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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s/이론 / Theory

와인과 그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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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의미에서의 와인은 과실을 발효시켜 만든 알코올 함유 음료를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신선한 포도를 원료로 한 포도주를 말한다. 우리나라 주세법에서 "과실주란 과실즙을 주된 원료로 하여 당질과 물을 첨가하여 발효시킨 술덧을 여과 제성한 것"으로 와인은 과실주의 일종이다. 와인의 어원은 라티어의 '비넘'(Vinum)으로 '포도나무'로부터 만든 술이라는 의미로 포도주를 일컫는 말이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와인을 뜻하는 말로는 이태리의 비노(Vino), 독일의 바인(wine), 프랑스의 뱅(Vin), 미국과 영국의(Wine)등이 있다.또, 와인은 다른 술과는 달리 제조과정에서 물이 전혀 첨가되지 않아서 알코올 함량이 적고, 유기산, 무기질 등이 파괴되지 않은 채 포도 성분이 그대로 살아 있는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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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와인의 성분을 분석하면 수분 85%, 알코올 9-13% 정도이고 나머지는 당분, 비타민, 유기산, 각종 미네랄, 폴리페놀(페놀 물질이 여러 개 결합된 것, 동맥경화 예방에 효능이 있는 카테킨 등)로 나뉘어 진다.

따라서 와인의 맛은 토질, 기온, 강수량, 일조 시간 등 자연적 조건과 포도 재배 방법 그리고 양조법이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나라마다, 지방마다 와인의 맛과 향이 다르다.

특히 프랑스는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지 않기 때문에 좋은 와인용 포도가 자라기엔 최적의 기후에다 뛰어난 양조기술로 와인 종주국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와 같이 와인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발효 식품이고 완전 식품이며 마시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기원전부터 인류에게 사랑 받아온 와인은 현재 식탁에서 각종 모임이나 행사에서 식사용 음료로 맛과 분위기를 돋우고 더 나아가 서구 문명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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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상으로 인류가 언제부터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유적에 의하면 선사 시대부터 인류가 포도를 먹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다마스쿠스의 남서쪽에서 발견된 유물 중에는 기원전 6,000년경에 사용되었던 과일과 포도를 압착하는데 사용했던 곳으로 추측되는 압착기가 발굴되었고, 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기원전 4,000년경에 와인을 담는데 쓰인 항아리의 마개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는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의 벽화와 아시리아의 유적에 의하면 기원전 약 3,500년에 이미 와인이 많이 음용되고 있었다. 이러한 유적과 바빌로니아의 상형문자에서 발견되고 잇는 것을 토대로 하여 와인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원전 약 4,000년에 소아시아지방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에서도 기원전 약 2,000년에 와인이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성서에서도 팔레스타인에서 포도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고 고고학자들이 최근 기브온에서 2,600년 전의 거대한 와인 공장의 유적을 발굴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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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바빌로니아의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목수들이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을 마시면서 7일 만에 배를 건조했다는 기록이 있고, 또 <함무라비 법전>에는 "주벽이 나쁜 자에게는 와인을 팔아서는 안 된다." 등의 규정이 있었다. 성서에는 모두 165번에 걸쳐서 와인이 인용되고 있으며 창세기 9장에는 "노아가 그의 방주가 않은 아라라트 산에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지라…"라는 구절이 있고, 기원전 3,000년경에는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이미 와인을 양조했으며 아름다운 왕비였던 네퍼티티 왕비는 와인을 기초 향수로 사용했고, 그 당시의 파라오들이 죽었을 때 그들의 피라미드안에 포도씨를 같이 묻었는데 이것은 내세에 가서도 와인이 부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집트의 테벤에서 발견된 벽화에 쓰여진 글에 의하면 "나에게 18잔의 와인을 주시오. 내가 취해야 되겠소. 나의 속은 짚과 같이 말라 있소" 라고 쓰여 있을 정도로 사후 세계에 까지 와인 마시기를 소원했다. 기원전 600년경 페니키아인들이 포도와 와인을 고개 그리스에 전래 했고, 로마 시대의 학자였던 플리니우스는 당시 그리스에는 91가지 품종의 포도가 있었다고 기술 했다. (현재는 약 8,000가지 품종의 포도가 있다. 물론 이 중에서 양조용 품종은 극히 일부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와 시인인 아이스킬러스 등은 와인을 사랑했고, 또 와인으로써 경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스의 여류 시인인 사포도 와인을 노래했다.

와인을 '신의 축복'이라 말하는 그리스는 기원전 600년경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포도와 와인을 전해 받아 와인을 생산한 최초의 유럽 국가이며 이를 로마에 와인을 전해주었다. 이러한 고대 그리스의 뒤를 로마가 이어나감으로 포도재배지역은 확장되어졌다. 로마는 유럽을 점령한 후 식민지를 넓힐 때마다 그 속국들에게 포도재배와 와인 양조를 하게 하였고 와인양조기술을 발달시켜 대량 생산을 가능케하여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를 중요한 농업의 하나로 만들었다. 그 후 로마 제국은 유럽을 점령하면서 부대 주둔 시 주위에 적군이 숨어 있지 못하도록 부대 인근 지역의 나무를 베어내고 포도나무를 심었다. 이러한 이유말고도 이들이 포도나무를 심는 또 하나의 이유는 로마 군인들이 이들 지역에서 좋지 못한 식수를 마시고 배탈이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레드 와인을 많이 마시게 했는데, 이 와인을 본국에서 수송해 오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부대 인근에 포도를 심어 여기서 생산되는 와인으로 수요를 충당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유럽의 여러 지역으로 포도의 재배가 확산되어 나갔다. 실제로 이 시대 로마의 속국이었던 유럽 거의 모든 나라들은 포도 재배에 적당한 기후인 지중해성 기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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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후 500~1,400년까지는 유럽이 세계 와인 생산지의 중심지였으며 교회의 미사나 성찬용으로 또 의약용으로 그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포도재배나 와인양조기술이 엄청난 발전을 하게 되었다. 중세의 음유 시인들은 와인을 노래했고 시민들은 와인을 찬양하는 시를 썼다. 이 시대에는 좋은 식수를 구하기 어려웠으므로 식사 때에 와인을 음료로 사용했고 유럽의 와인 소비국들에게는 빵이나 육류와 같이 와인은 인생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었다. 당시 이 국가들에서는 와인이 얼마나 중요했던지 상당량의 와인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어떤 계약도 성사시킬 수 없을 정도였다. 세금도 와인으로 냈고 부채도 와인으로 정산했다.수백 년이 지나면서 마술적인 포도의 발효는 계속되었고 수도원들의 노력으로 대형 와인 공장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한편 영국에서는 와인소비가 갑자기 급증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헨리 2세가 보르도의 앨러너공주와 결혼하면서 보르도가 영국령 같이 되어 와인이 세관 통관없이 수출되었기 때문이다.
 
배고픔과 통증이 보편적이던 이 시대에 와인은 단지 음료로써만 쓰인 것이 아니라 이러한 괴로움을 없애주는 적당한 방법이었다. 이 중세시대부터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는 전혀 다른 맛의 와인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호두맛이 나는 셰리가 에스파냐에서 생산되었고, 포르투갈에서는 짙은 색깔의 포트가 생산되었으며 보르도와 부르고뉴는 훌륭한 레드 와인으로 그 명성을 높여나갔다.

1679년에 오빌러 수도원의 수사인 동 페리뇽은 샴페인을 개발하였고 이 시대부터 와인병의 마개로 코르크의 사용이 일반화되어졌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지 26년 후에 멕시코 정복자인 에스파냐인 코르테스가 신대륙에 포도를 심을 것을 명령한 것을 시작으로 북미 지역과 남미 지역으로 와인이 전파되었고, 17세기에는 남아프리카, 18세기에는 오스트레일리아와 캘리포니아에 전파되었다. 그러면서 생활의 향상과 명문 와인의 등장, 병에 넣어 보관하는 방법, 편리한 운반 등으로 인해 와인의 보급은 물론 소비량 역시 크게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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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에는 국에서 수입된 야생포도나무의 뿌리에 있던 피록세라선충(포도나무뿌리진딧물)이라는 기생충의 창궐로 유럽전역 및 세계의 거의 모든 포도원을 황폐화시키는 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저항력이 강한 미국산 포도묘목과 유럽 포도묘목의 접붙이기로 해결할 수 있었고 1860년 '미생물에 의해 발효와 부패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파스퇴르에 의해 발표되어 효모의 배양, 살균, 숙성에 이르는 와인제조방법이 크게 발전을 이루었다.
   
그 이후 산업화와 교통 수단의 발달 덕분에 와인의 생산과 교역이 활발해짐에 따라 각 국가별로 나름대로 규정을 두어서 제품의 차별화와 고급화를 통한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35년 프랑스에서는 와인에 관한 규정(AOC)을 제정하여 포도의 재배와 와인의 양조 과정을 엄격히 관리하여 좋은 품질을 유지함으로써 국제적으로 프랑스 와인이 좋다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후에는 이태리, 독일, 미국, 호주, 스페인 등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와인법을 제정하여 실시해 오고 있다. 최근에 와서는 농업 기술의 발달로 포도의 생산량은 늘어나는 반면,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1인당 와인의 음용량은 감소하여 와인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 나라들이 많다. 그러나 아시아 지역 개발도상국들의 경제가 발전됨에 따라 와인의 소비가 점차 증가하고 있으므로 와인 생산국들은 자국의 과잉 생산된 와인을 이 지역에 수출하기 위해서 각축을 벌이고 있다.

전반적으로는 와인이 과잉 생산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연도별로, 또 지역별로 일기가 불순한 경우에는 가끔 고급 와인의 생산량이 감소하여 이들 와인의 가격이 인상되는 경우도 있다.

오늘날 전세계 약 50개국의 850만 헥타르의 포도원에서 연간 250억 병의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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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에는 다음과 같은 와인에 관한 우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아주 먼 옛날 옛적에 어떤 원숭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그 원숭이는 잘 익은 야생포도송이를 따서 자기 구역 안에 있는 바위 위에서 먹으면서 놀곤 했다. 그런데 칠칠치 못한 그 녀석은 포도 몇 알을 씹다가 떨어뜨리기도 했고, 또 실컷 먹고 난 후에는 남은 포도송이를 바위의 우뚝한 곳에 숨겨놓는다는 것이 그만 깔고 뭉개는 바람에 포도 주스가 조금 만들어 지게 되었다. 이때 포도 껍질에 묻어 있던 야생효모가 따뜻한 기후에 의해서 발효되기 시작하여 약간의 와인이 만들어졌다.
 
다른 곳에서 신나게 놀다가 바위로 돌아온 녀석은 갈증을 느껴 바위틈에 있는 와인을 물이라고 착각하고 핥아먹고는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져서 흥얼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처럼 원숭이가 처음으로 와인을 만들었는지, 아니면 인류의 조상들이 먼저 와인을 마셨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전설 속에 인간과 와인의 첫 만남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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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페르시아의 셈시드 왕은 궁궐의 정원에 야생포도나무를 옮겨 심고 여기서 딴 포도를 자신의 식탁에 올리게 했다. 그는 시종들이 가져온 그 잘 익은 포도를 왕비와 함께 매일 매일 즐겼다. 특히 늦게까지 나무에 달려 있던 포도는 그 색깔이 진홍색을 띠면서 맛이 아주 달았다.
 
수확기가 끝날 무렵 셈시드는 오랫동안 포도를 먹을 수 있도록 모든 포도를 다 따서 지하실의 큰 통에 담아 저장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릇에 담겨진 농익은 포도들이 서로 눌리면서 포도 주스가 흘러나오게 되었다.

그러자 발효 때문에 지하실에서는 진기한 냄새가 끊이지 않고 새어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이상한 냄새를 '왕을 독살하려는 악령의 짓' 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이 소문은 온 나라로 퍼져 나갔다. 이 소문을 들은 왕은 두려움에 떨며 이 저주 받은 지하실 부근의 통행을 금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왕비가 심한 두통으로 고생을 하게 되었다. 이 왕비는 너무 아픈 나머지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고는 출입이 금지된 악령이 살고 있다는 그 저장실로 가서 소문에 듣던 그 독약을 마셔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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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놀랍게도 왕비는 죽기는커녕 생기를 느끼게 되었고 두통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아주 행복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왕비는 왕에게 달려가 그 포도 주스에는 악령이 아닌 좋은 영이 떠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왕도 그 마법의 물약을 마시고는 즐거워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