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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Articles

대한민국 대통령에 따른 한미관계사 30년

<대통령 따라 출렁거린 한·미 관계 30년>

기사입력 2008-11-07 01:58 | 최종수정2008-11-07 15:46 / 중앙일보 / 최지영 기자


올해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자 AP통신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너무 늦게 짝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삐거덕거렸던 부시 대통령이 이 대통령과는 주파수가 잘 맞는다고 평가한 것이다. 실제로 이 대통령 집권 후 한·미 관계는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가 대선에서 당선됨에 따라 짧았던 '한·미 간 밀월시대'가 어떻게 변화할지 주목되고 있다. 과거 한·미 관계에서도 정상 간의 친밀도는 중요한 변수였다. 개인적인 화학작용(케미스트리)과 인생관·북한관 등이 주요 관건이었다. 다음은 지난 30년 동안 한·미 정상 간 친소 관계가 양국 관계에 미쳤던 주요 사건의 파노라마다.

◆'견원지간' 박정희와 카터=두 사람의 관계는 반세기 한·미 동맹에서 가장 껄끄러웠다. 1979년 7월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왔다. 환영 인파 등 겉모습은 '우방'이었지만, 카터는 방한 전부터 한국 내 인권 탄압이 시정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압박했다. 카터는 영빈관에 머물러 달라는 박 대통령의 초대를 무시하고 이례적으로 서울 용산 미8군 영내에 숙소를 정했다.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40여 분간 카터에게 주한미군 철수의 부당성을 '강의'했다. 화가 난 카터는 배석했던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에게 “이 자가 2분 이내에 입을 닥치지 않으면 나가 버리겠다”는 메모를 건넸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한·미 정부와 민간이 모두 말린 결과 카터는 3000명가량 감축하는 선에서 마무리지었다.

◆'찰떡궁합' 전두환과 레이건=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에게 미국의 지지는 취약한 정통성을 보장받는 지름길이었다. 다행히 '반공'이란 공동 이념이 한·미·일 삼각 동맹을 이끌었다. 전 대통령이 81년 미국을 방문하자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은 그를 '위대한 군인이자 정치인'이라고 칭송했다. 83년 11월 방한한 레이건을 환영하기 위해 정부는 150만 명의 서울 시민을 환영 행사에 동원했다. 그러나레이건은 87년 제임스 릴리 주한 미 대사를 통해 전 대통령에게 “광주 사태가 재연되기 원치 않는다”는 친서를 보내 계엄령 발동을 막았다.

◆'냉탕온탕' 김영삼과 클린턴=93년 7월 빌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방문지로 한국을 택할 정도로 처음에는 한·미 관계가 괜찮았다. 하지만 북한과 미국이 핵 협상을 하면서 틀어지기 시작했다. 대북 포용정책을 주장했던 클린턴 행정부는 “핵을 가진 집단과는 대화할 수 없다”며 대북 강경 정책을 표방했던 김영삼 정부와 엇박자를 냈다. 94년 10월 북·미 간에 제네바 합의가 이뤄졌을 때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 명의의 친서를 북한에 줬다. “북한이 합의를 위반하지 않으면 경수로 사업을 끝까지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 사실을 한국에 알려주지 않았고, 나중에 이를 안 김 대통령은 상당히 화를 냈다. 이후 96년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 처리 등으로 두 사람의 갈등 폭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이 때문에 김 대통령은 임기 말 외환위기 때 미국의 신속한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증의 8년' 김대중·노무현과 부시=김대중 대통령은 빌 클린턴 민주당 정부와는 밀월 관계였지만, 후임인 조지 W 부시 행정부와는 궁합이 맞지 않았다. 부시는 2001년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아버지뻘 되는 김 대통령을 '디스 맨'이라고 부르며 무시하기도 했다. 근본 원인은 북한을 보는 시각차였다. 햇볕정책과 '악의 축'이 대립했다. 부시와 노무현 대통령 관계는 더 삐걱거렸다. 한때 좋은 순간도 있었다. 노 대통령이 지지층의 반대를 무릅쓰고 2003년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자 부시는 상당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끝내 북한관 차이로 인한 갈등을 극복하지 못했다.

지난해 9월 호주에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미 대통령 부시에게 “평화조약에 대해 더 분명히 말해 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하자, 부시가 짜증내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워싱턴 정가의 소식을 전하는 넬슨리포트는 “노 대통령의 의전상 결례에 대해 부시 대통령뿐 아니라 현장의 (미국) 기자들도 놀란 것 같았다”고 전했다. 양국의 외교관들이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두 정상 간의 껄끄러운 궁합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