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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Articles

정부의 어설픈 금융위기 대응이 시장 혼란 부른다

<李정부, 금융위기 증폭 책임>

기사입력 2008-10-27 04:28 / 경향신문 / 오관철 기자

ㆍ1 위기진단 잘못, 2 금융당국 무능, 3 시장 신뢰 상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 금융시장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국내 금융시장이 혼돈을 넘어 ‘아노미’ 상황으로 치닫게 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대응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대외여건이 불안한 상황에서 강만수 경제팀의 잇단 정책 실기와 안이한 대응, 정부 부처간 혼선 등이 맞물리면서 경제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26일 청와대에서 경제상황 긴급 점검회의를 열어 금융시장 안정조치를 논의하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현재의 금융위기를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여건)은 괜찮은데 시장 참가자들이 대외악재에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금융위기의 원인을 대외여건 불안과 비합리적으로 반응하는 시장참가자들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간 정책협의와 공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국민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임기응변식 정책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 은행권 외채에 대한 지급보증, 올해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25조원 규모의 은행채 매입, 자산운용사와 증권사에 대한 2조원 규모의 긴급 유동성 지원 등을 놓고 정부와 금융당국은 ‘엇박자’로 일관했다. 경제 위기에 대한 상황 인식도 미흡하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관료들은 경제위기가 현실화한 지난 9월까지만해도 “외환위기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하다 최근 “외환위기 때보다 더한 위기가 오고 있다”고 말을 바꿨다.

정부의 이 같은 경제위기에 대한 안일한 인식과 대응은 금융시장의 신뢰 저하로 이어졌다. 은행들은 이미 올해초부터 달러는 물론 원화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고, 수출 기업들은 달러로 받은 수출 대금을 원화로 바꾸지 않고, 움켜쥐고 있었다. 이를 정부만 모르고 있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정부 정책은 옥석(玉石) 가리기가 없었다”며 “경제위기를 자초한 강만수 경제팀을 교체하고, 썩은 부위를 과감하게 도려내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야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신들의 근거없는 보도 탓도 크지만 정부가 외환보유액과 단기외채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를 진정시키지 못하는 것도 강만수 경제팀이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정부는 외환보유액이 300억달러라고 호언했지만 100억달러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을 외국인 투자자들은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강철규 서울시립대 교수는 “정부가 위기를 완화시키는커녕 악화시키는 쪽으로 대응한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정치.정책 신뢰위기 해소 급하다>

기사입력 2008-10-26 06:59 | 최종수정2008-10-26 08:50 / 연합뉴스 / 주종국, 김종수, 김준억 기자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한국을 덮치고 있지만 이를 앞서서 극복해야 할 경제부처나 정치권에서는 마땅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제부처에서 이달 들어 이틀이 멀다하고 내놓은 외채 지급보증, 원화 긴급지원, 부동산.건설경기 대책 등 각종 처방들은 타이밍이 맞지않거나 '찔끔 대책'에 그쳐 시장불안을 덜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대표들인 국회의원들은 금융위기가 쓰나미처럼 나라를 휘젓고 있는 상황에서 위기 극복의 지혜를 모으지 못한채 한가하게 '쌀 직불금' 문제 등에 정력을 쏟으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 정파다툼 '점입가경'

정부는 지난 19일 은행의 외화차입에 대해 1천억 달러까지 3년간 지급보증을 제공하는 방안을 발표한데 이어 폭락하는 증시를 진정시키고 은행 시스템의 안정을 지키기 위해 한국은행이 자금을 공급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국정감사를 맞은 국회에서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은행들이 고임금 등 '모럴 해저드'가 만연돼 있다며 질타하는 의원들의 큰 목소리도 이어졌다.

그러나 경제회복에 중대한 책임이 있는 정치권은 원.달러 환율이 하루에 수십원씩 오르내리고 주가는 연일 폭락해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되는 극도의 혼란 속에서 경제 대책보다는 정치권에서 시발된 논란을 놓고 민망한 난타전에 집중했다.

11년 전 모라토리엄 직전 상황까지 밀려 국제통화기금(IMF)에 경제 신탁통치를 자진요청하는 굴욕을 겪으면서도 선거와 금융감독체제 개편에 정신 팔려있던 정치권과 관료들의 복제판이란 극언까지 나온다.

대표적인 케이스는 이번 국감 기간 최대 이슈로 부각돼 결국 국정조사로까지 번진 쌀 직불금 문제다. 제도가 잘못됐다면 고치고 법을 위반한 사람들이 있으면 법대로 처리하면 될 일이다. 금융 공황으로 나라 경제가 위기의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급박한 상황에서 쌀 직불금 국정조사가 그렇게 화급한 사안이냐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세금을 놓고 벌어지는 정파.계급간 대립도 심각한 양상이다. 정부와 여당은 "세금을 깎아 경제를 살리겠다"면서 소득,법인세 등 직접세를 중심으로 26조원 규모의 감세안을 내놨지만 야당은 "'강부자'에게만 유리한 세제개편"이라며 반대로 부가가치세의 30% 감세안을 들고 나왔다.

거액의 초과세수가 발생한 상태에서 추후 경기가 어려울 것이 확실시된다면 감세나 재정지출 확대와 같은 적극적 재정정책을 펴는 것은 교과서적인 이야기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직접세를 깎는 것이 경기부양에 효과적인가 아니면 간접세 감세의 효과가 큰가를 따지는 것이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런 고민이 엿보이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켜 정치 지형을 유리하게 형성하려는 정략적 계산만 판칠 뿐, 난국 극복을 위한 정치권의 리더십은 찾아보기 힘들다.

◇ 부처간 알력..정책은 뒷북 논란

경제위기가 심해지면서 일사불란한 정책대응이 아쉽다는 지적도 많다. 새 정부 초기에 논란이 있었던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간의 알력이 요즘은 금융불안 해법을 둘러싼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의 금융채 직접 매입이나 증권시장 자금 투입을 정부가 요구하고 한국은행이 이에 난색을 명한 점도 사전조율이 안돼 있다는 점을 국민에 노정시켜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증시자금 2조원 공급은 종합주가지수 1,000선이 무너지고서야 이뤄져 '뒷북'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나라 경제의 총괄적인 책임을 맡고 있는 재정부와 물가안정이 최우선인 중앙은행, 금융정책의 수립과 감독을 전담하는 금융위원회간에 정책수립이나 집행과정에서 다소간 의견차이가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요즘 같은 위기, 특히 정책의 신뢰가 아쉬운 상황에서는 기관 간의 사전조율이 매끄럽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지급보증 정책을 이야기할 때도 정치권은 국민의 표를 의식해 모럴해저드 문제만 부각하고 있고 정부는 이번 기회에 금융기관에 대한 장악력을 높일 궁리만 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과연 정치권이나 정부가 위기극복을 위한 순수한 마음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불거진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 논란도 순수하지 못한 측면이 깔려있다는 지적이 있다. 야당에서는 이를 경제팀 교체의 수단으로 이용하려 하고 현 경제부처에서는 자기 부처의 위상을 높이거나 기득권을 지키는 자세로 일관하며 부총리 제도로의 개편이 있을 경우 득실 계산에 분주하다.

재정부의 고위관계자는 "금융과 경제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정략적으로 이용 당하지는 않을 지, 비판세력이 시비붙지는 않을 지 등도 걱정해야 한다"면서 "요즘은 해외 언론에서도 돌아가면서 우리 경제를 깎아내리고 있어 안팎으로 상황이 꼬이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외환위기 때는 정부가 금고가 바닥났다며 실정을 고백하자 국민들이 한 뜻으로 거리로 나와 '금 모으기'에 나서면서 위기극복에 동참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딴판이다.

정부가 외환보유액은 환란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기업들의 재무건전성도 높아졌으며 금융위기는 외부요인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국민들은 이를 귀담아 듣지 않고 있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의 침체로 옮겨가고 있지만 국민들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지혜를 모으려는 논의보다 편을 갈라 서로를 비난하고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은 감정적 혐오로 발전하는 양상이다.

김세원 서울대 명예교수는 "10년 전에는 외환위기 탈피 자체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어느정도 쉽게 이뤄졌지만 지금은 단기적인 금융.경제 불안 해결 외에도 중장기적 개혁도 함께 이뤄지는 창의적인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준구 서울대 교수(경제학부)도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지금 우리 경제는 가혹한 환경에서 대응 능력을 시험 받고 있으며 이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라며 "리더십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위기는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행동보다 말부터 쏟아내는 정부 경제팀>

기사입력 2008-10-27 03:17 | 최종수정2008-10-27 09:39 / 조선일보 / 전수용 기자

"은행 지급보증 필요없다" "환율 안정될 것"…

"증권거래세·대출금리 인하 검토하고 있다"…

강만수 장관 등 섣부른 발언, 불안감 키워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경제부처 장관들의 자극적이고 섣부른 발언이 국내 금융시장 불안을 가중시키는 것은 물론 해외 투자자들에게도 나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정부가 개입을 해도 통제하기 힘든 환율이나 시중금리마저도 "곧 안정될 것"이라는 식으로 예단했다가 빗나가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더 이상 정부의 '가벼운 입'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선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불안 조장하는 발언들

국내 모 증권사 A리서치센터장은 지난주 홍콩의 애널리스트(증시분석가)·펀드매니저(주식운용자)들과의 전화회의에서 기분 좋지 않은 얘기를 들었다.

A센터장은 "외국 애널리스트들은 '환투기 세력은 큰 손해를 볼 것', '대기업들이 갖고 있는 달러를 풀어야 한다' 등과 같은 강만수 장관의 감정적 발언이 오히려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며 흥분했다"고 전했다.

장관들의 '말바꾸기'도 계속 반복되고 있다.


지난 14일 세계은행 총회를 위해 미국을 방문했던 강 장관은 "(정부의) 은행 지급보증이 필요 없다"고 했다. 하지만 불과 닷새 만인 19일 "국내은행들이 외화 차입 때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를 펴며 1000억 달러 한도의 은행 지급보증안을 발표했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이달 중순 "증권거래세 인하를 포함한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 위원장은 물론 금융위원회는 증권거래세 인하에 대해 아직까지 묵묵부답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현재 위기는 신뢰의 위기이고 불안감 확산을 막는 게 중요한데도 현 상황에 대한 섣부른 발언과 진단이 나오면서 혼선을 불러오고 있다"고 말했다.

◆섣부른 발언들, 정책 약발 희석

정부가 위기극복을 위해 잇따라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시장에서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자체가 심각한 탓도 있지만 사전 조율없는 경제 수장들의 설익은 발언으로 인한 '김빼기'도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강만수 장관은 23일 국정감사에서 "대출금리를 내리기 위한 구체적 플랜을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같은 날 이창용 금융위 부위원장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한은이 RP(환매조건부채권) 대상에 은행채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했다. 일단 발표 먼저 해놓고 한국은행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이런 식으로 정책이 시간을 끌면서 불확실한 상태가 지속되면 나중에 채택이 되더라도 효과가 반감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강 장관은 또 미국을 방문 중이던 지난 11일 "환율이 13일(월요일)부터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정부 대책이 먹히면 환율시장이 곧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자신한 것이다. 그러나 환율은 이후에도 급등락을 거듭했고 지난주엔 1420원대까지 치솟아 외환시장이 패닉에 빠졌다.

'조율안된 정책 발표→한은 부인→경제 수장들의 압박 발언→한은 대책발표'라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정부 신뢰는 약해지고, 정책은 힘을 잃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는 "경제 수장들이 선제 대응은커녕 조율조차 안된 정책을 떠들며 정책 효과를 희석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오늘 당장 금융시장이 걱정인데 청와대는 "달러 부족 거의 해결">

기사입력 2008-10-27 03:05 | 종수정2008-10-27 03:16 / 중앙일보 / 이상렬 기자


8개월 전 국보 1호 숭례문이 불탔다. 소방관도, 물도 충분했지만 내부 도면을 찾느라 허둥대고 기와를 뜯을지 말지 우물쭈물하다 5시간 만에 모두 태웠다. 위기 때는 평상시의 대응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을 잘 드러낸 사례다.

지금 한국경제는 단단히 탈이 났다. 그런데 불을 끄는 모습이 숭례문 진화 때를 빼 닮았다. 정부가 외환보유액이 넉넉하고, 기업과 은행의 기초체력이 괜찮다고 외쳐도 불은 계속 타들어 가고 있다. 문제는 진화에 나선 사람들의 안이한 상황 인식에 있다.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25일 귀국한 이명박 대통령은 다음날 오전 8시 경제상황점검회의를 소집했다. 뭔가 긴박하게 움직이는 것 같더니 결과는 영 딴판이다. 회의 뒤 브리핑에서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외환유동성 부족 문제는 거의 해결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선제적 경기대책을 어떻게 만들지 토의했다. 종합대책 발표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잔뜩 기대를 걸고 회의 결과를 기다리던 국민 입장에서는 실망스럽다. 위기감이 없고, 일말의 위안도 주지 못했다. 그동안 무엇을 했기에 이제 와서 대책을 검토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인지 국민은 의아하다. 비상시국에도 부처 간 관할 업무를 따지고 있다. 은행채 매입과 금리 인하만 해도 한국은행은 미적거리고, 정부는 “한은이 판단할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정도의 '미지근한' 대처로 당장 오늘 시장이 안정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이날 일본 정부는 은행에 10조 엔(약 145조원) 규모의 공적자금 투입 계획을 발표했다. 우리가 부처 간에 엇박자를 내며 좌고우면하는 동안 일본은 일사불란하게 한 발 앞서 강도 높은 대책을 내놓고 있다. 아소 다로 총리는 “건곤일척의 상황”이라며 “과감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불을 끄는 자세가 이렇게 다르다. 다른 나라보다 선제적으로 대책을 내놓아도 시원찮을 판에 우리는 쫓아가기에 바쁜 것이다.

19일 은행 외채 지급보증안을 내놓기까지의 과정을 복기해 보면 정부의 대처 능력을 쉽게 알 수 있다. 그 일주일 전만 해도 지급보증을 검토하지 않았다. 그런데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미국 워싱턴 국제통화기금(IMF) 총회에서 만나기로 한 호주 재무장관이 돌연 면담을 취소하고, 지급보증을 발표하기 위해 귀국했다. 그제야 우리도 사태의 심각함을 느끼고 지급보증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한 시중은행장은 “지난달부터 외화차입이 막힌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조치가 한 박자 빨랐어야 했다”고 말했다.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는 것도 말만 앞선다. 박병원 수석은 일본과의 통화 스와프(교환) 가능성에 대해 “한·일 간에 어느 정도 진척이 있는지 챙겨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욕을 먹더라도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드는 이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경제팀을 국민은 신뢰할 수 없다. 시시각각 이어지는 금융시장의 공포를 생각할 때 기다릴 여유도 없다. 당장 경제팀의 쇄신이 필요한 이유다.

금융은 민감하고,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분야다. 지금 청와대에는 금융을 전공으로 한 비서관조차 없는 실정이다. 더 늦기 전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경험 많고 능력 있는 '금융기술자'를 불러모아야 한다.

우리는 11년 전 위기 관리에 실패해 뼈아픈 IMF 관리체제를 겪었다. 금융 부문이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한국은행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부처 간 잡음은 들리지 않았다. 대통령이 경제수장을 겸하면서 경제를 직접 챙기는 데야 재경부 장관이든, 한은 총재든 그 누구도 허튼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경제정책의 우선 순위와 컨트롤 타워를 명확히 하고, 내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일은 바로 대통령의 몫이다.

지금은 분명 위기다. 정부는 외환위기와 다르다고 하지만 국민의 느낌은 그때와 별로 다를 게 없다. 이대론 안 된다.


<‘시장이 버린 강만수’ MB 품에서 요지부동>

기사입력 2008-10-27 08:25 | 최종수정
2008-10-27 09:15 / 한겨례 / 김수헌 기자


국내·외서 불신, 리더십 상실…위기 확대 재생산

전문가 “바꾸지 않는 이명박 대통령이 더 문제”

한국 경제가 1997년 ‘환란’에 버금가는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가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촉발됐음을 강조하면서 ‘대외 여건’ 탓으로만 돌리고 있다. 하지만 위기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경제팀의 리더십 상실과 맞물리면서 확대 재생산되는 모습이다. 세계적인 금융위기지만 국제 금융시장에서 우리나라 국채의 부도위험지수가 중국이나 말레이시아, 심지어 타이보다도 훨씬 더 높다는 사실은 ‘내부의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에 비해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과도하게 무너지고 있는 것은 결국 현 경제팀의 정책 실패 탓”이라며 “강 장관을 비롯한 경제팀 교체가 위기 해소의 실마리”라고 입을 모은다.

■ 리더십 상실이 위기 불러

강 장관은 취임 뒤 오락가락하는 정책 기조에다 잦은 말실수 등으로 이제 시장으로부터 비판의 대상을 넘어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인터넷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강 장관을 소재로 한 농담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시장에선 강 장관의 상황 인식과 정책 대응 능력에 대한 불신이 퍼져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은행의 외화차입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 문제다. 강 장관은 지난 13일 미국 방문 도중 “우리나라 은행들이 그 정도로 어려운 상황은 아니다”라며 정부의 지급보증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강 장관의 이런 발언이 있은 지 엿새 만인 19일 정부는 은행의 외화차입에 대해 지급보증을 발표했다.

뒤늦게 경제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과도하게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을 쏟아내는 것도 문제다. 강 장관은 지난 9월19일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외환보유액과 금융기관 건전성을 고려하면 무리 없이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 14일 미국 뉴욕에서 국제금융 전문가들로부터 매우 부정적인 전망을 듣고 온 뒤에는 “내년에 4% 성장이 쉽지 않다”거나 “지금은 대외 여건이 좋지 않아 경우에 따라서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는 식으로 180도 다른 상황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시장으로부터 철저히 불신과 외면을 받고 있는데도 강 장관 스스로는 줄곧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언론이나 ‘시장의 오해’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 때문에 재정부 안에서도 “강 장관이 너무 거칠게 자신의 생각이나 정책을 밀어붙이려고 한다”는 불만이 나온다.

■ 경제팀 교체가 위기 극복 실마리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의 상실은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정책을 무력화시킨다. 이종우 에이치엠시(HMC) 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금 경제팀으로는 시장을 설득하기가 힘들고, 돈을 쏟아붓는다고 해도 비용만 더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강 장관의 국내 리더십 상실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이 홀대받는 상황과도 연결된다. 한 시중은행장은 “현재 한국 금융회사들은 브라질이나 말레이시아 같은 곳에서 통화 스와프 중계 방식으로 겨우 달러를 구하고 있다”며 “최근 정부가 외신이나 일부 국제기구들과 불필요한 다툼을 벌이며 국제 금융시장에선 강 장관의 위기대처 능력은 물론이고 도덕적 권위마저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신뢰의 회복을 위해선 경제팀의 전면 재구성이 시급한데도 이명박 대통령의 강 장관에 대한 신뢰는 요지부동이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경제학)는 “강 장관을 바꾸지 않는 이명박 대통령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도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경제팀 교체가 여전히 적절한 카드”라며 “대통령으로서는 나라가 결딴나는 것보다는 강 장관을 경질하는 게 훨씬 낫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제팀 교체와 함께 정책 방향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홍종학 교수는 “지금은 외환시장을 지킬지 주식시장을 지킬지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정부는 주식시장 부양보다는 서민과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 외환시장을 지키는 쪽으로 정책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도 “경제 수장을 바꾼 뒤에 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총력전을 펼쳐야 하고 특히 원화 유동성 위기를 막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며 “위기 극복을 위해 관치금융을 잘할 사람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제학 교과서와 다르게 가는 한국>

기사입력 2008-10-27 02:54 | 최종수정
2008-10-27 03:25 / 중앙일보 / 정경민 기자


요즘 한국이 겪고 있는 위기를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경제지표만 보면 외환위기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외환보유액은 세계 6위다. 제조업체의 부채비율은 100%에도 못 미친다. 외국에서 빌려온 돈보다 받을 돈이 아직은 많다. 그런데도 원화 값은 올 들어 51.9%나 급락했다. 주가도 반 토막 났다. 중앙은행이 달러를 푸는데도 시중에선 달러 기근이 풀리지 않고 있다. 요즘 한국 경제의 골머리를 앓게 하는 세 가지 미스터리를 풀어봤다.

①태국보다 부도 위험이 높다?=24일 한국정부가 발행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의 '크레디트 디폴트 스와프(CDS)' 프리미엄은 6.05%가 됐다. 세계 61개국 평균치(5.54%)를 처음 웃돌았다. CDS 프리미엄은 채권이 부도났을 때 이를 대신 물어주는 거래를 하는 대신 받는 수수료를 뜻한다. 한국물 CDS 프리미엄은 말레이시아(4.6%)· 태국(4.5%)보다 높아졌다. 국제 금융가에선 한국정부가 발행한 채권의 부도 위험을 말레이시아·태국 채권보다 높게 보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8월까지 126억 달러에 달한 데다 은행의 단기외채가 900억 달러를 넘은 게 빌미가 됐다.

②원화는 국제금융가의 봉=올해 원화 값 하락 폭은 인도네시아 루피아나 말레시이아 링깃, 태국 바트보다 컸다. 일본 자본의 이탈로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호주 달러보다 더 큰 폭으로 떨어졌다. 원화 값 급락은 한국에서 달러가 한꺼번에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최근 4개월 동안 국내 증시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은 150억 달러로 아시아 주요국 중 가장 많았다. 9월까지 무역수지 적자도 146억7500만 달러에 달했다. 외국인의 한국 주식 매도 공세는 당분간 이어질 공산이 크다. 원화 값 급등세를 꺾자면 우선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③청개구리 CD금리=보통 한은이 금리를 내리면 양도성예금증서(CD)를 비롯한 단기금리는 따라 내려간다. 그런데 지난 9일 한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는데도 CD금리는 되레 0.22%포인트 올랐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금리는 대개 CD금리에 연동되기 때문에 CD금리가 오르면 서민의 주택담보대출 이자 부담도 무거워진다. CD금리가 이처럼 오른 이유는 은행의 돈줄이 마른 데다 증권사 등의 자금 사정이 급해서다. 은행으로 돈이 들어오질 않으니 은행은 CD 발행을 늘려 자금을 조달한다. 그런데 은행이 위험하다는 우려가 퍼져 CD를 사줄 투자자는 자취를 감췄다. 여기다 돈이 급한 증권사 등이 가지고 있던 CD마저 내다파니 금리가 뛸 수밖에 없다.


<경제 엉망된 40일 동안 … 여야, 변변한 대책 하나 안 내놨다>

기사입력 2008-10-27 02:49 | 최종수정
2008-10-27 03:27 / 중앙일보 / 임장혁, 선승혜 기자


1982년 아르헨티나와 벌인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250여 명의 전사자 유족들에게 일일이 친필로 위로 편지를 썼다. 영국 국민은 이런 대처에게서 전쟁의 상흔을 치유할 수 있었다. 위대한 지도자들은 국민이 고통에 신음할 때 아픔의 현장을 함께했다. 이런 리더십은 국민을 하나로 모아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되곤 했다.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지난 9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정쟁(政爭)을 중단하고 경제 살리기의 한길로 나가자”며 여야 당 대표 회담을 제안했다. 그러나 야당의 메아리는 없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나흘 뒤 열린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경제팀을 전면 교체하고 경제부총리제를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권에서도 메아리가 없었다.

지난 한 달이 넘는 기간 중 여야 정치권은 이처럼 따로국밥이었다. 245명의 지역구 의원과 각계 전문성을 대표하는 54명의 비례대표 의원은 날로 심각해지는 경제위기 속에서 지역구민이 얼마나 고통받는지를 전달하지도, 행정부에 경고 사인을 보내지도 못하고 있다. 각 당 지도부의 관심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중 누가 더 못하나를 가리는 기싸움이었고, 쌀 직불금 논란을 계기로 이런 정쟁은 확대 재생산돼 왔다.

◆경제 이슈에 둔감한 한나라당=추석 연휴 다음 날인 지난달 16일 오전 한나라당 박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전례 없는 대풍이 올해 시골의 민심이었다”고 말했다. 조간신문들이 1면 머리기사로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신청, 메릴린치의 매각' 등 미국발 금융위기를 전했는데도 여당 대표의 메시지는 풍년이었다.

같은 날 오후 의원총회도 마찬가지였다. '월가의 쇼크' '블랙먼데이의 공포'라는 기사들이 무색할 만큼 추석 전 추경안 처리가 불발된 걸 두고 홍준표 원내대표가 사퇴하느니 말아야 하느니 갑론을박이 오갔다. 여당이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건 하루가 꼬박 지나서였다. 17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전광우 금융위원장이 참석해 정부의 대책을 설명했다. 이후에도 경제 현장과 한나라당 간의 엇박자는 계속됐다.

10월 6일 코스피 지수가 60.9포인트 하락했다. 하루 동안 사라진 주식시장의 시가총액만 35조원. 다음 날(7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선 “지금은 국제적으로 봐도 건전한 수준”이라는 임태희 정책위의장의 발언을 빼곤 참석자들 중 주식시장 위기를 거론한 이는 없었다. 24일 코스피 지수가 1000포인트 아래로 떨어진 다음 날에도 박 대표의 주 관심사는 경제가 아니었다. 10·29 지방선거 재·보선 지원 유세였고, '북한 자유이주민 인권을 위한 국제의원연맹 5차 총회'였다. 주가가 대폭락한 11일과 18일, 25일 172석의 한나라당에선 지도부가 참석하는 회의 일정 자체가 없었다.

◆초당적 협력 인색한 민주당=미국발 금융위기가 가시화된 9월 이후 민주당이 수십 차례의 당내 회의에서 내놓은 목소리는 “강만수 경제팀 교체”가 대부분이었다. 정권 초기 고환율 정책으로 문제를 키운 경제팀을 교체해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 이상의 대안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초당적 협력을 약속한 지도부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에 밀려 금세 강경론으로 돌아서곤 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메릴린치 매각 소식이 전해진 지난달 16일 아침 민주당의 원내대책회의의 주제는 한나라당의 추경안 단독 처리 시도 실패였다.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을 돌파한 10월 1일과 증시 폭락으로 시가총액 35조원이 증발한 7일에도 민주당은 “강만수 경제팀 교체” 주장뿐이었다. 경제위기와 관련한 얘기는 대안보다는 그저 대통령과 여당을 비판하는 논평에 그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주가가 1000포인트 밑으로 추락한 소식이 전해진 뒤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민주당에서도 대책회의가 열리지 않았다. 24일과 26일 정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대구와 서울에서 '종부세 완화 반대'를 위한 장외 서명운동으로 바빴다.


<오락가락 당국자 말 “외환위기와 다르다” 열흘 만에 “그때보다 더 어렵다”>

기사입력 2008-10-27 02:52 | 최종수정2008-10-27 03:21 / 중앙일보 / 권혁주 기자


“정권이 바뀌면 내년엔 주가가 3000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 때인 지난해 12월 14일 한 말이다. 서울 여의도 대우증권 본사를 방문한 자리에서였다. 이어 “나는 실물경제를 한 사람이기 때문에 허황된 정치적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며 “아마 임기 5년 중에 제대로만 되면 (주가가) 5000까지 가는 게 정상”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당시 1895.05 포인트였던 코스피지수는 24일 938.75 포인트로 반 토막났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금융위기 관련 관계장관 회의를 한 뒤 브리핑에서 “(국내) 금융회사들의 외화유동성은 건전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이미 은행들은 외화가 모자라 하루짜리 초단기 자금인 오버나이트라도 빌리려고 동분서주하던 때였다. 약 2주일 뒤인 6일 강 장관은 시중은행장 간담회에서 “유동성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은행들이 해외자산을 조기 매각하는 등의 자구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경제정책 책임자들의 빗나간 판단과 오락가락하는 발언이 불신을 키우고 있다.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해 국민에게 실상을 알리고 대책을 세워야 할 당국자들이 말을 쉽게 하고 뒤집는 바람에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 상황 인식도 오락가락이다. 이 대통령이나 강 장관은 1~2주일 전만 해도 현재의 위기가 '아주 심각하지는 않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 대통령은 13일 라디오 연설에서 “어렵긴 하지만 외환위기 당시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다 22일 전국 경찰 지휘관들과의 청와대 오찬에서는 “현재는 IMF 때보다 더 어려운 시기”라고 말했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인 지난달 17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우리 금융시장이 이른 시일 안에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지금 은행권에서는 달러는 물론 원화마저 말라가는 실정이다. 결국 전 위원장은 24일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금융위기의 파급효과가 10년 전에 비해 상당히 클 수 있다”며 말을 바꿨다.

성신여대 강석훈 교수는 “정부가 오락가락하며 신뢰를 잃는 바람에 시장에는 '정부가 뭔가 큰 부실을 숨기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불안이 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불안이 주식 투매를 일으키고 환율을 치솟게 했다는 것이다.

정책도 이리저리 흔들린다. 부동산 대출 규제는 한때 정부가 자화자찬하던 정책이었다. 강 장관은 6일 국정감사에서 “주택담보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는 적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름 뒤 정부는 10·21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면서 수도권 투기지역을 대폭 해제해 부동산 대출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연세대 정갑영 교수는 “정책이 원칙 없이 휘둘리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위기대처 능력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국제사회에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DJ 때는 실력 위주” … “MB는 인연 중시”>

기사입력 2008-10-27 02:43 | 최종수정2008-10-27 08:44 / 중앙일보 / 고정애 기자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속도와 강도다.”

1998년 3월 김대중(DJ) 대통령이 첫 청와대 경제대책조정회의에서 한 말이다. 그는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고강도 개혁을 요구받고 있었다. 그래선지 “개혁을 강요당하는 게 아니라 자유로써 받아들여 경제개혁을 해야 전화위복이 된다”며 “우리는 앞으로 1년간 죽을 고생을 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그 자리엔 그와 함께 '죽을 고생'을 한 1기 경제팀이 있었다.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과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 진념 기획예산위원장, 그리고 김태동 청와대 경제수석과 강봉균 정책기획수석 등이 주요 인사였다.

시장은 이들을 관료와 전문가, DJ자문그룹이 어우러진 일종의 '혼성군'으로 평가했다. 각 분야에서 누구나 수긍할 만한 실력자이기도 했다.

특히 이 장관과 이 위원장은 DJ와 일면식도 없던 사이였다. 이헌재 위원장은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야인생활을 오래한 이 위원장이 시장에 신뢰와 두려움을 함께 줄 수 있는 카리스마를 지녔다는 판단에 따라 전격 발탁했고 일년반 뒤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DJ와 공동 정부를 꾸렸던 자민련의 김용환 수석부총재가 건의해 기용됐다. DJ가 이규성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며 “일면식도 없지만 일 잘한다고 해서 뽑았소”라고 한 일도 있다.

DJ의 측근은 김태동 수석뿐이었다. 같은 해 5월 김 수석이 다른 경제팀과 손발이 잘 안 맞는다는 세평이 나오자 DJ는 강봉균 수석과 김 수석의 보직을 맞바꿨다. 시장에선 코드보다 실력을 중시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명박(MB) 정부에도 유사한 경제 논의 기구들이 있다. 서별관회의로 불리는 거시경제정책협의회가 대표적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전광우 금융위원장, 박병원 경제수석 등이 고정 참석자다.

하지만 시장의 평가는 DJ 때와 전혀 다르다. “시장보다는 인연을 중시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시장의 냉혹한 판단에도 강 장관의 독주 체제가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강 장관의 유임이 그가 이 대통령의 20여 년 이상 된 지기이고 곽승준 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과 함께 MB노믹스(이명박의 경제정책)를 설계한 사람이기 때문 아니냐는 것이다. 이성태 총재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인물이다.

사실 정부 출범 초기부터 강 장관이 독주했던 건 아니다. 쇠고기 파문 이후 당·정·청이 정비되면서 청와대에 박병원 경제수석(행시 17회, 재경부 차관), 당에 임태희 정책위의장(행시 24회, 재경부 산업경제과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강 장관을 사실상 견제할 사람이 사라진 탓이 크다. 강 장관은 고시 8회로 이들의 한참 선배다. 여권 관계자는 “강 장관은 누군가 옆에서 브레이크를 걸어 주지 않으면 믿는 걸 그대로 밀어붙이는 사람”이라며 “문제는 그를 시장에선 '올드보이'(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의미)로 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오히려 제 목소리를 못 내서 비판받고 있다. 전 위원장도 이 대통령 사람으로 분류된다. 이 대통령이 90년대 말 미국 워싱턴에 체류할 때 교류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한 경제계 인사는 “지금이라도 경제 라인을 바꾸는 게 시장의 신뢰를 얻는 첫걸음”이라며 “대신할 만한 또는 믿고 쓸 만한 사람이 없다고 청와대는 느끼는 듯 하지만 찾아보면 숨은 실력자들이 많다. 인연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환율관리 실패는 97년과 닮고…위기 시작 ‘대기업 대신 은행’>

기사입력 2008-10-27 00:11 / 경향신문 / 서의동 기자

미국발 금융위기가 국내 경제 전반을 뒤흔들어 놓으면서 1997년 외환위기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대기업의 무리한 외형 경쟁이 외환위기의 주된 원인이 됐다면 이번 금융위기는 금융기관들의 외형 경쟁이 촉발시킨 측면이 크다는 점에서 시발점은 다르다. 그러나 단기자금을 빌려 장기 대출 재원으로 쓰는 금융기관의 ‘만기불일치(mismatch)’가 자금난을 가중시켰고, 정부의 미숙한 외환관리가 상황을 악화시킨 점은 외환위기 당시와 흡사하다.

◇위기의 시발점은 다르지만 = 97년 외환위기 전부터 대기업들의 은행차입에 의한 외형 확대 경쟁이 벌어졌고, 이로 인해 대출 부실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종금사들이 외국에서 저리의 단기대출을 받아 동남아·러시아 등의 장기 고금리 채권에 투자하면서 만기불일치에 따른 리스크(위험)가 커졌다. 97년 초 한보그룹 도산으로 외국자본들의 국내 금융기관에 대한 자금공급 제한이 본격화됐다. 그해 7월 기아그룹의 부도 사태와 동남아시아 외환위기로 은행들에 대한 해외달러 차입이 끊기는 등 유동성 압박도 극심해졌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금융시장이 위기상황에 내몰리자 자본을 급격하게 회수하면서 주가 폭락, 환율 급등이 반복됐고 결국 외환보유액이 바닥나면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됐다.

반면 현재의 금융위기는 은행과 증권사들이 외형 확대 경쟁에 나서면서 촉발됐다. 증시 활황으로 주식시장에 돈이 몰리면서 자금난을 겪던 은행들은 해외에서 외화를 차입하거나 은행채와 양도성예금증서(CD) 발행 등으로 주택담보대출에 나서면서 만기불일치가 심화됐다. 이런 가운데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른 신용경색 심화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본회수에 나서면서 위기가 본격화됐다.

◇환율관리 실패 등 유사점도 적지 않아 = 97년 외환위기 때도 자본거래 자유화 등 금융시장 개방정책 추진이 외환시장에 악영향을 미쳤고, 외환위기 이후에도 자본시장 개방 확대로 외환 부문의 리스크가 커졌다. 경상수지 악화, 단기외채 급증 등 거시 경제지표가 나빠진 점도 유사하다.

금융기관의 만기불일치가 자금난을 불러온 것이나 정부가 환율방어를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면서 외환보유액 감소를 초래한 점도 97년 외환위기 때와 현재의 상황이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