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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Articles/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1부 무너지는 시장 만능 신화-(4) 태평양 건너 투자금과 빚,‘금융 블랙홀’서 만나다

<태평양 건너 투자금과 빚… ‘금융 블랙홀’서 만나다>

기사입력 2008-12-14 19:12 | 최종수정
2008-12-15 09:25 / 경향신문 / 유희진 기자


ㆍ1부- 4 금융위기에 접속된 나…안산의 고대영씨와 LA의 루세로

경기 안산시 성포동의 한 도로변. 고대영씨가 운영하는 동물병원은 한적하고 조용한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미미, 앉아! 앉아!”

 정적을 깨는 다급한 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 주인을 찾으며 사납게 짖어대는 강아지 한 마리를 잠재우기 위해 고대영씨(40)는 끙끙대고 있었다. 10분간의 실랑이 끝에 겨우 강아지를 치료하고 나서야 고씨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재테크요? 그저 가진 돈을 안정적으로 꾸려가고 싶었습니다. 펀드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5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 병원 분점도 낼 정도로 의욕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업 확장에 부담을 느꼈다. 욕심 부리다가 화를 부를까 꺼려졌다.

 고씨의 병원에서 불과 몇 분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우리은행이 있었다. 평소 거래가 있던 은행은 고씨에게 여유 자금이 있다는 것을 알고 빈번하게 그에게 ‘우리파워인컴’ 펀드에 가입할 것을 권했다.

 “원금을 잃을 가능성이 대한민국이 부도날 확률과 비슷하다고 하니까 솔깃했죠. 예금과 같이 한달에 한번 꼬박 꼬박 이자도 나온다고 했어요. 제가 자꾸 의심하면서 이것 저것 캐물으니까 은행에서는 쉽게 설명하겠다며 '은행 예금이나 다름없다'고 설명을 하더군요.”

 그가 우리파워인컴의 가입 서류에 사인할 때까지 그는 은행원으로부터 '펀드'란 말은 단 한번도 듣지 못했다.

 # 2005년 11월18일 고씨, 세계 금융 게임에 접속

 ‘은행 예금’이라는 말은 결정적이었다. 고씨는 가입 서류를 작성한 뒤 가지고 있던 돈 4500만원을 ‘우리파워인컴’ 펀드에 넣었다. 2005년 11월18일. 가입 신청서 사인으로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세계 금융의 위험한 게임에 편입된 것이다. 그가 이 게임에 접속한 곳은 안산 성포동의 우리은행 지점.

 “왜 나 같은 사람이 미국의 모기지 업체가 망한다는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합니까?” 그가 펀드에 가입한 후 3년.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촘촘하게 짜여진 세계 금융의 네트워크와 연결되었고, 그 촉수는 태평양 건너 미국의 한 서민과도 닿아 있었다.

 # 2004년 8월 루세로, 집을 사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살던 루세로는 동네에 있는 주택담보대출 은행을 통해 담보 맡긴 집값의 100%를 대출받았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루세로에게 사려는 집의 가치를 전액 빌려주다니. 그러나 은행은 자신 있었다. 집값은 계속 오를 것이기 때문에 빚진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은행이 루세로 같은 사람들에게 돈을 대출해준 후 “루세로에게 돈을 빌려줬다”는 차용증서를 바탕으로 대출 채권을 만들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이 채권을 사갔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미국 정부가 보증을 서는 준정부기관이다. 은행으로서는 안정성을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은행은 두 국책 모기지기관에 채권을 팔고나면 다시 자금이 생겼다. 그 돈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신규 대출을 해줬다. 예상대로 집값이 올랐고, 오른 만큼 대출 채권의 가격도 올랐다.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은행의 주택담보 대출은 계속됐다.

 # 루세로의 부채, 국책 모기지기관으로 유입

 루세로의 빚진 돈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서도 유용하게 쓰였다. 두 모기지기관은 은행과 모기지 대출업체들로부터 산 주택담보대출 채권 자산을 담보로 잡아 이것을 주식시장에서 팔 수 있도록 증권으로 만들었다. 루세로처럼 집을 사기 위해 대출받은 것만을 모아 담보로 잡은 후 발행한 증권이 ‘거주용 담보부증권(RMBS)’이다. 루세로가 돈을 빌려간 사실을 일종의 무형의 재산적 가치로 평가해 그 재산에 대한 권리를 증서로 표시한 것이다. 프레디맥과 패니메이가 자금을 융통하는 방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RMBS를 가지고 또 한번의 게임판을 벌인다. 이번엔 자신들이 발행한 증서 RMBS를 담보로 잡고 또 다시 증권을 발행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채담보부증권(CDO)이다. 빚을 채권으로 만들고, 그 채권을 주식시장 거래가 가능한 증권으로 만들고, 그 증권을 담보로 또다른 증권을 만드는 빚잔치의 릴레이였다.

 CDO를 만들 때 패니메이는 고민을 한다. 돈을 못갚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의 대출로 증권을 만들었기 때문에 제 값을 못받을 것에 대한 우려였다. 그래서 이들은 마술을 부린다. 안전한 자산과 다소 위험성이 있는 자산, 매우 위험한 자산을 약 7 대 2 대 1 비율로 섞어 하나의 증권을 만든 것이다. 이 증권에는 루세로와 같은 개인뿐만 아니라 탄탄한 기업들의 담보 대출까지 다 섞여 들어갔다. 아무도 사려 하지 않았던 불량 채권들은 우량 채권들 틈에 숨어 모습을 감췄다. CDO는 여러 새들의 화려한 깃털들로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춘 까마귀의 모습이었다. 여기에 'MBIA'나 '암박'과 같은 채권보증업체(모노라인)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패니메이가 지급 능력이 없을 때 그것을 대신 갚아주는 보증 회사다. 이렇게 보증업체들이 보증까지 서면 패니메이가 발행한 증권은 신용등급이 올라갔다.

 이렇게 루세로가 돈을 빌려갔다는 그 무형의 가치는 RMBS로 멋지게 그 형태를 바꾸고, 나아가 CDO로 섞여 우량 기업들의 대출 속으로 숨었다. 그리고 좋은 등급을 받았다. 루세로의 무리하게 빌린 돈의 실체는 이렇게 잠시 모두의 머리 속에서 잊혀졌다.

 # 루세로의 부채, 세계 금융 엘리트들의 손에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서 만든 RMBS와 CDO상품의 1등 구매자였다. 세계 금융 천재들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이것을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월가 투자은행들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서 사들인 파생상품 이외에도 이렇게 채권을 증권으로 만드는 유동화회사로부터 파생상품을 사들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루세로의 빚의 존재를 더 확실히 감추기 위해 다른 상품들과 섞은 후에 다시 한 덩어리로 만들어 쪼갰다. 루세로가 대출을 받은 은행에서부터 월가의 투자은행에 도달하기까지 '돈을 빌렸다는 사실'은 이렇게 무한증식하는 과정을 거쳐 '파생상품'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달고 재탄생했다.

 월가 투자은행들은 모기지 관련 파생상품들을 팔기 위해 여러 수법을 동원한다. 그중의 하나가 이름만 있는 종이회사를 세워 자산 일부를 이 종이회사에 떠넘기는 것이다. 이렇게 별도 회사를 세워 거래를 하면 모(母)회사의 대차대조표에는 표시되지 않는 장외거래가 가능하다. 설사 이 종이회사를 통한 거래가 부도가 나도 모회사는 안전하다. 월가의 투자은행들은 부실 위험이 높은 ‘위험 상품’을 취급할 때 주로 이런 종이회사를 만드는 방법을 이용했다.

 월가의 한 투자은행은 ‘CEDO Plc’라는 종이회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서 발행한 주택담보대출 관련 합성 CDO의 한 종류인 자산부채담보부증권(CEDO)을 발행한다. CEDO는 채권의 신용위험에 따라서만 수익률이 결정되는 CDO와 달리 신용도에 주가지수 영향까지 받는다. 주가지수를 수익률과 연동한 주가연계증권(ELS) 형태를 띠고 있다. 즉 상장된 주식이 폭락하면 꼼짝 없이 수익률도 하락한다. 원금은 당연히 보장되지 않는다. 루세로의 빚은 이렇게 금융 연금술사들에 의해 CEDO라는 이름으로 또 한번 위장된다.


# 2005년 11월 안산의 고대영씨와 LA의 루세로 만나다

 LA에 사는 루세로의 빚이 CEDO로 변모되기까지의 과정은 안산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고대영씨와는 전혀 무관해 보였다. 그러나 고씨의 돈도 결국 CEDO로 흘러들어갔다.

 우리은행을 통해 들어간 고씨의 투자금은 우리은행의 자회사인 우리CS자산운용이 자금 운용을 맡았다. 그리고 우리CS자산운용은 투자 경험이 많은 크레디트 스위스 증권사의 자회사인 투자은행 CDFB에 이 자금의 운용을 위탁한다. CDFB는 우리파워인컴에 투자된 돈을 모아 월가의 파생상품인 CEDO에 70%를 투자했다. 안산에서 고씨가 힘들게 번 돈과 미국에서 루세로가 빌린 집의 가치는 이렇게 몇 단계 건너, 태평양을 넘어 스위스계 증권사의 손을 통해 만났다.

 2005년 11월 초 판매를 시작한 우리파워인컴 펀드는 순식간에 1100여억원의 투자금이 몰리면서 판매가 조기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우리은행 직원들은 안정적으로 자산을 운용하고 싶어하는 은퇴자나 노년층에게 펀드 가입을 권유했다. 하지만 펀드 설정 3년이 지난 2008년 12월 기준 이 펀드는 마이너스 83%의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원금 손실이 없는 정기 예금에 비유하며 마치 예금처럼 속인 결과였다.

 # 2007년 2월, 루세로 대출금 갚기 허덕

 2007년 LA에서 서브프라임모기지로 집을 샀던 루세로는 집값이 40% 이상 하락하면서 빌린 돈을 갚는 데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삼촌에게 돈을 빌려 근근이 대출금을 갚아 나갔다. 루세로는 그나마 상황이 나았다. 같은 동네 사람들은 이미 대출 상환금을 3개월 이상 연체하고 집을 빼앗겼다. 미국 전역에서 집을 가압류당한 사람이 늘어났다. 이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자금난에 처한 소규모 은행부터 파산하기 시작했다. 2007년 3월에는 주택담보대출 업계 2위였던 '뉴센추리파이낸셜'이 계속된 연체로 자금을 융통하지 못해 결국 파산선언을 했다.

 # 루세로 집 가치 하락, 패니메이 넘어 월가 공격

 서브프라임모기지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약 1년여의 시간을 끌며 서서히 무너져갔다. 버틸 때까지 버티다 집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전역에서 집을 가압류당한 사람이 100만명이 넘어가자 모기지 대출 관련 업체들은 가속도를 내며 빠르게 연쇄 부도를 일으켰다.

 최초 주택담보 대출을 담보로 했던 RMBS, CDO는 다른 파생상품으로 둔갑해 세계 곳곳의 금융기관으로 팔렸다. 이 파생상품의 줄기를 타고 미국 전역은 그리고 전 세계의 금융 기관들은 거미줄처럼 엮이고 또 엮였다. 동반 추락이 불가피했다. 투자은행도 개인들의 가압류 사태 속으로 함께 빨려 들어갔다.

 CDO에 숨어 없는 것처럼 취급되었던 루세로의 빚은 루세로의 집값이 40% 이상 하락한 순간부터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먼저 자신의 모습을 감쪽같이 숨겨주었던 CDO부터 공격했다. 루세로의 빚이 편입된 CDO가 집값 하락으로 부실화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그 상품을 만든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망가뜨리고 나아가 월가의 투자은행들도 위협했다.

 전 세계를 무대로 파생상품을 만들었던 투자은행이 나가떨어지기 시작하면서 투자자들은 그때서야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성을 실감하고 자기 돈을 다 빼기 시작했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도 예외가 아니었다.

투자자들이 프레디맥과 패니메이의 RMBS에 대해 한꺼번에 지급 요청을 하면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두 모기지업체는 결국 2008년 7월 유동성 위기 사태에 직면한다. 이들이 RMBS 보증액수에 물려있던 금액은 무려 5조달러. 이것이 터지면 초우량 신용등급을 자랑하는 미국의 위상이 추락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선택의 여지 없이 2000억달러를 투입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지분을 국유화한다. 그렇게 해서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살아났지만, 후폭풍은 계속되고 있다. 두 회사가 발행한 파생상품의 안정성을 믿고 전 세계 금융회사가 대량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우리CS자산운용의 우리파워인컴펀드는 그 수많은 투자자 중 하나였다.

 # 루세로는 집 포기, 고대영씨는 펀드 가입 해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패니메이는 2008년 8월18일 기준으로 무려 주가가 마이너스 81.48포인트를 기록하고 프레디맥은 마이너스 90.62포인트인 5.9로 폭락한다.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을 가압류당한 루세로의 힘이었다. 제2, 제3의 루세로가 계속 나타난 결과였다. 우리은행이 집중 투자한 CEDO는 주가와 움직임을 같이 하는 ELS형태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충격은 더 컸다. 수익률은 폭락했다.

 우리은행이 수선스럽게 홍보하던 CEDO A3등급도 2007년 12월24일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결과 신용 등급 BBB3로 내려갔다. CEDO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아시아 등에 상장된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에도 투자됐다. 그러나 분산 효과는 거의 없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퍼지며 동조화 현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유럽 역시 미국과 약간의 시간차를 보였을 뿐 미국처럼 모기지 부실이 급속도로 드러났다. 파생상품이 전 세계로 뻗어나갔듯 위험도 전 세계를 넘나들었다.

 이때 엄청난 하락률을 견디지 못한 우리은행은 고대영씨에게 펀드가 마이너스 45% 수익률을 내 원금이 전부 사라질 수도 있으니 펀드를 중도 해지할지 결정해 달라고 통보한다. 결국 그는 4500만원에서 남은 2000만원이라도 건져야겠다는 생각에 펀드 가입을 해지한다.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살고 있던 중산층 고대영씨는 LA의 루세로와 서로 존재도 몰랐지만, 금융 세계화의 시스템 안에서 함께 만났고 휩쓸렸다. 인터넷을 통해 뉴욕에 앉아 전 세계 금융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금융자본의 수도 월가의 견제받지 않은 탐욕은 경기도 조용한 곳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던 이와 LA 외곽에서 우편 포장 일을 하던 이를 연결하고, 그렇게 연결된 수 많은 사람을 동시에 불행으로 인도할 만큼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나라 망하지 않는 한 원금 안까먹는다더니>

기사입력 2008-12-14 18:57 | 최종수정
2008-12-15 09:25 / 경향신문 / 김재중,유희진 기자


ㆍ1부 - 4 금융위기에 접속된 나…투자자와 비투자자

고수익의 유혹은 달콤했다. 은행 직원들은 상냥했고 믿음직스러웠다. 그들은 “요즘 펀드 하나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바보”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원금은 까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정기저축과 다름없다던 그들의 말을 믿고 묻어뒀던 목돈은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피 같은 돈이 사라져 버린 공간엔 두세배로 커져버린 삶의 무게가 자리잡았다.

■ 부부 생이별한 오원금씨(가명·56)

오씨는 지난 9월26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아내를 미국으로 떠나보냈다. 아내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처제의 갈비집에 허드렛일을 하기 위해 먼 길을 나선 것이다. 몇년째 좌골신경통과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이던 그도 2시간 뒤 이란 건설현장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980년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아부다비 방파제 토목공사를 시작으로 28년 동안 중동과 아프리카 건설현장을 들락거렸던 오씨지만 이처럼 중동행 비행기를 다시 타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오씨는 2005년 12월 퇴직금으로 생각하고 모아뒀던 1억원을 들고 우리은행을 찾아갔다. 우리은행이 ‘우리파워인컴’ 펀드를 대대적으로 광고할 때였다. 그는 5000만원씩 쪼개 자신과 아내 명의로 우리파워인컴에 가입했다. 한달 뒤 나온 통장에는 ‘펀드’ ‘파생상품’ 같은 단어가 찍혀 있었다. 평생 주식이나 펀드투자를 해본 적이 없던 오씨가 이 단어의 뜻을 묻자 은행 직원은 “그냥 상품 명칭일 뿐이고 3개월마다 고정이자가 지급되며, 무디스가 평가한 신용등급 AAA 채권에 투자하므로 아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단다. 이 직원도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한 절대 안전한 정기예금과 같은 상품”이라고 장담했다. 그 뒤로 3개월마다 원금의 6.4%에 해당하는 돈이 ‘예금이자’라며 통장에 찍혀 나왔다. 당시 시중은행 정기저축 예금 이자보다 1%포인트가량 높은 수준이었다.

대학을 나오고도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하는 아들(30)과 딸(25)이 걱정이긴 했지만 오씨에겐 은행에서 차곡차곡 몸을 불려가고 있는 1억원이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이 돈은 오씨 부부의 노후자금이자 자녀들의 결혼자금이기도 했다.

지난 8월말 은행에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은행 부지점장은 오씨 부부가 묻어뒀던 원금의 평가액이 마이너스 81%로 깎였다고 했다. 1억원이 2년9개월 만에 190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는 얘기였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놀란 오씨가 은행으로 달려갔지만 황당한 이야기는 계속됐다. 예금보다 더 안전하다는 말만 믿고 투자했던 돈이 고위험 파생상품에 투자됐던 것이다. 3개월마다 통장에 찍혔던 예금이자는 원금을 조금씩 쪼개 지급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은행에 돈을 맡길 당시엔 펀드라는 말이 뭔지도 몰랐고, 파생상품이란 말은 더더욱 몰랐어요. 그런데 은행은 가입 때도 우리를 속였고, 손실도 제때 알리지 않아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기회조차 빼앗았어요.”

■ 콩나물값 깎아 모은 돈이 허공으로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40대 주부 김은희씨(가명)는 요즘 남편과 자식들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김씨는 지난해 10월 은행에서 펀드에 들었다. 아파트를 사면서 대출받아 남은 돈 3000만원과 그간 푼푼이 모아뒀던 여윳돈 2200만원이었다. 은행에 갈 때마다 직원은 “아이고 사모님 이 돈을 왜 그냥 묵혀두나요”라며 투자를 권유했다. 깨알같은 글씨가 적힌 상품설명서를 받기는 했지만 그냥 일반적인 펀드인 줄로만 알았다.

지난 10월 3000만원짜리 펀드를 강제 환매당했다. 김씨의 손엔 300만원이 쥐여졌다. 김씨가 가입한 펀드는 1년 만기 선물환 옵션이 걸려 있었지만 김씨는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김씨가 환손실분을 추가로 내지 않자 은행 측이 강제로 환매하고 상품 계약을 종결시켜 버렸다. 그나마 2200만원짜리 펀드는 200만원만 깎였다. 펀드 가입을 권했던 은행직원은 이미 다른 지점으로 옮겨 자취를 감췄다.

여름부터 장사가 안돼 수입이 거의 없는 김씨의 남편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냥 은행에 예금으로 넣어둔 줄로만 안다. 매달 주택담보대출 이자로만 150만원씩 나가고 있고, 재수생인 아들의 학원비로도 100만원씩 나가고 있다. 당장 생계비가 걱정이다. 김씨의 하소연을 들은 친정 언니가 자기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작년에 아파트를 사면서 이미 3억원을 대출 받은 터라 돈을 또 빌리기가 겁이 난다.

김씨는 “대형마트에 가면 100~200원씩 깎아주는 쿠폰을 잔뜩 들고 갈 때 눈물이 왈칵 났다”면서 “애들 결혼자금, 우리 부부 노후자금이었는데 남편에게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가끔은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고픈 충동이 생긴다”며 울먹거렸다.


<순박한 북극마을 홀린 달콤한 고수익의 꾀임>

기사입력 2008-12-14 18:47 | 최종수정
2008-12-15 09:25 / 경향신문 / 김재중 기자


ㆍ노르웨이 나르비크에 무슨일이

1만8000여명이 사는 노르웨이의 작은 항구도시 나르비크. 나르비크는 지난 9월8일 노르웨이 최대은행 DnB에 지고 있는 빚 5200만 크로네(현재 환율로 약 107억원)를 갚지 못하겠다고 발표했다. DnB은행은 즉각 반발하며 법정에서 문제를 해결하자고 맞섰다.

북극권(북극 주변의 북위 66도 33분 지점을 빙 둘러 이은 선. 이 지점에선 하지에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고, 동지에 하루 종일 해가 뜨지 않음)보다 200여㎞ 북쪽에 자리잡고 있어 겨울이면 신비로운 오로라(북극광)를 볼 수 있는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마을 사람들이 지난해부터 경험하고 있는 일들은 금융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거품과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금융기관, 고수익이라는 달콤한 꼬임에 넘어간 순박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블랙 코미디에 다름 아니다. 이 사태 역시 겨울철 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나르비크가 온화한 기후의 전혀 다른 먼 곳인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연결된 결과였다.

나르비크는 지난 2001년 주요 수입원인 수력발전소에서 향후 들어올 수익금을 담보로 은행에서 자금을 빌렸다. 노르웨이 테라증권이 소개한 펀드에 투자하기 위해서였다. 투자금 가운데는 공무원들에게 월급을 지급하기 위해 따로 떼어놓은 돈도 일부 포함돼 있었다. 이 펀드는 미국의 거대 금융회사인 씨티은행이 고안한 것이라고 했다. 나르비크가 투자한 금액은 총 5200만 크로네. 나르비크 1년 예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지난해 여름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이따금씩 1~2%의 수익금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불거지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테라증권 측에서 투자금의 55%나 손실됐다고 통지한 것이다.

여러 지자체에서 비슷한 사태가 벌어지자 진상조사에 나섰던 노르웨이 금융당국 역시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테라증권이 안전하다고 다짐했던 상품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반으로 파생된 부채담보부증권(CDO)이었다. 구조 자체가 극도로 복잡하고 위험성도 매우 높은 상품이었다. 더구나 상품설명서에는 여러가지 복잡한 옵션들이 부대조건으로 달려 있어 최악의 경우 투자한 만큼 돈을 더 물어줘야 하는 구조였다.

조사 결과 테라증권이 각 도시에 상품설명서를 보내면서 씨티은행의 상품설명서가 기술한 위험성을 고의적으로 뺀 사실이 밝혀졌고, 테라증권은 지난해 11월 영업허가가 취소됐다. 테라증권은 다음날 파산했다.

테라증권의 파산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씨티은행은 자신들에겐 책임이 없다며 일찌감치 발을 뺐고, 노르웨이 정부도 구제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미래’를 담보로 이뤄진 투자가 한순간에 휴지로 변한 대신 은행에서 빌린 돈은 고스란히 남았다.

외신들은 이번 사태가 시 예산에 악영향을 미쳐 공공서비스 위축을 가져오고 있다고 전한다. 나르비크의 시의원인 토르게이르 트랠달은 지난 6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소방서, 의료, 학교, 노인복지, 청소년 클럽 등 문화 및 복지예산 축소가 불가피하다”면서 “사람들은 미국에서 벌어진 위기가 어떻게 이런 결과를 가져왔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화를 입은 소도시는 나르비크뿐 아니다. 하트피엘달·라나·헴네스 등 8곳에 이른다. 이 소도시들은 ‘테라스캔들’로 명명된 이번 사태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돈을 빌려준 DnB은행에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박노자 교수는 “노르웨이에선 지자체가 빌린 돈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은행이 이를 알고도 돈을 빌려줬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만약 은행이 소송에서 이길 경우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 한푼 안한 우리 서민들은 무슨 죄인가>

기사입력 2008-12-14 18:47 | 최종수정
2008-12-15 09:25 / 경향신문 / 장관순,송윤경 기자

월가의 위험한 금융 게임이 펼친 숫자 놀음은 금융 자유화에 노출된 사람이면 누구나 예외없이 공격을 했다. 이 게임에 참여한 사람이건 아니건, 금융 자유화를 원했든 아니든, 상관없다. 펀드·주식에 투자하지 않은 서민들의 삶도 흔들 만큼 돈장난의 파급효과는 깊고, 치밀하고 집요하다.

“처음에는 TV에서 미국 금융위기 이야기가 나올 때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했어요. 그런 얘기는 그냥 뉴스일 뿐이고, 배운 것 없이 그저 몸으로 때워서 먹고 사는 우리 같은 사람은 신경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게 뭡니까.”

■ 일용직 노동자 정영태씨

서울 북창동의 한 인력소개소에서 지난 11일 만난 정영태씨(가명·52)는 “올해 같은 때는 없었다”고 푸념했다. 35년째 중국음식점 일용직으로 생계를 잇는 그는 이틀째 일을 못했다. 정씨는 “원래 연말연시에는 음식점이 호황이지만 올해는 10월 들어 경기가 죽더니 살아날 기미가 없다”며 “지난해만 해도 일주일 내내 일할 수 있었는데 올해는 한 주에 2~3일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다른 동료들과 함께 하루 종일 일거리를 기다렸지만 소개소에서 일손을 보내달라는 전화 한통 받지 못했다. 정씨의 하루벌이는 7만원 남짓. 봉제공장 직원인 그의 부인은 월 120만원 정도 벌지만, 그걸로 살기 빠듯해서 고3 수험생 딸까지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외환위기 때는 오히려 지금보다 나았어요. 다들 명퇴당하고 먹는 장사에 나섰을 정도로 이 나라는 요식업이 안된 적이 없었는데.”

인력소개소 관계자는 “서울 어디를 가도 새벽 인력시장마다 수백명이 몰려 들지만 일거리 찾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통계청의 ‘11월 고용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임시직 10만3000개, 일용직 5만6000개의 일자리가 줄었다. 건설 부문 일용직들은 일당이 깎이는 경우도 있다. 경기 부천시의 한 아파트 시공사는 “회사 사정이 어렵다”며 40여명의 현장 노동자 일당을 최고 1만원씩 깎았다.

■ 현대차 하청 노동자 원문숙씨

현대차 아산공장의 사내 하청업체 노동자 원문숙씨(31·여)는 3년간 행정적, 법적 투쟁 끝에 사측의 복직 결정을 받아냈다. 2005년 노조 활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뒤 원씨는 부모와 아들 등 4가족의 생계를 어머니(55)에게 의존했다. 아버지가 지병으로 몸져 누워 남편 대신 보험 일을 시작한 것이다. 월수입 100여만원. 그것이 원씨 가족의 유일한 수입이었다.

이런 사정이라 복직 소식이 너무 반가웠지만, 회사에서 아직 연락이 없다. 원씨는 현대차가 공장별 감산에 들어가 당장 일자리가 없다는 이야기를 사측을 통해 들었다고 한다. 원씨는 “최근 불경기 때문에 보험해약 사례가 늘어 어머니 벌이도 한창 때(170만원)에 못미친다”면서 “초등 3년생 아들은 형편을 잘 아는지 뭘 사달라고 조르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금융위기가 부른 한파는 투자와는 거리가 멀었던 삶을 산 원씨의 3학년짜리 아들에게조차 장난감과 군것질을 포기토록 강요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달부터 잔업을 없앴고, 쌍용차는 지난달부터 순환휴직중이다. GM대우차는 이달 들어 공장별로 최장 1개월 조업중단을 진행중이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자동차 조립라인은 매일 2시간 잔업에 주말 1일 특근을 꽉 채워야 월급 150만원 정도 손에 쥐지만, 감산하면 100만원선으로 준다”고 설명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박동 연구위원은 “정부는 청년실업률을 6%대로 집계하지만 순수 취업률은 42%라 청년 100만명이 실업자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금융 위기로 국내 미국 자본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돈이 궁한 국내 은행들이 기업을 상대로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면서 “그러면 중소기업들은 도산하지 않을 수 없고, 당연히 일자리도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70년대 경제와 과학의 만남… 금융공학 꽃이 피다>

기사입력 2008-12-23 18:02 |최종수정
2008-12-24 11:02 / 경향신문 / 장관순 기자


학술지 ‘정치경제학 저널’ 81호(1973년 5-6월호)에 실린 피셔 블랙과 마이런 숄스 공동 저작 논문 ‘The Pricing of Options and Corporate Liabilities’의 첫 페이지 및 이들이 이 논문에 발표한 ‘블랙·숄스 공식’

ㆍ금융수학의 역사

올해 전세계 금융파생상품의 규모는 500조달러(64경6000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는 전세계 국내총생산(GDP) 총합인 52조달러의 10배에 달한다. 금융수학(금융공학)이 없었으면, 이 같은 천문학적 금액이 전세계를 돌아다닌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1973년 ‘블랙·숄스 공식’의 등장

금융수학은 1973년 ‘블랙·숄스 공식’으로 꽃피기 시작했다. 경제학자 피셔 블랙, 마이런 숄스가 4년간 연구한 끝에 완성한 이 공식은 파생상품의 가치를 계산할 수 있게 한 최초의 공식이다. 옵션(팔거나 살 수 있는 권리) 설정 대상 주식의 가격, 옵션 행사 가격, 만기까지 남은 기간 등을 대입해 현시점에 적절하면서도 ‘위험 없는’ 옵션 가격을 정할 수 있게 한다.

이로써 시장은 주먹구구식 가격 설정에서 벗어나 ‘과학적인’ 가격을 찾을 수 있었다. 이 공식은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시카고 주식옵션거래소 등 세계 주요 금융시장에서 널리 활용됐다. 한 전자계산기 제조사가 월스트리트저널에 “우리 제품은 블랙·숄스 모델도 계산한다”고 자랑하는 광고를 낼 정도로 획기적이었다. 블랙·숄스 공식은 다양한 응용을 거쳐 금융계가 선물·옵션·스와프의 다양한 변종 등 여러 파생상품을 고안하는 데 활용됐다.

이에 앞서 1877년 찰스 카스텔리가 옵션 거래 개념을 최초로 고안했고, 1900년 프랑스의 루이 바셀리에가 비현실적이나마 금융상품 가격 변화의 확률적 분석을 시도했다. 1964년에는 비록 이자율 적용 부분이 미흡했지만 제임스 보네스가 블랙·숄스 공식과 흡사한 공식을 내기도 했다.

70년대 과학자들 월가로 가다

복잡한 수식과 기호가 무한 반복되는 금융수학을 활용한 파생상품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70년대 월가에 대거 진입한 과학자들 덕이었다.

미국 정부는 60년대까지 물리학자 등 과학자들을 정책적으로 양산하고 우대했다. 냉전기에 전쟁 및 우주탐사 분야에서 소련과 경쟁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70년대 베트남전 반전운동의 격화, 오일 쇼크 등 경제 사정 악화, 아폴로 계획 종료로 과학자들의 입지가 좁아지자 많은 과학자들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을 떠나야 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월가로 진입했다. 이들은 ‘로켓 과학자’ 또는 ‘퀀트’(계량 분석가, Quantitative Analysist)로 불렸다.

이들의 월가 진입으로 금융상품에 대한 분석은 더욱 정교해졌고 다양한 파생상품이 생겨났다.

월가는 금융수학을 통해 수익 다변화와 위험을 분산하는 기법을 계속 개발했다. 주식·채권은 물론 외환과 금리 등을 토대로 한 파생상품들, 또 파생상품으로부터 파생된 2차 파생상품 등 1000종 이상의 파생상품이 만들어졌다. 마침내 90년대 후반에는 빚 보증을 기초로 한 신용 파생상품까지 나왔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금융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0년 5.2%에서 2007년 23.5%로 팽창했다.

사고를 부른 금융수학

금융수학이 항상 성공을 보장했던 것은 아니다. 84년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사는 미국 보잉사와 30억달러 규모의 여객기 구매 계약을 체결하면서 한 은행과 달러화 선물거래를 병행했다. 계약하고 1년여 뒤 항공기 인수 시점에 달러 환율이 오르면, 보잉에 지불할 돈이 늘어날 것을 우려해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달러 가치가 하락해 1억5000만달러의 손실을 봤고 관련자들은 문책을 당했다. 그러나 이 당시만 해도 금융수학의 잘못이라기보다 설계와 판단 실수로 간주됐다.

14년 뒤인 98년 8월에는 금융수학의 ‘본가’에서도 대형 사고가 났다.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파산이다. 무려 1200억달러의 손실이 났다. 월가는 물론 전세계에 금융위기도 야기했다. 당시 자본금이 22억달러에 불과했던 LTCM은 은행권으로부터 무리한 차입을 거듭해 무려 100조달러의 자금을 굴렸다. 정교한 금융수학으로 전세계에 6만여개의 파생상품 거래로 수익을 냈지만, 수백명의 수학·공학 박사들은 연쇄 손실을 불러온 러시아의 채무불이행 선언을 예측하지 못했다. 이 회사의 경영자는 블랙·숄스 공식의 창안자인 숄스였다. 숄스는 공동경영자 로버트 머튼과 함께 9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투자의 지렛대’가 ‘파산의 지렛대’로>

기사입력 2008-12-23 18:02 | 최종수정
2008-12-24 02:32 / 경향신문 / 박종현 진주산업대 산업경제학 교수

ㆍ금융위기 주요 원인 - 레버리지(차입) 효과

금융에 도입된 지렛대 원리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적당한 지렛대만 있으면 지구라도 들어 올리겠다”고 했다. 작은 힘을 큰 힘으로 바꾸는 막대 장치(지렛대, lever)는 고대 이집트에서 거대한 돌을 옮겨 피라미드를 쌓게 했다. 지렛대의 원리는 경제나 금융에서도 관철된다.

어떤 사람이 100만원으로 주식을 샀다고 하자. 한 달 후 주가가 20% 상승해 보유한 주식을 팔아 현금 120만원을 얻었다면, 투자수익률은 20%가 된다. 만약 이 사람이 자신의 돈 100만원에 더해 은행으로부터 400만원을 연리 12%의 금리로 빌린 뒤 총 500만원으로 같은 주식에 투자를 했다면? 한 달 후 주식을 처분하면 600만원의 현금이 들어온다. 은행에서 빌린 돈 400만원과 한 달 동안의 이자 4만원을 갚고 나면 수중에 196만원이 남는다. 즉 투자수익률이 96%로 올라간다. 경제학자들은 이처럼 다른 사람으로부터 빌린 돈을 지렛대 삼아 자기자본의 투자수익률을 높이는 것을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라고 부르며, 자기자본 대비 총투자금액을 ‘레버리지 비율’이라고 정의한다.

차입의 이익은 가격 상승 때만

그러나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레버리지가 이익을 크게 늘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는 ‘투자한 자산의 가격이 상승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레버리지에는 손실을 키울 위험도 수반한다. 주가가 20% 떨어지는 상황을 상정해 보자. 자기 돈 100만원만으로 투자를 할 경우에는 원금이 80만원으로 줄어 투자수익률은 마이너스 20%가 되고, 20만원만 손해를 본다. 그러나 레버리지 비율이 5일 때에는 손해가 훨씬 커진다. 총투자금 500만원이 400만원으로 줄어들고, 은행에 원리금 404만원을 갚기 위해서는 투자원금을 모두 날리고도 4만원을 더 가져와야 한다.

전세계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미국발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요 원인들로 금융사들의 탐욕, 감독기구의 무능, 지나치게 복잡하고 불투명한 신용파생상품, 금융사들의 도박행위를 부추긴 증권화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전모를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레버리지에 주목해야 한다.

차입기계로 변한 월가

미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2000년까지 유례없는 강세장이 연출됐고, 금융사들도 고수익을 누렸다. 하지만 2000년을 기점으로 닷컴 거품이 꺼지면서 실물경제가 취약해졌다. 그럼에도 미국의 투자은행은 오히려 CDO와 CDS를 새 주력상품으로 삼아 사업 확장을 벌였다. 이들은 해당 상품의 중개를 더 원활하게 하기 위해 CDO와 CDS를 사들여 자신의 고유계정에 보유하는 한편 수수료 수입 이외에 투자 수입까지 노리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이들 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길을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차입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부채기계’가 되었다.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400억달러의 자기자본을 종잣돈 삼아 자산을 1조1000억달러까지 부풀렸고, 차입 의존도가 가장 높았던 투자은행인 메릴린치는 300억달러의 자기자본으로 1조달러의 자산을 만들어냈다. 투자은행들의 레버리지 비율이 30~40으로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경기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레버리지의 자기강화적 속성 때문이었다. 투자은행들이 보유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리고, 담보로 잡힌 자산과 같은 종류의 증권들을 추가로 매입하게 되면, 이들 증권의 가격은 올라가게 마련이다. 그러면 가격이 올라간 만큼 그 가치가 커진 보유 자산을 담보로 다시 차입을 해 더 많은 CDO와 CDS를 매입해 수익을 더욱 키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금융시장의 거품은 부풀어 올랐고, 더 많은 CDO와 CDS가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음악은 언젠가 멈춘다

한동안은 모두가 좋았다. 사람들은 목돈 없이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었고 건설회사는 주택판매를 늘릴 수 있었다. 또 여러 금융기관들은 저금리 시대임에도 높은 수익을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모두가 증권화와 레버리지의 춤판에 동참한 셈이다. 문제는 음악이 언젠가는 멈춘다는 데 있었다. 일단 음악이 멈추면 과도한 신용을 낳았던 바로 그 메커니즘이 불어난 신용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정반대의 과정, 곧 역레버리지(deleveraging) 과정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에서는 ‘수요의 법칙’이 통용되지 않을 때도 있다. 특히 시장에 커다란 충격이 가해진 경우가 그렇다. 사람들이 가격 하락을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란 신호로 받아들인다면 가격 하락은 매수를 늘리는 대신, 오히려 매도의 증가로 연결된다. 투자은행의 경우에도 보유한 자산들의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레버리지 축소 압력 속에서 보유 자산을 매각하게 된다. 이는 유가증권의 가격을 낮추고 보유 자산의 가치를 떨어뜨려 추가 매도를 낳는다. 얼어붙은 투자심리가 호전되기 전까지는 이런 악순환이 계속된다.

자산과 부채 사이 불일치가 가장 큰 문제

많은 이들의 짐작과 달리 투자은행의 파산과 이번에 문제가 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직접적 관련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서브프라임 관련 자산에 대한 전체 위험노출 비중은 보험사 23%, 상업은행 18%, 헤지펀드 17%의 순이었으며, 투자은행은 5%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투자은행의 파산은 환매조건부채권(Repo)이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과 같은 단기부채를 통해 저리로 조달한 과도한 레버리지 자금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약속하는 장기자산의 보유비중을 높였던 이들 고유의 사업 모델에서 설명될 필요가 있다.

대차대조표의 자산 측면(CDO 투자)보다는 부채 측면(과다한 차입과 단기성 채무), 그리고 자산과 부채 사이의 만기 불일치가 가장 큰 문제였다. 과도한 차입이나 만기불일치는 금융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환경에서는 문제되지 않는다. 부채의 만기가 순식간에 돌아오지만, 기존의 계약이 순조롭게 갱신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버리지 비율이 30을 넘는 투자은행들의 경우 보유자산의 가치 하락과 주 고객인 헤지펀드의 파산 속에서 지급능력에 대한 신뢰에 손상이 가기 시작하면, 하루에서 1주일 간격으로 부채의 만기를 연장하는 것은 대단히 힘들게 된다.

저금리가 과도한 차입 유인

과도한 레버리지를 가능케 한 1차적 요인으로는 이례적으로 낮았던 저금리 기조를 들 수 있다. 이는 오랜 기간 인플레이션율이 낮았고 경제도 안정돼 있어 투자자들의 리스크 평가 또한 낮아졌기 때문이었지만,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오랫동안 너무 낮게 유지한 결과이기도 했다. 헤지펀드와 투자은행은 저금리 덕에 더 쉽게 차입을 했으며, 이렇게 조달한 돈은 부채의 증권화와 신용파생상품의 증가로 이어졌다. 또 늘어난 신용파생상품은 위험자산의 신용위험을 더 낮추고 결국에는 차입을 한층 키우는 눈덩이 효과를 낳았다.

신용파생상품의 등장으로 신용위험이 분산됨에 따라 다시 위험의 값이 낮아졌고, 그 결과 중앙은행이 1%였던 정책금리를 2004년부터 5.25%로까지 올렸음에도 국채나 회사채의 수익률은 낮은 수준을 유지함으로써 차입행태를 더욱 부추겼기 때문이다. 특히 헤지펀드 등 투자자들은 투자자산의 낮은 수익률을 높은 자기자본 수익률로 전환하기 위해 레버리지 비율을 높이는 전략을 택했다. 부채의 증권화는 잘못된 금융감독정책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신용파생상품의 발달로 금융시스템의 위험관리 능력이 커졌다고 믿었던 규제당국은 2004년 들어 대형 투자은행의 부채총액을 순자본의 15배 이내로 제한하던 기존 적용을 면제해 줌으로써 레버리지를 키울 합법적 통로를 열어주었다.

차입이 아니라, 나쁜 차입이 문제

과도한 레버리지가 미국발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면 레버리지 자체를 막아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레버리지란 금융의 본질적 속성이며,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모든 사람들은 레버리지를 활용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나쁜 레버리지가 좋은 레버리지를 몰아내고 레버리지가 과도하게 확대되는 상황이다. 생산적인 경제활동을 통한 현금 흐름이 개연성 있게 예상되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차입이 좋은 레버리지라면, 생산적 활동과 무관한 용도로 사용되는 차입은 나쁜 레버리지이다. 좋은 레버리지와 나쁜 레버리지를 사전에 가려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옥석을 가려내 나쁜 레버리지에 대해서는 크게 제한을 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제도적 개입이 필요하다. 금융이 지나치게 번성해 실물경제를 압도하게 되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난 세기 케인스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