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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Articles/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1부 무너지는 시장 만능 신화-(9)토론-하나의 사건, 다른 해석

<"자본규제 시급” 한목소리>

기사입력 2009-01-18 18:29 | 최종수정 2009-01-19 09:55 / 경향신문 / 유희진 기자


ㆍ1부 - (9) 신자유주의는 몰락할 것인가

‘신자유주의는 몰락한 것인가’를 주제로 한 1부 토론에서 토론자들은 미국 금융 시장은 과도한 자유를 누렸고 적절한 규제를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엇갈렸다. 장상환 경상대 교수는 “지금 위기는 신자유주의가 빚어낸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퇴조의 길을 갈 것”이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신자유주의 쇠퇴는 분명하지만 신자유주의를 포함한 다양한 대안 모델들이 싸우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지금의 위기로 정부의 비중이 잠시 더 커지긴 하겠지만 경제가 회복되면 결국 다시 시장은 자신의 힘을 되찾을 것”으로 내다봤다.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드러난다고 해도 정부로부터 자본을 해방시키려는 움직임이 크기 때문에 신자유주의가 쇠퇴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발제 1 - 장상환 경상대 교수

빈부차 클수록 공황 심…규제완화 지속 어려울 것

금융 위기에서 시작된 경제 위기로 국민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노후에 대비해 펀드에 가입한 분들이 피해를 보고,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일자리를 얻기 어려워졌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재의 위기는 신자유주의 퇴조의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1970년 나타났던 경기침체 속에서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항하기 위해 등장했다.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가들의 수익을 개선해주고, 금융 산업 내에서도 규제를 풀어 비정상적인 파생상품이 나오는 환경을 만든 게 신자유주의다. 규제 완화가 빚어낸 모순들이 지금의 대공황과 같은 상황을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대공황 이후 케인스주의 시스템이 등장했던 배경도 자본활동이 너무 방만하게 이루어지면 위기가 닥친다는 교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본활동을 규제하고 사회복지제도를 통해 노동자와 약자를 보호했다.

자본주의경제 체제에서 경제 순환 때문에 나타나는 침체기는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그 강도가 너무 심해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빈부격차가 심해질수록 공황의 강도가 심해지는데 1929년 대공황 직전인 1927년쯤 상위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였다. 그 뒤로 세금을 많이 거두고 재분배를 강화해서 194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말까지 30~35% 수준을 유지했다. 그런데 규제 완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가 도입되면서 상위 계층의 부는 점차 늘어났고 2006년쯤에는 대공황 때의 수준인 50%로 되돌아갔다. 스톡옵션 등을 통해 고위 임원들은 많은 소득을 가져갔고, 그들은 또한 부동산과 주식 시장에서도 게임을 펼치며 부를 늘려갔다.

이렇게 미국 내에서 소득 분배가 점점 불평등해지면서 불거진 문제가 저소득층들의 주거 문제다. 이들에게 미국 정부가 어떻게 했나. 주택 보조금 제도라는 복지 제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어야 했는데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집을 사라고 했다. 이게 바로 서브프라임모기지 대출이고, 이번 전 세계 경제 위기의 주요한 요인이 됐다. 결국 ‘복지의 후퇴’가 이 같은 문제를 야기한 것이다.

발제 2 - 김상조 한성대 교수

국가와 시장의 역할 배분…시민사회 건강성이 관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보면 자본주의에 존재하는 두 가지 특수 상품이 나온다. 바로 화폐와 노동력이다. 이 두 가지가 자본주의 생산체제를 유지하고 있는거나 다름없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이것을 사회적으로 관리되어야 할 특수상품으로 보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가장 근본적 오류는 특수상품의 특수성을 망각하고 단순한 시장교환 대상으로만 취급했다는 데 있다. 이 특수상품의 재생산을 전적으로 시장에 일임해버린 게 바로 ‘시장만능주의’이다. 1980년대 이래 노동시장 유연화, 화폐를 다루는 금융산업에 일어난 대대적 규제 완화는 그를 증명한다.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핵심인 노동력과 화폐를 사회적으로 관리하지 않고 시장에 맡기는 체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는 분명 쇠퇴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러나 ‘쇠퇴’가 바로 ‘몰락’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 대안 모델을 탐색하는 암중모색기가 진행이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를 포함한 다양한 대안 모델들이 치열한 싸움을 벌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정한 삶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움직이는 기제는 시장과 국가다. 신자유주의는 중심축을 시장 쪽으로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경우인데 그 한계가 나타난 현시점에서는 무게추가 다시 한번 국가 쪽으로 움직일 것이다. 또한 신자유주의 이전에 있었던 케인스주의를 되돌아봐야 한다. 금융 자본의 힘을 재규제하고,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하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거치면서 붕괴됐던 중산층을 재건하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냐가 문제가 된다. 그러나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는 것처럼 국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생각도 잘못됐다. 국가와 시장의 역할 배분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인데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시민사회의 건강성이다. 그러나 한국자본주의는 국가자본주의에서 곧바로 신자유주의로 건너뛰었기 때문에 한국의 시민사회는 시장과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 명확히 모른다. 그 역할을 지금부터 재정의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신자유주의 이후의 한국 자본주의 재구축 과정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발제 3 -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

정부 비중 확대되겠지만… 시장 자율적인 복원 가능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많은 비판과 지적들이 나왔다. 수긍하는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호들갑스러운 부분도 있다. 1929년 대공황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시스템의 문제가 제기됐다.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이고 케인스의 수정자본주의였다. 정부가 개입하면서 1932년 안정을 찾다가 다시 어려워지는 듯하더니 세계 2차대전 터지면서 전쟁 물자 생산과 공급과잉 설비가 정리되면서 경제가 완전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거대한 충격이 왔을 때 국가의 역할이 뭐였냐. 실질적으로 세계 2차대전이 살린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시스템이 작동을 하다가 충격을 받는 때가 있는데 그 상황이 오면사람들은 “이제 이 시스템은 끝난 것 아니냐”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세계 2차대전 이후의 경험을 보면 그런 문제들은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 존재하는 특유의 복원력으로 해결해나간다. 정부와 시장이 적절한 관계를 맺어 문제들을 해결하고, 국가 간의 협력 등을 통해 제 모습을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의 비중이 0이라면 극단적 자유방임이다. 정부가 100이면 극단적 사회주의다. 케인스주의는 정부의 비중이 약 50 정도이고, 신자유주의는 30, 자유주의가 10이라고 본다. 지금은 위기 상황이니까 정부 비중이 30에서 50~60으로 갈 확률이 높다. 다시 위기가 진정되고 여러 상황이 제자리로 돌아가면 정부 비중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시장은 힘이 있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려는 속성이 있다. 또한 정부 영향력을 배제하려는 속성이 있다.

금융 위기가 오는 과정에서 미국에는 분명 비정상적인 부분이 있었고 이것은 반드시 지적돼야 한다. 그러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시장은 붕괴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현재 위기가 복잡하고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대공황하고는 비교가 안된다. 대공황도 헤쳐온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면 이 위기도 결국 특유의 복원력으로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시장과 정부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조정되면서 회복되는 과정이 지속될 것으로 본다.

발제 4 - 임원혁 KDI 연구위원

신자유주의 폐해 있어도…자본은 지속적 국가견제

신자유주의는 세계 2차대전 이후 형성된 복지국가를 해체했던 일련의 정책으로 구현됐다. 규제를 완화하고, 특히 금융 정책에서의 규제를 없애고 노조를 약화시켰다.

세계 2차대전 이후 여러 선진 경제국들의 정책 기조가 되었던 것은 케인스주의에 가까웠고 성과도 상당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서유럽 국가들은 사민주의에 가까운 복지 국가체제를 형성하고 경제를 발전시켰다. 미국은 1948년부터 1973년에 이르기까지 매년 2.8% 성장을 이뤘다. 노조 친화 정책과 누진적 조세 체계가 그 역할을 했다. 중산층도 견고하게 형성됐다. 그러나 결국 복지 사회의 성공은 쇠퇴로 연결됐다. 노조가 과도한 복지를 요구하면서 정당성과 힘을 잃었고, 대다수 중산층도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됐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나면서 유권자들은 과도한 복지 혜택에 대해 식상함을 느꼈다. 물론 유권자들이 의료보험과 같은 혜택을 싫어한 건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복지혜택으로 벤츠 몰고 다닌다’는 에피소드들이 생기면서 반감이 생긴 것이다. 이때 대처와 레이건이 나타나 “민주 국가에서 자본은 소수가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정치적으로 세련되고 효과적으로 포장해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신자유주의를 전파했다.

재미있는 것은 신자유주의가 계속 힘을 발휘하면 생산성은 늘었는지 몰라도 소득 분배는 악화된다는 점이다. 부시 행정부가 대표적이다. 생산성은 연간 2.5%씩 늘어나는데 중산층의 소득은 같은 기간 2000달러가 줄었다. 미국 내에서 중산층이 흔들리면서 다시 진보 정치가 복귀되고 2008년 오바마의 승리로 연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가 쇠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복잡한 국제·정치적인 이유가 많지만 신자유주의는 본질적으로 정부로부터 자본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수요는 상당하다. 정치·경제적인 측면에서 신자유주의 폐해가 드러난다고 해도 자본은 계속 국가를 견제할 여건이 되고, 민주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유권자들이 본인들의 계급적 이해에 충실하게 투표를 한다는 보장도 없다.


<“케인스주의도 보완책 필요” “10년이상 과도기 올수도”>

기사입력 2009-01-18 18:48 | 최종수정 2009-01-19 09:55 / 경향신문 / 장관순 기자

■ 장상환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 흔히 ‘신자유주의가 유지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우선 케인스주의적 방향이 드러나고 있다. 문제는 케인스주의 한계다. 케인스주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기업의 수익률 악화에 대처 못하고, 임금과 물가를 연동시키려다 노동자 반발을 샀다. 그것을 넘어 경제위기 재발을 막기 위한 그 무엇이 필요하다. 금융이든 일반 기업이든 너무 사적 자본가들의 힘에 맡겨져 있다. 금융 기관의 공공소유화, 일반 기업 노조의 경영참여 등으로 기업의 의사결정을 통제해야 한다.

■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 신자유주의를 논할 때 주로 금융 문제에 초점을 두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루스벨트는 집권 초기 2년간 오늘날 미국의 금융산업, 자본시장의 주요한 구조를 만들었다. 이른바 뉴딜적 금융개혁이다. 당초 루스벨트는 공정거래위원회(FTC)에 강력한 자본시장 규제 기능까지 같이 주려고 했다 증권거래위원회(SEC)를 별개로 두는 쪽으로 틀었다. SEC는 신자유주의적 가설에 근거한 간접규제로 일관한다. 고작 2년 만에 기조가 바뀐 것이다. 윤창현 교수는 미국은 속도를 제한하고 우리는 속도를 올려야 균형이라고 했다. 노동력 및 화폐의 재생산 등 사회적으로 해결할 문제를 개인에게 맡긴 게 신자유주의의 문제다. 우리는 국가자본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바로 건너 뛰었다.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국가와 시장을 제어할 사회적 합의도 조성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당장 속도를 비교할 게 아니라 도로 상황과 교통경찰에 대한 신뢰 구축이 우선 아닌가.

■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 시장경제는 결국 가계와 기업이 노동시장, 실물시장, 금융시장에서 만난다. 여기에 정부가 들어오면 정부가 시장을 얼마나 대체할 수 있을까. 정부가 시장을 대체한다는 것이 정말로 대체하는 것이냐, 아니다. 단지 운영주체만 공공적 주체로 바뀌는 것이다. 국유화된 은행이 있다고 금융시장, 간접금융 시스템이 없어지지 않는다. 정부가 은행을 국유화했다면 정부가 혈세로 은행주식 좀 가진 뒤 돈을 대준 것뿐이다. 김상조 교수는 국가자본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바뀌었다고 했는데, 우리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제대로 한 적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신자유주의를 했다고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때문에 조금 시늉만 했다. 정부 역할을 더 줄여도 된다. 다만 마구 줄이는 게 아니라 규제할 곳은 해야 한다.

■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 민주 정부가 어떻게 자본을 제어하는가. 과거 뉴딜 때 보면 이른바 노동자·지식인 등 뉴딜 정치연합을 통해 정부가 조세·노동·복지 정책을 썼다. 이번도 2007~2008년 미국의 생산성은 늘었지만 중산층 소득이 감소한 점 등에 따라 중산층으로 하여금 민주당을 지지하게 한 면이 있다. 하지만 이번은 1930년대와 달리 세계적 차원에서 시장통합이 진행됐기 때문에 일국에서의 계층 타협이 쉽지 않다. 민주정부 차원에서 자본을 제어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 장상환 = 윤 교수 주장은 극단적이라는 생각이다. 선진국의 경우 복지국가를 거쳤기 때문에 국가가 상당히 탈시장화된 부분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노동시장이 유연화되면서 격차가 심해졌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목표 달성이 어려운 시대가 됐다. 신자유주의가 완충장치 없는 상태로 진행돼 극단적 모순이 나타났다. 우리는 자본의 힘이 너무 커졌다. 선진국의 국가 역할은 자본을 규제하고 노동을 보호하는 것이 더 크다.

■ 김상조 = 케인스주의 이후 신자유주의 부흥 징후는 60년대 말부터 나왔지만 신자유주의가 공고화된 것은 대처·레이건 이후나 사회주의가 몰락한 90년대 이후로 평가된다. 케인스주의 쇠퇴로부터 신자유주의 모델 작동까지는 10~20년 과도기가 있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자본주의 모습을 보게 되려면 10년 이상의 과도기가 필요할 것 같다. 신자유주의 성립 과정을 보면 하이에크 중심의 자유주의 복원 운동이 있었고, 프리드먼의 정책 통화 프로그램이 뒷받침했으며, 이를 레이건·대처가 현실 정치로 전환했다. 신자유주의 극복 대안도 이런 세가지 토대가 있어야 된다.

■ 윤창현 = 임원혁 위원은 신자유주의를 정부로부터의 자본 해방으로 표현했는데, 자유주의를 정치적으로 평가한 것 같다. 자유주의의 경제적 자유 측면은 어떻게 묘사할 수 있는가.

■ 임원혁 = 경제적 자유는 사실 우리만 하더라도 전제권력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시장에 대한 진입규제 등이 매우 강했다. 이에 대한 자유라 할 수 있다.

■ 이근식 서울시립대 교수 = 19세기 초 경제적 자유란 장사하는 자유다. 전제왕권의 대기업 위주 중상주의에 대한 반발이다. 배제당한 중소기업들이 혁명 뒤 규제 철폐를 요구하며 자유방임주의를 외쳤다. 자유방임주의는 빈부격차와 공황이란 두 가지 병폐를 낳는다. 이에 대한 비판이 지속되다 2차대전 뒤 케인스주의 복지국가가 대안으로 자리잡았지만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맞았다. 개인주의 성향 미국 중산층은 사회보장제도에 반감을 가졌고 신자유주의를 지향했다. 하지만 자유방임으로 돌아갔더니 다시 빈부격차와 불황이 생겼다. 미국은 사회통합을 유지하기 위해서 유럽식의 복지제도를 더 도입할 것으로 본다.


<“미 패권 약화” 공감… 달러 영향력 놓고 격론>

기사입력 2009-01-18 18:48 | 최종수정
2009-01-19 09:55 / 경향신문

■ 사회(손호철 서강대 교수)=미국 경제 헤게모니의 미래, 달러 헤게모니 문제, 정치·군사적인 문제, 한국 문제 등 4가지 큰 이슈가 있다. 미국 경제 헤게모니의 약화에 대해서는 다들 동의하시는 것 같고 달러 기축통화 문제부터 논의해보자.

■ 박복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초단기적으로는 달러 가치가 올라갈 것이다. 이것은 위기시에 가장 안전한 곳으로 몰려가는 대단히 단기적 현상이다. 그러나 위기가 끝나면 달러 가치는 하락할 것이다. 그래도 달러 위상의 하락이 달러가 대체되는 상황, 이를테면 달러 비중이 현재 65%인데 갑자기 40%가 되는 쪽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 문우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그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게 동아시아 국가들이다. 전세계 외환보유액의 절반 이상을 동아시아가 갖고 있는데 달러가 불안하다고 유로화로 대체하면 달러가 붕괴한다. 그런데 달러화 붕괴는 동아시아 국가들에 좋지 않은 상황이다. 이것이 동아시아 국가들의 딜레마이다. 따라서 유로화로 가자는 합의가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박복영 박사도 얘기했지만 중국은 위안화를 국제통화로 승격시키려는 의도가 보인다. 이럴 경우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도 공조가 안돼 자칫하면 혼란스러운 체제가 올 것이다. 이 혼란스러운 체제는 우리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달러 체제가 차라리 낫다.

■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동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에 수출을 해야 하니까 달러로 보유하는 게 좋다는 생각인데 이미 부실은 시작됐다. 부실은 시작됐는데 어느 나라가 먼저 달러를 바꾸느냐? 만약 모든 아시아 국가가 달러로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는데 우리만 달러가 아닌 것으로 바꾸면 우리에게 유리하다. 달러 가치가 뚝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달러가 유지될 것 같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달러가 우르르 무너질 수 있다. 미국의 위기가 더 심화되면 누구나 달러를 한꺼번에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붕괴를 벗어나는 방식은 잠정적으로 달러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유럽이 미국에 의존하는 수출주도형 국가였는데 빠져나왔고, 일본도 그렇다. 그런 방식으로 빠져나가는 게 파국을 막을 수 있는 길이다.

■ 사회=현재 미국의 순대외채무가 GDP의 30%로 추정되고 있고, 2~3년 내에 50%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그렇게 되면 달러화 가치가 30% 정도 떨어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미국의 하드랜딩 시나리오에 따른 달러 폭락 가능성을 어떻게 보는가.

■ 박복영=정태인 선생님은 하드랜딩 가능성을 더 높게 보시는 것 같다. 중국이 교역에서 자신의 통화를 계속 사용하라고 할 순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해서 결제통화로서의 비중을 높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금융자산이 위안화로 표시되고 투자가들에게 투자의 대상이 될 수 있겠느냐. 현재 중국의 국가적 신뢰도, 금융시장의 투명도와 발전 정도를 봤을 때 그렇게 될 가능성은 낮다. 금융시장은 전통적인 역사적 훈련을 통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위안화가) 금융자산으로 자리매김되지 않는다면 달러를 대체하기는 힘들 것이다.

■ 문우식=저도 하드랜딩 가능성은 굉장히 희박하다고 본다. 각국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른바 국제공조가 안되면 다 어려움에 빠질 것이기 때문에 미봉책이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수습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미국 달러가 불안한데, 여유 있을 때 바꿔 놓자’라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영향을 받을 것이다.

■ 박복영=세계적인 금융위기 재발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금융위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통화위기이고 다른 하나는 신용위기다. 지금의 위기는 미국에서 발생된 신용위기다. 신용위기는 금융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되는데 국제통화기금(IMF)이 있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아시아통화기금(AMF)을 만든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금융파생상품이 만들어져 국제적으로 유통되면서 위험을 전파시키지 않도록 금융 재규제가 있어야만 해결된다. G20회담을 통해 그런 노력이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따라서 달러의 폭락과 같은 하드랜딩은 없을지 모르지만 금융 시스템의 붕괴 혹은 극도의 혼란은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

■ 사회=앞서 AMF 혹은 아시아신용기구와 같은 지역협력체제를 만드는 게 필요하지만 중국의 패권 견제 때문에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왔는데 어떻게 보는가.

■ 정태인=미국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한국은 통화위기가 나타나게 돼 있다. 3월 위기설, 11월 위기설 같은 게 ‘달러 빚이 외환위기의 근원이 될 것이다’라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아시아 차원에서 대응체계를 만드는 것에 대해 일본은 필요를 느끼지 않을 수 있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그렇게 할 수 있다. 유럽(통합)은 전쟁의 원인이었던 것부터 시작해서 금융으로 넘어갔는데 아시아에서는 위험이 큰 금융에서 먼저 시작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 문우식=아시아의 협력은 미국이나 유럽에 대한 대응블록으로서도 생각해봐야 하지만 우리나라가 일본이나 중국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와 관련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중국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고 양자관계에서 우리는 일방적인 위치에 놓일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지역협력체를 만들어놓으면 이 협력체를 통해 중국에 대항할 여지가 생긴다.



<‘미국의 역할’에 의문>

기사입력 2009-01-18 18:48 | 최종수정 2009-01-19 09:55 / 경향신문 / 송윤경 기자


ㆍ1부 - (9) 미국 헤게모니는 끝나는가

토론자들은 대체로 달러 가치 하락, 중국의 부상 등으로 인해 ‘미국의 헤게모니가 약화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헤게모니 하강 속도와 강도에 대한 전망에서는 온도차가 느껴졌다. 서울대 문우식 교수는 “달러 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달러 지위가 다른 통화로 넘어갈 확률은 낮다”고 진단했다. 박복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도 “달러 지위가 빠르게 약화할 것 같지는 않아 헤게모니 부재시대의 불안정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반면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는 “미국 위기가 더 심화되면 달러를 한꺼번에 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구춘권 영남대 교수는 “(냉전 이후) 세계 자본주의의 핵심지역을 묶는 제국을 만들고 주변지역은 배제, 격리시키는” 제국 시나리오가 전개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발제 1 - 구춘권 영남대 교수

경제·문화적 영향력 하강…정치·군사적 측면은 복잡

경제·문화적 차원에서 미국 헤게모니는 하강하고 있다. 미 경제비중은 현격히 줄었고 생산력은 크게 떨어졌으며 금융위기로 달러의 ‘우월한 통화지위’도 흔들리고 있다. 문화적인 면에서도 개인의 자유와 소비를 결합시킨 미국식 생활방식의 매력은 크게 떨어졌다.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15%를 차지하는 미국은 부자들에게만 천국일 뿐이다.

하지만 정치·군사적 측면의 상황은 복잡하다. 미국의 문제는 그대로인데도 사람들은 90년대 이후 미국을 새롭게 봤다. 특히 강한 군사력에 주목했다. 냉전종식 때문이었다. 사실 냉전은 갈등을 얼어붙게 하는 ‘냉 평화’를 이끌어냈는데 이 평화가 냉전과 함께 종식됐다. 제2차 걸프전쟁, 유고슬라비아 공습 등 세계 곳곳에서 등장한 극단적 폭력이 그것이다.

냉전 이후 세계질서에 관한 시나리오는 두 가지였다. 그 중 첫 번째가 유엔버전(유엔을 세계 중심에 두는 것)이다. 국민국가의 안정성이 전제돼야 했다. 그러나 상당지역에서 ‘실패한 국가’들이 나타나면서 작동할 수 없었다.

또 다른 시나리오인 ‘제국버전’은 세계 자본주의의 핵심지역(미국·유럽·동아시아의 대도시)을 묶는 제국을 만들고 주변지역은 배제, 격리시킨다는 내용이다. 클린턴 시절부터 미국은 미국 주도의 제국버전을 실행하고자 했다. 오바마 역시 기본적으로는 제국버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상을 종합해볼 때, 오늘날 세계는 그람시가 의미한 헤게모니는 존재하지 않는 ‘제국’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과연 미국은 이 제국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유럽연합은 미국의 주니어 파트너로 머물러 있을 것인가. 동아시아 그리고 한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그러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제국은 세계평화를 담보할 수 있을까’이다. 경계 및 완충지대 설정으로 테러리즘에 대응해 평화를 유지해낼 수 있을까. 오히려 ‘지구적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노력을 동반한 소통이 효과적인 방법이 아닌가’ 하는 문제 제기가 가능할 것이다.

발제 2 - 문우식 서울대 교수

美 자력갱생 힘든상황…동아시아 성장이 대안

먼저 미국 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미 경제의 어려움은 오랜 기간 지속되리라고 본다. 먼저 부동산시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압류한 담보물의 가치가 대출금액보다 낮더라도 추가적으로 빚 상환을 요구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부동산담보대출 채권의 실제가치가 20~30% 정도 평가절하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또 미국은 부동산 연금이나 개인들의 주식시장 투자비중이 굉장히 높다. 주식시장이 폭락하면, 개인연금이 타격을 입어 개인 소비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두 번째로, 미 달러체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달러의 위기는 71년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잘못은 미국이 했는데 그 결과는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부담했다는 점이 두 위기의 공통점이다.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전, 미국은 금이 부족한 상태에서 통화를 찍어내 인플레이션을 겪었고, 이 인플레이션은 고정환율제를 통해 유럽·일본 등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이것이 첫번째 위기다. 최근의 금융위기는 신용위기다. 증권화·유동화를 통해서 신용이 지나치게 공급돼 이를 통해 미국의 위기와 직접 관련이 없는 국가들이 영향을 받게 됐다. 미국이 주축이 돼 생긴 금융질서하에서 미국이 자신의 책임을 지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러나 달러 지위가 유로화·위안화 등 다른 통화로 넘어갈 확률은 매우 낮다. 국제통화 지위는 경제력뿐 아니라 정치·군사적 이유에 의해 많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만 금융위기와 관련해 달러를 많이 찍어냈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가치가 하락하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 국제통화로서 달러의 지위도 상당히 위태롭게 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할 대안은 무엇일까. 미국과 유럽의 실물경제 회복은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관건은 동아시아 국가의 성장이다. 다만 동아시아 경제가 세계경제의 견인차가 되려면 국제통화 유동성 공급 체제가 필요하다. 현재 국제유동성을 독점하고 있는 IMF는 그 대안이 될 수 없다. 지역적 차원의 아시아 신용기구 등 국제유동성 확보에 관한 다양한 채널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발제 3 - 박복영 대외경제硏 연구위원

美 영향력 지속 이유, 달러에 대한 중독 탓

현재 미국 금융 헤게모니의 핵심은 두 가지다. 달러가 주요국 중앙은행의 준비통화금(현재 세계 중앙은행 준비금의 65%) 및 국제무역 결제통화(EU 역내교역을 제외하면 90%)로 쓰인다는 점, 국제 금융규범을 만드는 기구에서 미국이 막대한 영향력(IMF에 대한 30~50%의 출자금)을 지닌다는 점이 그것이다. 미국 금융 헤게모니가 형성될 당시 미국은 전 세계 GDP의 40%를 차지하는 막강한 경제적 영향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무너졌다. 그럼에도 헤게모니가 유지되는 이유는 뭘까.

먼저 역사적 관성을 들 수 있다. 상당수가 달러를 쓰면 나머지도 달러를 써야 편안한 상황, 즉 네트워크 효과가 그것이다. 둘째로 대안통화의 부재 문제가 있다. 셋째로는 미국과 신흥수출국 간 암묵적 합의를 들 수 있다. 신흥수출국(60년대 유럽과 일본)은 미국 수출로써 성장해야 했고 이때 미국은 달러를 맘대로 찍어내 국민들 및 금융자본들의 구매력으로 이용했다. 신흥수출국은 수출경쟁력 때문에 가능한 한 달러를 고평가해 자국 통화를 저평가하려 했다.

전반적으로 80년대 이후 ‘경제적 파워의 이동’은 미 금융 헤게모니를 약화시켜 왔다. 특히 중국의 교역규모가 커지면서 홍콩과 상하이가 맨해튼처럼 성장할 것이다. 일본과 달리 중국은 일부 무역에서 위안화를 쓰는 등 자국 통화를 국제통화로 키우려는 의지가 있다.

이번 위기는 ‘미국에 돈을 맡겨도 안정적으로 가치가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달러 지위가 빠르게 약화할 것 같지 않아 헤게모니 부재시대의 불안정성이 예상된다. 또 이번 위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위기만큼 강력하지 않기 때문에 재규제화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금융위기가 앞으로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에 대비하고자 각국은 더 많은 준비금을 모으려 할 것이고, 그것은 달러가 될 것이다. 달러의 불확실성이 높아졌지만 그럼에도 달러를 더 확보해야 한다는 딜레마가 예상된다.

발제 4 -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

美·中 통상마찰 가능성…아시아의 협력이 돌파구

앞으로 엄청난 혼란이 지속될 것 같다. 먼저 미국 위기가 심화될 여지가 충분하다. 이미 미국에서는 LTCM, S&L위기, 엔론사건 등 부동산 및 금융 관련 사건이 많이 터졌고 지금 나온 문제점(신용평가회사의 문제, 도덕적 해이의 문제)들이 이미 다 나왔지만 고치지 못했다. 오히려 규제 완화를 택했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게다가 클린턴 정부 시절 금융 규제 완화를 본격적으로 진행한 가이트너, 서머스 등 이른바 루빈사단과 시장주의자인 벤 버냉키가 현재 미국의 경제를 맡고 있다. 이들은 위기수습은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규제를 더 풀려고 할 것이다. 두번째로 콘트라티에프 파동을 보면, 75년 정도까지 진행됐던 A파동에 이어 B파동이 마지막에 도달했다. 마지막으로 달러의 문제다. 상당수가 사용하면 나머지도 따라서 사용한다는 ‘네트워크 이펙트’는 달러의 지위를 유지시켜 줄 수 있지만 반대로 구조가 일거에 무너지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차이메리카’, 즉 중국이 수출을 해서 흑자를 내고 그것으로 미국 재정적자를 메워주면, 그것을 가지고 미국이 소비하는 구조가 과연 계속 이어질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현 위기로 봐선 유지되기 힘들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생길 텐데, 그래서 ‘글로벌 코디네이션’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 역시 큰 성과가 없을 것이다. 불황에 빠져 있던 미국이 일본 엔화를 절상시키고 일본 금리를 낮추게 한 플라자 협정이 ‘글로벌 코디네이션’의 유일한 사례였다. 중국이 일본처럼 미국 말을 잘 들을 것인지 의문이다. 결국 미국과 중국이 1 대 1로 맞서게 되고 통상 마찰, 금리 및 환율 마찰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오랜 혼란이 예상되지만 아시아 국가끼리 협력을 한다면 국제적으로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나라 돈으로 외국에서 돈을 빌릴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잠재적인 외환위기 위험을 안고 있다.

만약 역내에서 역내통화에 기초한 외채 발행이 가능하다면 외환위기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다. 치앙마이 협정이 이번에 확대되는데 이것이 제도화되면 아시아통화기금(AMF)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중국의 패권주의를 견제하는 일이다.


<약소국 참여 지역간 경제통합 급부상 전망>


기사입력 2009-01-18 18:48 | 최종수정 2009-01-19 09:55 / 경향신문

ㆍ1부 - (9) 종합토론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대안은 무엇인가

발제 -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약소국 참여 집단체제 ‘역제주의’ 강화 가능성

미국발 금융위기는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반드시 올바르지는 않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다양한 논의를 유발했다.

첫째, 자본주의의 다양성에 대한 논의이다. 자본주의는 크게 보면 시장·기업·자본의 자유를 강조하는 미국형 자유시장 경제체제, 형평성·분배라는 중요한 가치를 위해 국가의 시장 조정이 필요하다는 관점의 유럽형 노동시장 경제체제 등 둘로 나눌 수 있다. 이들 중 어느 것이 옳으냐 하는 선택의 문제, 또 자본주의를 넘어설 다른 체제는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이 그것이다.

둘째는 미국 주도가 아닌, 다른 방식의 글로벌 협력체제 구축 방안 논의다. 앞서 1970년대 중반~80년대 중반 ‘헤게모니 이후’ 논의와 유사하다. 당시 국제기구 등을 통해 국제질서와 국제협력을 이루자는 ‘제도론’, 단일 패권국가가 힘들다면 2~5개국의 집단지도 체제를 만들자는 ‘집단지도 체제론’ 등이 제시됐다. 최근의 신브레턴우즈 체제 주장은 제도론, G2(중국과 미국)나 G8 등 강화 주장은 집단지도 체제론적 대안이다. 약소국에는 참여 기회조차 없는 질서체제인 이들의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역제주의(域際主義·inter-regionalism)’가 있다. 국가가 아닌 지역 단위의 협력체제를 구축, 역내 약소국이라도 지역 경제공동체 활동 기회 및 향후 지역 공동체 간 경제협력 체제 구축 시 회원 자격을 보장받는다.

두 담론을 통해 향후 지역별 특징적 자본주의 유형을 갖춘 지역 행위자(국가) 간 글로벌 협력체제라는 대안을 도출할 수 있다. 나프타(NAFTA), 유럽연합(EU), 동아시아형 조정시장 경제체제인 아세안+3 등의 지역 행위자들이 역제 협력체제를 갖춰 글로벌 협력체제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미 95년과 2000년 각각 유럽-남미, 유럽-아프리카 지역 간 협력체제가 생기는 등 역제협력 틀이 형성 중이다. 하지만 아직 동아시아만 지역주의 제도화가 낮은 수준이다.

동아시아는 언제 역제주의 글로벌 협력체제 구축에 참여할 것인가. 동아시아는 아직까지 ‘태평양 수지균형 관계’에 묶여 있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재정·경상수지 적자)를 한·중·일 중심의 동아시아의 수출경제가 보전해주는 것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달러화를 보유해 달러 가치를 유지하고, 대신 미국 시장에 계속 수출하면서 상호 균형을 유지한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이 균형이 깨질 가능성이 엿보인다. 현재 미국이 국내에 대규모로 투입한 공적자금은 과잉유동성을 유발하고 결국 달러가치 하락을 낳을 것이다. 특히 경제위기 장기화에 따라 미국 소비경제가 장기 위축될 것이란 점도 문제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대미 수출부진, 동아시아 시장 규모의 미국 시장 추월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아시아가 달러가치 유지에 힘쓸 이유를 잃으면 태평양 수지균형 관계는 붕괴한다.

그러면 자연히 역내 국가(한·중·일) 간 협력이 강화된다. 금융통화, 통상투자, 경제통합의 제도화 등 세 가지 측면에서 논의가 진행될 것이다. 통상의 경우 각국 내수시장 확대는 물론, 미국만큼 거대한 소비경제를 창출하기 위해 중국·동남아의 막대한 민간소비 잠재력도 활성화해야 한다. 각국은 복지·사회안전망 확충으로 내부 격차를 해소하고, 역내 국가 간 격차문제도 해소해야 한다. 그 결과로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가 형성되면 대안 수출시장이 될 수 있다.

금융통화·통상투자 협력이 강화되면 경제통합도 강화된다. 어떤 정책규범으로 시장경제를 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병행된다. 여러 논의가 현재 진행 중이지만, 미국발 경제위기의 여파에 비춰 조정시장 경제체제가 기본 원칙이 될 것이다. 격차문제 극복, 국가의 역할 중시가 바탕인 시장경제 체제가 주목받을 것이다. 중국은 ‘워싱턴 컨센서스’를 본떠, 동아시아에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전파하기 위한 ‘베이징 컨센서스’를 시도 중이다. 국내에서도 사회적 합의주의에 기초한 국가·시장의 통제, 합의제 민주주의 발전을 근간으로 한 ‘서울 컨센서스’를 주창한다.

동아시아 외부를 보면, 지역주의 발전이 강화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는 공동화폐 발행 및 남미형 시장경제 창출을, 중동 6개 회원국 모임인 GCC는 2010년 단일 통화 출범을 각각 논의 중이다. 따라서 향후 지역별 특정 자본주의 체제가 모여서 역제협력 체제가 구축될 것이다. 그러면 역제 경제통합을 거쳐 지역 간 제도통합, 나아가 단일 글로벌 경제체제도 가능하다.


<위험관리자로서 정부역할 중요>

기사입력 2009-01-18 18:48 | 최종수정 2009-01-19 09:55 / 경향신문 / 김재중 기자

ㆍ“양극화 심화 속 세계질서 재편 논의는 무의미”

■ 사회(김호기 연세대 교수) = 세계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가 기로에 서게 됐다. 오늘 토론회의 제목처럼 위기는 하나인데 해석은 여러 가지가 나오고 있다. 원인에 대한 다양한 해석만큼 다양한 대안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최태욱 교수의 기조발제에 대한 논평과 함께 평소 여러분이 생각해온 대안들을 말씀해달라.

■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 = 역제협력을 전제로 한 금융통화적 질서개편 움직임에서 제일 주목되는 것이 오는 4월에 열릴 G20회담이다. 이와 관련해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유럽이 확실하게 공조해 미국 주도의 체제에 대항해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신브레턴우즈 체제라고 해서 국제통화기금(IMF)을 대체할 새로운 금융감독기구를 만들자는 것이 유럽의 주장이고, 워싱턴은 ‘IMF 플러스’ 즉 IMF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돈도 더 넣고 힘도 더 주자는 생각인 것 같다. 만약 IMF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상당히 많은 변화가 예상되고, IMF를 강화하는 형태로 간다면 그렇게 큰 변화가 예상되지는 않을 것이다. (최 교수가 발제한) 역제 간 협력체제는 IMF 플러스보다는 신브레턴우즈 체제적인 측면에 주목하는 것 같은데 그럴 경우 달러가 상당 부분 비중을 상실하면서 위기적 국면이 올 수 있다. 심하게 말하면 통화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주도할 수는 없는 흐름이지만 이런 흐름이 성공할지는 잘 모르겠다.

■ 김상조 한성대 교수 = 통화체제를 비롯한 국제자본주의 재편에 대해 뭔가 디자인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적이다. 미국의 경제적 위상은 앞으로 끊임없이 위축될 것이지만 나머지 나라들도 현 세계자본주의체제의 공범이다. 미국이 쌍둥이 적자를 통해 전 세계에 달러를 공급하고, 모든 나라가 미국에 수출하는 그런 체제는 미국 국민들에게만 모르핀이 된 게 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에도 쉽게 끊지 못하는 마약과 같이 되었다. 미국이 주도해온 경제구조 속에서 누리던 단맛을 계속 유지하려는 암묵적 담합 체제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세계적 차원의 질서 재편에 초점을 맞추는 논의는 무의미하고 위험하다. 우리가 그런 질서를 바꿀 힘도 없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한국이라는 일국적 차원에서 어떻게 밑으로부터 세력관계를 재편할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 핵심요소들을 시장에 맡기는 것인데 이것을 밑으로부터 뒤집어엎는,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힘의 결집을 통한 정치적 변화까지 이끌어가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 장상환 경상대 교수 = 최 교수의 의견은 나프타(NAFTA)와 유사한 것을 동아시아에 만들자는 것인데 자본은 이동할수록 강자에게 유리하게 된다. 전 세계적인 외환위기나 무역수지 불균형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케인스가 제기했던 세계화폐를 얘기해야 할 때라고 본다.

미국은 주택문제마저도 시장에서 너희들끼리 해결하라는 식이다. 복지가 안 돼 있으니까 사람들이 장래의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저축을 하고 금융이 발달하게 된다. 한국도 미국처럼 가고 있다. 대안은 금융발달을 억제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사회복지가 확충돼야 한다. 케인스적 복지국가를 복원하되 사회적 소유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오랜 길을 걸어 왔는데 결국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 경제운용을 소수의 자본가에게 맡겨서는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공황을 일으키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대안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이근식 서울시립대 교수 = 이번 금융위기와 불황으로 신자유주의는 퇴조할 것이다. 세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신자유주의, 즉 자유방임주의라는 것이 적어도 두 가지 면에서 곤란하다는 것을 공감할 것이다. 우선 빈부의 양극화다. 지금 중산층까지 신자유주의에 등을 돌린 상황이다. 이것이 미국에서 오바마가 당선된 배경이다. 둘째는 국제투기자본들의 투기가 너무 심해서 세계경제 전체가 카지노 판이 됐다는 것을 다 같이 느끼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갈 것인가. 상식적으로 복지국가형 수정자본주의로의 회귀는 분명해 보인다. 국가에 의한 공공복지는 상당히 확대될 것이다. 중산층의 요구를 정부가 마다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금융규제가 강화될 것이다. 증권사·투자회사·투자금융·파생상품을 이대로 놔뒀다가는 경제가 망한다는 공감대가 자리잡았다. 그리고 미국 독주에 대한 반발이 이미 시작돼 미국은 현상유지를 할 만한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현 체제유지를 재천명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연장이고 정확히 말하자면 친재벌정책이다. 재벌의 힘을 사회적으로 규제하지 않으면 미국 꼴이 난다. 중요한 건 국민의 건강한 상식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몰상식하다. 4대강 정비에 수십조원을 쓰겠다고 하는데 우선 순위가 몰상식하지 않나. 몇십조원을 들여 강을 파겠다는 것인데 건설사가 고용하는 중장비 기사가 몇명이나 되겠는가. 서민층·빈민층에 혜택이 돌아갈 만한 데에 돈을 써야 한다.

■ 문우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윤창현 교수가 IMF 플러스와 신브레턴우즈를 말했는데, IMF 플러스로 갈 것이다. 그런데 IMF 강화는 우리에게 상당히 위험스러운 부분이다. IMF가 강화되면 유동성 공급을 더 독점하게 돼 향후 우리가 영향력 발휘할 수 있는 지역협력체 형성 가능성이 상당히 줄어들게 된다. 김상조 교수가 국제통화체제를 신경쓰지 말고 일국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했는데 감정적으론 저도 그렇게 느끼지만 동의할 수는 없다. 약소국이 제일 영향력을 많이 발휘할 수 있는 체제가 지역협력체이기 때문이다.

■ 박복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세계경제의 불안정성 관리는 앞으로 상당기간 국제체제가 아니라 한 나라 차원에 맡겨질 가능성 대단히 크다. 이와 관련해 위험관리에 관한 정부의 역할이 대단히 강화돼야 한다. 80년대까지는 발전의 리더로서 정부 역할이 강조됐다면 앞으로는 위험 관리자로서 정부 역할이 중요시된다. 공정위·금감원·국세청 등 사적 이익의 횡포를 막고 공익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들이 있지만 불행하게도 규제자·견제자로서의 역할을 거의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소득불평등 문제는 시장 만능주의에서 오는 것이다. 물론 시장도 그 역할이 있지만 모두 해결해줄 수는 없고 사회 구성원들이 시장의 효율성 외에 다양한 가치들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시장 효율성, 시장 만능주의를 비판하는 다양한 계층과 지식인이 있는데 자신들이 주장하는 가치가 뭔지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런 가치들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있을 때만 신자유주의가 극복되는 것이다. 국가 개입을 늘리자는 것만으로는 극복이 안 된다.

■ 구춘권 영남대 교수 = 국제체제를 디자인한다 해도 미국의 어마어마한 군사력 우위가 존재하고 일정한 전략 구상이 작동하고 있는 한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미국은 동아시아에 철저히 분할지배 정책을 쓸 것이다. 이에 대한 고려 없이 지역통합이 심화될 것이라고 하는 주장은 대단히 학구적이고 탁상 공론에 불과하다. 세계적 차원의 어마어마한 사회적 양극화가 존재하는데 세계평화가 올 것을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다. 전 세계 28억명이 하루에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간다. 미국은 이런 지역을 자본주의 체제로 차단하고 봉쇄하는 것을 21세기 전략의 핵심으로 둘 것이다. 이 지역을 어떤 방식으로 포섭하고 통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때다.

■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 = 김상조 교수가 우리를 작은 나라라고 했는데 그렇게 작지도 않다. GDP로 치면 세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의 큰 움직임에 대해서 논의하고 그에 대해서 합의를 시도해야 한다. 핵심은 유동성 공급과 아시아 외환보유액을 어떻게 할 것인가다. 동아시아에 외환보유액이 많은 이유가 바로 ‘차이메리카(중국과 미국)’ 때문이다. 이것을 역내 개발에 쓸 수 있으면 아시아 통화위기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대외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잘못된 유인책이라든가 파생상품 규제를 해야 한다. 당장은 공적자금을 들여서 빨리 금융부실을 털어내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소득 재분배를 넘어 자산 재분배가 필요하다. 군 단위의 공동체가 기금을 만들거나 해서 공동으로 토지라든가 문화유산을 소유하고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들이 나와야 한다. 철도·전기·수도·우편·가스 등 네트워크 산업은 공공성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대혼란이 끝난 30년 후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