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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Articles/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1부 무너지는 시장 만능 신화-(8)끝을 알 수 없다

<끝을 알 수 없다>

기사입력 2009-01-11 18:22 | 최종수정 2009-01-11 19:01 / 경향신문 / 조찬제 기자


ㆍ“최악위기”엔 공감… 언제 끝날지는 진단 못해

1. 금융위기의 심각성

전문가들은 미국발 금융위기를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로 평가하는 데 별 이견이 없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번 위기는 대공황과 닮은 점이 많다”고 밝혔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와 미국 경기진단을 총괄하는 전미경제연구소(NBER) 전 의장인 마틴 펠트스타인 미 하버드대 교수도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고 진단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저금리 정책을 펴 글로벌 금융위기를 배태한 장본인으로 불리는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의장은 “한 세기에 한 번 있을 정도의 사건”으로 평가했다. 그린스펀은 앞서 지난해 3월 금융위기를 예고할 때만 해도 “2차 대전 이후 최대 금융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1987년 8월부터 2006년 1월까지 ‘세계 경제대통령’으로 군림해온 그린스펀의 이 같은 평가는 생각보다 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유엔 사무총장 특별보좌역을 맡고 있는 제프리 삭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이번 위기를 “1970년대 이후 최대 위기”로 진단했다.

2. 시장 규제의 실패냐, 신자유주의 몰락이냐

금융위기가 단순히 시장을 좀 규제하면 해결될 일인지, 아니면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 몰락인지, 더 나아가 자본주의 체제의 종말을 예고하는지에 관해서는 엇갈렸다.

2년전 금융위기를 예언한 누리엘 루비니 미 뉴욕대 교수, <역사의 종말>을 쓴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몰락이라기보다 시장 규제의 실패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루비니는 자본주의나 시장경제의 종말로 보지 않고 “시장 스스로 자기 규제를 할 수 없는 현저한 시장의 실패”로 규정했다. 후쿠야마는 미국 주식회사의 종말로 본다. 그는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로 미국은 ‘자본주의 비전’과 ‘민주주의 신장’이라는 두 가지 국가 브랜드가 손상을 입었다고 지적했다. 폴 크루그먼은 “시장 만능주의가 빚은 재앙”으로 진단했다. 그는 미국 금융체제는 붕괴하지 않을 것이지만 불황은 오랫동안 지속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몰락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노엄 촘스키 미 매사추세츠공대 교수는 “시장 만능주의가 낳은 금융자유화 시대의 종말”로 보고 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확산 전략인 ‘워싱턴 컨센서스’는 대부분 서구에서 죽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맹신이 현재의 위기를 불러왔다면서 “시장과 국가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회주의 잡지 ‘먼슬리 리뷰’ 편집인인 존 벨라미 포스터 미 오리건대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종말이며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개입의 시대가 왔음을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장하준 교수도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의 붕괴”라고 지적했다. 진보적 지식인인 월든 벨로 필리핀대 교수는 위기의 원인이 “지배적인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주의 태도가 정부의 규제를 불가능하게 한 데 있다”고 지적했다. 탐사보도 전문 언론인이자 <더 쇼크 독트린>의 저자인 나오미 클라인은 “월스트리트의 위기는 신자유주의에 있어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공산주의 종식을 가져온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그는 금융 다음 붕괴 대상은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라고 내다봤다.

세계 반미 전선의 선봉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금융위기를 계기로 자본주의가 종말로 가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이 말은 ‘정치적 레토릭’의 성격이 크다. 자본주의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란 시각은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촘스키 교수에 따르면 현 체제는 국가의 개입이 활발한 ‘국가 자본주의(state capitalism)’다. 따라서 그는 “금융기관의 변화는 있을 수 있지만 국가 자본주의의 핵심 기관은 기본적으로 변하지도 영향을 받지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3. 미국의 헤게모니는 퇴조할 것인가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의 헤게모니가 약화되기는 하지만, 다른 헤게모니에 의해 대체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대체적인 진단이다.

촘스키는 미국의 헤게모니가 상실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미국이나 유럽 등 국제적으로 신자유주의 질서는 무너진다 하더라도 세계 최대의 자체 시장을 가지고 있는 경제력, 나머지 국가들의 국방비를 합한 것과 견줄 수 있는 가장 강하고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군사력, 세계 곳곳에 있는 군사 기지 등을 감안하면 미국의 헤게모니는 쉽게 무너질 수 없다고 진단한다.

촘스키는 대신 지난 35년 동안 형성된 3극 체제 가운데 중국·일본·한국 중심의 동북아 센터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리오 패니치 캐나다 요크대 교수도 G20 정상회의가 워싱턴에서 열린 점, 모든 사람들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의 지도력에 기대를 걸고 있는 점을 들어 여전히 미국이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국가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파워에 대한 글을 써온 미 월간지 ‘애틀랜틱’ 기자 로버트 캐플란은 미국의 헤게모니 퇴조 관련 논의는 과장됐다고 밝혔다. 그는 대영제국의 해군력이 1890년대부터 쇠퇴했지만 대영제국은 반세기 동안 2차례의 세계대전으로부터 세계를 구할 만큼 강대국으로 남았다는 점, 1857~58년 인도의 세포이 반란 사건을 계기로 인도가 영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지만 영국의 인도 지배는 한 세기가 지나도록 계속됐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다만 캐플란은 미국이 다른 국가와 연합하는 방법으로 영향력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교수도 “주요 패권국가들은 각자가 충분할 정도의 파워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서로 타협을 통해 최상의 조합을 모색하려 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무너지고 다극체제가 형성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4. 아무도 위기의 끝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위기는 어디까지 갈 것이며, 어디에서 언제 끝날 것인가. 위기의 지속 기간에 대해 짧게는 올해 상반기까지, 길게는 4~5년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금융위기 초기에 “이르면 2009년 초 바닥을 친 뒤 상반기 중 침체국면에서 벗어나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그는 올해 초 열린 미 경제학회 연례회의에서는 “오는 2010년까지 주식시장 약세와 부동산 시장 붕괴가 지속될 것”이라며 예전에 비해 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FRB 부의장을 지낸 앨런 블라인더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제 갓 시작된 침체는 갈수록 길어지고 깊어질 것”이라면서 “2010년 1·4분기에도 경기부양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금융 통화부문 전문가인 배리 아이켄그린 버클리대 교수는 금융시장이 정상적으로 회복하는 데는 몇 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하면서 2010년에라도 전 세계가 경기침체가 끝나고 회복세로 돌아서면 다행이라는 입장이다.

마틴 펠트스타인 교수는 “최소 1년이 더 지나야 회복이 시작될 것”으로 진단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각 정부가 취하는 대책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최소한 18개월 동안 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월러스틴 교수는 경기침체가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라면서 “4~5년 안에 헤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그 끝을 알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