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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Articles

요동치는 환율시장 문답풀이

<정책불신·물가압박·도산위험 ‘실물경제 타격’>

입력-2008년 10월 12일 17:54:01 / 경향신문 / 서의동, 오창민, 김준일 기자

원·달러 환율이 폭등세를 보이면서 외환시장 불안이 진정되지 않고 있다.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파급되면서 미국 달러화에 대한 화폐 가치가 하락하는 추세지만 우리나라의 원화가치는 주요국 통화에 비해 과도하게 하락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올들어 30% 가까이 올랐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 버금갈 정도의 환율폭등이 왜 발생하는지, 우리 경제 전반에는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정부의 환율정책의 문제는 무엇인지 등을 문답 풀이로 알아본다.

1. 다른 나라 통화에 비해 원화가치가 더 떨어지는 이유는

국내시장 취약·경상적자 탓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미국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 통화에 비해 원화가치 하락폭이 더 큰 것은 국내 외환시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0일 현재 달러화에 대한 원화 가치는 지난 연말에 비해 28.5% 하락했다. 같은 기간 유로화 가치는 6.7% 하락했고, 영국 파운드화(-13.9%), 호주 달러(-22.0%), 태국 바트(-12.8%) 등도 달러화에 비해 가치가 떨어졌다. 반면 엔화 가치는 오히려 14.1% 올랐고, 중국 위안화 가치도 7.3% 상승했다.

이처럼 원화가 약세를 보이는 것은 경상수지 적자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올 들어 8월까지 126억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이 같은 경상수지 적자폭은 위험한 수준은 아니지만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탓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금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점도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 비중은 30%대로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2. 환율이 오르면 경제와 가계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나

신용경색에 실물경제 타격


환율 상승으로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기업들은 싼 값으로 물건을 만들어 수출을 많이 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교과서적인 이론일 뿐 우리 경제가 처한 현실에는 꼭 들어맞지 않는다. 우선 환율이 상승하면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도 덩달아 오르면서 생산단가가 높아진다. 가격경쟁력이 높아지긴 하지만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또 부품·소재의 수입 비중이 높은 산업들이 많은 우리 경제 특성을 감안할 때 수출이 늘어난다 해도 실익이 없다. 외국에서 부품을 사들여야 하는데 원화가치가 떨어져 같은 물건을 더 비싼 가격에 수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계의 주름살은 더 커진다. 환율상승으로 원유·곡물 등 원자재 수입단가가 높아지고 이는 물가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환율이 폭등세를 보이면 달러뿐 아니라 원화도 시중에 잘 유통되지 않는다. 금융시장에서 기업, 가계 등 실물경제로 돈이 잘 흐르지 않게 되는 신용경색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금융기관들이 대출을 꺼리거나 빌려준 돈의 회수에 주력하게 되면 흑자를 내고도 도산하는 기업들이 생기게 된다. 기업도산이 늘면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도 증가하게 돼 금융기관들이 돈줄을 더 죄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3. 제2의 외환위기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외환보유액은 충분한가

보유액 논란속 환란 없을듯


현재 금융시장 상황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세계 금융시장이 불안정하고, 달러가 부족해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 당시와 현재의 경제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외환위기 당시 400%에 이르던 기업 부채비율은 현재 100% 수준이다. 일부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기업의 연쇄 도산으로 인해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했던 외환위기 때와는 상황 자체가 다르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지난 9월 말 현재 2397억달러에 이르고, 6월 말 기준 유동외채(1년 이내에 갚아야 할 장·단기 외채)는 2223억달러다. 외환보유액에서 유동외채를 제외하면 실제로 쓸 수 있는 외환보유액은 174억달러밖에 되지 않아 불안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 설명은 다르다. 단기외채의 45%는 외국계 은행 국내 지점들이 본점에서 빌린 달러 자금이어서 실질적인 유동외채는 1200억달러 수준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또 외환보유액 전체가 1주일 내 현금화할 수 있는 ‘가용 외환보유액’이라고 밝히고 있다.

4.정부의 외환정책이 비판을 받는 이유는

잦은 시장개입 환투기 불러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환율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려 했다.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이 늘고, 수출이 증가하면 성장률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율이 상승하면서 국제 유가, 원자재 가격상승과 맞물리면서 물가가 급등했다. 물가 폭등이 심상치 않자 정부는 외환보유액을 풀어 환율을 다시 끌어 내리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처럼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정부를 신뢰하지 않게 됐고, 환투기 세력은 돈 벌 기회가 많이 생겼다.

예를 들면 정부가 원·달러 환율을 1000원선으로 유지하려고 하면 투기세력들은 달러를 사모아 1020원대까지 끌어올린다. 그러면 정부가 1000원대를 유지하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헐어 달러를 팔아 환율을 낮추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를 외환시장 개입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투기꾼들은 달러를 팔아 시세차익을 얻게 된다. 정부가 자꾸 외환시장에 개입하게 되면 나라의 ‘곳간’ 격인 외환보유액은 감소하는 반면 투기세력들은 돈 벌 기회가 많이 생긴다. 그래서 많은 경제학자들은 환율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5.키코(KIKO)로 불리는 환헤지 통화옵션상품은 왜 문제인가

환율 폭등땐 환손실 눈덩이


수출 기업들은 환율이 상승하면 환차익을 얻는다. 외국에 물건을 팔고 받는 달러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반면 환율이 하락하면 손해를 입는다. 외환(外換)과 헤지(hedge·위험 회피)의 합성어인 ‘환헤지’ 상품은 환율 상승이나 하락에 따른 손해를 덜 보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환헤지 상품의 일종인 키코(KIKO)는 설계가 이상하게 돼 있다. 환율이 예상했던 구간대에서 움직이면 환차익을 볼 수 있다. 반면 환율이 그 구간을 벗어나면 환율 하락으로 인한 손해를 보상을 받지 못하고, 환율 상승으로 인한 환차익을 내줘야 한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이 약정 환율 구간을 900원에서 1000원, 행사 환율을 950원으로 정해 키코에 가입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럴 경우 환율이 900~950원에서 움직이면 키코를 판매한 은행은 달러를 무조건 950원에 처리해준다. 환율이 900원이라해도 달러를 950원에 사주는 것이다. 환율이 900원 밑으로 떨어지면 계약은 자동 해지된다. 문제는 환율이 오를 때다. 1000원을 넘어서면 이번에는 기업이 거꾸로 달러를 950원에 은행에 팔아야 한다. 환율이 1300원일지라도 달러를 무조건 950원에 팔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약정한 금액의 2~3배로 달러를 팔도록 계약이 돼 있다.

기업들이 키코에 가입했던 지난해 환율은 900원대 중반에서 움직였다. 당시에는 경상수지 흑자가 계속되면서 환율이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올 들어 환율이 폭등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현재 키코에 가입한 기업 517곳의 손실액은 1조7000억원이다. 이는 8월 말 당시 환율인 1089원으로 계산한 것이다. 환율은 그 이후 큰 폭으로 올랐다. 지난 10일 현재 달러당 1309.0원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환율이 10원 오르면 키코 피해는 1000억원씩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6.원·엔 환율이 원·달러 환율보다 더 많이 올랐는데

달러보다 엔화가 안전 인식


원·달러 환율은 외환시장에서 달러 수급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원·엔 환율은 원·달러 환율과 엔·달러 환율을 종합해서 결정한다. 예를 들어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000원이고,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10엔이라면, 원·엔 환율은 110엔에 1000원, 즉 100엔에 909.09원이 되는 식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연말 달러당 939원에서 10일 현재 1309원으로 올들어 39.4% 올랐다. 원·엔 환율은 지난 연말 100엔당 828원에서 지난 10일 1322원대로 59.6% 올랐다. 달러보다 엔화 값이 더 많이 오른 것이다.

전 세계적 금융 위기에도 불구하고 일본 경제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흐름을 보이고 있고, 엔화가 미국 달러보다 더 안전한 자산으로 인식되면서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연말에는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13엔이었지만 10일 현재 달러당 99엔으로 엔화 가치는 10% 이상 높아졌다. 달러화 가치가 엔화에 비해 떨어진 상태에서 원화 가치가 달러에 비해 떨어져 원화와 비교해 엔화의 가치는 더욱 오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