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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Articles

[시시각각] 김진 논설위원

대통령과 이혼할 건가

2008.06.01 19:54 입력 / 2008.06.02 08:15 수정 / 중앙일보

촛불을 보면 의문이 떠오른다. 미국에서 30개월 이상 소는 대부분 오랫동안 새끼를 낳았거나 젖을 짠 소다. 이런 소의 고기는 질기다. 미국인이 스테이크에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별로 쓰지 않는 것은 광우병 위험이 아니라 맛 때문이다. 스테이크로는 어린 소를 먹고, 질긴 고기는 소시지나 햄버거로 만들어 맛있게 먹는다. 한국인도 이렇게 하면 안 될까. 수입되는 쇠고기의 95% 이상은 육질이 연한 어린 소라니 이는 구워서 먹고 일부 30개월 이상은 그것대로 요리하거나 가공해 먹으면 안 될까. 그것도 아니라면 추이를 좀 지켜보면 된다. 일본이나 대만이 30개월 이상을 수입하지 않는 조건으로 협상을 끝내면 정부가 추가 협의를 하겠다고 했으니 기다리면 안 될까.

국제수역사무국(OIE)이 광우병 위험통제국(2등급)으로 인정한 나라는 미국 등 6개국이다. 한국은 위생수준을 신고할 준비조차 안 돼 있어 3등급이다. 미국과 같은 2등급엔 스위스·칠레·브라질도 있다. 알프스의 나라 스위스, 와인의 나라 칠레,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 쇠고기를 수입해도 이렇게 많은 촛불이 켜질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노무현 대통령의 약속이었다. 2007년 4월 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됐다.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쇠고기 수입협상에서 국제수역사무국의 권고를 존중하겠다고 했다. 만약 노 대통령이 수입을 결정했어도 이렇게 반대했을까. 사람들은 정부가 설명도 하지 않았고 협상도 잘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정부는 협상을 보완했고 대통령은 사과했다. 그런데도 왜 촛불은 꺼질 줄 모르는가.

노 대통령은 임기 막판에 통치능력을 상실해 지지율이 10%대까지 추락했다. 그래도 촛불집회나 청와대로 돌격하겠다는 시위대는 없었다. 기름값 때문에 서민이 매우 힘들지만 민생으로만 보면 1997년 외환위기 때가 더했다. 그런 때에도 이런 촛불은 없었다. 김영삼(YS) 대통령에게 돌을 던지는 이도 없었다. TV에 등장하는 주저앉는 소는 광우병 소가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광우병 진실을 왜곡하는 이들보다는 대통령에게 돌을 던진다. 대통령은 왜 이렇게 몰매를 맞는가.

촛불의 정체는 쇠고기만이 아니다. 촛농에는 먹거리 불안, 뒤틀어진 진실, 반미 정서, 야당의 얄팍한 계산, 그리고 어려운 민생에 대한 분노가 다 녹아 있다. 그리고 가장 깊은 곳에는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있다. 48.7%가 표를 준 건 그가 예뻐서가 아니다. 전임자가 하도 나라를 헤집어 놓았으니, 경제가 하도 어려우니, 일 하나는 잘 해보겠다고 하니, 도덕과 원칙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니, 허물을 감싸주고 지도자로 옹립한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국민의 마음을 잘못 읽었다. 일만 잘하면 되는 양 도덕과 원칙과 상식을 간과했다. 먹고살기 어려운데 왜 영어에 몰입해야 한단 말인가. 서민을 배려하지 않은 정책이었다. 자신에게 도덕적 허점이 있으면 아랫사람이라도 허물이 없어야 하는데 대통령은 허물 많은 이들을 마음대로 썼다. 국민은 무시당했다고 느꼈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어려울 때 도와주었는데 대통령은 신의를 지키지 않았다. 국민은 위약(違約)을 싫어한다.

그러나 이제는 되지 않았을까. 그동안 시위자들은 소의 이름을 빌려 대통령에게 매서운 채찍을 가했다. 이제는 촛불에게 물을 차례다. 무엇을 원하는가. 87년 국민이 원한 시위의 끝은 민주화였고 목표는 이뤄졌다. 그런데 지금의 끝은 어디인가. 정권의 퇴진인가. 국민은 대통령과 5년짜리 결혼을 하는 것이다. 신혼 초 잘못이 있다고 이혼할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잘못을 엄정하게 고쳐 다시 잘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정권의 잘못은 잘못이고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과학적 진실은 진실이다. 정권을 공격하는 만큼 진실을 왜곡하는 이들도 문책해야 한다. 정권이 밉다고 값싸고 먹을 만한 쇠고기를 배척할 이유는 없다. 곧 촛불을 꺼야 한다.



작성자 김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