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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Articles/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1부 무너지는 시장 만능 신화-(6)금융자본의 위험한 게임 下-키코

<은행믿고 가입한 ‘키코’가 멀쩡한 회사 죽일 줄이야>

기사입력 2008-12-28 18:31 |최종수정
2008-12-28 18:42 / 경향신문 / 서의동 경제부 차장, 조찬제 국제부 차장, 김재중 문화부 기자, 장관순 정치부 기자, 송윤경 사회부 기자, 유희진 사회부 기자

ㆍ1부 - 6 금융자본의 위험한 게임 (下) 키코 - 무너지는 중소기업

전자업체 ㄱ사의 재무담당 임원 ㄴ씨의 요즘 일과는 이른 아침 다우지수 시황 및 해외 환율 동향을 체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는 “키코라는 게 하루하루 속을 태우고, 뒤집고, 바싹 졸이면서 서서히 사람을 죽여가더라”고 했다.

“외환시장이 개장하는 아침 9시면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데, 불안감 탓에 오후까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때도 있습니다. 환율이 하루에 50~100원 왔다갔다 할 때마다 회사 돈 6억~7억원이 순식간에 날아가는 게 보여요. 안 그래도 요즘 회사가 극심한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대로 당하다가 한순간에 날아가는 게 아닌지 걱정입니다.”

계약 때 키코 상품 위험 듣지 못해

이명박 정부 출범 이래 치솟은 환율로 중소기업의 외환 손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수출기업이라면 환차익을 얻을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다. 그러나 환율 변동에 대한 보험 격인 키코(KIKO, Knock-in Knock-out 통화옵션)라는 금융파생상품의 족쇄가 중소기업을 옭죄고 있다. ㄱ사는 지난해 매출 700억원대에 이어 올해 1000억원 정도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손익구조는 역전됐다. 지난해 13억원 상당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과 달리 올해는 무려 130억원대의 순손실이 예상되는 것이다. 순손실 금액은 이 회사가 키코에 가입하는 바람에 입은 손실액과 같다.

이 회사는 유로화 환율이 1200원선이던 지난해 여러 은행과 키코 계약을 맺었다. 1년간 유로환율이 1200원 아래로 내려가면 은행들이 유로당 1260원씩 150만유로를 환전해주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1년간 한 번이라도 1300원선을 뚫고 올라가면 최고 300만유로를 그 시세대로 비싸게 사다 각 은행에 1260원씩에 팔아야 하는 위험이 있다. 유로환율은 현재 1800원대에서 요지부동이다.

“이런 위험을 알았다면, 절대 가입 안했겠죠. 은행은 우리가 떠안을 위험에 대해 일절 얘기하지 않았어요. 은행이 좋다고 하니까 좋은 줄만 알았던 겁니다. 은행 측은 ‘남들 다 가입했는데 무능한 ㄱ사만 안했네’ 식으로 몰아갔어요. 거기에 당한 거죠. 그런데 올들어 정작 문제가 터지니까 은행 지점장들이 ‘당신들이 자발적으로 가입했지 않느냐’고 말을 싹 바꾸더군요.”

ㄱ사는 올해 안으로 보게 될 키코 관련 직·간접적 손실을 130억원으로 보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계약에서도 60억원 이상 손실이 날 것으로 예상돼, 이 회사의 키코 관련 총손실은 200억원대다. 회사는 정부의 유동성 지원 자금을 20억원 받은 상황이다. 하지만 ㄴ씨는 “지원금액이 회사의 손실을 메울 만큼의 양도 아닌데다, 이 돈 역시 이자를 물어야 하는 빚일 뿐”이라고 말했다.

ㄱ사를 비롯한 여러 중소기업들이 연대해 키코 계약의 무효화를 위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ㄴ씨는 은행들이 “일부 중소기업이 투기 목적으로 필요 이상의 키코 계약을 맺었다”며 화살을 중소기업들에 돌리는 데 대해 분노했다.

“함께 소송을 벌이는 업체 대부분은 한 번도 통화 파생상품 거래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한눈 한 번 안 팔고 그저 ‘어떻게 하면 제품 잘 만들어 잘 파나’하는 생각만 했던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불황에다 원자재 가격까지 급등해서 수익 내기도 어려운 처지라, 키코가 아니어도 중소기업은 다들 힘듭니다. 없는 시간도 쪼개가면서 제품 개발과 생산에 몰두해야 할 사람들이 키코 문제에 시간과 노력을 다 쏟아붓는 것도 억울한 판에, 투기꾼 소리를 듣자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입니다.”

ㄴ씨는 정부가 환율 관련 언급을 자주하는 데 대해서도 비난했다.

“며칠 전 정부에서 ‘외환위기가 끝났다’고 하니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달러 환율이 30원 이상 올라버리더군요. 정부가 환율에 대해 뭐라고 하기만 하면 바로 시장이 불안해져요. 정부는 그저 입 다물고 조용히 있을 것이지 왜 자꾸 떠드는지 모르겠어요. 이쯤 되면 정부가 주기적으로 누군가의 이득을 위해 고의로 그러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예요.”

“키코 이해하는 데 몇달 걸렸어요”

의류업체 ㄷ사가 키코로 인해 입게 된 손실은 10억원 정도로 ㄱ사보다 규모가 작다. 지난해 매출 70억원대, 영업이익 2억원 상당이던 이 회사도 올해는 키코 손실액만큼의 순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사업규모가 작아 피해가 덜한 편이지만, 반대로 작은 유동성 압박조차 이 회사에는 큰 위험이다. 회사는 지난해 은행과 달러 환율 935원을 기준으로 하는 키코 계약을 맺었다. 달러 환율이 980원 아래에서만 움직이면 아무 문제가 없을 계약이었지만, 1500원에 육박하다 현재 1200원대 후반에 머무르고 있다. 이게 문제였다.

이 회사 대표 ㄹ씨는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워 내가 정신병 안 걸리고 살아가는 게 신기할 정도”라며 “뭣 모르고 가입당한 키코가 이렇게 날 죽일 줄은 몰랐다”고 푸념했다. ㄹ씨는 은행의 ‘반협박’으로 키코에 가입했다고 했다.

“은행은 우리 회사에 의사 같은 존재입니다. 환자가 의사를 의심하는 거 봤습니까? 그만큼 절대적입니다. 은행이 그렇다고 하면 절대로 믿어왔고, 행여 밉보일까 눈치도 살피고요. 은행이 가입하라고 권유하는데 설마 ‘악마의 상품’을 내놓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가입 당시 은행에서 ‘이번에 ㄷ사 대출 연장 조건이 미흡하지만, 이걸 가입하면 잘 해드리겠다’면서 키코 가입서를 내밀었어요. 은행 말 믿고 가입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대출이 안되면 끝까지 안되는 거지, 키코 가입하면 된다는 게 수상하기도 했어요.”

ㄷ사는 소규모이지만 해외시장에서 꾸준히 이익을 내온 우량 기업이다. 일정 정도의 달러를 상시 보유하고 있는 회사의 사정을 잘 아는 은행이 이를 이용했을 것으로 ㄹ씨는 보고 있다. ㄹ씨는 지난 5월이 돼서야 키코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환율이 치솟으니까 압박이 시작되더군요. 처음에는 뭣 모르고 가입한 게, 어처구니없이 당한 게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말도 못꺼냈어요. 특히 계속 손실 내는 사정이 외부에 퍼져 회사 신용도가 떨어지고, 자금줄이 막힐까봐 겁도 났고요. 그러다 5월쯤 다른 중소기업체들과 함께 대응에 나섰습니다. 그렇지만 미국 월가에서 그 머리 좋은 사람들이 만든 상품 구조를 우리가 어떻게 금방 알겠어요. 키코 이것을 이해하는 데만 몇달 걸렸습니다.”

이 회사는 정부 구제지원금 10억원을 신청했지만, 받은 돈은 2억5000만원. ㄹ씨는 “우리 같은 경우는 당장 1억원만 더 들어와도 숨통이 트일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키코 문제로 회사 안팎이 뒤숭숭하다”고 전했다.

“어느날 팀장이 ‘우리 직원들 관리 좀 잘해야겠다’고 보고합디다. 직원들이 이직 준비를 하는 모양이더라고요. 직원들 앞에서야 ‘우리는 키코 같은 걸로 날아갈 만큼 허술하지 않다.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다’라고 큰소리를 치지만, 막상 돌아서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립니다. 다른 업체 사장은 자금난에 시달리다가 결국 잠적했어요. 주문은 밀려 있는데 결정권자는 없지, 바이어들의 재촉은 빗발치지, 그곳 팀장이 나한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하소연하더라고요.”

그는 “하루하루 증발하는 키코 손실액을 환산하는 것 말고는 다른 일을 도통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미래의 어떤 시점에 외환을 사거나 팔 권리(옵션)에 대한 계약인 KIKO에서 그 권리를 행사할 가격을 도출하는 데 동원된 수학 모델. 이 모델은 옵션가격 결정에 널리 쓰이고 있는 블랙·숄스 모델을 기초로 하고 있다.

키코는 무엇이고 왜 피해 커졌나

환차손 피하기 위한 장외 파생상품

‘위험’ 모른 중소기업만 손실 눈덩이


올 한 해 수출기업들에 공포의 대상이 된 키코(KIKO)는 위험회피 통화옵션 상품이다. 환율이 오르거나 내릴 경우 같은 물건을 수출하고도 손해를 보는 ‘환차손’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05년 은행들이 수출기업을 상대로 계약을 맺기 시작한 이 상품은 그 위험 때문에 대기업이 거래를 그만두었지만, 사정을 잘 모르는 중소기업은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 연초부터 환율 급등으로 키코 계약을 맺은 중소기업들은 지난 11월 말까지 4조5000억원대의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파생상품은 장내(場內)와 장외(場外) 두 가지로 구분된다. 상품을 증권선물거래소에서 거래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로 나뉘는 것이다. 장내 파생상품은 일정한 규정에 따라 판매해야 하고, 증권사가 투자를 권할 때는 일반 투자상담사가 아니라 선물상담사라는 별도의 판매자격이 필요하다. 반면 장외 파생상품은 신고 없이 거래할 수 있고, 금융기관의 일반직원이 판매할 수 있다. 금융감독당국은 상품 판매에 따른 금융기관의 위험만 관리할 뿐 일반투자자의 위험은 관리하지 않는다.

‘사적 계약’에 의한 1 대 1 거래

금융감독원은 국회 정무위원회 신학용 의원(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에서 “키코 등 장외 파생상품은 사적 계약에 근거한 당사자간 1 대 1 거래로 별도의 심사절차나 신고서 제도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건별 거래에 대한 보고 절차도 없고 전체 거래 규모, 건수 및 잔액 등만 보고받는다. 은행과 보험사로부터는 분기별, 증권사로부터는 월간 거래실적만 보고 받을 뿐이다.

금감원의 은행업 감독 업무 시행세칙에는 은행이 장외 파생상품을 거래할 때 거래 상대방에게 거래위험 및 잠재손실 등에 대해 충분히 고지하지 않을 경우 불건전 영업행위(64조)에 해당한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또 65조 제6호에는 ①거래 상대방의 재무상황, 거래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거래 제안 ②거래 상대방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도록 충분한 정보 제공 ③거래 상대방이 거래를 할 수 있는 적법한 권한이 있는 계약 체결 전 점검 등을 유의사항으로 규정해 놓고 있다.

미흡한 규제에 감독당국의 늑장 대응

은행들이 이런 미흡한 규정이나마 제대로 지키고 당국이 감독에 나섰다면 피해를 그나마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키코 문제가 언론에 의해 불거지기 시작한 지난 3월25일 장외 파생상품 관련 유의사항 공문을 보낸 뒤 6월 말에야 파생상품 정보 집중 및 공유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키코 거래은행에 대한 조사는 지난 8월21일에서야 시작했다.

정석현 키코피해대책위원장은 지난 11월17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금융파생상품 관리 및 정책과제’ 공청회에서 키코 사태를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키코는 한국의 장래 환율 급상승을 예견하고, 파생상품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국내 수출 우량중소기업을 판매목표로 삼아 공격해온 상품이다. 당시 (미국 투자은행이) 국내의 금융감독당국이 신고나 허가 상품으로 취급하지 않은 허점까지 파악하고, 국내 은행에는 간단히 수수료를 챙길 수 있는 구실을 줘 적극적인 판촉활동을 하도록 한 것으로 판단된다. 은행은 수수료만을 챙기는 중개자 역할에 지나지 않는 상품이므로 자기의 오랜 고객인 주거래 기업의 보호를 위해 기업이 현명한 판단을 하도록 지도해야 함에도, 파생상품의 전문지식이 없는 일선 지점 직원들에게 판촉활동을 하도록 해 기업의 피해는 물론 막대한 외화유출까지 초래했다.”

자통법 시행 때 ‘제2의 키코 사태’ 우려

내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 시행되면 키코 외에도 다양한 장외 파생상품이 만들어져 시장에 나오게 된다. 자통법에서는 파생상품의 기반이 되는 기초자산의 범위를 증권, 통화, 일반상품 등에서 재해 및 재난, 범죄발생률, 날씨 등으로 대폭 확대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또 지난 4월 자본시장 및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고쳐 장외 파생상품에 대해 ‘헤지(위험회피) 목적’이라면 증권사 등 금융회사가 일반투자자와 거래할 수 있도록 했고, 장외 파생상품을 발행하는 증권사 등의 영업용 순자본비율을 300% 이상에서 200% 이상으로 완화했다. 엄청난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는 장외 파생상품을 취급하는 금융기관의 건전성 기준을 크게 낮춰준 것이다.

키코 사태가 사회문제로 불거지면서 비판이 쏟아지자 금융당국은 지난 21일 몇가지 개선안을 뒤늦게 내놨다. 금융위원회가 마련한 ‘파생상품 시장 감독체계 개선안’에 따르면 상장기업이나 투자적격법인이라도 장외 파생상품을 거래할 경우 일반투자자로 분류해 투자자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했고, 헤지 목적으로 거래하더라도 과도한 헤지를 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하지만 새로 등장하는 장외 파생상품은 금융투자협회가 자율심사하도록 맡겨 금융당국의 규제 대상 바깥에 두도록 했다. 이처럼 규제를 풀어놨기 때문에 ‘제2의 키코 사태’가 일어날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전국금융산업노조 정명희 정책부장은 “자통법이 시행되면 다양한 변형 파생상품들이 쏟아질 텐데 이의 위험성에 대한 판단을 민간에게 맡겨두고 사후감독만 하겠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美투자은행만 돈버는 ‘무서운 계약’>

기사입력 2008-12-28 18:26 | 최종수정
2008-12-28 20:09 / 경향신문 / SDE 인터넷 논객


1부 - 6 금융자본의 위험한 게임 (下) 키코 - 어떤 구조로 설계됐나
ㆍ환율내리면 본전, 환율오르면 파산


2008년 상반기, 현 정부의 경제수장이 수출증대를 위해 환율상승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한 후, 원·달러 환율이 오르기 시작하자 한국의 수출 중소기업들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엄청난 손실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품의 값이 싸지므로 당연히 수출이 잘되고 기업이익도 증가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실제는 달랐다. 환율이 상승하자 환율과 연동된 파생금융상품 거래를 하고 있던 중소기업들은 회사의 존립이 위태로울 정도의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된 것이다. 바로 ‘키코(KIKO)’ 상품 때문이었다.

옵션상품을 기초로 만든 파생상품, 키코

키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옵션이라는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옵션은 미래의 어떤 시점에 주가지수, 환율 등의 가격에 의거해 어떤 금융상품이나 자산(외환, 주식, 원유 등)을 사거나 팔기로 하는 권리에 관한 계약이다. 주식시장의 선물(先物)거래와 비슷해 보이지만, 선물거래 때는 무조건 사고파는 거래가 일어나는 것과 달리 옵션은 권리에 관한 계약이기 때문에 권리를 행사해야 실제 거래가 일어난다는 점이 다르다. 따라서 권리를 가진 사람은 미래의 특정한 시점에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권리를 포기할 수 있다.

옵션 거래는 계약 당사자간에 자산이 특정 가격대가 되면 사고파는 권리를 갖기로 미리 약속을 한 거래다. 따라서 달러를 예로 든다면 미리 약속한 달러값이 형성됐을 때 달러를 사고팔 권리가 생기는데 이 달러값을 행사가격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현재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이고 계약 당사자가 1250원이 될 때 달러를 사고파는 권리를 갖자는 약속을 하는 식이다.

옵션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행사가격에 자산을 살 권리인 콜옵션(Call Option), 그리고 행사가격에 자산을 팔 권리인 풋옵션(Put Option)이 있다. 콜옵션은 낮은 행사가격을 가지고 있을 때 높은 자산가격이 형성되면 낮은 행사가격으로 자산을 살 수 있으므로 그만큼 이익이다. 풋옵션은 반대로 높은 행사가격을 가지고 있을 때 자산가격이 하락하면 그 만큼 높은 가격에 자산을 팔아 이익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옵션을 살 때의 경우이고, 옵션을 팔 때는 이익이 반대로 나타난다. 콜옵션을 판다는 것은 행사가격이 됐을 때 콜옵션을 사는 자가 얻게 되는 이익을 준다는 뜻이 된다. 풋옵션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옵션을 파는 자는 오직 손실만 보게 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옵션은 기본적으로 계약이기 때문에 한쪽 당사자의 거래파기 등으로 손실이 발생할 우려가 있으므로 미리 계약금을 서로 주고받는다. 이것을 옵션 프리미엄이라고 하는데 사는 자가 파는 자에게 계약금을 주게 된다. 물론 계약금은 옵션이 행사가격에 도달했을 때 발생하는 이익과 손실보다는 훨씬 적은 금액이다. 따라서 옵션을 파는 자는 옵션이 행사가격에 이르지 않게 되면 계약금만큼의 이익을 얻을 수 있고 반대로 옵션을 산 자는 그만큼 손실을 보게 된다.

달러를 통화로 한 옵션을 예로 들어보자. 만일 현재 1달러에 대한 원화값이 1200원이고 향후 달러값이 오를 것(환율상승)으로 예상해 1250원에 1달러를 사겠다는 행사가격을 가진 콜옵션을 샀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콜옵션을 산 사람은 콜옵션을 판 사람에게 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 1250원 콜옵션의 계약금이 20원이라고 가정하자. 환율이 올라서 1300원이 되면 콜옵션을 산 자는 50원의 차익에서 계약금 20원을 뺀 30원의 이익을 얻게 된다. 반면 콜옵션을 판 자는 환율이 오르지 않을 것으로 보고 거래에 참가하는데 만약 오르게 될 경우는 50원을 잃게 되지만 먼저 20원의 계약금을 받았기 때문에 손실은 30원이 된다.

반대로 환율이 내릴 것으로 예상하고 행사가격이 1150원인 풋옵션을 계약금 20원에 샀다고 생각해보자. 환율이 올라 1300원이 되면 풋옵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할 뿐 아니라 만기가 되면 옵션은 소멸하고 계약금만큼 손해를 본다. 반면 풋옵션을 매도한 사람은 계약금만큼 이익을 내게 된다. 만일 반대로 환율이 1100원이 됐다면 풋옵션 매수자가 큰 이익을 보고 콜옵션 매수자는 계약금만 날리게 된다. 또 풋옵션 매도자는 큰 손해를 보고 콜옵션 매도자는 계약금만큼 이익을 보게 된다.

다른 성질의 옵션을 합쳐 만든 합성옵션

그런데 만일 풋옵션 1계약을 사고 콜옵션 1계약을 파는 두개의 옵션을 동시에 가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옵션의 매수와 매도가 각각 1계약이 되므로 계약금은 사라지게 된다. 또 자산가격이 풋옵션 행사가격보다 떨어지면 이익을 보게 되고, 자산가격이 풋옵션 행사가격과 콜옵션 행사가격 사이가 되면 이익이나 손실이 없으며, 콜옵션 행사가격보다 높아지게 되면 손실을 보게 된다. 즉 자산가격이 하락할 때만 이익이 나는 구조로 변형되게 된다.

예를 들어 1150원의 풋옵션 매수와 1250원의 콜옵션 매도를 동시에 가지고 있으면 환율이 1200원에서 1300원으로 오르게 될 경우 계약금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콜옵션 매도에서 발생하는 손실만 남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풋옵션 매도와 콜옵션 매수를 한 사람 역시 계약금 지불없이 이익만 보게 된다. 즉 계약금을 생각할 필요 없이 오직 환율에 따른 이익과 손실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키코의 구조가 탄생하게 된다. 자산가격을 환율로 하고, 옵션의 대상자산을 달러라고 가정하자. 키코의 기본구조는 풋옵션 매수 1계약과 콜옵션 매도 2~3계약을 동시에 갖는 것이다. 이를 서로 다른 성질의 옵션이 합쳐져 만들어졌다고 해서 합성옵션이라 한다. 환율이 풋옵션 행사가격보다 낮아지게 되면 합성옵션 구매자는 1계약만큼의 이익을 본다. 그리고 환율이 풋옵션 행사가격과 콜옵션 행사가격 사이에 있게 되면 기존 옵션 계약금의 1~2배의 이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콜옵션 행사가격보다 환율이 올라가버리면 기존 콜옵션 매도 때보다 무려 2~3배나 많은 손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

투자은행이 손실보지 않도록 만든 구조

그런데 이런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투자은행 입장에서는 합성옵션과 반대되는 옵션시장 참가자를 구해야 판매할 수 있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아예 투자은행이 콜옵션 매입 3계약을 하고 풋옵션 매도 1계약을 하는 방식으로 옵션시장에 참가한다. 그런데 투자은행 입장에서는 옵션 만기일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바로 옵션을 정산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실은 이런 합성옵션을 만든 투자은행은 대부분 미국계 투자은행이기 때문이다. 미국식 옵션은 원래 만기일이 없기 때문에 옵션의 정산을 아무 때나 할 수 있다.

따라서 투자은행은 콜옵션 행사가격이 되면 바로 콜옵션 매입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해 옵션의 정산을 할 수 있다. 이것을 녹인(Knock-In) 이라고 한다. 그런데 반대로 환율이 풋옵션 행사가격보다 떨어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 점이 ‘사기’라고까지 비난을 받게 되는 부분인데 환율이 풋옵션 행사가격보다 떨어지게 되면 합성옵션을 만든 투자은행은 손실을 보게 된다. 그래서 미리 풋옵션 매입자는 풋옵션 행사가격보다 환율이 떨어지면 자동으로 풋옵션 행사를 포기하도록 계약을 만들어 놓는다. 따라서 환율이 떨어져 풋옵션 행사가격에 이르면 자동으로 옵션 계약은 없었던 일이 된다. 이것을 녹아웃(Knock-Out)이라고 한다.


본질은 미국 투자은행의 환차손 회피용

키코는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합성옵션 상품이다. 미국의 투자은행에서 개발된 금융상품을 한국의 은행들이 판매수수료를 받고, 환율하락에 따른 손실을 줄여줄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이라고 판매한 것이다. 그런데 키코의 구조는 환율하락에 따른 손실을 줄일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환율이 떨어져 풋옵션 행사가격에 이를 정도가 되면 풋옵션에 의한 이익을 내야 하지만 계약자체가 사라져버린다. 따라서 환율하락에 따른 환차손에 무방비상태가 된다.

반대로 환율이 오르면 기존보다 2~3배의 손실을 볼 수 있다. 만일 환차손 위험을 피하기 위해 수출대금만큼 키코 계약을 했다가 녹인 가격보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대금의 2~3배의 손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중소기업이 2007년과 2008년에 각각 1억달러 수출계약을 했다. 당시 환율은 950원. 그런데 키코에 2007년 초 가입했다. 그리고 1억달러어치 키코 계약을 했다. 원화로 950억원어치다. 녹아웃 환율은 900원, 녹인 환율은 1000원이라고 가정하자. 2007년에는 환율이 떨어졌지만 940원이 최저한이었다. 당시 해당 옵션의 계약금이 10원이라고 가정하면 한국 기업은 10억원의 이익을 보게 된다. 그런데 2008년 환율이 1000원을 넘어섰다. 그렇게 되면 기업은 1억달러의 키코 계약에 의해 3억달러(3000억원)을 납부해야 한다. 환차익은 950원에서 1000원이 됐으므로 50억원이지만 키코 때문에 손실은 3000억원에서 1050억원(수출액+환차액)을 빼서 무려 1950억원의 손실이 난 것이다.

그런데 파생금융상품은 속성상 내가 손실을 보면 그만큼 이익을 보는 사람이 있다. 키코의 구조상 이익을 보는 사람은? 미국의 투자은행이다. 즉 키코는 미국의 투자은행이 한국에 투자했을 때 환율상승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미국 투자은행용 환헤지상품이며 한국의 수출 중소기업은 이것에 반대되는 합성옵션을 매입했다가 엄청난 손실을 본 것이다.

단기에 유리한 상품을 장기 계약해 화근

사실 키코는 새로운 상품이 아니라 매우 초보적인 합성옵션이며 10년 이상된 구형 상품이다. 키코의 처음 구매자는 수출 중소기업이 아닌, 한국의 수출 대기업들이었다. 그런데 대기업들이 외환위험 회피용 상품인줄 알았던 키코가 실제로 그런 기능이 없음을 알게 되자 구매를 하지 않게 됐고, 이후 키코를 수출 중소기업에 판매하게 된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키코 구매계약을 하면서 보통 2~3년의 장기계약을 했다는 점이다. 키코 자체는 매달 풋옵션 행사가격과 콜옵션 행사가격의 중간을 기준가격으로 해 기준가격에서 상하한으로 약 5%씩 행사가격을 설정하게 된다. 그 이유는 이 구간 정도까지가 실제 옵션시장에서 자유로운 설정이 가능한 가격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생금융상품은 일종의 확률 게임이다. 예를 들어 주사위 1이 나오면 계약금의 10배를 물어주고 나머지가 나오면 계약금만큼 얻는 게임을 한다고 가정하자. 1회의 게임에서 이겨 계약금을 얻을 확률은 무려 83%나 되지만, 10번의 게임을 전부 이겨 손실을 보지 않을 확률은 16.1%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파생금융상품의 경우 가급적 단기로 계약을 해야 손실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도 최소 1년, 최장 2~3년과 같은 장기계약을 하다 보니 당연히 엄청난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키코 판 은행도 위험관리 못해 손실

수출 중소기업들이 키코 계약을 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선물환거래(미래의 일정시점에서 사고팔 달러의 가격을 현 시점에서 미리 고정하는 거래)에 따른 은행 수수료와 증거금을 아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2007년까지 원화는 아주 완만하게 강세를 나타내고 있었고 2008년 초에는 대부분의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원화의 강세를 예측했다. 키코 계약자 입장에서는 키코 기준가격에서 한 달에 기껏 1~2% 정도 환율이 내리는 상황이니 해볼 만했던 것이다. 키코 설정구간 이내에서 환율이 움직이고 있었고, 게다가 천천히 내리고 있었으니 키코 계약 중소기업은 키코의 계약금을 수익인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은행들도 문제가 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키코는 미국계 투자은행에서 만들어진 것을 한국의 은행들이 단지 판매수수료만 받고 한국 기업들에 판매한 것이다. 게다가 많은 경우 한국의 은행들은 키코 계약자인 한국의 기업들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손실을 대신 지급하도록 계약했다. 한국의 은행들도 키코를 판매할 때 이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은행들은 지점장이 재량으로 키코를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판매수수료 수입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였다. 2008년 하반기 키코 손실 때문에 한국 중소기업들이 파산할 지경에 이르러 결국 키코 손실액을 내지 못하게 되자 한국 은행들은 한국 중소기업들을 대신해 키코 손실액을 물어주느라 큰 손실을 보게 됐다.


인터넷 경제논객 SDE

공학박사 출신으로 1997년 외환위기 때부터 경제학과 실물경제를 넘나드는 통찰력 있는 분석으로 필명을 날리고 있다. 최근의 세계적 금융위기와 한국 경제의 문제점 등을 다룬 <공황전야>라는 책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