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10-03 18:06 / 한겨례21 /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얼마 전 ‘노공이산’이라는 이가 인터넷에 ‘현재의 금융위기의 원인은 신자유주의’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신자유주의란 부자들이 힘을 합쳐 국가의 규제를 묶어버리는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였다고 한다. ‘노공이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이디로 알려져 있어 이 글의 저자가 노무현씨라는 전제에서 다음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지난 5년간 일관된 정책, ‘금융허브’
노무현씨는 현직에 있을 당시 자신이 추진했던 금융 관련 정책들이 과연 국가가 최소한의 책임을 맡는 적절한 규제가 갖추어진 금융 체제를 목표로 했는지, 아니면 지금 국제적으로 몰매를 맞고 있는 미국식 금융체제를 완전히 ‘카피’하려 했는지에 대해 함께 설명을 해야 했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지난 정권 5년간 가장 일관되게 철저히 추진됐던 정책이 바로 ‘금융허브’였음을. 그것이 그리는 그림은 금융을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삼기 위해 자본시장을 크게 육성해 세계적인 투자은행을 키운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금융시장을 ‘글로벌 스탠더드’- ‘아메리칸 웨이’의 한국식 표현- 에 맞게 고칠 것이며, 국민연금이나 각종 공적 기금들을 적극적으로 여기에 끌어들여 2010년까지 서울을 ‘자산운용 금융허브’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계획은 결코 애매한 소문도 아니었고 머릿속의 그림으로 머물지도 않았다. 이명박 정권이 시작된 지금에도 길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두 개의 굵직한 정책을 남겨놓았으니,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그것이다. ‘자통법’은 한국형 투자은행을 키우고 말겠다는 것을 분명한 목표로 삼고 있으며, 한-미 FTA의 가장 중요한 초점 역시 한국이 동아시아에서의 금융허브에 적합한 제도적 인프라를 한꺼번에 마련하는 것에 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자통법은 아직 본격적인 문제를 낳지 않았지만, 조만간 은행·증권·보험 전반에 걸쳐 벌어질 대규모 재편은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상전벽해를 예고하고 있으며 이는 때마침 벌어진 세계 금융의 대혼란과 겹쳐서 가뜩이나 불안정에 휘말린 한국 경제의 장래에 중차대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리고 한-미 FTA가 실현될 경우 그 안에 포함된 ‘투자자-국가 제소제’나 ‘역진불가 장치’(래칫) 등으로 인해 이를 돌이킬 길도 사라진다.
이러한 전면적인 ‘금융 신자유주의’로 한국의 방향을 정해놓은 주역이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현재의 금융위기는 잘못된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발언하고 있다. 지금 이명박 정권이 ‘신자유주의’의 딱지를 얻고 있고 그 딱지가 미국 금융위기를 계기로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비난을 얻고 있으니 갑자기 ‘신자유주의 비판자’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제시하는 것인가. 지금 미국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한결같이 규제 완화를 외치던 매케인 후보가 갑자기 입장을 일변해 철저한 금융규제를 외치고 나섰다가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일개 상원의원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대통령 자리에 있던 이임에랴. 전임 대통령이 정치를 재개하는 것을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졌던 이가 정치적 계산에 따라 이렇게 입장을 바꾸어가며 정치를 하려 한다면 이 나라 정치 전체의 질적 저하를 가져오게 된다.
‘노공이산’의 글은 징후일 뿐
하지만 노무현씨만을 나무랄 일이 아니다. 현재 우리 기성 정치세력들은 철석같이 믿어오던 글로벌 스탠더드가 박살이 나는 사태 앞에 심각한 지적 위기에 처한 것이며, ‘노공이산’의 글은 그 하나의 징후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기성 세력들은 기실 모두가 글로벌 스탠더드의 신봉자임을 자처하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그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것이 알고 보니 ‘신자유주의’였고 또 지금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그것이라는 점 또한 이제야 얻어 듣게 된 것이다. 자통법의 이력을 보라. 그것을 발의한 것은 열린우리당이었고, 지금 그것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엉뚱하게도 ‘좌파 정책을 척결하겠다’고 벼르는 한나라당이며, 그것에 또 제동을 걸겠다고 엉거주춤 나서고 있는 것은 열린우리당의 후신 민주당이다. 이 와중에서 미국형 금융 체제라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그래도 일편단심으로 몰고 가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입장이라고 한다. 한국 보수 세력의 지적 혼란의 귀결이 무엇일까가 두려울 뿐이다.
얼마 전 ‘노공이산’이라는 이가 인터넷에 ‘현재의 금융위기의 원인은 신자유주의’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신자유주의란 부자들이 힘을 합쳐 국가의 규제를 묶어버리는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였다고 한다. ‘노공이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이디로 알려져 있어 이 글의 저자가 노무현씨라는 전제에서 다음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지난 5년간 일관된 정책, ‘금융허브’
노무현씨는 현직에 있을 당시 자신이 추진했던 금융 관련 정책들이 과연 국가가 최소한의 책임을 맡는 적절한 규제가 갖추어진 금융 체제를 목표로 했는지, 아니면 지금 국제적으로 몰매를 맞고 있는 미국식 금융체제를 완전히 ‘카피’하려 했는지에 대해 함께 설명을 해야 했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지난 정권 5년간 가장 일관되게 철저히 추진됐던 정책이 바로 ‘금융허브’였음을. 그것이 그리는 그림은 금융을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삼기 위해 자본시장을 크게 육성해 세계적인 투자은행을 키운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금융시장을 ‘글로벌 스탠더드’- ‘아메리칸 웨이’의 한국식 표현- 에 맞게 고칠 것이며, 국민연금이나 각종 공적 기금들을 적극적으로 여기에 끌어들여 2010년까지 서울을 ‘자산운용 금융허브’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계획은 결코 애매한 소문도 아니었고 머릿속의 그림으로 머물지도 않았다. 이명박 정권이 시작된 지금에도 길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두 개의 굵직한 정책을 남겨놓았으니,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그것이다. ‘자통법’은 한국형 투자은행을 키우고 말겠다는 것을 분명한 목표로 삼고 있으며, 한-미 FTA의 가장 중요한 초점 역시 한국이 동아시아에서의 금융허브에 적합한 제도적 인프라를 한꺼번에 마련하는 것에 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자통법은 아직 본격적인 문제를 낳지 않았지만, 조만간 은행·증권·보험 전반에 걸쳐 벌어질 대규모 재편은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상전벽해를 예고하고 있으며 이는 때마침 벌어진 세계 금융의 대혼란과 겹쳐서 가뜩이나 불안정에 휘말린 한국 경제의 장래에 중차대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리고 한-미 FTA가 실현될 경우 그 안에 포함된 ‘투자자-국가 제소제’나 ‘역진불가 장치’(래칫) 등으로 인해 이를 돌이킬 길도 사라진다.
이러한 전면적인 ‘금융 신자유주의’로 한국의 방향을 정해놓은 주역이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현재의 금융위기는 잘못된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발언하고 있다. 지금 이명박 정권이 ‘신자유주의’의 딱지를 얻고 있고 그 딱지가 미국 금융위기를 계기로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비난을 얻고 있으니 갑자기 ‘신자유주의 비판자’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제시하는 것인가. 지금 미국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한결같이 규제 완화를 외치던 매케인 후보가 갑자기 입장을 일변해 철저한 금융규제를 외치고 나섰다가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일개 상원의원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대통령 자리에 있던 이임에랴. 전임 대통령이 정치를 재개하는 것을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졌던 이가 정치적 계산에 따라 이렇게 입장을 바꾸어가며 정치를 하려 한다면 이 나라 정치 전체의 질적 저하를 가져오게 된다.
‘노공이산’의 글은 징후일 뿐
하지만 노무현씨만을 나무랄 일이 아니다. 현재 우리 기성 정치세력들은 철석같이 믿어오던 글로벌 스탠더드가 박살이 나는 사태 앞에 심각한 지적 위기에 처한 것이며, ‘노공이산’의 글은 그 하나의 징후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기성 세력들은 기실 모두가 글로벌 스탠더드의 신봉자임을 자처하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그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것이 알고 보니 ‘신자유주의’였고 또 지금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그것이라는 점 또한 이제야 얻어 듣게 된 것이다. 자통법의 이력을 보라. 그것을 발의한 것은 열린우리당이었고, 지금 그것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엉뚱하게도 ‘좌파 정책을 척결하겠다’고 벼르는 한나라당이며, 그것에 또 제동을 걸겠다고 엉거주춤 나서고 있는 것은 열린우리당의 후신 민주당이다. 이 와중에서 미국형 금융 체제라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그래도 일편단심으로 몰고 가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입장이라고 한다. 한국 보수 세력의 지적 혼란의 귀결이 무엇일까가 두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