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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Articles

[우석훈 칼럼]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살아가는 민초들은…


기사입력 2012-01-02 오후 12:19:58 / Pressian / 우석훈 타이거 픽처스 자문·경제학 박사

한국은행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물가안정이다.

"제1조(목적) ① 이 법은 한국은행을 설립하고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은행법)

물론 토건파들이 가끔 이 법을 고쳐서 경기부양과 같은 부수적인 목적을 추가하려는 시도를 종종 하지만, 그래도 한국은행이 존재하는 이유는 물가안정이다. 한은이 정부로부터 독립된 화폐행정을 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많은 정부는, 특히 노무현의 '2만불 정책' 이후로 경제성장률 자체를 정권의 경제정책 성과 여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나중에 어떻게 되든 우선 기계적으로 성장률을 높이려는 유혹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은법은 한국은행의 존재 목적에 물가안정 이외의 다른 목표를 부여하고 있지 않다.

물론 시대가 바뀌니까, 해외 자본 특히 투기성 자본에 대한 유출입에 대한 일정한 통제를 토빈세나 은행세 같은 형태로 도입하는 것을 '거시건전성'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도입하고자 하는 논의가 있다. 현 정부에서도 은행세는 실제 시행되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수준으로 논의가 진전된 것으로 알고 있다.

불행한 일이지만, 노무현 정부 이후 지금까지 한국은행이 취했던 여러 가지 정책을 가장 일관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저금리를 통한 주택 경기부양, 즉 토건 기조를 유지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동산 거품과 한은의 기준금리, 이 고리는 토건경제 시절을 거치는 동안 한국 경제의 기조가 된 불행한 상식이다.

간단히 말하면, 일반인들에게 더 많은 빚을 빌려서라도 아파트를 구입하라는 것이 2004년 이헌재의 '한국형 뉴딜' 이후 한국은행이 일관되게 시중에 보여준 신호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2011년에 가히 클라이막스로 치달았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시대에도 금융통화위원회는 너무 했지만, 이명박 시대를 맞아 중앙은행으로서의 최소한의 염치도 잃고, 일관되게 부동산 경기부양 외에는 도대체 지난 7년 동안 무엇을 했느냐, 이렇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자, 아주 간단한 그래프 작업을 한 번 해보자.

자료는 한은이 제공하는 물가지표로서 소비자물가상승률과 시중금리 지표로서 1~2년짜리 정기예금의 수신금리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두 가지 지수차이를 실질금리로 표시하였다. 만약 은행에 1년짜리 정기예금에 가입하였을 때, 실제로 예금주가 얼마의 실질 이자율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그걸 보여주기 위한 지표이다.

현재 모피아의 수장으로 의심받고 있는 이헌재 경제부총리 시절이던 2004년에는 실질금리가 0.27까지 내려갔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거의 '제로 금리'에 가깝게 금융경제가 노무현 초반기에 운영되었던 얘기이다. 그리고 2005~2006년의 부동산 대란이 벌어졌다. 화들짝 놀랐던 노무현 후반, 수신금리가 약간 올라갔고, 부동산 대란은 진정되었다.

2010~2011년은 해외 자원가격 상승 등, 많은 경제학자들이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속성상, 물가를 포기하고 '다주택 보유자 양도세 일시폐지' 등 주택경기 부양책을 대대적으로 사용하였고, 한은 역시 여기에 맞추어서 시장 상황보다 여러 발짝 떨어진 '게걸음'으로 금리정책에 임했다. 그 결과, 이제는 통제권을 벗어난 2011년의 물가상승 기조가 펼쳐진 것 아닌가?

이 와중에 한전 등 공공물가 상승기관과 라면업체, 우유업체, 이렇게 소비자들과 직접 만나게 되는 곳들이 행정지도의 된서리를 맞고, 소비자들의 빗발치는 항의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주범은 여전히 다주택 보유자들을 자신의 정치기반으로 하는 청와대와 한나라당, 그리고 그들의 편의를 위해서만 거시 금융정책을 펼치는 한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011년은 아마 한국의 금융사에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OECD에 가입하면서 상식적인 경제정책을 펼치겠다고 한 이후, -0.05%로 1년짜리 정기예금 상품을 기준으로 실질금리가 마이너스가 된 해이다.

이 수치가 보여주는 금융당국의 의지는 너무 명확하다. 은행에 예금해봐야 금리가 마이너스이므로, 어지간하면 부채의 도움을 빌어서라도 집 없는 사람들이 집 사라는 얘기이다. 그러나 이미 주택시장은 '부동산 푸어'의 현실적 압박에 의해서, 대통령이 아무리 애달프게 복덕방을 쳐다봐도 더 이상 아파트 투기를 받아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니 일시적으로 이 돈들이 주식 단기투기로 몰려들어서, 해외 시장의 불안정성과 결합되며 증시 '랠리 장세'를 만들어내는 것 아닌가?

잠깐 눈을 들어 생각해보자. 1999년, IMF 경제 위기 한 가운데에서 실질 이자율은 7.14%로 오히려 높았고, 이 해에 기업을 제외한 순저축률이 19% 정도로 높아서, 일본과 저축률 1~2위를 달렸다. 나는 그런 저축의 힘이 IMF 경제위기를 한국 경제가 조기에 극복할 수 있도록 했던 주요 요소라고 생각한다. 기업 부문을 제외한 순저축률이 2010년에 3%였는데, 지금의 마이너스 금리 추세를 계속하면 앞으로는 더 내려갈 것이다.

국민 혹은 무주택자에게 이 눈을 돌려보자. 약간의 목돈이 있을 때, 은행에 가지고 가봐야 마이너스 금리이고, 무리해서 집샀다가는 패개망신의 길이 기다리고 있으니, 잠깐 주식시장으로 가지고 갔다가 완전히 망하는…. 한은이 조장한 지금의 화폐정책 기조에서는 이 길 외에는 없다. 그런데 물가상승률은 높고, 임금상승률은 도저히 거기 맞지가 않으니, 한 마디로 살 수가 없는 거다.

여기에 비정규직으로 알바를 전전하는 20대의 삶을 투영해보자. 최저임금은 물가상승률을 따라잡기 어렵고, 집 사는 건 아예 포기했고, 그렇다고 억지로 얼마씩이라도 저축을 해봐야, 은행은 마이너스 금리? 도대체 어쩌라는 거냐?

이 모든 아수라장을 간단히 정리해줄 수 있는 용어는 바로 '강부자 정권'이다. 일반 국민들은 은행이 아니라 부동산에 돈을 넣고, 그렇게 올라간 집값의 성과물을 강남 사는 부자들이 챙겨가는 것, 마이너스 금리가 지금 우리에게 해주는 얘기는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지금 국민들의 삶을 가장 빨리 개선할 수 있는 것은 물가안정이고, 한은은 바로 그것을 위한 기관이다. 이자율이 높아지면 국민들의 채무 부담이 높아져서 어렵지 않은가? 그건 핑계다. 시장 이자율을 따라 정부 정책이 움직일 것이라는 상식이 움직여야 국민들도 정리할 수 있는 부채는 정리하게 된다. 그리고 '부채 다이어트' 등 정부 프로그램이 같이 움직여나가면서 개개인의 경제적 삶을 재편할 수 있는 계기를 삼게 된다. 한은은 엉뚱한 핑계를 대면서, 결국 물가는 올리고 이자는 낮은 상태로 유지하면서, OECD 가입 이후로 최초의 마이너스 금리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뉴시스
한국은행 총재가 최소한의 경제적 상식과 일말의 국민적 책임감이 있다면, 정책적 목표가 아닌, 정책의 실패에 의해서 발생한 이 마어너스 금리 사태를 맞아,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가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혹은 자신의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위하여 지금의 화폐정책 기조를 몇 달만 더 끌고 간다면, 한국 경제의 체질은 이제 이 미증유의 마이너스 금리 속에서 급속히 피폐해질 것이다.

이미 최초로 마이너스 금리를 만들어낸 총재로, 금융사에 김중수 총재는 기록될 위기이다. 소탐대실이라, 이 작은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서 억지로 버티면, 우리가 '대실'하게 된다.

다음 정권을 위해서, 금융통화위원회는 어떤 식으로 개편해야할지, 잠시 생각해보자.

현재 금융통화위원회는 7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연직, 총재와 부총재, 두 2표는 청와대표이다. 그리고 기재부 장관과 한은총재가 지명하는 1인씩, 이 2표도 청와대표이다. 지금 론스타 사건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김석동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임명하는 1인, 역시 청와대표이다. 7표 중 5표가 대통령 맘대로 사용할 수 있는 표가 된다. 과반수를 훌쩍 넘는다. 청와대의 경제수석 아니 그도 아닌 비서관 맘대로 5표를 이미 전화 한 통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2표는? 상공회의소에서 한 명을 추천한다. 이건 한 때 '최강 라인'의 바로 그 최중경이 장관으로 있던 지식경제부에서 맘대로 할 수 있는 한 표이다. 역시 청와대표이다. 대망의 마지막 1표는? 사단법인 전국은행연합회 회장이 한 자리를 추천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래도 은행들이 한 표를 쓴다고 하지만, 어차피 강만수 산은지주 총재 등, 고대 출신 아니면 모피아들이 은행연합회를 장악하고 있다.

모아보면 금융통화위원회의 7표 중, 6표가 청와대 표이고, 한 표가 모피아 표, 이렇게 되어있다. 그리고 누가 어느 기관 추천인지, 그것은 비공개이다. 즉 은행연합회를 통해서 모피아를 대변하는 한 사람이 누구인가, 그것만 모르지, 나머지는 다 그냥 청와대에서 임명권을 행사한다고 보면 사실과 다르지 않다. 역대로 보면, 한은총재가 실제로 자기 친구로 한 명을 더 추천할지, 아니면 그 자리도 대통령 친구로 할지, 정권에 따라서 그 정도의 차이만 있는 게 한국의 금융통화위원회이다.

이러니, 마이너스 금리 사태를 맞아, 진짜로 책임을 누군가 져야 한다면, 청와대 경제수석에서 시작하는 청와대 경제팀이 이 사태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맞다. 그렇지만 도의적으로, 상황을 이렇게 끌고 나간 김중수 한은총재가 책임을 피하기는 어렵다.

경제의 다른 분야에 비하면, 금융통화 부문은 너무 관료의 힘이 강하고, 청와대 혼자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어있다. 게다가 민간 부문을 대변하는 게, 상공회의소와 은행연합회 밖에 없다는 게, 이게 말이 되는가? 그러니 이 양쪽을 다 장악하고 있는 모피아들 손아귀에서 한 국가의 금융정책이 놀아나는 거 아닌가? 게다가 역대로, 상공회의소 쪽에서는 실제로는 자기들은 아무 권한도 없었다, 이렇게 늘 항변했다. 무리도 아니다. 한국의 상공회의소는 말만 민간단체이지, 지식경제부가 상근부회장 자치를 통해서 직접 통제하는 대표적 정부 쪽 기관이다.

2011년에 드러나 이 황당한, 즉 의도하지 않았고, 자기들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무식하게 금리를 붙잡고 있었는지 예측도 하지 못해서 벌어진 이 마이너스 금리 사태를 어떻게 하면 재발하지 않을 수 있게 하겠는가? 마이너스 금리 사태의 심각성은, 이게 정책적으로 의도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1) 사태의 상징적 책임을 지고, 김중수 한은총재가 사퇴할 것.

2) 화폐정책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청와대의 리모콘 정책을 최소화할 것.

3) 야당 쪽 대표가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 이건 어느 쪽이 야당이 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위원회 내에서 견제가 없다면, 어떤 위원회라도 금방 반쪽짜리로 전락한다.

4) 시민대표 2인이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 이때의 시민대표 1인은 소비자 입장을 대변, 또 다른 1인은 전월세 등 무주택 세입자 국민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을 것.


모피아와 강부자 정권이 묘하게 결합하면서, 한 국가의 화폐 정책을 너무 자기들 손아귀에서 견제도 없이 주물딱 주물딱 했다. 일반인들이 발권정책과 이자율 정책 등, 기술적인 문제들을 멀게 생각한다고, 너무 한국은행이 국민을 보지 않고 청와대만 보고, 모피아들 입맛만 맞추면서 화폐 정책을 이끌어온 것 아닌가 하는 회한이 든다.

한 때 양희은도 불렀던 노래 중에 일곱 송이 수선화(seven daffodils)라는 노래가 있었다. 명박을 위해 피어난 6송이 수선화와 모피아를 위해 피어난 한 송이 수선화, 정말로 가련한 일곱 송이 금통 수선화가 아닌가?

현재의 마이너스 금리 상태는, 만약 이게 특수한 정책 목표를 위해서 인위적으로 구축된 여건이 아니라면, 시급히 시정되어야 한다. 이 상태로 몇 달만 더 방치되면, 거품은 거품대로 조정될 시간을 놓칠뿐더러, 길을 잃은 개인의 돈들도 은행으로 제대로 가지 못하고, 증권가 주변을 떠돌다가 개개인들이 패가망신하게 된다. 작년의 저축은행 사태의 한 일각에는, 안전한 줄 알면서도 마이너스 금리 상태인 은행에 가지 못했던 저소득층의 아픔이 배어있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