산 분리 등 금융산업에 대한 진입 규제 철폐 노력을 중단하는 빌미로 작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우리의 금융 규제는 글로벌 수준의 금융은커녕 국내 금융산업의 정상적인 발전이 불가능할 정도로 지나치게 복잡하고 경직적이다. 진입 규제를 중심으로 규제 완화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는 얘기다.

단 상품 규제의 경우 금융 감독 능력 범위 안에서 완화해야 할 것이다. 금융 감독기관은 물론이고 시장 참여자들조차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금융상품에 대한 규제 완화는 시장과 당국의 관리 능력이 강화될 때까지 미뤄야 한다는 것이 이번 사태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