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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Articles/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1부 무너지는 시장 만능 신화-(3) 세계 자본시장 통합이 초래한 ‘불황의 공포’

<세계 자본시장 통합이 초래한 ‘불황의 공포’>

기사입력
2008-12-07 17:36 | 최종수정 2008-12-08 11:16 / 경향신문 / 장관순 기자

ㆍ하나의 불씨가 세계를 불사르다 - 미국발 금융위기의 특징
ㆍ개인들도 금융버블 가담
ㆍ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

 ‘그날’이 오기 전 우리는 금융거품과 부동산거품이 두텁게 깔린 소파의 푹신함을 즐기고 있었다. 컴퓨터 마우스 클릭 한번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주식을 사고 팔 수 있게 해준 금융세계화의 신속성, ‘선진금융기법’이 약속한 장기호황의 기대감은 우리를 매료시켰다. 우리가 달콤함에 취해있는 사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라는 바람은 우리의 집과 직장, 재산을 쉽게 불에 탈 수 있게 바짝 말려가고 있었다. 대지가 건조해지면 단비가 내리는 게 시장의 원리라던 신자유주의자들의 외침과 달리 바짝 마른 대지 위에 마른 번개가 내리 꽂혔다. 2008년 9월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한 것이다. 리먼이란 불씨는 순식간에 세계 금융의 심장부 월가를 집어삼켰고, 그 불길은 다시 전세계를 불태우고 있다. 지구에 발딪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도 이 불길을 피해갈 수 없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과거의 금융위기에 비해 확산의 속도 및 범위, 부실규모가 빠르고 넓으며 크다.

확산 양상은 1930년대 대공황에 비해 즉각적이며, 90년대 아시아 등지의 금융위기에 비해 포괄적이다. 대공황은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기까지 영국·프랑스·독일 등 제국주의 열강에 서서히 영향을 끼쳤다. 이 열강은 그 위기에 식민지 수탈 강화로 대응함에 따라 그 부정적 여파는 세계적 규모로 확산되었다. 선진국에서 발화된 위기가 전 세계를 위기에 몰아넣는 위험한 것이라면, 개발도상국발 위기는 개도국으로 그친다는 점에서 덜 위험하다. 역내 인접 국가로만 퍼졌던 90년대 아시아 금융위기가 좋은 예이다. 한성대 무역학과 김상조 교수는 “아시아 금융위기는 2년에 걸쳐 아시아 지역에만 확산됐지 미국 등 선진국에는 닿지도 않았다”며 “반면 이번 금융위기는 불과 수개월 만에 전 세계 누구를 가릴 것 없이 ‘금융버블’에 가담한 모든 사람에게 파급됐다”고 말했다.

지난 9월 리먼 브라더스 파산의 충격은 2개월 만에 오일 달러가 풍부한 중동 바레인의 아랍뱅킹에까지 미쳐 이 은행에 12억달러의 손실을 입혔다. 투자손실뿐 아니다. 각국은 수개월 만에 세계 금융시장 경색에 따른 외자 이탈(환율 급등), 경기 침체에 따른 수출 타격을 받았다. 지난 10월 말 세계 주요 주식시장 53곳은 지난해 말 대비 28조9527억달러(시가총액 합산)를 허공에 날렸다.


대공황 때 주요 피해 계층은 1차대전 이후 급등한 곡물가로 떼돈 벌었다 주식투자로 파산한 미국 농민 대다수, 경기불황으로 일자리를 잃은 전 세계 노동자들이다. 이번에는 서민들의 ‘금융시장 적극 가담’에 따른 직접 피해가 많다. 인하대 경제학과 김진방 교수는 “인터넷 등 정보기술 발달, 각국의 개개인들까지 역외 금융상품에 직접 가담할 정도로 전 세계가 금융자유화한 점 등이 과거와 다르다”고 말했다.

규모면에서 미국내 최대 3조달러(약 4426조원)로 추산되는 전체 금융기관의 부실자산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외환위기 때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빌려 메운 부실(583억달러)이나 미국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 파산 때 부실규모(1000억달러) 등 10년 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금융위기의 지속기간을 과거와 비교하기는 아직 이르다. 위기 해소 기준점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점도 있지만, 이번 금융위기가 언제까지 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서울대에서 열린 한 경제토론회에서 서울대 사회학과 최갑수 교수는 청중인 학생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번 위기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차원의 문제로 대공황 때보다 심각하다. (1929년 시작된) 대공황은 1945년 제2차대전이 끝나서야 사라졌다. 즉 이번 위기는 15년 이상 진행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여러분들 청춘이 다 지나간다는 뜻이다.”


<세계를 뒤흔든 9일>

기사입력 2008-12-07 18:36 | 최종수정 2008-12-08 11:16 / 경향신문 / 조찬제 기자


지난 9월12일 금요일 오후 6시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 회의실.

씨티그룹의 비크람 팬딧,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디먼, 골드만삭스의 로이드 블랭크페인, 메릴린치의 존 테인 등 월스트리트의 내로라하는 최고경영자(CEO) 30여명이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위원회(FRB) 의장, 크리스토퍼 콕스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티머시 가이트너 뉴욕연방준비은행장 등 최고위급 금융당국자들도 참석했다.

가이트너 은행장이 입을 열었다. “정부는 구제금융을 할 의사가 없습니다. 내일 아침 다시 올 때 뭔가(공동 대응 방안)를 준비해 주십시오.” 위기에 빠진 리먼 브라더스와 메릴린치에 대해 한 말이다. 두 회사는 이제 백척간두에 서게 되었다. 누가 벼랑 끝에 서 있는 이 회사를 인수할 것인가. 폴슨도 “모두가 리먼 브라더스에 노출돼 있다”면서 금융회사가 자구책을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이날 두 회사에 대한 구제금융 불가 선언은 리먼의 몰락을 재촉하는 불씨가 되었다. 그 불씨는 조만간 리먼을 삼키고 전세계 금융시장을 불태우게 될 것이다. CEO들은 오후 8시가 조금 지나 무거운 발검음을 돌렸다. 이로써 ‘월스트리트 역사상 가장 긴박한 주말’이 시작되었다.

9월13일 오전 9시 같은 회의실.


CEO들이 다시 모였다. 리먼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세계 최대 보험사인 AIG, 미 최대 저축은행 워싱턴뮤추얼 처리도 안건으로 올랐다. 모건스탠리의 존 맥 CEO는 답답한 나머지 아무도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이 끝은 어디입니까.” 리먼 인수에 관심이 있었던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정오가 다 될 때 쯤 인수 포기 결정을 내렸다.

9월14일 같은 회의실.

리먼 인수가 가능한 곳으로 영국의 바클레이즈만 남았다. 그러나 미 정부가 외국 은행에 돈을 대줄 리 없다고 판단한, 바클레이즈는 이날 오후 리먼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폴슨과 가이트너, 콕스는 남은 10여명의 CEO들에게도 “리먼 구제에 한 푼의 돈도 쓰지 않겠다”고 했다. 월스트리트의 터줏대감인 리먼의 리처드 풀드 CEO는 백방으로 뛰었지만, 결국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렸다.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리먼은 파산 보호 신청을 한다는 성명을 냈다. 158년 역사의 투자은행은 이렇게 사라졌다. 구제금융 불가 통보 30시간 만이다. 리먼의 몰락은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위기로 잠재하던 세계 금융위기에 불을 댕겼다. 미국·유럽·아시아·중남미 증시가 즉각 반응했다. 뉴욕증시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최대 폭락을 기록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성명을 냈다. “유로 금융시장 안정 유지를 위해 노력할 준비가 됐습니다.” 그리고 300억유로를 투입했다. 영국의 잉글랜드은행(BOE)은 50억파운드를 쏟아부었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성명을 냈다. “미 금융시작의 혼란은 미 경제에 중대한 위협이 될 것입니다.”

9월16일 일본, 유럽, 미국

일본은행은 1조5000억엔을 단기 금융시장에 긴급 수혈했다. 시라카와 마사아키 총재는 “적절한 금융시장 조절 등을 통한 원활한 자금결제와 금융시장 안정 확보에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FRB도 AIG에 85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결정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금융시장 정상화 워킹그룹을 긴급 소집했다.


9월 18~20일

미국 등 6개 중앙은행은 18일 긴급 유동성 지원공조에 합의했다. 부시 대통령은 18, 19, 20일 연속 대국민성명을 내고 기자회견을 하며 7000억달러 구제금융안을 발표했지만, 불길은 이미 대륙을 넘은 뒤였다.

그후.

금융강국이라는 아이슬란드에서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가 발생했다. 게이르 하르데 총리는 10월 7일 국가부도 가능성을 경고했다. 8일 선진 주요국 10개 중앙은행은 이자 인하를 발표했고, 10일에는 G7이 고강도 금융안정대책을 발표했다. 10월 말 아이슬란드·파키스탄·우크라이나·헝가리·벨로루시 5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월스트리트에서 발화한 불씨는 이제 전세계를 태우고 있다. 신흥경제국과 개발도상국, 동유럽, 중동, 중남미를 가리지 않는다. 세계 경제 성장동력인 중국의 성장률은 7년 만에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아르헨티나는 민간연금을 국유화하고, 브라질과 멕시코의 기업 가치는 50% 하락하고 칠레는 통화가치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금융시장이 발달하지 않은 아프리카는 선진국의 원조 감소로 허덕이고 있다.


<자본시장 지나친 팽창…투기거래 맞물려 재앙>

기사입력 2008-12-07 18:36 | 최종수정 2008-12-08 11:16 / 경향신문 / 조복현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

이번 세계 금융위기는 금융시장에서의 투기적 거래와 신용의 과잉팽창으로부터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금융위기들과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이 금융위기가 더욱 발달된 자본시장과 고도화된 금융세계화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특성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1929년 대공황이나 80년대 이후의 여러 금융위기들은 모두 금융시장에서의 투기적 행동이나 과도한 신용팽창에 기초해 발생했다. 그리고 그러한 금융행동은 대부분 자유방임적 경제사조에 힘입어 증대될 수 있었다. 1920년 대공황 직전까지 미국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금융시장은 자유방임의 사고 하에서 아무런 규제나 감독도 없이 시장자율에 따라 자유롭게 작동하고 있었다.

또한 80년대 이후에도 세계 각국에서 다시 금융자유화가 전개되면서 금융활동이 자유와 시장자율에 따라 수행되었다. 그러나 자유방임과 시장자율 하에서의 금융활동은 1929년 미국에서나 80년대 이후 남미와 동아시아에서와 같이 투기적 행동과 과도한 신용팽창을 가져와 결국은 금융시장을 마비시키고 금융기관을 파산시키는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이번 금융위기도 신자유주의적 경제사조 속에서 시장 자율과 자유경쟁만을 강조한 자본시장 발전과 금융세계화 진전이 결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나 이에 기초한 자산유동화 증권과 같은 고위험의 투기적 금융거래를 과도하게 팽창하도록 만든 데서 발생했다. 따라서 이번 금융위기도 이전의 금융위기와 유사하게 기본적으로는 투기적 거래와 신용의 과잉 팽창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는 이전의 금융위기들과 또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가장 선진화된 금융기법과 가장 발달된 금융시스템을 갖는 미국에서 위기가 시작되었다는 점, 은행의 대출채권 부실이 아니라 자본시장의 유동화증권 등 유가증권 부실에 위기의 핵심이 있다는 점, 그리고 위기가 급속히 세계적 성격을 띠면서 세계화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1929년 대공황의 경우 금융활동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주식시장에 대한 규율 미비, 중앙은행의 잘못된 긴축정책, 예금보험제도의 결여 등이 금융위기를 발생시키고 또 확대시켰다. 80년대 이후 남미나 동아시아의 금융위기는 위험관리 기법과 효율적인 감독체제의 부족 등으로 인해 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막지 못한 결과 금융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번 금융위기는 이전처럼 금융시장에 대한 무지나 금융시스템의 낙후, 또는 위험관리 기법과 감독체제의 미비 때문에 투기적 거래나 과잉팽창을 막지 못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금융부문 전반의 발달이 투기적 거래와 과잉팽창을 부추긴 것이다. MBS, CDO 발행과 같은 유동화 기법의 발전과 CDS와 같은 보험상품의 발전, 그리고 자본시장을 통한 수시의 시장평가가 스스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과잉과 같은 투기와 팽창을 낳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자본시장의 유가증권 부실을 초래한 것이다.

또한 이전의 금융위기들과 달리 이번 금융위기는 한 국가나 특정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급속히 전 세계로 확산되었는데 이것 또한 고도화된 금융세계화의 산물이다. 1929년 대공황 때에도 공황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기는 했지만, 그때는 미국의 긴축정책과 국제적 금본위제도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의 확산은 금융세계화 속에서 전 세계의 자본시장이 연계되고 통합된 결과이다.

이와 같은 이번 금융위기의 특성은 선진 금융기법이나 효율적인 감독체제라 할지라도 자유방임과 시장경쟁 속에서는 금융의 본성인 투기적 거래와 금융팽창을 억제할 수 없고, 금융위기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자유방임과 시장경쟁 대신 금융안정과 경제발전을 더 잘 보장할 수 있는 질서와 공존에 바탕을 둔 새로운 경제질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