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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Articles

오버(over) 공화국

[시시각각] 오버(over) 공화국

2008.06.22 19:52 입력 / 2008.06.23 00:47 수정 / 김진 논설위원

대한민국은 오버(over) 공화국인가.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시민단체, 주부, 그리고 초등학생까지 모든 사람이 선을 넘는다. 정상이란 차선을 놔두고 비정상을 즐겨 달린다. 얼마나 더 교통사고가 나야 오버 주행이 멈출 것인가. 선진화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는 것이다. 오버가 줄어들수록 선진국이다.

30명에 가까운 한나라당 의원이 세비를 포기했다. 1인당 720만원씩 2억원에 가까운 돈이 지역아동센터에 기부됐다. 의원들은 국회가 열리지 않으니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버다. 의원직만큼 세비도 신성하다. 국가가 세비를 주는 건 생계를 꾸리고 입법을 연구하면서 의원직에 충실하라는 뜻이다. 국회가 안 열려도 나라의 문제가 무엇이고 4년간 무슨 법을 만들지 고민하면 하루 해가 짧고 세비가 부족하다. 그리고 앞으로 국회가 공전할 때마다 세비를 포기할 건가. 세비를 포기한 이들의 대부분은 초선이다. 여야 구별 없이 선배 의원들은 오버의 전문가였다. 대통령을 탄핵하고, 정말 그만두지도 않으면서 툭하면 의원직 사퇴서를 냈다. 초선은 오버부터 배우려는가.

민주당은 내각이 총사퇴했을 때 등원했어야 했다. 그러면 명분도 살리고 실리도 챙길 수 있었다. 센스(sense)의 선을 넘으니 앞으로가 갑갑하다. 그들은 얼마 후 머쓱한 표정으로 등원할 것이다. 시위대와 국민대책회의도 선을 넘었다. 정부가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들여오지 않겠다고 했을 때 그들은 촛불을 껐어야 했다. 물값과 가스요금과 병원비가 오른다고 근거 없이 소리쳤을 때 촛불은 오버한 것이다. 시위대는 시청 앞 광장 잔디밭을 지켰어야 했다. 그들이 선을 넘어 도로로 들어갔을 때 그들은 오버한 것이다. 조·중·동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냥 “노(No)”라고 소리치면 된다. 사유지에 난입하고, 스티커를 붙이고, 쓰레기를 버릴 때 그들은 오버한 것이다. 광고가 싫으면 그냥 제품을 사지 않으면 된다. 남에게도 사지 말라 부추기고, 광고주를 위협하면 순리의 선을 넘는 것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방송의 고발 프로는 18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젊은 PD들은 그동안 인권유린과 지도층 비리, 탈세족, 사이비 종교집단을 고발했다. 세계적 과학자의 위선과 조작을 파헤쳐 역사를 바꾸기도 했다. 프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진실이다. PD들은 쇠고기 문제에서도 진실의 선을 지켜야 했다. 대통령의 느슨한 문제의식과 정부의 허술한 협상을 매섭게 꾸짖으면서 동시에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상식과 과학을 다루었어야 했다. 프로가 균형의 선을 넘으니 주부가 벌벌 떨고 초등학생까지 “미친 소 싫어. 이명박 싫어”라고 외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오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자신이 BBK를 설립했다고 했는데 이는 대표적인 오버 홍보다. 48.7%에 취해 그는 선을 넘기 시작했다. 초기 인선은 재산에서 오버했다. 많은 이가 대운하를 그렇게 막는데도 이 대통령은 상식의 선을 넘었다. 설득하기보다는 밀어 붙였다. 지나친 자기확신 때문이었다. 결국 촛불이란 역풍에 대운하는 날아갔다. 정권은 박근혜에게 오버했다. 약속의 선을 지키지 않고 칼을 휘둘렀다. 결국 친박연대란 역풍을 맞았다.  의원들은 순리의 선을 지켜야 했다. 세비로 열심히 일하면 되는데 포기하는 건 일하지 않는다는 자기부정 아닌가. 그들이 척척 수백만원을 포기하면 수만원, 수십만원에 매달리는 서민은 무엇이란 말인가. 사랑하는 여인의 오버는 때론 매력이 되고, 귀여운 자식의 오버는 애교가 되며, 우정의 오버는 때때로 감동을 낳는다. 그러나 개인관계와 국가는 다르다. 지도자나, 공무원이나, 국회의원이나, 시민단체나, 언론이 오버하면 넘친 강물이 국민과 사회를 삼킨다. 그 물을 빼내려면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의 오버는 아름답지 않다. 순리와 절제의 선 안에 머물 때 훨씬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