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수 국무총리 단독 인터뷰>
기사입력 2008-07-25 13:40 / 신동아 /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장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표현 그대로 국무총리의 권한은 막강하다. 헌법에는 총리가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행정 각부를 통할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총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았다. 미국 쇠고기 수입협상과 촛불시위, 고유가, 물가, 환율, 조류인플루엔자(AI) 등 눈앞의 현안에 대처하는 총리의 모습은 국민의 기대와 거리가 있었다. 각종 현안을 둘러싸고 부처 간 소통부재와 혼선이 드러나도 총리실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그 이유? 간단하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총리실의 국무조정 기능이 대부분 청와대로 이전돼 입지가 크게 줄었고, 총리는 대통령의 그늘에 가려 국민에게 그 움직임이 제대로 포착되지 않았다. 그래서 6월10일 한승수(韓昇洙·72) 총리 내각이 쇠고기 협상 파문에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자 “기회도 안 주고 무슨 책임이냐”는 동정론도 일었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총무는 6월13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권력을 행사할 일이 없었던 한 총리에겐 국민이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옳다”고 말했다.
그간 민심이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한 총리는 국민 앞에 여러 차례 고개를 숙였다. 6월2일 정부 중앙청사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내각 통할의 책임을 진 총리로서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했고,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사표를 낸 6일 오후 연세대에서 열린 대학생과의 시국토론회에서도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아진 데 대해 반성하고 총리로서도 책임을 느낀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공직에 임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다 결국 자신이 주도해서 내각 총사퇴를 표명했다.
사의 표명 이후에도 한 총리는 이전과 다름없이 국정을 챙겼다. 회의와 행사 참석 등 정해진 일정을 소화했고, 12일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45주년 기념식에선 “정부는 더욱 낮은 자세로 국민의 뜻을 받들어 쇠고기, 고유가 문제를 최선을 다해 해결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1987년 6·10항쟁 이래 최대 인파가 모였다는 10일 촛불시위 때는 새벽까지 정부청사를 떠나지 않고 사태를 지켜봤다. 그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전개된 것이 안타깝다. 밤새도록 집무실과 상황실을 오가며 상황을 보고 받고, 시위에 참여한 국민들과 시위를 막고 있는 전경들이 모두 다치는 일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총리는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나갈 것인가.
해결책을 찾느라 분주한 한 총리를 처음 인터뷰한 것은 6월4일. 오전 10시로 예정된 인터뷰 시각이 갑자기 오후 3시로 늦춰졌다. ‘비상시국’이다 보니 총리의 일정이 뒤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이런 상황에선 아예 인터뷰가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으나 한 총리는 오후 3시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집무실에서 기자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집무실에 에어컨을 틀지 않은 데다 비까지 쏟아져 후텁지근했지만, 악수를 하는 한 총리의 악력(握力)이 아주 세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재협상과 같은 효과 내도록 최선”
▼ 촛불시위의 동기를 놓고 초기에는 ‘배후’ 운운하는 시각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순정(純情)’이라는 말이 회자됐습니다. 일부 과격한 시위대도 있었으나 많은 이가 축제처럼 시위를 즐겼습니다.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전적으로 정부 신뢰의 위기 탓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부가 어떤 얘기를 해도 믿지 않는 분위기가 하루 이틀 사이에 생겨난 것은 아닌 듯해요. 그동안 정부가 국민의 마음을 좀더 헤아리고 끌어안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쇠고기 문제만 해도 그래요. 국민들에게 광우병에 대한 우려가 굉장히 컸지요. 그런데 정부는 광우병 걸린 소를 들여오지 않도록 하겠으니 걱정 말라고 했고, 그것을 대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 이상의 대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좀더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봐요.
이번 일련의 사태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생기면 정부가 수입을 중지하겠다’고 했고, 미국 정부도 제 담화를 지지했습니다. 그래도 국민들이 믿지 않으니까 앞으로는 총리가 국민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누구를 탓하기보다 정부가 스스로 자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 6월13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에 가서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는 내용의 추가협상을 벌이는 등 추가조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다수 국민은 협정 문구를 수정하는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에 어떻게 대응해갈 생각입니까.
“대다수 국민이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과의 재협상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재협상은 기존의 협상을 파기하고 협상을 새로 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국제 기준과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합의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위생조건에 대해 일방적으로 재협상을 요구할 경우 국제적으로 한국에 대한 신뢰 문제가 발생하고, 국제 기준을 무시했다는 비판이 우려됩니다. 국제교역량이 세계 13위권에 이르는 통상국가인 우리로서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신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확보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장관고시의 관보게재를 유보했고, 미국 측에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중단을 요청했으며, 대표단을 파견해 추가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정부는 추가협상을 통해 실질적으로 재협상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고, 그런 과정을 통해 국민이 안심할 수 있게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을 마련하겠습니다. 국민 건강을 담보하는 모든 조치를 다 취하겠다는 얘깁니다. 다만 정부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진 상황이라 정부의 이 같은 노력이 국민들 마음속까지 스며드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촛불시위 배경은 복합적”
▼ 취업난, 실업, 생활고 등 여러 가지 경제적 요인도 시민들을 거리로 나서게 하는 것 같습니다. 총리께서는 경제학자로 오래 활동했고 외교관 생활도 경험했으니 경제 현안과 미국과의 협상 등에 대해서도 분석과 대책을 내놓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국민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뽑은 것은 ‘경제 살리기’를 기대했기 때문이죠. 대통령께서도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그 부분에 역점을 뒀고요. 그런데 불행스럽게도 국내외 여건이 정부가 그와 같은 정책을 실행하기에 유리한 방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취임하기 전에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 담보대출) 위기로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미국 경기가 계속 하강하고, 우리의 수출도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지금 우리는 완전히 개방된 경제체제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경기침체가 우리에게 직접 미치는 영향력이 아주 큽니다. 유가는 연일 사상최고치를 갱신하고, 원자재·식량·광물가격이 동시에 올라가는 전대미문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 살리기에 나섰습니다. 국민의 기대는 크지만 여건은 너무나 좋지 않아요. 특히 유가, 그중에서도 경유 가격은 서민의 생계와 직결되기 때문에 정부의 고유가 대책이 미진한 데 대한 불만이 복합적으로 터져나와 촛불시위로 불거진 게 아닌가 합니다.
지난 10년동안 경제성장률이 6~7%에서 4%대로 떨어졌는데, 이명박 정부는 이것을 다시 6~7%로 끌어올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개혁조치, 즉 규제개혁이라든지 감세, 공공부문 민영화 등을 통해 민간부문에 활력을 불어넣고 성장잠재력이 늘어나도록 해야 하므로 시간이 필요합니다. 2년에서 5년은 걸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난 석 달 동안 이렇다 할 가시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다 보니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가 경제 살리기 한다고 해놓고 이게 뭐야’ 하게 된 거라고 봐요.”
▼ 쇠고기 협상 문제는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꼬이게 됐습니까.
“협상 과정에서 미국과 밀고 당기기를 반복했는데, 공교롭게도 그것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연계되다 보니 어려워진 겁니다. 우리가 개방경제이기 때문에 FTA는 꼭 필요합니다. 미국과의 FTA를 통해 우리는 경제의 구조를 바꾸고 크게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과는 고가품, 중국과는 저가품을 갖고 경쟁하는데, 한미 FTA 체결로 미국 시장을 먼저 차지해서 우위에 선다면 성장잠재력을 키우고 일자리도 늘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미 FTA와 관련해 미국은 자동차 협상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 다음이 쇠고기 협상이었어요. 자동차 협상은 우리에게 아주 유리하게 이뤄졌습니다. 지금도 미국 민주당 대선주자인 오바마 상원의원 등은 이 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거든요. 그리고 쇠고기 협상은 OIE(국제수역사무국) 등의 규정에 따라서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렇게 불리한 것만은 아닌데 국민들이 보기엔 부족하다고 해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쇠고기 문제가 하루속히 해결되고 18대 국회에서 한미 FTA 문제가 빨리 정리되면 좋겠습니다.”
“체계적 여론수렴 시스템 마련할 것”
▼ 쇠고기 협상 갈등으로 한미관계가 소원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미국 측은 공공연히 ‘재협상 불가론’을 흘리고 있고, 주한 미대사의 일부 발언이 한국민을 자극하기도 했습니다. 6월초 한미연합사령관 이취임식 참가차 방한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청와대를 방문하지 않은 것을 두고 미국 측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미 합의한 쇠고기 수입협정에 여러 번 손질이 가해지는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 사이에 균열이 생기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는 분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한미 간에 기본적인 연대의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지난 4월 이 대통령께서 부시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친분관계를 만들어놓았죠. 국가 간에는 정상 간의 친분관계가 대단히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아마 부시 대통령도 이명박 정부가 왜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는지 생각해 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뒤에서(비공개로) 미국 정부와 여러 문제를 계속 협의하면서 미국의 정책변화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쇠고기 수입 파동 같은 일이 한미관계의 근간을 흔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 ‘쇠고기 갈등’과 관련해서 국민들은 협상 과정에서 여론을 살피지 않은 것, 즉 의사결정 과정의 비민주화가 무엇보다 위험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앞으로 변화가 있을 수 있을까요.
“촛불집회를 보면서 국민과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됐습니다. 앞으로 정부는 열린 마음과 낮은 자세로 국민의 의견을 받들 것이며, 체계적 여론수렴 시스템을 마련해 정책결정 과정에 민의를 적극 반영해나가겠습니다.”
▼ 총리께서 사퇴서를 제출하긴 했지만 총리 업무는 계속 수행하고 계신데, 사퇴 이전과는 각오가 다르리라 여겨집니다.
“저는 20여 년 전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늘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업무에 임하고 있습니다. 공직자로서 임명권자의 최종 결정이 있기 전까지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자 의무입니다. 당면한 현안인 민심수습과 고유가 등에 따른 민생경제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 6월10일 최대 규모의 촛불집회 이후 한반도대운하 같은 사안은 후순위로 미뤄지는 듯합니다. 경제도 성장보다는 안정에 무게를 두는 것 같고요. 정책기조에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세계 경기가 침체기로 접어든 데다 고유가 등으로 인해 서민과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정책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부는 민생안정을 최우선순위로 잡았습니다. 경제활성화와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서는 각종 국정개혁과제 해결도 시급하지만 더욱 폭넓은 여론수렴과 타당성 검토를 통해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공공부문 선진화 반드시 실현”
민생안정을 위해 최근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하나가 고유가 관련 민생종합대책이다. 저소득 근로자와 자영업자 등 저소득층 지원에 초점을 맞춘 이 대책은 연 총급여 3600만원 이하의 근로자, 종합소득금액 2400만원 이하의 자영업자에게 최대 24만원의 세금을 환급한다는 것이 골자다. 정부는 이에 필요한 자금 10조4900억원은 세계잉여금 잔액 4조9000억원과 향후 1년간 유가상승으로 예상되는 세수증가액 5조원 등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 고유가 관련 민생종합대책이 급조된 임시방편이고 포퓰리즘에 영합한 것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런 엄청난 재원을 보다 장기적인 안목의 우선순위사업에 돌릴 수도 있었을 텐데요.
“현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서민생활 안정입니다. 이번 대책은 작년 이맘때에 비해 두 배나 오른 급격한 유가 상승과 이에 따른 물가상승으로 서민경제가 다른 우선순위를 고려할 수 없을 만큼 어렵게 된 상황에서 서민들의 부담을 조속히 덜어주기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절대 임시방편이나 포퓰리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석유류 유통구조 개선, 에너지 절약구조 전환 등 구조적 과제와 에너지 자원 확보 등의 장기 과제도 병행해서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공공부문 개혁은 정부가 ‘쇠고기 정국’에 총력을 기울이기 위해 잠시 일정을 늦췄을 뿐 정부 방침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한다. 곽승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도 6월13일 “공공부문 개혁에 대해서는 여전히 여론 지지율이 48%에 이르며, 쇠고기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면 본격 추진할 것이다. 공공개혁은 역대 정부에서 보듯 집권 초기에 마무리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한 총리는 공공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로 ‘민영화 괴담’을 꼽았다.
“그간 공기업 등 공공부문 전반이 경쟁 없는 환경에서 예산 낭비, 방만한 경영 등 비효율적인 문제를 끊임없이 드러냈습니다. 이는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시장의 투자 여력을 감소시켜 성장잠재력 회복에 커다란 장애가 되므로 경제를 살리려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국가적 과제입니다.
공공부문 선진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얻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터넷에는 출처가 불분명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이른바 ‘민영화 괴담’(의료, 고속도로, 상수도 민영화)이 유포되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정부는 정확한 사실을 기반으로 해 국민에게 공공부문 선진화 방안을 설명드리고 투명하게 추진해나갈 것입니다. 또 공기업 민영화 등으로 국민이 경제적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다방면으로 문제점을 검토해 보완할 것입니다.”
‘칭기즈 칸 총리실’
▼ 총리실의 부처 간 정책조정이나 갈등조정 기능이 이전보다 많이 위축돼 있는 듯합니다. 듣기 거북하시겠지만 ‘총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도 자주 나왔고요. 총리실의 위상과 입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총리실은 인원도 줄고 조직도 줄었지만 기능은 줄어든 것이 없어요. 총리실의 기능이 청와대로 갔다고들 하는데, 총리의 역할은 내각을 통솔해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겁니다. 지금껏 그 역할은 잘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총리실 규모가 이전보다 반으로 줄었지만, 칭기즈 칸이 100만 대군을 몰고 다닌 게 아니라 겨우 몇만명으로, 단기필마(單騎匹馬)의 정신으로 세계를 점령했듯이 우리 총리실에도 그런 능력이 있다고 봅니다. 총리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것은 총리가 홍보나 선전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닐까요(웃음).”
한 총리는 ‘총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 다소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다.
“앞에서 말씀드렸듯 공직생활을 시작한 게 20년 전입니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그만두고 공직에 나와서는 스스로 자랑한 적이 없어요. ‘대변불언(大辯不言·가슴으로 말하거나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저의 공직 자세였어요. 총리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데도 총리가 안 보인다는 얘기는 좀 억울하지만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니)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요즘은 매스미디어와 인터넷이 중요한 시대라 ‘대변유언(大辯有言)’이라고, 자기가 이뤄낸 업적에 대해선 가끔 홍보도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싶네요.”
▼ 가령 환율 문제로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해 국민을 혼란스럽게 한 바 있습니다. 그럴 때 총리실에서 조정 기능을 발휘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한국은행은 독립적인 기구니까 제가 전화할 일이 없지만, 내각은 제가 통솔하니까 환율이나 금리, 메가뱅크 문제 등이 불거질 때마다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연락해서 ‘국민이 불안해하니 내부적으로 조정하는 건 몰라도 외부에 갈등으로 비치는 일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환율 문제는 차관이나 장관이 시장을 잘못 읽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아주 강한 소신을 갖고 있었고, 또 무척 조심하고 있습니다.”
▼ 총리가 바뀔 때마다 ‘실세 총리’다, ‘책임 총리’다, ‘의전 총리’다 하는 다양한 평가가 나왔는데요. 한 총리께서는 어떤 유형의 총리상이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실세’는 대통령입니다. 총리가 어떻게 실세가 될 수 있습니까.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국정에 책임을 지는 거지요. 총리는 대통령이 원하는 것이 뭔지를 알아서 그것을 잘 추진해나가는 게 임무입니다. 이 대통령께서 제게 맡긴 자원외교 같은 것은 그런 사례입니다. 그건 다른 어떤 대통령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거든요. 국가 백년대계라 할 대단히 중요한 임무를 제게 맡긴 것이죠. 또 기후변화 문제도 총리실이 맡고 있는데, 이건 우리나라의 문제를 떠나 인류의 문제고 차세대의 문제입니다. 성숙한 나라, 국격(國格)이 높은 나라의 중요한 요소란 말입니다.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 5번 독대
이런 것들은 당장 눈에 잘 띄지 않아서 그 효과를 확신하지 못하는 분도 많겠지만,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가 돼서 세계에 나가 활동할 때 ‘너희들이 어릴 때 대한민국 정부가 가장 앞장서서 이런 인류의 문제를 고민하고 좋은 방향을 제시했다’고 말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자랑스럽겠습니까. 비록 시간이 걸려야 효과가 나타나겠지만, 바로 그런 일들을 지금 총리실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총리실의 입지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크게 늘었다고 생각해요. 총리실은 ‘미래부(部)’다, ‘세계국가부(部)’라고 자부할 정도로 직원들이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국가 백년대계’라고 해서 당장의 우리 현실과 동떨어진 문제는 아니다. 총리가 자원외교를 하는 이유는 석유 같은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함이고, 그 결과가 좋으면 요즘처럼 고유가 상황이 계속돼도 지금처럼 위기의식을 크게 느끼진 않을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책도 마찬가지.
그러나 나라 안팎 상황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니 정부도 단기 대책 마련에 급급하다. 지난 3월10일 상반기 경제운용방향을 발표할 때 정부는 올해 유가로 배럴당 80달러를 전망했다. 그러나 상반기가 끝나기도 전에 유가는 130달러(두바이유 기준)를 넘어 초고유가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한 총리가 고유가 극복 민생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말했듯 “가히 3차 석유위기(오일쇼크)로 불릴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배럴당 150달러, 200달러가 되면 국가경제가 어떻게 될까요. 국민의 부담을 덜어줄 확실한 대책은 무엇입니까.
“최근의 고유가는 기본적으로 수급 불균형에서 비롯되고 있어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원유 수입규모 세계 5위인 우리 경제가 겪어야 할 어려움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입니다. 유가가 10% 오르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1%p 감소하고 소비자물가는 0.2%p 오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경제가 고유가 충격을 무리 없이 흡수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서민생활 지원방안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곧 시행에 들어갈 고유가 관련 민생종합대책이 그 일환입니다.
중장기적으로는 뭐니뭐니 해도 에너지 자주개발률(국내 업체가 해외에서 생산하는 에너지 생산량을 국내 에너지 소비량으로 나눈 값)을 높이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지난 5월 중앙아시아 방문 때 카자흐스탄의 잠빌 광구를 확보했고,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가스전을 확보했습니다. 특히 투르크메니스탄은 이제 막 개방한 개발도상국이라 매력적입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과 다섯 차례 독대한 끝에 광구 개발 계약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아주 타이밍이 좋았지요. 투르크메니스탄은 짧은 기간에 압축적 성장을 기록한 한국에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의 개발경험 전수를 필요로 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자원을 얻고, 그쪽은 개발경험을 얻는 호혜적인 패키지형 자원외교가 가능합니다. 감히 얘기하지만, 투르크메니스탄과 동반자 관계를 잘 유지하기만 해도 앞으로 에너지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봅니다. 이런 성과가 촛불시위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 보다 중요한 것은 후속조치라고 생각합니다. 협약을 맺었다가 상대국의 일방적 파기로 물거품이 되는 사례가 흔합니다. 개도국들이 돌연 자원국유화를 선언하는 경우도 있고요. 구체적인 후속조치들이 있습니까.
“투르크메니스탄은 도로 철도 항만 등 인프라 시설 건설이 당면 과제입니다. 광구 관련 시설과 인력도 필요하지만 석유화학공장, 정유공장, 시멘트공장, 파이프라인 등을 건설하는 일이 시급하죠. 우리 기업들이 관련 산업에 진출할 수 있지요. 그 나라 대통령은 ‘우리에겐 공장도 중요하지만 공장을 운영하는 인력이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이르면 6월 안에 조중표 국무총리실장이 실무진과 투르크메니스탄에 가서 후속조치를 할 계획입니다. 베르디 무하메도프 대통령이 한국과 경제공동위원회를 구성하자고 했는데, 얼마 전에는 경제를 넘어 다른 분야에서도 협력하는 공동위원회를 만들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처럼 광범위한 협력관계가 구축되고 있습니다.”
총리실의 세계지도
한 총리의 집무실 한쪽 벽에는 농구장 골대 보드만한 세계지도가 걸려 있고, 거기에는 전세계 유전과 가스 광구가 빼곡하게 표시돼 있다. 한 총리는 투르크메니스탄에 파란 방점이 여러 개 찍힌 곳을 가리키며 “이렇게 표시된 것이 다 유전과 가스전인데, 아직 개발이 안 됐어요. 이걸 우리와 공동으로 개발하겠다고 한 겁니다. 이 광구 하나가 얼마인지 압니까?”라며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작년에 이들 중 한 곳에서 가스가 터져 불이 붙었는데 7개월 만에야 불길을 잡았답니다. 공식통계로는 4조㎥의 천연가스가 묻혀 있다는데 무려 26억9000만t입니다. 1년에 2400만t을 쓰는 우리가 120년 이상 쓸 양입니다. 지난번 순방 때 카스피해의 ‘투르크만 벨트’라는 지역엘 갔는데 한쪽 면으로 온통 시커먼 모래밭이 보여요. 그게 다 기름이랍디다. 그리고 지금은 이 나라의 석유와 가스만 언급하고 있는데, 사실 이 나라에는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에 나오는 화학원소 118개가 모두 매장돼 있습니다. 다른 광물도 공동개발하자는 제의가 들어왔지요.”
▼ 요즘 일본과 중국은 자원이 풍부한 아프리카에 공을 들이고 있더군요. 총리께선 중앙아시아 이후의 공략지역을 어디로 전망하고 계십니까. 순방도 예정돼 있습니까.
“에너지라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됩니다. 다변화해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어요. 우리나라가 지금 에너지의 97%를 수입하는데, 그 가운데 80%를 중동에서 사들입니다. 그래서 수입 다변화를 위해 중앙아시아에 갔던 거지요. 아프리카에 광물과 에너지가 많다는 것은 우리도 잘 알기에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또 동남아시아 지역과 호주 서북부, 사할린, 캐나다 오일샌드 등을 다 돌아보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국민이 그런 자원외교의 성과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언제쯤일까요.
“기업인들은 이미 변화를 느끼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 방문 때도 같이 가겠다고 지원한 기업이 예상보다 몇 배나 많았습니다. 가능성이 있다고 본 거지요. 그런데 자원개발은 장기전입니다. 광구를 개발하고, 석유를 가져오기까지 수년씩 걸릴 수 있어요.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노력이 활발할수록 에너지 자주개발률도 높아지고, 에너지 걱정도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제가 방문한 국가의 대통령들이 연말 전에 한국을 방문해 추가로 계약을 체결하거나 하면 국민이 좀더 실감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 고유가 시대 대비책으로 원자력발전의 비중을 높이는 방안이 강구되고 있다는데, 어떤 계획이 수립되고 있습니까.
“고유가 시대와 온실가스 감축에 대응하려면 가격·수급 불안요인이 적고, CO2 배출이 거의 없는 원자력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원자력은 발전 원가도 석탄이나 LNG보다 낮고, CO2 배출량도 석탄, 석유, 가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습니다. 현재 국내 발전설비 가운데 원자력 비중이 26%(발전량 기준 36%)입니다. 운영 중인 원전이 모두 20기이고, 제3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라 6기가 추가 건설 중에 있으며, 2016년에는 총 28기의 원전을 보유하게 됩니다. 정부는 국내 실정에 적합한 원전 이용수준을 검토 중이며, 공청회 등 의견수렴을 거쳐 6월26일 국가에너지위원회에서 결정할 예정입니다.”
원전 확대정책이 현실화하면 환경단체 등의 반발도 예상된다. 이들은 원전 확대보다 에너지 절약구조와 신재생 에너지 육성이 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세계적인 에너지난으로 인해 미국, 일본 등은 원전 건설을 늘리려 하고 있다. 미국은 30년간 중단한 원전 건설을 재개했고, 일본도 원전 비중을 30~40%로 높일 계획이다. 발전량 기준으로 원전 비중은 프랑스 77%, 벨기에 54%, 스웨덴 48% ,일본 28%, 미국 19%이다.
기후변화산업 신성장동력
자원외교와 더불어 총리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가 바로 기후변화 문제 대책이다. 이 또한 장기적 과제이며,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분야다.
“기후변화는 정말 절박한 문제입니다. 이 분야에 대해 그동안 우리가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해왔어요. 인류의 장래와 관련된 문제이다 보니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가장 중요한 의제로 내놓았어요. 그래서 그 유명한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란 말을 처음 쓴 브룬틀란트 전 노르웨이 총리, 리카르도 라고스 전 칠레 대통령과 제가 유엔 기후변화특사로 임명돼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저는 총리직을 맡는 바람에 활동을 중단했지요.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산업이 위축돼 위기를 맞을 거라고 하는데, 위기가 곧 기회입니다.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등 이 위기를 극복하는 기술을 개발해서 기후변화산업을 일으키면 우리가 이기는 겁니다. 지금 기후변화산업은 모든 나라가 같은 출발선에 있거든요. 우리가 못 해낼 이유가 없지요. IT나 조선, 자동차 등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가진 산업분야에서 기술혁신을 빨리 해서 세계시장을 점유하면 그게 바로 성장동력이 되는 겁니다.”
정부는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산업과 원자력산업 및 친환경산업을 집중지원해 새로운 수출산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또 2030년까지 신재생 에너지 보급 비중을 1.2%(2005년 기준)에서 9%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적극적으로 대안을 내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지금 선진국과 후진국이 기후변화를 놓고 대립하고 있어요. 산업혁명 이후 선진국들이 산업화를 거치며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해 왔는데, 이제 산업화의 길에 들어선 나라들에게 이를 제재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것이죠. 인도나 중국 같은 나라들은 1인당 배출량은 적어도 워낙 인구가 많다 보니 전체 배출량은 굉장히 많거든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중간자적 역할을 우리가 맡아야 해요. 7월 열리는 G8 정상회담에 우리 대통령이 처음 초청받았어요. 그 자리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한국의 대응책을 내놓기로 돼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요.”
▼ 기후변화대책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이며, 언제쯤 발효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습니까.
“그간 정부입법이나 의원제안으로 4차례 기후변화 관련 입법이 시도됐으나, 산업계의 부담 등을 고려해 중단했습니다. 그러나 교토의정서의 후속체제인 ‘포스트 2012’ 협상이 2009년말까지는 완료될 예정이고, 우리나라도 어떠한 형태로든 감축부담이 불가피하므로 더 이상 법 제정을 미룰 상황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후변화 문제에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후변화대책기본법(가칭)을 제정하기 위해 국내외 법안과 동향을 파악해 연구 중입니다. 발효시기는 공청회 등을 거쳐 결정할 것입니다. 6월 워크숍과 공청회를 거쳐 7월 기후변화대응 종합기본계획(안)’을 확정할 계획입니다.”
현안에 발목 잡힌 백년대계
자원외교와 기후변화대책에 있어 한 총리는 확고한 소신과 남다른 식견을 보여줬다. 이 분야에 관한 한 ‘준비된 총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취임 후 지금까지 그가 가장 역점을 둔 것도 이 분야였다.
이는 예고됐던 일이다. 1월14일 이명박 대통령당선자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총리가 임명되면 자원외교 등 여러 분야에서 해야 할 역할이 많다. 총리는 보조역할이 아니라 총리 자체의 독자적인 업무를 갖고 국내외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외교통상부 장관, 유엔총회 의장 등을 지내 전세계에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 한승수 유엔 기후변화특사를 총리로 지명했다. 한 총리는 제16대 국회의원을 끝으로 공직에서 떠나 있었고, 지난 1월24일 대통령당선자로부터 총리 제의를 받았다. 이전까지 두 사람은 사적인 자리에서는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다고 한다.
“대통령당선자께서 보자는 연락이 와서 나갔더니 총리직을 제의했습니다. 많이 놀랐습니다. 정계를 떠난 지 벌써 4년이 넘었으니까요. 자원외교 등에 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눈앞의 일도 중요하지만 자원외교는 우리나라가 100년 이상 먹고살 거리를 마련하는 것 아니겠어요. 대통령께서 에너지 자원을 확보해서 에너지 걱정 하지 않고 경제를 일으킬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해서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고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렇듯 한승수 내각은 100년 앞을 내다보는 국가대계 차원에서 자원외교와 기후변화대책 마련이라는 과제를 안고 출범했지만 110일 만에 현안에 발목 잡혀 엔진이 멈춰선 처지다. 한 총리는 이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어쩌면 그는 지금 7년 전의 일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처럼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7년 전 9월11일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범들에 의해 폭파된 날은 공교롭게도 한 총리가 제56차 유엔총회 의장에 취임하는 날이었다. 불확실한 먹구름이 세계 정치에 가득 밀려왔지만, 그는 그 중심인 유엔총회를 큰 무리 없이 이끌었고 유엔에 주어진 노벨평화상을 의장으로서 대신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