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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Articles/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1부 무너지는 시장 만능 신화-(7)금융 위험엔 장벽이 없다

<40년 만에 ‘금융·석유·식량위기’ 동반>

기사입력 2009-01-04 17:54 | 최종수정
2009-01-04 23:08 / 경향신문 / 이강택 KBS PD


ㆍ1부-7. 금융위험에는 장벽이 없다 
ㆍ투기자본 주연의 ‘충격·공포 드라마’


‘3차 오일쇼크’라는 드라마

지난해 7월 중순 유가가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배럴당 무려 147.17 달러. 연말이면 200달러로 치솟을 것이라는 ‘슈퍼 스파이크’론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지구촌을 휩쓸었다. 그러나 불과 사흘 만에 유가는 10% 폭락했고 두 달 후엔 90달러 선까지 무려 50달러나 떨어졌다. 세계 석유수요가 별로 줄지 않았음에도, 더구나 중동 산유국들이 모여 하루 50만배럴을 감산하기로 결의하고 멕시코 만 유전지대에서 생산량이 5% 줄었음에도, 송유관이 지나는 그루지야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태풍 아이크가 미국 정유시설의 25%를 손상시킬 거라는 보도에도 불구하고 석유가격은 속절없이 계속 추락했다.

그 추이를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원인은 명확했다. 금융투기세력들이 급속히 석유시장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8월로 접어들면서 뉴욕상품선물거래소(NYMEX)에서는 원유선물거래에 뛰어들었던 투기세력의 매수포지션이 급감하고 그에 따라 전체 거래 중 순매수포지션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에너지 시장에는 어마어마한 투기가 있었다. 단지 수급균형의 문제가 아니었다.” 투기거래에 깊숙이 참여했던 JP모건체이스의 투자본부장 마이클 셈블리스트가 지난 9월 부유한 투자자들에게 보낸 e메일 내용 중의 일부다. 국내외 주요 언론들이 그토록 떠들어대던 수요 급증이나 지정학적 리스크, 피크 오일 등에 의한 공급의 감소·차질이 주요 원인이 아니었음을 털어놓은 것이다. 의회의 압박으로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시작하고, 뒤이어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월스트리트에 유동성 위기가 본격화되자 투기 자본들이 대거 이탈했다. 오클라호마에 본사를 둔 셈그룹(Semgroup)의 완전 철수, UBS의 장외시장 상품거래 폐쇄,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런던시장 에너지·상품거래 중단 등이 속속 알려지면서 가격 거품은 더욱 빠르게 붕괴됐다. 속락을 거듭한 유가는 2008년 말 현재 배럴당 겨우(?) 40달러선을 밑도는 수준. ‘3차 오일 쇼크’는 중반까지 긴장감이 대단했으나 5개월 만에 끝난, 결말이 허망한(!) 드라마였다.

아이티 사람들로 하여금 ‘진흙쿠키’로 끼니를 때우게 만들었던 식량위기도 마찬가지 양상이었다. 지난 3월 부셸당 12.70달러까지 치솟았던 밀 가격은 현재 5달러 수준. 호주 곡창지대의 가뭄과 미국 중서부의 토양침식 등 미디어들은 갖가지 원인들을 내세웠지만 식량 폭등의 가장 큰 원인 역시 유가급등과 바이오디젤 열풍을 틈탄 금융투기세력의 작품이었다. 대표적 네오콘이자 세계은행 총재인 로버트 죌릭이 끝까지 언론공개를 막았던 세계은행의 비밀보고서는 심지어 식량가격 상승의 75%가 미국에서 생산된 옥수수의 3분의 1이 바이오디젤을 만드는 데로 돌려지고, 그에 따라 투기가 기승을 부린 까닭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하반기에 금융 쓰나미가 직접 모든 것을 삼켜버렸음을 종합해 볼 때, 2008년은 실로 1970년대 초반에 이어 약 40년 만에 금융위기, 석유위기, 식량위기라는 세 마녀가 동시에 출현하여 전 인류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간 역사적 시점이었다.

누구의 작품이었나 - 주연 배우들

“현재의 석유가격은 수요·공급의 펀더멘털에 기반한 것이다. 상품시장은 투기거품의 영향을 받아 움직이고 있지 않다.”( <골드만삭스 에너지리포트>, 2008·7·30)

유가가 오르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초이다. 그때까지 20달러 선에 지나지 않았던 원유는 1년 후 40달러를 돌파하고 조정기를 맞는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바로 ‘아준 무티’. 그는 유가가 장기상승국면에 들어섰다며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과감한 예측을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06년 말 그 예언이 현실화되자 ‘석유업계의 카산드라’로 불리며 명성을 얻는다. 이후 유가가 조정기를 맞을 때마다 상승모멘텀을 제공하던 그는 지난해 5월 유가가 130달러 선에서 주춤거리자 이른바 ‘슈퍼스파이크’론을 내세워 200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선언, 치솟는 유가에 불을 붙였다. 아준 무티는 바로 골드만삭스의 애널리스트였다.

주지하듯이 골드만삭스는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 기업공개 주선 등 기업금융부문과 모기지 채권 등을 다루는 자산운용 및 증권부문 그리고 상품선물 등을 취급하는 자기자본투자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자기자본투자부문은 사실상 헤지펀드와 거의 같은 활동을 한다. 그 운용자산의 규모가 210억달러이니 사실상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인 셈이다. 그처럼 엄청난 규모를 배경으로 골드만삭스는 1990년대 중반에 석유선물시장에 진출한 이후 줄곧 업계의 수위를 달렸다. 특히 2005년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연체비율 증가 등 부동산 시장에서 이상 징후가 엿보이자 원유시장에 대한 진출을 대폭 강화하여 막대한 영향력을 확보한다. 골드만삭스가 가진 영향력의 1차적 원천은 GSCI(골드만삭스상품지수)로 대변되는 인덱스투자. 각종 연기금과 뮤추얼펀드, 기업, 국부펀드 등이 참여해 무려 2600억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로 확대된 간접투자 중 60% 이상이 골드만삭스를 통해 이루어졌다.

직접투자의 위력 또한 막강했다. 자기자산의 수십 배를 차입(Leveraged Buyout)하여 그것을 5%의 증거금만으로 거래를 할 수 있는 석유선물시장에 집중했다. 대부분 거의 규제를 받지 않는 런던 역외시장(ICE)과 장외시장(OTC)에서의 스와프거래를 통해서였다.

수급동향 등 시장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기 위해 골드만삭스는 2006년 150여개의 저유소와 4만㎞가 넘는 송유관을 보유한 킨더모건사를 인수하고, ICE를 공동설립하는 등 석유 관련 인프라를 급속히 확장해갔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남들보다 앞서 장기매수 포지션을 정하고, 상승 예측을 발표해 시장을 주도했다.

ㆍ미디어들 앞다퉈 논리제공 ‘조연역’
ㆍ 전세계 국민·생산자본 상대 수탈

2007년 하반기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악화되고 달러 약세가 본격화되자 골드만삭스의 뒤를 따르는 에너지 관련 헤지펀드는 640여개로 급증했고, 간접투자를 원하는 연기금, 펀드들이 대거 시장에 유입됐다.(거래시장에 1억달러가 새로 유입되면 1.6%의 가격 상승 요인이 발생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이른바 ‘자기충족적 예언’에 의해 2007년 골드만삭스가 거둔 45억달러 순익 중 31억달러를 상회했다. 원유선물거래에서 줄곧 2위를 차지했던 모건스탠리도 유사한 수익 패턴을 보였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다른 투자은행들과는 달리 2008년 하반기의 금융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9월 이후 석유시장에서의 투기가 잠잠해지자 그 둘은 일반 상업은행과 유사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안간힘을 다한 공조 - 조연 배우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의 성공 드라마는 물론 그들의 힘만으로는 연출될 수 없었다. 가장 유력한 조력자는 세계 유수의 미디어들이었다. 유가가 급등했던 지난해 상반기 내내 파이낸셜타임스, 이코노미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관련 지면을 장식했던 분석은 이른바 ‘중국·인도 책임론’이었다. 신흥공업국에서 수요가 급증해 수급이 극히 타이트해졌다는 논리였다. ‘자원민족주의 유죄론’도 뒤를 이었다. 베네수엘라, 이란 등이 기술과 자본을 보유한 서방의 석유회사들에 문호를 개방하지 않아 생산능력이 정체 또는 감소했다는 것이었다. 나이지리아, 이란 등에서의 지정학적 위기도 대서특필되며 아직 유가가 충분히 높지 않다는 주장을 뒷받침했다. 반면, 미국과 유럽에서 석유수요가 이미 2007년부터 줄고 있으며 그것이 중국 등에서의 수요 증가분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사실, 세계 원유생산량이 2008년 1·4분기에도 2.5% 늘었다는 사실, 따라서 전반적인 수급상황은 유가가 60달러였던 2006년 말과 거의 변동이 없다는 사실 등은 전혀 조명되지 않았다.

이러한 수급상황론에 대해 반론이 높아지자 새로운 논리들이 출현했다. 석유업계 및 금융업계와 연계된 연구소들에서는 “오랫동안 채굴장비와 선박들에 대한 투자와 인력양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단기간 내에 공급이 늘어날 수 없다”며 추가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었다. 부시, G8 재무장관 등이 가세하고, 감독기관인 CFTC 위원장이 나서서 “어떠한 투기의 징후도 발견하지 못했다”며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등 풀코트프레싱이 펼쳐졌다. 뿐만 아니라 엑슨모빌 등 거대석유회사들이 정유시설 가동을 10% 줄여 인위적으로 휘발유 공급부족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관측도 유력하게 제기되었다. 흔히 마약시장 다음으로 폐쇄적이라는 석유시장. 그 불투명성은 투기를 정당화하고 부추기는 데에 철저하게 활용되었다. 세계최대의 곡물기업 카길이 여전히 비상장회사로서 베일에 가려진 채 활동하는 국제 식량시장의 형편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이미 방영됐던 예고편 - 엔론 함정

석유와 식량 등 상품선물시장에서 투기세력의 발호는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예고돼 왔다. 2000년에 만들어진 ‘상품선물현대화법’ 때문이다. 이 법에 의해 장외시장, 역외시장에서의 선물거래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예를 들어 NYMEX에서는 지금도 옵션과 선물을 포함해 모든 거래가 다자간 공개경매 방식으로 이뤄진다. 모든 거래자, 거래량, 품목, 가격, 거래의 종류가 보고되며 철저한 감시와 승인 아래 이뤄진다. 그러나 장외시장에서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장소와 시간, 거래 종목에 어떠한 제한도 없다. 양자간 거래이니만큼 당사자간에 합의만 하면 된다. 마치 매입자가 카운터에서 물건을 사듯 1 대 1 거래가 이뤄지므로 규제당국을 포함한 제3자들은 심지어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알 수 없다. 역외시장의 경우도 그리 다를 게 없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서부텍사스중질유(WTI)의 30% 이상이 거래되는 런던ICE에서는 모든 거래가 익명으로, 오직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 이뤄진다. 그 대부분은 양자간 스와프 거래. 거래량의 제한이나 모니터링과 보고의 의무가 전혀 없는 이 시장 에너지부문의 주요 플레이어는 씨티은행과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거대 금융 자본들이다.

상품선물현대화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주도한 기업이 바로 한때 세계 최고의 혁신적 기업이라 불렸던, 그러나 실제로는 교묘한 수법으로 회계장부를 조작해 이익을 부풀려 발표했던 엔론이었다. 그들의 로비에 의해 상품선물현대화법안은 2000년 말 의회에 제출된다. 부시와 고어의 치열한 당선자 확정 소송이 끝난 직후 금요일 밤, 회기를 며칠 남기지 않은 채 1100여개의 다른 법안에 섞여서 …. 그리고 바로 이듬해 닷컴버블이 붕괴되기 시작하자 엔론은 이 법이 제공한 규제의 사각지대를 활용해 전력을 다른 주로 빼돌렸다 되사오거나 인위적으로 전력난을 조장해 비싼 값을 받는 수법으로 엄청난 폭리를 취했다. 그것이 2001년 캘리포니아 전력 공급 중단 사태의 내막이었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등으로 궁지에 몰린 금융자본들이 상품시장으로 대거 이동해 7년 전 엔론이 파놓은 함정(Enlon Loophole)을 재활용, 전세계의 서민들과 생산자본을 상대로 벌인 희대의 수탈극. 그것이 ‘3차 오일쇼크’와 식량위기의 본질이다. 탈규제가 제도화됨에 따라 ‘전염성 탐욕’은 모든 영역으로 확산됐고, 금융투기의 대상에도 경계가 없어진 것이다.

미국 헤게모니 체제의 위기, 그 불안한 미래

“식량을 지배하는 자는 한 나라를 지배하고, 석유를 지배하는 자는 한 대륙을 지배하고, 통화를 지배하는 자는 세계를 지배한다.”(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경계가 없는 금융투기는 곧 이번 위기가 얼마나 중층적이고 총체적인가를 상징한다. 그것은 금융, 식량, 석유라는 세 마녀가 함께 출렁거렸던 1970년대 초반 세계자본주의의 위기, 미국 헤게모니 체제의 위기에 버금가는 격변이 다가왔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71년 5월 계속되는 경기침체 속에서 미국은 사상 처음으로 무역적자를 기록한다. 달러투매와 자본유출이 벌어지고 결국 3개월 후 닉슨의 금태환 정지 선언이 발표된다. 그에 따라 달러화의 급락세가 계속되자 패러다임을 변화시켜 다시 ‘강한 달러’를 만들어내기 위해 키신저 등의 주도로 세계의 금융 및 정치계 내부자들의 비밀회합이 잦아졌다. 그리고 식량위기, 중동전, 1차 오일쇼크가 연이어 일어났다. 결국 4배나 폭등한 석유가 달러로만 결제되는 ‘석유-달러체제’가 만들어짐에 따라 달러의 위기가 진정되었다. 고전적 브레턴우즈체제는 그렇게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변동환율제로 이행했고, 그후 ‘강한 달러’를 바탕으로 30여년에 걸쳐 금융자본 우위의 신질서가 구축돼 왔다. 더불어 미국이 세계자본주의의 최종 소비자가 되고 중동과 일본을 위시한 신흥공업국들은 수출지향적 공업화를 추진하며 거기서 발생하는 무역흑자로 미국 국채를 사주는 국제 달러환류 시스템의 골격이 만들어졌다.

지금은 바로 그 ‘글로벌 불균형’이 다시 전반적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떤 패러다임이 새로 구축될 것인가? 지금으로선 어떠한 예측도 섣부를 것이다. 대신 무엇보다도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 미국 금융자본과 석유자본의 융합관계와 그들의 동향이다. JP모건과 합병해 JP모건체이스를 만들어낸 체이스맨해튼은행의 회장이 존 데이비슨 록펠러라는 사실, 최근 미국 구제금융 7000억달러의 총괄수탁은행으로 선정된 뉴욕맬런은행을 소유한 멜런가문의 걸프석유 소유, 엑슨모빌 주식의 73% 금융자본 소유 등에서 보듯 두 거대자본 블록은 사실상 한몸이 되어 군수, 화학, 자동차, 농업 등 전 분야의 자본과 얽혀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이해를 충실히 대변해온 통화주의자들 - 가이트너, 버냉키, 로렌 서머스 등 - 을 ‘검은 루스벨트’ 오바마 정부의 주요 포스트에 파견해놓고 있다. 비록 성공 여부는 알 수 없다 해도, 70년대 초반처럼 식량과 석유를 이용한 압박과 지정학적 위기 조장, 전쟁으로 달러체제의 생명 연장, 경계 없는 금융투기체제의 복구가 재시도될 필요조건이 이미 마련돼 있는 셈이다.

최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이 자행됨에 따라 유가가 소폭 반등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만약 그것이 이란이라면 사태는 어디까지 번져나갈까? 중동 발 외신기사를 접하며 조만간 훨씬 큰 규모로 유사한 사태가 재현되리라는 불길한 예감을 떨치지 못하는 건 단지 과민한 탓일까?


<사기꾼 수법’과 다름없는 선진금융기법>

기사입력 2009-01-04 17:49 | 최종수정
2009-01-04 19:20 / 경향신문 / 서의동 기자


ㆍ후불제 인수방식·사모펀드·공매도가 ‘문제’

#2005년 5월27일 금융감독위원회 제9차 정례회의는 주목할 만한 결정을 내렸다. 당시 여의도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던 리딩투자증권의 브릿지증권에 대한 합병을 승인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금융기관의 인수·합병이 금융감독당국에 의해 허가되지 않은 첫 사례였다. 리딩투자증권은 그해 2월 브릿지증권 지분 86.9%를 1310억원에 사들이기로 브릿지증권의 대주주인 BIH(브릿지 인베스트먼트 라부안 홀딩스)도와 계약을 맺었다. 리딩은 계약금 20억원만 먼저 받은 뒤 187억원은 인수권을 담보로 은행에서 빌리고 나머지 1103억원은 브릿지 증권을 사들인 뒤 이 증권사가 보유한 자산을 팔아 갚기로 계약했다. 자기 밑천의 65.5배나 되는 금융기관을 단돈 20억원을 투자해서 사들이겠다는 무모한 시도였다.

# ‘프리티 우먼’이란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인 에드워드(리처드 기어 분)는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하는 기업 사냥꾼으로 등장한다. 그는 자산이 탄탄한 제조업체를 인수한 뒤 갈기갈기 조각내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그에게 기업을 뺏기게 된 한 기업체의 사장은 이렇게 호소한다. “나에게는 기업을 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기업이 산산조각이 나면 직원들은 어떻게 하느냐, 그리고 지역 경제는 어떻게 하느냐.” 냉정한 에드워드의 대답은 간단하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첨단금융기법인가, 사기인가

브릿지증권 합병 시도와 리처드 기어가 구사한 M&A 기법은 후불제 인수방식(LBO·Leveraged Buy Out)으로 불리는 ‘선진금융기법’이다. 인수대상 기업이 가진 부동산이나 주식, 보유현금을 담보로 금융회사로부터 돈을 빌려 인수하는 방식이다.

지렛대(레버리지)를 이용해 작은 힘으로 큰 물건을 들어올리듯이 LBO는 외부에서 돈을 빌려와 그 돈을 지렛대로 덩치가 큰 상대기업을 사들이는 전략이다. 인수한 뒤에는 사들인 기업의 자산을 매각해 돈을 갚는 경우가 보통이다. 이 전략은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크게 확산된 뒤 전세계 기업 M&A 시장에서 일반화되고 있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을 연상케 하는 기법이다. 89년 KKR라고 하는 M&A 전문회사는 담배회사인 레이놀스-나비스코를 250억달러에 인수했다. 당시 KKR는 인수대금 가운데 190억달러를 레이놀스-나비스코 자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빌렸다. KKR는 나비스코를 사들인 뒤 60억달러짜리 자산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대출금을 갚았다.

LBO는 90년대 기업도산이 늘어나면서 한때 위축됐으나 2000년 이후 저금리 기조하에서 다시 성장하기 시작해 2006년에는 7000억달러 규모에 이르고 있다. 전세계 M&A에서 사모펀드 LBO에 의한 기업 인수·합병이 차지하는 비중도 2006년 17%에 달할 정도로 보편화되고 있다.

노동불안 심화

LBO는 실적을 내지 못하는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고 기업가치를 높여 경제성장에 기여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반면, 사모펀드의 LBO는 인수대상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량해고 등으로 고용불안을 조성하고 우량기업까지 위협하는 부작용도 크다.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모아 조성된 사모펀드의 특성상 투자대상 기업의 장기적 발전 가능성에 주목하기보다는 단기에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만 주목한다. 자금을 투자해서 공장을 짓고 종업원을 고용, 상품을 만들어 실적을 내는 전통적 방식의 기업경영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노동과 기술개발로 생산성을 높이기보다 ‘땀을 흘리지 않는’ 금융기법으로 주주가치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노동의 가치를 좀먹는 것이다. 사모펀드가 가령 제조업체를 인수했다면, 부동산 등 알짜 자산을 잘라 팔아버리고 청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게다가 기업인수 초기 과정에서 비용절감을 위해 대규모 감원을 하고 복지혜택을 축소하면서 노사분쟁을 초래한다. 인수 대상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여유자금을 자사주 매입에 쓰거나 배당금 증액에 사용하느라 투자축소, 경쟁력 약화를 감수해야 한다.

멀쩡한 기업 사들여 공중분해

브릿지 증권을 인수했던 BIH는 98년 대유증권을 인수한 뒤 2000년 일은증권을 다시 인수해 두 회사를 브릿지증권으로 합병했다. BIH는 외환위기 이후 주식시장이 호황을 맞은 99년 대유증권이 839억원의 흑자를 내자 BIH는 주식액면가의 70%인 주당 700원의 초 고배당을 통해 204억원을 빼내갔다. 이후 자사주 매입과 유상감자(자본금을 줄여 주주가 나눠갖는 것), 사옥매각을 통해 증권사를 껍데기만 남겼다. 마지막으로 LBO라는 방식으로 증권사 매각을 시도하려다 금융감독당국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당시 합병건을 심사했던 금융감독원 박권추 팀장은 “통상적인 LBO와 달리 브릿지의 경우 제3의 자금원이 없었고, 대주주에서 돈을 빌려서 상환하는 구조라는 점 등이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당시 브릿지증권 매각 반대를 주도했던 골든브릿지증권 강승균 노조위원장은 “매각이라기보다는 사실상 회사를 청산하겠다는 것이 당시 대주주인 BIH의 의도였다”고 말했다.

사기수법 닮은 공매도

올해 주식시장이 출렁였던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외국인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시장에 돈을 지속적으로 빼내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매도’라는 투자기법 탓도 컸다. 일반적으로 주식투자는 주식이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아 차액을 벌어들이는 방식이다. 반면 공매도는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생각될 때 주식을 빌려서 매도한 뒤 가격이 떨어지면 다시 사들여서 갚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주가가 100원일 때 투자자가 증권사로부터 100주를 빌려 팔았다고 치자. 1만원의 돈이 손에 들어온다. 그런데 주가가 하락해 주당 80원이 됐다. 주식을 빌려준 증권사에는 주식으로 갚는다. 투자자는 시세와 상관없이 100주만 갚으면 된다. 그러므로 8000원으로 80원짜리 주식 100주를 사서 갚는다. 2000원을 벌게 되는 셈이다. 이런 수익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공매도가 성행하면 기업가치와 무관한 주가가 형성된다.

국내 대표적인 기업들이 지난해 7월 이후 주가가 하락을 면치 못했던 것도 이런 공매도 탓이다. LG전자는 올 3·4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4.85%나 증가했는데도 주가는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주가가 23.5%나 떨어졌다. 한국을 대표하는 수출기업이고 환율급등으로 수출경쟁력까지 향상돼 개인투자자들의 투자가 몰렸지만 공매도로 결국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된 것이다.

공매도가 성행할 당시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투자자들이 공매도를 성공시키기 위해 주식을 산 뒤 증권가에 괴담을 유포시켜 해당 기업의 주가를 더욱 떨어뜨렸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공매도의 폐해가 전세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면서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 공매도 규제가 확산됐고 한국 정부도 지난해 9월 뒤늦게 공매도 개선방안을 내놨다. 금융경제연구소 채지윤 연구원은 “공매도는 주식시장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는 위험천만한 투자”라며 “첨단투자기법으로 포장돼 있지만 실제로는 사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파생상품 ‘시한폭탄’… 견제도 감시도 없었다>

기사입력
2009-01-04 19:20 / 경향신문 / 전창환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ㆍ금융위험에는 장벽이 없다-허술한 방어벽

이번 미국의 금융위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우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극단적인 저금리정책으로 과잉유동성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어 부동산 거품이 광범위하게 형성된 것이 위기의 기본적인 배경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단기금융수익성에 혈안이 된 미국 투자은행들의 CEO들이 높은 차입비율에 기대어 위험천만한 파생상품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시적인 개별 기업이나 국가 차원에서 이런 행태에 대해 제대로 견제와 감시를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실제 미국의 투자은행들은 일반 상업은행에 적용되는 레버리지(차입) 비율보다 두 배 이상 높은 30 대 1의 높은 레버리지를 이용했다. 과연 이들은 이렇게 높은 레버리지를 이용하여 무엇을 했던 것일까?

이들은 부동산담보대출채권을 증권화하여 새롭게 만든 부동산담보부증권(RMBS), 이 부동산담보부증권에 여러 가지 다른 채권(학자금대출·기업대출·카드론·자동차할부대출 등)을 혼합하여 리스크와 수익의 조합을 기준으로 조성한 다양한 형태의 부채담보부증권(CDO), 그리고 CDO 등의 디폴트 리스크(부도위험)에 대비하여 일정한 보험료를 지불하면 원금을 보전해 주는 보증보험계약의 일종인 신용부도스와프(CDS) 등의 거래에 뛰어들어 고수익을 추구했다.

그 결과 특히 위험이 아주 높은 신용부도스와프(CDS) 거래가 크게 성행했다. 2007년 2·4분기에 무려 62조1732억달러에 달했던 명목상의 CDS 계약 잔액이 2000년에는 아예 제로였던데서 알 수 있듯이 CDS는 지난 8~9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오죽했으면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이 신용파생상품을 가리켜 지난 10년 동안 가장 중요한 금융혁신이라고 했을까.

하지만 이렇게 급팽창하는 CDS 시장에 여러 가지 문제가 내재해 있었다. 우선 증권거래 규제를 총괄하고 있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크리스토퍼 콕스 위원장이 2008년 10월23일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 공청회에서 한 증언이 문제의 핵심을 잘 말해 준다.

콕스 위원장은 CDS 시장에는 규제감독기관이 없고 시장형 금융에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정보공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나아가 그는 CDS 거래에서는 현물증권을 보유할 필요가 없어 CDS 거래가 일종의 공매도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런 점들을 근거로 콕스 위원장은 CDS에 대한 규제권한을 SEC에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해 줄 것을 의회에 요구했다.

지난 몇 년간 베어스턴스, 리먼브라더스와 같은 투자은행들은 CDO를 판매함과 동시에 CDO의 디폴트 리스크에 대한 보험 상품인 CDS를 동시에 판매했다. CDO의 디폴트 리스크를 우려한 투자가들은 리먼브라더스로부터 CDO를 매입함과 동시에 리먼에 이에 대한 보험료인 CDS프리미엄을 지불했다. 문제는 CDO의 디폴트 리스크가 빈발하면 CDS를 판매했던 투자은행이나 AIG 같은 보험회사들에 대해 CDS 계약이행요구가 쇄도하게 될 때 이에 응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CDS 판매자인 투자은행이나 보험회사들에 대해 보증에 필요한 준비금규제가 전혀 없어 CDS 판매자가 보증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CDS 거래의 대부분이 장외거래여서 일단 커다란 디폴트 리스크나 거대 중개업자가 파산되면 결제 및 청산에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특히 지난해 9월처럼 주요 거대 CDS 판매자인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고 AIG의 부실이 커져 ‘계약 상대방의 리스크’가 커지면, 결제 및 청산 리스크를 우려하는 투자자들이 이 계약 상대의 리스크에 더 민감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지난해 9월 말 CDS 스프레드가 급속히 상승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신용파생상품에 대한 규제가 이렇게 허술해진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1990년대 이후 파생상품거래량이 크게 증가하여 그 위험성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린스펀 FRB, 로버트 루빈 전 재무부 장관, 레빗 증권거래위원장 등은 오히려 파생상품거래에 대한 공적 규제를 완화했다. 당시 FRB의 한 이사가 그런스펀 주도의 파생상품 규제완화에 대해 여러 차례 반대와 이견을 제출했지만 그린스펀은 그의 충고와 제안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당시 상품선물거래위원장만 CDS 거래에 대한 공적 규제를 강화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린스펀과 루빈에 밀려 이렇다할 만한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런 역학 구도에서 나온 파생상품거래에 대한 대폭적인 규제완화법이 바로 ‘2000년 상품선물현대화법’이다.

실제 이 법의 제정으로 CDS와 같은 고위험 신용파생상품이 아무런 규제 없이 거래될 수 있게 되었다. 애시당초 이 법은 업계의 자율규제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최근까지 드러난 것처럼 단기고수익창출이 지상의 목표인 업계에서 자율규제가 제대로 작동할 리 만무했다.

지난해 9월 말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가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결과적으로 리먼브라더스를 제외한 4대 투자은행에 대한 규제감독권한이 모두 FRB로 이양됐다. 이로써 금융감독기관으로서 FRB의 지위가 이전보다 더 공고해졌다.

문제는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은행지주회사에 편입된 증권자회사에 대한 규제감독권한은 여전히 SEC에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때문에 향후 미국의 금융감독체제가 얼마나 잘 작동할 수 있을지는 FRB와 SEC가 얼마나 서로 긴밀한 협조 관계하에서 거대 금융기관들을 효율적으로 감독할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금융위기에서 무기력하고 초라한 위상을 여실히 드러낸 SEC가 어떻게 자신의 위상을 재정립할 것인지가 아주 중요하다. 우선 SEC가 CDS 거래에 대한 규제권한을 확보할 수 있을지, CDS 거래의 중앙결제기관을 창설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SEC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와 통합하여 증권·파생상품거래업무와 행위규제의 책임당국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바로 이 문제가 버락 오바마 정부가 해결해야 할 중차대한 과제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SEC의 역사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주어질 수 있을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금융위기를 보는 두개의 시각>

기사입력 2009-01-11 18:22 | 최종수정 2009-01-11 19:01 / 경향신문

노동·자본간 불평등 심화…금융 독재는 역사적 침몰

금융위기 속 ‘마르크스의 반격’

“역사는 종말을 고했다. ‘우파의 이념적 승리’는 완료됐고, 모두가 만족한 가운데 자본주의는 사회구조의 결정적 형식으로 굳어졌다.” 우리를 거의 설득시킨 이 담론은 2008년의 금융 대지진으로 무너졌다. 런던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2008년 10월13일은 영국 자본주의 시스템이 실패한 날로 기록될 것”이라 평가했다. 뉴욕 월가의 시위대는 “마르크스가 옳았다!”라는 팻말을 치켜들었다.

<자본론> 등 한 세기 반 이전 마르크스의 저작 모두를 현 상황에 직접 대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늘날과 다를 바 없는 사회상을 제시한다. “금융 귀족이 법을 명하고 국정을 지도하며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넣어 여론을 지배한다. 이들이 전 영역에서 생산에 의하지 않고 타인의 부를 강탈하면서, 매춘, 사기 등을 재생산하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이는 1848년 혁명 직전 프랑스의 묘사다.

금융위기 원인으로는 복잡한 금융 상품의 휘발성, 자체 규제 불능의 자본시장, 금융계의 도덕적 해이 등이 거론된다. ‘실물경제’에 대한 ‘가상경제’의 시스템 붕괴가 원인이란다. 하지만 ‘가상’의 비극은 ‘실물’에 뿌리를 둔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은행 융자를 안고 집을 산 수백만 미국 가계의 부채상환 불능 상태에서 야기됐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축적의 일반 원칙’을 보자. 그는 자본가 계급이 생산의 사회적 조건을 사유할 경우 “생산 발전의 모든 수단이 지배 수단, 생산자 착취 수단으로 전복된다”고 설명한다. 생산자들이 희생되는 동안 축적된 자본은 자체 동력을 얻어 광적으로 비약한다. ‘한 극점에서의 부의 축적’은 정반대 극점에서 ‘비례적 빈곤 누적’을 초래, 격렬한 상업·금융위기를 낳는다.

신용위기의 파괴력은 생산위기로 전화됐다. 이는 노동·자본 간 분배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최근까지만 해도 시장 자유주의의 적실성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용납하지 않던 자유주의자들이 자본의 ‘도덕화’, 금융 ‘규제’ 등 위기 해결책을 들고 나선다. 자본의 도덕화란 블랙코미디다. 자유경쟁 체제가 망친 사회 미덕은 바로 ‘도덕을 고민하는 것’이었다.

진정 도덕적 경제생활을 원한다면, 악덕 기업주의 잘못 따위 지엽이 아닌 근본을 바로잡아야 한다. 모든 개인적 행위들 너머 자본주의 원칙, 그게 문제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부를 창출하는 수단, 상품으로 전락시킨다. 물론 국가의 규제 기능으로 사회의 비도덕을 개선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자 감세, 우정 민영화를 벌이는 사르코지 등 우파 정권에 규제자 역할을 기대하는 일은 순진하거나 위선적인 짓이다.

사회적 관계가 근본적으로 재고돼야 한다. 마르크스는 <1844년 수고>에서 ‘소외된 노동’의 개념을 고안했다. 임금 노동자가 자신의 물질적, 도덕적 결핍을 감수하면서까지 남을 위해 부를 창출하는 저주스러운 상황을 뜻한다. 산업재해, 정리해고, 저임금 등 오늘날 임금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이 이 개념을 뒷받침한다. 자본은 생산자들을 끊임없이 생산 수단에서 괴리시키고, 무한경쟁 상태로 내몬다. 기술적, 경제적, 정치적, 이념적 과정으로 생산자를 포섭, 종속시킨다.

금융위기는 인간소외의 단면을 보여준다. 아무도 위기를 원치 않았지만 모두 위기에 노출된다. 자본주의는 ‘일반화된 규제 철폐’를 극단적으로 몰아붙여 규제 부재의 황무지를 만든다. 스스로 규제할 능력이 결여된 체제는 구성원에게 엄청난 대가를 요구한다. 우리는 즉시 자본주의를 초월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대안은 동유럽에서 실패한 공산주의 ‘실험’ 탓에 왜곡당한다. 스탈린-브레즈네프식 사회주의가 공산주의로 오인되는 동안 사람들은 진정한 ‘공산주의’의 의미를 도외시한다. “다른 사회란 파멸적 유토피아일 뿐이다. 우리는 인간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라는 냉소가 퍼진다.

자유주의 사상에서 ‘인간’은 사회로부터 유래되지 않은 자생체이고, 오직 자신의 이익에 충만한 동물(호모 에코노미쿠스)이다. 따라서 인간 사회는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지배하는 사유 재산의 사회만 가능하다고 한다. ‘경쟁적 인간’ 이데올로기는 ‘살인자가 되자’는 비인간적 교육을 권장한다. 일확천금의 광풍 속에 전방위적 탈문명화를 진행한다. 하지만 결국 금융독재의 역사적 침몰 맨 밑바닥에 자유주의적 인간 담론이 깔려버렸다.

마르크스는 자유주의 담론에 대항할 혁명의 초안을 제시한다. 그는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자신의 여섯 번째 테제에 “인간의 본성은 개별적으로 분리된 개인의 고유한 어떤 추상물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 속에서 전체 사회적 관계의 총체이다”라고 썼다. 자유주의 담론과 반대로 ‘인간’은 ‘인간의 세상’에서 유래한다. 인간과 사회는 서로 상대방을 발달시킨다. 그렇다. 우리는 인간의 삶을 바꿀 수 있으며, 이는 사회를 바람직하게 바꾸는 조건하에서 가능한 것이다.

<루시앙 세브 프랑스 공산당 중앙위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발췌(www.ilemonde.com) >

▲마르크스

자본주의는 내재적 한계를 끊임없이 극복하려 노력하지만, 극복 수단들이 결국 더 큰 한계를 새로 만들어낼 뿐이다. (자본론 3권)

금융거래 활동이 스스로 가치를 생산해낸다는 생각은 ‘가장 바보 같은 망상’일 뿐이다. (자본론 3권)

시장실패 아닌 정책 잘못…위기본질 지나친 개입 탓

신자유주의는 실패했나?

최근 비우량 담보 시장에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로 경제가 혼란에 빠지자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시장 개입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금융위기의 원인이 규제 완화와 작은 정부 때문이라고,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선언하면서 큰 정부의 도래를 환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같은 진단과 해법은 금융위기의 본질에 대한 잘못된 접근에서 나온 것이다.

그 본질에 접근하는 중요한 단서는 상환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에 대한 주택 담보 대출이다. 이 담보 대출의 부실화에서 부동산 시장의 거품 붕괴가 촉발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저소득층에 대한 주택 담보 대출을 늘려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야기한 원인이다.

그 원인은 세 가지이다. 첫째로 1995년 지역재투자법(CRA)을 대폭 개정해 은행들로 하여금 저소득층에 대한 담보 대출을 늘리도록 했다. “누구나 내 집 갖기”라는 주택 보급 정책을 위해서였다. 의회와 정부는 연방주택청(FHA)이나 주택도시개발부(HUD) 등 정부기관을 동원해 은행들에는 대출심사 기준을 대폭 낮추도록, 패니메이(Fannie Mae)와 프레디맥(Freddie Mac)에는 비우량 주택 담보와 이에 근거한 유동화 증권을 구매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그러자 은행들은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위험한 담보 대출을 늘리고 이를 유동화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주택가격의 버블을 야기한 두 번째 요인은 서민들의 주택보유를 확장하기 위해 정부가 지원하는 모기지 전문회사의 도덕적 해이다. 정부와 의회는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손실에 대한 보증을 약속했다. 그래서 그들은 손실은 생각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비우량 담보 구입과 이에 기반을 둔 유동화 증권의 규모를 늘려갔다. 그 결과는 서민층 주택구입의 활성화와 주택가격의 버블이다.

금융위기의 세 번째 원인은 연방준비은행의 방만한 통화정책이다. 심지어 1%라는 초저금리정책을 통해서 유동성을 확대시켰다. 은행들은 늘어난 유동성을 소화하기 위해 저마다 대출처를 찾아 나섰다. 이것이 주택시장의 과열로 연결되었다.

이 세 가지 요인은 자유와 책임, 작은 정부를 국정원리로 하는 신자유주의를 저버린 정책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의 금융위기는 시장실패가 아니라 정부정책의 잘못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시장규제와 손실의 보증이 없었더라면, 유동성을 과잉 공급하지 않았다면 지금 같은 위기는 없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위기가 월가의 탐욕 때문에 생겨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접근법은 옳지 않다. 탐욕은 자기 이익추구로서 특수한 사람이나 상황에서 관찰되는 것이 아니라 늘 어디에서나 목격되는 인간의 불변적인 심성이다. 따라서 이것을 가지고는 평시와는 전적으로 상이한 금융충격의 발생을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탐욕을 위기로까지 몰고 간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 시장에 거침없이 풀린 돈과 정부의 시장 개입이 그 이유다.

금융위기가 규제 완화의 탓이라는 주장도 터무니없다. 80년대 말 이래 지속적으로 규제가 증가해왔는데 규제가 가장 많이 늘어난 부문은 주택 부문이고 그 다음이 금융 부문이다. 99년 ‘그램-리치-브릴리 법’으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겸업이 허용됐다. 이런 규제 완화가 금융위기의 원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겸업이 금지됐더라면 이번 금융위기로 상업은행들이 신용위기에 몰려 있던 투자은행을 흡수 합병하지 못해 위기의 여파가 더욱 극심했을 것이다.

감독부실이 위기의 원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지식 문제 때문에 정부의 시장에 대한 감독이 어렵다. 감독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언제, 그리고 왜 감독해야 하는지에 관한 지식이 필요한데 정부는 그런 지식을 전부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정부의 감독은 늘 부실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감독에 필요한 지식과 관련해 시장이 정부보다 현명하다. 시장은 그 같은 지식을 발견하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시장이 교란되면 ‘발견의 절차’가 작동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시장을 교란시킨 요인이다. 그것은 방만한 통화 공급과 정부의 시장 개입이다.

금융위기의 원인이 정부의 개입임에도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문제의 해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한 때문이다. 시장 개입은 경제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고 지금의 고통을 미뤄 나중에 더 큰 고통을 겪을 위험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다고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손놓고 뒷짐지고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시장경제의 원리를 확립하는 일이다. 개인의 책임과 경제활동을 방해하는 제도와 규제들을 걷어 내고,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고 세금을 낮춰야 한다. 그러면 우리 경제는 지금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안정적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정도(正道)다.

▲하이에크

국가의 경제 개입은 모든 개인을 노예로 만든다. <노예의 길>(1944)

정부의 시장 개입은 문제이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자유의 헌법>(1961)

세상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은 치명적 자만이다.

<치명적 자만:사회주의의 오류>(1988)

<민경국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대공황과 현재 위기 비교>

기사입력 2009-01-11 18:22 | 최종수정
2009-01-11 19:01 / 경향신문 /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 교수


ㆍ친부자 정책따른 소득분배 악화
ㆍ1920년대말 美상황 그대로 재현


최근의 미국발 경제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선 미국의 소득분배 추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상위 10%가 가져가는 소득의 비중은 1910년대 후반 40%였으나 1920년대 후반에 들어 45% 근처에 이르렀고, 1928년에는 더욱 악화돼 50%에 근접한 뒤 대공황을 맞았다. 2차 대전 이후 이 수치는 35% 수준을 유지했으나 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이후 지속적으로 나빠져 마침내 2006년 50%를 넘어섰다. 마치 상위 10%가 소득의 절반을 가져가는 현상이 경제위기의 척도가 되는 양 두 번의 역사적 경험에서 모두 경제위기가 초래되었다.

소득분배 악화는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 등 경제환경의 변화에도 영향을 받았지만 정부 정책이 핵심적 요인이었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시작된 감세와 규제완화 정책은 2000년대 부시 행정부의 친기업·친부자 정책으로 이어졌다. 이는 1920년대 재무부 장관이었던 멜론과 상무부 장관을 거쳐 대통령을 역임한 후버가 추진한 정책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러한 정책은 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측면도 있으나 정부가 부자의 소득이 늘어야 경제가 성장한다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를 내세워 부자와 대기업만을 위한 정책을 편 탓에 위기를 증폭시켰다. 1920년대에는 대량생산이 효율성을 좌우하게 되자 시설 확충 경쟁이 일었고, 이는 주기적인 경기침체를 가져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후버는 기업연합회를 통해 가격과 생산을 조절하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대규모 기업집단으로의 경제력 집중만 심화되었고 높은 수익을 올리는 기업집단들의 과잉투자는 계속됐다. 80년대 미국은 제조업의 경쟁력 상실로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규제완화 정책을 폈고 그 결과 금융산업의 비중이 커졌다. 그러나 비대해진 금융산업은 계속 규제완화를 요구했고 이것이 금융건전성 감독을 훼손하게 되었다.

거시경제 측면에서 보면 소득분배 악화는 결국 소비여력을 축소시킨다. 부유층의 소득이 증가하면서 외형적으로 경제는 성장하지만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의 실질 구매력이 줄어들면서 경제전체의 수요기반이 축소된다. 이러한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구조조정 대신 문제를 피상적으로 해결하려는 정책은 거품을 조장하게 되는데, 그 결과 주식 거품과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며 경제위기를 촉발했다.

대공황과 현재의 경제위기에는 차이점도 있다. 1920년대 당시 경제학은 경제위기를 예측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반면 이번에는 수년 전부터 많은 경제학자들이 미국 경제구조의 취약성을 지적했음에도 시장과 정책당국은 철저히 묵살해왔다. 이것은 경제의 안정을 바라는 국민경제의 요구에 반하는 정치·경제학적 장치가 작동했음을 의미한다. 경제위기는 기득권 세력의 몰락을 가져와 이러한 장치를 정지시킬 수 있는 체제전환을 가능케 한다. 대공황 당시 루스벨트 행정부의 뉴딜정책이 구조의 전환을 가져왔고, 이번에도 그런 체제 전환의 성공 여부가 위기 극복의 최종 시험대가 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차이점은 1930년대 미국은 세계 산업의 중심이었지만, 현재 미국은 대부분의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상실했다. 전자나 자동차 등 제조업의 취약성을 보완해 온 금융산업이 무너짐에 따라 미국의 성장동력은 심각하게 훼손됐다. 이러한 미국의 구조적 문제는 필연적으로 국제적 갈등을 초래한다. 새롭게 세계 산업의 중심으로 떠오른 중국을 포함해 여타 국가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국제적 공조를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갈등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1930년대에는 경쟁력을 갖춘 미국이 자국의 이익만 챙기다 결국 파시즘이 발호했고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을 맞기도 했다.

경제위기가 진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정책 대응의 효과를 주목해 보아야 한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1930년대와는 달리 무제한적인 재정·금융정책을 집행하고 있는데 그 성공여부는 확신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앞서 지적한 미국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 없이 재정·금융정책만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가시지 않고 있다.


<역사로서의 현재 -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기사입력 2009-01-11 18:22 | 최종수정
2009-01-11 19:01 / 경향신문 / 정태인 경제평론가 · 전 국민경제 대통령비서관


ㆍ산업순환상의 위기·지배 이데올로기의 위기·패권국가의 위기

“현재의 위기는 약 10년마다 오는 산업순환상의 위기에, 시장만능론이라는 30년짜리 지배 이데올로기의 위기, 그리고 100년에 한 번쯤 오는 패권국가의 위기가 겹쳐진 것이다.”(경향신문 2008년 12월3일자 경제칼럼) 말하자면 ‘3중의 위기’인 셈인데 1929년 즈음의 대공황기가 이에 해당하는 유일한 역사적 사건이었을 만큼(물론 패권국가 위기의 위치에서 상당한 차이가 나지만) 우리는 지금 좀처럼 체험하기 힘든 역사의 고비에 서 있다.

‘3중의 위기’

그림에서 보듯이 우리는 1945년 이후 대체로 10년마다 찾아오는 6번째 산업순환상의 위기를 맞고 있다. 금융스캔들만 봐도 80년대 말에 터진 블랙먼데이(주가대폭락)와 저축대부조합(S&L)사건, 90년대 말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사태, 2001년의 엔론사태가 있었고 이런 문제들이 그때 그때 미봉되다가 급기야 수습 불능의 시스템 위기로 발전한 것이 이번의 위기이다.

60~70년 주기의 콘드라티에프 파동으로 본다면 45년부터 70년께까지의 호황(A국면)에 이어 그 이후 전개된 하강(B국면)의 마지막 단계에 우리는 서 있다. A국면은 주지하다시피 포드주의·복지국가·케인스주의가 일궈낸 ‘자본주의의 황금기’였다. 오랜 호황과 재정확대정책이 불러온 인플레이션, 달러본위제에 따른 미국의 경상수지 악화는 결국 71년 닉슨의 금태환 정지 선언과 73년의 오일쇼크로 이어져 ‘영광의 30년’은 끝을 맺었다. 공화당 후보 닉슨이 “우리는 모두 케인시언”이라고 선언한 바로 그때 케인스주의는 이미 막을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어 레이건과 대처가 등장하면서 금융자본 우위의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렸다. 이 흐름은 라틴 아메리카 외채위기를 겪으면서 90년대 초에 감세와 민영화, 그리고 규제완화라는, IMF-미 재무부-월스트리트 3각동맹의 ‘워싱턴 컨센서스’로 정식화되었다. 80년대부터 2007년까지 미국은 평균 2.9%의 경제성장을 거뒀는데(50~60년대에는 평균 4.25%) 성장의 과실은 주로 최상위 계급에 집중되었다. 69년도 말 53%를 넘어섰던 노동분배율은 클린턴 집권 8년 동안 잠깐 반등했던 것을 제외하곤 줄곧 떨어져서 현재 45%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상층의 금융자본은 결국 부동산·주식거품을 최대한 부풀리는 ‘허구의 성장’을 꾀할 수밖에 없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말 그대로 30년간 우리를 지배한 시장만능의 논리와 신자유주의는 이론적으로도, 실제로도 허구였다.

미국의 부족한 민간소비와 정부지출을 메운 것은 외채와 전쟁이었고 이것은 곧 세 번째의 장기 위기를 불러왔다. 월러스틴, 아리기 등의 세계체제론자들에 따르면 미국의 패권이 발흥한 것은 1873년께이며 패권이 확립된 것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였다. 이후 70년대 말까지 안정적이던 미국의 헤게모니가 쇠퇴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90년대 IT붐에 입각한 이른바 ‘신경제’는 미국을 슈퍼파워로 부활시킨 듯했지만 이후 금융화의 급진전과 이라크전은 결국 미국을 좀처럼 헤어날 수 없는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장 쉬워 보이는 10년짜리 위기의 탈출도 만만치 않다. 폴 크루그먼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의 경험에 비춰 볼 때 2년간 2조달러 이상의 재정을 쏟아붓고 그 이후로도 마이너스 이자율 상황을 상당 기간 지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루비니의 말대로 지금 미국 정부는 ‘최후의 대부자’인 동시에 또한 ‘최후의 소비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경상수지적자와 재정적자가 모두 GDP의 6%에 이른 파산상태의 미국경제가 이런 대규모 지출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과연 오바마는 이미 여러번의 금융스캔들이 드러낸 잘못된 유인구조와 부적절한 규제체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수 있을까? 예컨대 회계법인은 기업의 분식회계를 도울 유인을 가지고 있고 신용평가회사는 실제보다 높은 평가를 내렸다가 문제가 생기면 한꺼번에 등급을 내려 위기를 촉진하며 경영자들 역시 단기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제도, 그리고 ‘그램-리치-브릴리 법’을 비롯해서 투자은행과 파생상품의 규제를 포기하게 만든 수많은 제도를 바로잡고 연방은행에 시스템 위기의 관리라는 광범위한 목표를 수행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묶어 지주회사로 편입시키면 오히려 위기가 확대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비책은 마련하고 있을까? 서브프라임 모기지보다 훨씬 규모가 큰 CDS·회사채·자동차채권 등에서도 앞으로 1~2년 내에 추가로 문제가 터질 가능성이 농후한데, 과연 현재의 금융 대책만으로 문제가 해결될까? 스티글리츠의 비유대로 수혈을 아무리 해도 뇌출혈 환자가 건강해질 수는 없는 법이다.

근본적으로 월스트리트는 위기의 진원인 동시에, 세계의 자본을 불러들여 부채를 보전하며 또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황금거위’인데 오바마가 여기에 과연 칼을 댈 수 있을까? 스티글리츠나 크루그먼이 아닌, 서머스와 가이트너를 백악관과 재무부에 포진시킨 것은 이 모든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글로벌 불균형 해결이 난제

더 큰 난제는 현재의 글로벌 불균형과 국제통화체제이다. 45년에서 71년까지는 금태환을 전제로 하는 달러 페그제로 이른바 ‘트릴레마’(자유로운 자본이동·고정환율제·독립적인 금융정책 가운데 두 가지 이상을 선택할 수 없다) 가운데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포기한 것이었고, 70년대 중반부터는 셋 중 고정환율제를 포기한 체제로 서로 다르지만 달러가 기축통화임에는 변함이 없다.

두 체제 모두 강한 달러를 배경으로 A국면에는 유럽의 수출주도성장을, B국면에는 일본과 아시아 닉스(NICs), 그리고 이어서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의 수출주도성장을 부추겼다. 모든 기축통화국가는 강한 통화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국제질서 유지의 비용을 국제수지 악화라는 형태로 치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미국의 경상수지가 적자를 넘어 80년대 이래 점점 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데 있다. 앞으로 미국이 금리를 올리든, 아니면 인플레이션으로 대응하든 아시아 국가들이 대외지불준비금(외환보유)을 달러로 보유할 유인은 점점 약해질 것이다. 이번의 금융위기는 이런 상황에 최후의 일격을 날린 셈이다

이른바 ‘포스트 브레턴우즈’ 체제는 아마도 과거 유럽통화체제(EMS)의 복합바스켓 제도일테지만 이것이 공식 제도가 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아이켄그린이 예측하는 대로 달러와 유로가 사실상 복수의 기축통화로 기능하다 여기에 아시아 통화(위안이나 엔 또는 아쿠(ACU))가 추가되는 정도가 현실적인 경로가 아닐까?

어느 경우든 미국의 달러 패권은 무너진다. 미국의 군사력은 여전히 압도적 우위를 자랑하지만 이라크전에서 보듯이 한 나라를 완전히 제압하기에도 역부족이다. 현재의 10년짜리 위기가 파국까지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앞으로 꽤 오랫동안 우리는 지극히 불안정한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기존 패권은 무너지고 있지만 신흥 패권은 아직 확립되지 않은 상태, 신자유주의는 무너졌지만 새로운 축적의 원리는 발견되지 않은 상태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은 어떤 선택을 할까? 아마도 80년대 중반의 플라자협정, 그리고 미일반도체협정을 떠올리며 만만한 나라에 비용을 치르게 하는 단기 해법을 선택할 것이다. 다만 이제 그 상대가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사실이 미국의 고민일테고 훨씬 만만한 상대로 한국이 자동차 등에서 먼저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목숨을 건 환율전쟁, 금리전쟁, 통상마찰, 심지어 군사적 전쟁…. 그 한복판에 한반도가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위기 원인” 41%>

기사입력 2009-01-11 18:22 | 최종수정
2009-01-11 20:00 / 경향신문 / 장관순 기자


ㆍ금융위기 원인과 대안…국내 전문가 51명 설문

경향신문이 전문가 51명을 대상으로 금융위기의 원인을 물은 결과,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미국발 금융위기의 원인”이란 답변이 가장 많았다. 위기의 대안으로는 “시장 우위 구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신자유주의 체제 문제, 정책의 실패, 자본주의 자체의 한계 순으로 응답했다. ‘신자유주의적 금융자유화에 따른 시장의 자기붕괴’라고 밝힌 응답자가 21명(41.17%)으로 가장 많았다. 이 응답자는 주로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 등 비판적 학자, 시민운동가들이었다.

다음으로는 ‘저금리에 따른 유동성 과잉, 부실한 금융감독 체계 등 정책의 실패’라고 답한 이가 14명(27.45%)이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 등 주로 시장 자유주의자들과 경제연구소 관계 자로부터 나왔다.

또 ‘생산관계 모순 등 자본주의 자체의 본질적 한계’란 응답도 7명이었다. 대부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의 견해였다. ‘신자유주의의 오류와 정책실패의 복합’이란 응답은 4명이었다. ‘방만한 통화정책과 정부의 지나친 시장개입’이 문제라는 지적(1명)도 있었다. 이밖에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가 아닌 로마 제국처럼 수없이 명멸해간 많은 왕조와 같다”(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 등 4명의 기타 의견이 있었다.

‘향후 세계 경제가 추구할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는 ‘시장 우위 체제에 대한 개선’을 제시한 의견과 ‘시장 우위 체제 유지’ 의견이 22명(43.13%)씩 나뉘었다. 비판적 학자들과 시민운동가들이 주로 정부와 시민의 시장 개입 강화 등 체제 개선을 주문했고, 시장 자유주의자들과 경제연구소 관계자들이 주로 시장을 중시하는 답변을 내놨다.

체제 개선 의견으로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대안 체제 모색’이란 답변이 12명으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정부 개입 강화, 복지 강화 및 자본 자유화 후퇴’란 답변이 10명으로 나타났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이미 유럽에서 제약사의 생산 계획에 시민이 참여하는 등 비사회주의 형태의 참여계획경제가 대안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체제 유지 의견으로는 ‘시장 우위 체제를 유지하면서 세계 경제 구심점 다극화’라는 응답이 15명으로 가장 많았다. 또 ‘시장 우위 하에서 정부 개입 강화 및 세계 경제 구심점 분산’이란 응답이 ‘미국 중심의 시장 우위 체제 지속’이란 보수적 응답과 함께 각각 3명씩으로 조사됐다. 신자유주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도 1명 있었다.

기타 의견으로는 “최소한 미국 중심의 브레턴우즈 체제를 넘어설 대안이 있어야 한다”(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국내 차원에서는 제조업과 중소기업 중심의 생산기반이 강화되고, 노동배제적 생산체제를 재편해야 한다”(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등이 제시됐다.

설문에는 경제·경영학자 21명, 비경제 분야 학자 13명, 경제연구소 관계자 11명, 시민운동가 6명 등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