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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Articles

달러시대 저물고 다중결제통화 시대 오나?

<중국 - 러시아 에너지 협력 ‘어깨동무’>

기사입력 2008-10-30 01:59 | 최종수정2008-10-30 03:23 / 중아일보 / 유철종 기자, 진세근 특파원


최근 관계를 크게 강화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28일 에너지 분야에서도 우의를 거듭 다졌다. 러시아가 헤이샤쯔다오(黑瞎子島)의 절반을 중국에 반환해 수십 년간에 걸친 영유권 분쟁을 해결하고 끈끈한 관계를 확인한 지 불과 열흘 만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와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이날 모스크바에서 제13차 양국 정기 총리회담을 열고 동시베리아에서 태평양 연안 코즈미노를 잇는 길이 4700㎞ 송유관의 중국 지선을 건설키로 최종 합의했다고 러 리아노보스티 통신이 29일 보도했다. 양국 총리가 서명한 8개의 에너지·핵발전·항공·금융 관련 합의문에는 중국 내 톈완(田灣) 핵발전소 확장 공사, 민간 헬기 제작 합작 사업, 금융 시스템 정보 공유 등 비중 있는 사업들도 포함됐다. 중국이 금융위기로 외화난을 겪고 있는 러시아 에너지 회사들을 위해 최대 250억 달러를 지원하는 데도 합의가 이루어졌다. 본격적인 중·러 밀월시대가 열린 것이다.

러시아는 동시베리아·극동 지역의 석유와 가스를 개발해 중국·한국·일본 등을 포함한 동북아 지역으로 수출하기 위한 송유관 건설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그중 동시베리아 타이셰트에서 중·러 국경 인근 도시 스코보로디노까지의 1단계 노선(2700㎞) 공사가 2006년 말 시작돼 내년 말 완공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러·중 양국은 그동안 스코보로디노에서 중국 다칭(大慶)으로 이어지는 송유관 지선을 깔아 중국에 연 1500만t의 원유를 공급하는 사업에 대해 협의를 계속해 왔다. 석유 공급 가격 문제로 난항을 겪던 이 사업이 이번 총리 회담에서 최종 확정된 것이다. 총리 회담에 맞춰 러시아 국영 송유관 회사 '트란스네프티'와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가 스코보로디노에서 중국 국경까지의 70㎞ 구간 공사와 관련한 협정을 체결했다. 러시아가 특정 국가를 위해 동시베리아 송유관의 지선을 깔기로 합의한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러시아가 중국 관계를 중시한다는 증거다.

중국은 대신 러시아 국영석유회사 '로스네프티'와 '트란스네프티'에 200억~250억 달러의 장기 저리 차관을 제공키로 했다. 국제 금융위기로 외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로스네프티에 120억~150억 달러를 빌려주고, 중국 국경까지의 지선 공사를 맡을 트란스네프티에 80억~100억 달러를 지원키로 했다. 중국이 수입할 석유에 대한 선불 격이다.



<달러 곳간 넘치는 중국 ‘中華제국’ 야심 드러내>

기사입력 2008-10-29 18:39 | 최종수정
2008-10-30 09:49 / 세계일보 / 강호원 기자, 김청중 특파원

중화제국이 등장하고 있다.” 중국이 천문학적인 외환보유액을 배경으로 ‘달러외교’를 가동하면서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이런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의 행보는 최근 범상치 않다. 러시아, 대만, 홍콩, 중앙아시아를 대상으로 ‘달러 살포’에 들어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이 이달 중순 “국제통화기금(IMF)이 중국에서 달러를 빌려 신흥시장국에 풀어주자”고 제안할 때만 해도 중국의 힘은 피부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이 달러 대주기에 나서면서 상황은 판이해지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중국 달러의 힘이 나타나고 있다”는 반응이 쏟아진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9월 말 현재 1조9055억달러에 이른다.


◆2조 달러의 힘, 슈퍼파워로 등장하는 중국=중국이 ‘달러의 힘’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모스크바에서다. 29일 중국 정부와 신화통신에 따르면 지난 27일부터 3일 동안 러시아를 방문한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寶) 국무원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와 만나 금융위기에 공동 대처하기로 약속했다.

공동 대처방안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중국이 러시아에 200억∼250억달러를 꿔주기로 한 점이다. 이 돈은 러시아의 금융 불안을 잠재울 시드머니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러시아로부터 매년 1500만t씩 30년 동안 3억t의 석유를 시베리아 송유관을 통해 공급받기로 했다. 중국 석유 소비량의 4%에 이르는 양이다. 러시아에 꿔주는 달러 외에도 석유 결제대금으로 대량의 중국 달러자금이 러시아로 흘러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은 최근 급격히 줄고 있다. 8월 이후 약 600억달러가 빠져나갔다. 러시아 정부는 “외환보유액이 약 5000억달러”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 금융시장은 최근 불안하기만 하다.

중국 남방지역에 대한 달러 공세도 강화되고 있다. 중국은 홍콩 경제를 지키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원자바오 총리는 28일 “홍콩이 어떤 곤경을 겪더라도 중국 중앙정부는 반드시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의 상황이 나빠지면 중국 정부가 개입하겠다는 뜻이다. 바로 전날인 27일 홍콩 항셍지수는 1997년 이후 가장 큰 폭(12.7%)으로 곤두박질했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의 천윈린(陳雲林) 회장은 다음달 3∼7일 대만을 방문한다. 중국 정부 대표단이 대만을 방문하는 것은 1949년 국공내전 이후 59년 만이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이번 방문에 중국 인민은행 임원은 물론 중국 10대 은행장이 따라간다는 사실이다. 중국 4대 은행인 중국은행, 중국건설은행, 중국농업은행, 중국공상은행의 은행장도 포함돼 있다.

중국 금융시장에서는 중국이 대만 외환시장의 방패막이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중·러가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도 외환부문의 안전판을 구축하기 위해 30일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에서 총리 회담을 열기로 했다.

◆위안화, 기축통화의 꿈=중국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와 푸틴 총리의 회담에서 두 나라는 국경무역의 결제통화를 위안화와 루블화로 바꾸기로 했다. 천윈린 회장의 대만 방문과정에서는 양안 간에 자국 통화를 사용하는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움직임은 위안화를 달러, 유로, 엔에 이어 국제결제통화로 굳히기 위한 수순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이 위안화를 당장 기축통화로 만들려는 것 같지는 않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지만수 중국팀장은 “중국은 ‘달러기축통화’ 체제에서 고성장을 하고 있다”며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려는 시도를 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외환보유액을 배경으로 대외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러,美 달러화에 도전장… 양국 무역 결제에 위안>

기사입력 2008-10-29 19:21 / 국민일보 / 임성수 기자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에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양국은 무역 결제에 자국 통화인 위안화와 루블화 사용을 검토하는 등 금융위기 이후 국제 경제 시스템 개편에 힘을 모으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28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의 회담에서 "오늘날 전 세계가 달러로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양국 무역에서 자국 통화를 사용하는 등 결제 체계를 개선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자바오 총리도 "다양한 통화를 사용해 국제 통화 시스템 안정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화답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각각 세계 1, 3위의 외환보유국이란 점을 감안하면 양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국제 통화 체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DPA 통신은 푸틴 총리의 자국 통화 사용 활성화 제안은 러시아의 루블화 폭락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러시아는 지난 9월 초부터 루블화 환율 방어를 위해 매주 최대 150억달러를 외환시장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보유 외환에서 달러 비중을 줄여나가는 한편 자국의 가스와 석유 대금은 루블화로 결제해야 한다고 기업들을 압박해 왔다.

중국도 다음달 열리는 대만과의 양안 회담에서 무역대금 결제를 달러화가 아닌 양안 통화로 대체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로이터 통신이 29일 보도했다. 이를 위해 중국 인민은행 부총재와 10대 은행장들이 다음달 3일부터 7일까지 타이베이에서 열리는 제2차 양안 회담에 대거 참석할 계획이다. 이 자리에서 금융계 대표들은 무역대금 결제 방안을 비롯, 중국 은행의 대만 진출 문제 등 양안 금융시장 개방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그동안 기축통화의 다극화를 주장하며 위안화를 비롯해 유로화, 영국 파운드화, 일본 엔화 등을 무역대금 결제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중·러, 세계 재편 대비 ‘형제국’ 시동>

기사입력 2008-10-29 02:28 | 최종수정2008-10-29 13:35 / 중앙일보 / 진세근 특파원


중국과 러시아가 금융위기 후의 세계에 대한 본격적인 개편 논의에 들어갔다. 주요 내용은 중·러 양국을 중심으로 한 질서 재편과 주요 사안에 대한 국제무대에서의 발언권·영향력 강화다. 이를 위해 양국이 금융·과학·자원·에너지·인문 등 전방위에 걸쳐 전면적인 협력과 교류를 지속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28일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와 양국 총리회담을 열었다. 이날 회담은 외견상 1996년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제안해 이뤄진 양국 정기 총리회담의 13번째 모임이다.

그러나 내면을 보면 이번 회담은 예년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회담이 세 분야로 나눠 동시에 진행되는 데다 내용도 매우 전략적·장기적이기 때문이다.

첫째는 정기 총리회담이다. 이번 회담이 예년과 다른 점은 논의의 초점이 세계 질서의 개편 문제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골자는 금융위기 이후 불가피하게 이뤄질 세계 재편에 대비한 양국의 협력 틀 만들기다. 양국 총리는 ▶다음달 하순 미국에서 열릴 G20 회담에 대한 전략 공동 논의 ▶전면적인 전략 협력 동반자 관계 확립 ▶3종 세력(테러리즘·분열주의·극단주의)에 대한 공동 대응책 마련 ▶국제무대에서의 발언권 확대 ▶지구촌의 금융·기후·에너지·식량 위기에 대한 양국 공동의 영향력 확대 전략 등을 고루 논의했다.

둘째는 에너지협력 위원회다. 이 회의를 위해 에너지·금융·무역·재정을 총괄하고 있는 왕치산(王歧山) 경제 담당 부총리가 원 총리와 함께 모스크바를 찾았다. 양국 대표는 ▶금융위기 공동 대응 ▶송유관 건설을 포함한 에너지 협력 등 전반적인 경제 문제를 협의했다.

셋째는 인문합작 위원회다. 문교·교육·과학·체육을 총괄하는 류옌둥(劉延東) 부총리가 참석했다. 핵심은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 간의 교류다.

양국 총리는 옛 소련과 중국과의 국교 수립 6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대대적인 경축 행사를 1년 내내 벌이는 한편 국가 이익 전반에 걸친 '무실(務實) 협력'을 목표로 토론과 협상을 하기로 합의했다.

중국의 한 외교 소식통은 “최근 러시아가 양국 간 영유권 분쟁을 겪어왔던 우수리 강변 헤이샤쯔다오(黑瞎子島-일명 전바오다오) 섬의 절반을 중국에 반환했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영토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된 전례가 거의 없는 점을 고려할 때 러시아의 이번 조치는 양국 관계가 '형제국' 수준까지 접근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달러 기축통화 안된다’ 세계의 반격>

기사입력 2008-10-29 19:05 | 최종수정2008-10-30 02:15 / 한겨례 / 박민희 기자


중·러 “교역시 위안·루블화 결제 추진”

남미, 공동시장서 자국통화 확대 논의

폴란드, 유로도입계획 등 ‘탈달러’ 가속화

미국의 세계 경제패권을 떠받쳐온 핵심축인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금융위기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금융위기 속에서 확산되는 ‘탈 달러’ 움직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달러 기축통화를 무기로 미국이 주도해온 국제경제 질서를 뿌리부터 뒤흔들 변화다. 미국은 구제금융을 통해 천문학적 달러를 시장에 쏟아부어 발등의 불을 끄는 데 급급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달러 가치 급락을 피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 중국·러시아의 도전 가장 강력한 도전장은 세계 1·3위 외환보유국인 중국과 러시아에서 나오고 있다. 모스크바를 방문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28일 달러 중심의 국제금융 시스템을 강하게 비판하고, 국제통화의 다양화를 요구했다.

푸틴 총리는 이날 ‘러시아-중국 포럼’에서 “달러에 기반을 둔 세계 금융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자국 통화를 사용하는 교역 등 양자 교역의 결제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원자바오 총리도 “지금은 국제 금융 인프라를 개편할 최적기”라며 “다양한 통화 사용을 통해 국제 통화 시스템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국은 중·러 양국 교역에서 달러 대신 위안과 루블화를 사용해 결제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올해 양국 교역은 500억달러 규모다.

세계 1위(중국·1조9천억달러), 3위(러시아 5천억달러)의 외환보유국인 두 나라가 달러 결제를 줄여나갈 경우 달러 가치와 미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자국의 원유 가스 수출도 루블화로 결제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인다. 중국은 다음달 3일 타이베이에서 열리는 양안회담에서도 무역대금 결제 수단을 미국 달러화 대신 양안 통화로 대체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난 24일 논평에서 “음울한 (금융위기) 현실 속에 사람들은 미국이 달러화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세계의 부를 착취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며 “이제 세계는 국제경제에서 미국이 점해온 지배적 지위화 달러화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 개발도상국의 탈 달러 움직임 미국의 뒷 마당인 남미에서도 달러 대신 지역 화폐를 사용하는 무역체제가 등장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브라질·파라과이·볼리비아·베네수엘라 등 12개 회원국을 가진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정부 대표들은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긴급 확대회의를 열어, 회원국간 무역거래에서 달러화 사용을 줄이고 자국 통화 사용을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신화통신>이 27일 전했다. 회원국 대표들은 국제결제에서 달러 대신 다양한 통화를 사용함으로써 “지역내 국가들의 통합을 강화하고, 금융위기로 야기된 문제들을 차단할 능력도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달러 대신 물물거래 움직임도 시작됐다. 지난주 세계 최대의 쌀 수출국 타이가 세계 4위 산유국인 이란과 쌀과 석유를 맞바꾸는 물물거래를 추진하기로 한 것이 신호탄이다.

달러 대비 자국 화폐 가치 급락으로 어려움을 겪는 유럽 국가들 사이에는 유로화 우산 아래로 들어가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폴란드 정부는 2012년까지 유로화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28일 밝혔다. 폴란드 정부는 최근까지도 유로 도입을 꺼려왔지만, 최근 달러 대비 자국 화폐 즐로티 가치가 30% 폭락하는 등 위기를 겪으면서 정책을 바꿨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했다.


<달러 위상 흔들… '다중 결제통화' 되나>

기사입력 2008-10-29 18:06 / 서울경제신문 / 문성진 특파원

■ "달러 쓰지 말자" 中·러시아 공조 나섰다

세계 1·3위 외환보유액 앞세워 美에 도전장

"다변화 바람직하나 국제금융시장 준비 덜돼"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가 흔들리자 중국과 러시아가 도전장을 내밀고 나섰다.

당장은 달러화 기근에 대한 대비책 차원이 짙지만 이번 러-중 회동을 고리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온 국제금융질서가 다중 결제통화 체제로 전환되는 시금석이 될지 주목된다.

전문가들도 오래 전부터 앞으로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의 지위가 위기를 맞을 가능성을 예견해왔다.

28일(현지시간) 중국과 러시아는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국제경제 체제를 개편하기 위해 무역대금 결제시 위안화나 루블화를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세계 1위와 3위 외환보유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달러화를 사용하지 않으면 달러화 자체뿐 아니라 미국 경제에 타격이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기축통화 발행에 따른 세뇨리지 게인(seigniorage gainㆍ통화발행국의 경제적 이득) 효과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28일 모스크바 연설에서 밝힌 “지금이 새로운 국제금융질서 건설에 가장 적합한 시기”라는 말은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중국의 국가 전략이 잘 드러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중국이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를 다른 국가들과 나눠 가져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이번 기회에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오래 전부터 기축통화의 다극화 체제를 원했다. 2조달러의 외환보유액이라는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중국 위안화를 비롯해 유로화, 영국 파운드화, 일본 엔화 등이 무역대금 결제 수단으로 사용돼야 한다는 것.

중국은 미국 달러화의 기축통화 위상을 흔들기 위해 먼저 아시아ㆍ유럽 국가들과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오는 11월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G20(선진20개국) 회의가 미국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를 빼앗기 위한 첫 무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지도부는 국제 경제무대에서 차지하는 달러화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미국이 전세계의 부를 착취해왔다고 보고 있다.

중국 외교부의 여성 대변인 장위(姜瑜)는 이날 브리핑에서 “중국은 다음달 15일 미국에서 열리는 G20 회의의 참석 요청을 받았고 적극 참석할 것”이라면서 “회의 참가국들이 실무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스젠쉰(石建勛) 중국 퉁지(同濟)대학 경제학과 교수도 “음울한 금융위기의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미국이 달러화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세계의 부를 착취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며 “이제 세계는 미국이 국제경제에서 차지해온 지배적 지위와 달러화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전세계 무역 거래자나 투자자들이 달러화를 회피하는 경향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특히 남미ㆍ중동 등을 중심으로 일본 엔화나 유로화, 중국 위안화 등을 결제 통화로 활용하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동남아에서는 이미 위안화가 제2의 달러화로 기능하고 있다. 중국은 다음달 3일 타이베이(臺北)에서 열리는 양안회담에서도 양안간 무역대금 결제수단을 미국 달러화 대신 양안 통화로 대체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금융감독 당국자들과 10대 은행장들을 대표단에 대거 포함시켰다.

중국이 앞장서 내건 ‘반달러 기치’에는 러시아와 남미, 아시아의 다수 국가들이 동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국제사회를 고통에 빠뜨린 신용위기는 미국의 잘못된 금융시장 관리에서 비롯됐다”면서 시스템 개혁을 주장하고 있으며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도 “오늘날 전세계가 달러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중국과의 공조의지를 재확인했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도 오래 전 “금융위기가 선진국의 금융기관을 거대한 카지노로 만든 투기자본 때문에 초래됐다”는 견해를 밝히면서 “다음달 워싱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투기자본 규제를 포함해 세계 금융 시스템의 새로운 원칙을 세우기 위한 결정이 나오기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의 12개 국가는 최근 무역거래에서 미국 달러화 사용을 줄이고 자국통화 사용을 확대하기로 합의했으며 이밖에 태국과 이란을 비롯한 아시아ㆍ아프리카 국가들도 미 달러화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그러나 위안화는 물론 엔화ㆍ유로ㆍ파운드화의 국제화가 바람직하지만 달러 외에 결제통화를 다변화하기에는 아직 국제 금융시장이 준비가 덜 돼 있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다른 통화들이 달러를 대체하기에는 해당 국가의 경제력뿐 아니라 정치ㆍ사회적 선진화와 안정화가 보다 진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밍 중국국제금융공사(CICC) 수석 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위기는 위안화의 국제화에 더 없는 호기지만 지금 당장은 실현할 수 없다고 본다”면서 “중국경제의 안정적인 발전이 선결돼 역내통화로서의 역량을 키워야 하고 아울러 위안화의 신뢰성 확보를 위해 환율의 시장화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추락하는달러 미국, 로마제국 전철 밟나>

기사입력 2008-10-28 09:49 / 위클리조선 /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화폐 가치 떨어지며 중산층 몰락한 로마 위기와 비슷한 상황

‘전쟁 통한 평화’ 추구도 닮아…경제력 약화로 군사력 축소 불가피

“현재의 세계는 미국이 냉전에서 승리한 20세기 후반보다는 열강이 각축을 벌인 19세기에 더 가깝다.” 미국의 대표적인 네오콘(신보수주의자) 이론가인 로버트 케이건 카네기 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이 외교전문 격월간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9·10월호 기고문에서 현재 국제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위상에 대해 밝힌 대목이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이 요즘 ‘날개 없는 독수리’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냉전에서 소련에 승리한 이후 미국은 그동안 국제 정치나 경제 분야는 물론 군사력 등 각 분야에서 거칠 것이 없을 정도로 승승장구 해왔던 점에 비추어 볼 때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특히 21세기를 맞으면서 출범한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전세계적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투사하면서 경쟁 상대국이 없을 정도로 힘을 과시해온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9·11 테러를 자행한 알 카에다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 사담 후세인과 탈레반 정권을 제거했다. 부시 행정부는 또 ‘자유와 민주주의’를 확산시킨다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옛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의 민주화를 부추겨 정권을 교체했다. 핵무기를 개발하려던 리비아는 미국의 선제 공격 가능성을 우려해 핵을 포기하면서 스스로 백기까지 들었다. 세계 경제는 미국의 월가와 달러화가 좌지우지했다. 각국이 앞다투어 미국식 자본주의와 선진 금융시스템을 본받으려고 나섰다.

미국식 경제모델의 실패

과도한 군사비 지출·재정적자 증가

기진맥진한 경제에 금융위기 직격탄

그러던 미국이 갑자기 ‘제국의 힘’을 상실하고 있다. 지난 8월 러시아가 친미 동맹 국가인 그루지야를 침공했을 때, 미국은 그루지야에 대한 군사적 지원조차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이때만 해도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에 지나치게 군사력을 집중하는 바람에 그루지야를 지원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러시아와의 대결을 피했다는 견해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다. 미국의 강력한 군사력을 지탱할 수 있는 경제가 문제였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그동안 오일머니로 다시 힘을 비축한 반면, 미국은 과도한 군사비 지출과 재정적자의 계속된 증가 등으로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에 빠졌다. 이 와중에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 담보대출) 부실로 비롯된 금융위기가 미국에 엄청난 타격을 가했다. 이번 금융위기는 다른 나라들의 자본으로 소비를 부양해 성장을 촉진해온 미국식 경제모델이 원인이다.

미국은 1990년대 말부터 금융산업을 경제성장의 주력 업종으로 선택했다. 당시 미국 의회는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각종 법안을 양산했고, 이후 미국 금융회사들은 각종 파생상품을 아무런 규제 없이 쏟아냈다. 이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낳기도 했지만 월가의 탐욕과 잘못된 판단 등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부실을 키웠다. 월가의 붕괴는 미국 경제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미국은 제조업 부문의 약세를 금융산업의 막대한 수익률로 상쇄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소비침체가 계속된다면 국내총생산(GDP)의 70% 정도를 소비에 의존하는 미국 경제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미국 금융산업이 전세계에서 자본력과 첨단 투자기법을 활용해 벌어들이는 투자수익은 매년 수조달러에 이른다. 미국 경제가 흔들리면 자연적으로 미국의 막강한 영향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때문에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지도력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을 놓고 마치 로마제국이 망할 때와 비슷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컬런 머피 전 시사월간지 애틀랜틱 먼슬리 편집장은 저서 ‘우리가 로마인가?(Are We Rome?)’에서 성조기 무늬의 토가(toga·로마시민 복장)를 입은 미국이 로마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제사회에선 앞으로 미국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국제질서 변화의 3가지 시나리오

“미국의 제국주의는 끝났다” 잇단 경고

 美 중심에서 ‘다극 체제’로 재편 가능성

미국 일간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금융위기 이후 국제질서가 어떻게 재편될 것인지를 전망했다(10월 9일자 보도). 이 신문은 국제적인 세력 구도의 변화를 3가지 시나리오로 제시했다. 첫 번째는 독보적인 수퍼파워의 지위를 누려온 미국이 뚜렷한 쇠퇴기를 맞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이에 따라 미국 중심의 기존 국제질서는 ‘다극(multipolar)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베트남의 악몽이 재연되고 있는 이라크전쟁과 미국식 금융모델의 붕괴 등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반미 국가인 이란과 베네수엘라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도 미국의 리더십을 의심하고 있다.

심지어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유엔총회 개막연설(9월 23일)에서 “미국의 제국주의는 이제 거의 그 길의 끝에 도달해 가고 있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이매뉴얼 월러스틴 미국 예일대 교수는 “이라크전쟁은 미국의 쇠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동시에 이를 앞당긴 원인이며 부시 대통령은 미국 정부를 재정적자의 수렁에 빠트린 장본인”이라고 비판하면서 미국 쇠퇴론을 강조했다. 존 그레이(gray) 전 런던정경대 교수는 “현 상황은 세계의 세력 균형이 돌이킬 수 없이 변화되는 역사적·지정학적 변화의 순간”이라며 “2차대전 이후 지속돼온 미국의 세계적 리더십 시대가 끝났다”고 주장했다. 그레이 교수는 “소련 붕괴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몰락은 광범위한 지정학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경제력 약화로 인한 미국의 군사력 축소는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시나리오 1‘팍스 달러리엄’ 무너져 내리는 중

‘큰손’ 중국·러시아, 강력 라이벌 부상

현재 첫 번째 시나리오는 로마제국이 멸망한 원인과 맞물리면서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로마의 멸망 원인은 설이 구구하다. 그중에서도 은본위제 포기와 금본위제 훼손에 따른 화폐 문제가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로마의 네로 황제는 식민지와의 무역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은 함유량을 조절해 은화를 평가절하했다.

이때부터 은 함유량은 지속적으로 줄어 로마의 경제를 심각하게 훼손시켰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금화를 기축통화로 삼았으나 채굴량 부족 등으로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었고, 이에 따라 중산층이 몰락하고 경제가 붕괴되면서 로마는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

영국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1737~1794)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로마가 멸망한 것은 가정의 굴뚝에서 연기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제국의 몰락이 가정붕괴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 로마의 가계(household)들은 화폐가치 하락에 따른 소득감소로 어려움을 겪었다. 가계는 사회의 가장 작은 구성단위임과 동시에 국민경제의 핵심 경제주체 중 하나다. 따라서 건강한 가계는 부강한 국민경제의 초석(礎石)이다. 미국도 이와 비슷한 처지에 몰려 있다. 서브프라임모기지의 부실로 많은 미국 가정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금융위기는 실물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미국 경기침체 징후는 이미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8월 산업생산은 전달에 비해 1.1% 감소해 2005년 9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기업 활동이 둔화되고 실업이 늘면서 개인의 소득이 줄고 소비지출도 감소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달러화 주도의 세계경제 질서인 ‘팍스 달러리엄(Pax dollarium)’이 무너지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미국 상품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달러화 시대의 종료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고 진단했다. 미국은 그동안 막강한 달러화 자본과 월가의 첨단 금융공학을 바탕으로 세계 경제의 ‘지존’으로 군림해 왔다.

하지만 미국의 금융위기가 확산되자 세계 경제질서의 중심이 미국에서 유럽과 아시아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들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막대한 구제금융 비용이 가뜩이나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에 추가될 것이며, 누군가로부터 자금을 끌어와야 한다”면서 “가장 큰손은 중국·러시아·걸프 국가들이며 이들은 라이벌이지 동맹국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루비니 교수는 또 “미국은 이번 위기를 어떻게 해서든 넘길 것으로 보이지만, 세계에서 다른 위치를 차지하는 다른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이라면서 “미국이라는 제국의 종말이 시작되는 것일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시나리오 2

금융위기로 인한 美 쇠퇴론은 과장

미국 대체할 강력한 리더 아직 없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현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지위를 상실시키지 않을 뿐더러 미국의 군사력은 미래에도 우월적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미국의 시대’의 저자인 로버트 리버 조지타운대 교수는 “이번 금융위기로 미국의 쇠퇴를 주장하는 이들은 과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리버 교수는 “압도적 군사력, 시장규모와 생산성 등 실체적 요인뿐 아니라 미 경제 구조의 유연성과 경제회복 능력은 수퍼파워의 지위를 유지시키는 요인”이라면서 “국제질서는 우세한 쪽에 편승하는 ‘밴드왜건(bandwagon) 효과’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으며 여전히 미국의 힘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의 로빈 니블렛 소장도 “미국의 쇠퇴가 부시 행정부 말기 들어 급속화하고 있지만, 미국의 쇠퇴는 구조적 현상이기보다는 단기적 현상이며 미국을 대체할 다른 국가들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폴 케네디 미국 예일대 교수도 “미국의 쇠퇴는 있겠지만 당장 급격하게 붕괴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케네디 교수는 “20세기에 중흥을 꾀하다 몰락한 나치 독일과 일본, 옛소련의 경우는 급부상한 국력을 받쳐줄 만한 체계가 없었다”면서 “미국은 이들과 달리 하룻밤 사이에 모래가 될 제국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케네디 교수는“구조적으로 미국이 기울어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완전한 주도권 이전 시기는 아직 멀었다”면서 “역사상 막강하던 대국들은 그 힘을 뒷받침할 만한 체계가 있었고, 아직 미국에서 그 체계는 무너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도 “일각에서는 미국이 제국의 촉수를 과도하게 뻗쳐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평가하지만 이는 잘못된 예측”이라고 단언했다. 리 전 총리는 “미국은 정보통신(IT)혁명에서 목격할 수 있듯 수차례 자신을 혁신하는 능력을 보여주었고, 유럽처럼 과도한 사회보장의 부담도 지지 않고 있다”며 “앞으로 50년 동안 미국은 경제와 과학을 선도하면서 세계의 주역으로 활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은 여전히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GDP(국내총생산)는 13조8112억달러로 세계 총 GDP의 25.4%를 차지했다. 2위인 일본(4조3767억달러)의 3배나 된다. 미국의 국방예산은 전세계 군사 지출의 50%나 된다. 또 막대한 연구·개발 투자비 등에서 아직 어느 국가도 미국을 따라오기는 힘들다.

시나리오 3

위기 불구하고 당분간은 수퍼파워 유지

다만 국제정치·경제적 영향력은 급락할 것


마지막 시나리오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 강대국의 부상으로 미국의 수퍼파워가 분산되거나 미국의 쇠퇴를 대체할 국제기구나 국가가 없는 한 잠정적으론 기존의 수퍼파워가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이다. 영국 금융사학자인 니알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거상 : 미국 제국의 흥망(Colossus : The Rise and Fall of the American Empire)’에서 “미국이 정치·군사·경제적 규모 등으로 볼 때 당분간 수퍼파워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리드 자카리아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국제담당 편집인도 “미국이 통계 수치상으로는 하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교육과 창의적 정신, 경제, 젊은 인구 분포도 등 때문에 당분간 수퍼파워의 지위를 계속 누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로선 미국에 맞설 경제권으로 일본과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유럽연합(EU),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이 거론된다. 이 중 어떤 경제권도 현재 미국이 누리는 경제패권을 갖지는 못할 것이다. 또 군사력 측면에서 볼 때도 미국에 단독으로 도전할 국가는 없다. 때문에 미국의 세계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 미국의 국제 정치 및 경제적 영향력이 현저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자칫하면 미국의 지위는 급전직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달러화가 유로화, 엔화, 위안화와 함께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나눠 가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어느 시나리오가 맞을지 여부는 미지수이지만 미국 차기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는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위상을 복원하는 것이 될 것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차기 대통령은 위기에 봉착한 ‘미국’이라는 브랜드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민주당의 배럭 오바마 후보나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가 차기 대통령이 되더라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인 것만은 틀림없다는 것이다.

| 미국과 로마의 유사점 |

미국 시민권, 도시국가인 로마 시민권서 유래

 美 국회의사당 ‘캐피털 힐’은 로마 신전의 이름

미국과 로마제국은 유사한 측면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의미하는‘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라는 용어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에서 따온 말이다. 미국 국적을 ‘미국 시민권’이라고 지칭하는 것도 도시국가였던 로마의 시민권 개념에서 유래한 것이다. 미국 의회의사당을 뜻하는 ‘캐피털 힐(Capitol Hill)’은 로마 집정관의 취임식이 열리는 신전 ‘캐피토리노(Capitolino)’에서 따온 것이다. 상원을 가리키는 ‘세너트(Senate)’는 로마의 원로원(Senatus)을 뜻한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페터 벤더는 저서 ‘제국의 부활’에서 로마와 미국이라는 두 제국은 수립과정부터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로마는 이집트, 마케도니아, 시리아 등 헬레니즘 강대국들이 경쟁으로 쇠약해지는 틈을 타 세력을 확보했고, 미국은 1, 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강대국들이 몰락한 사이에 헤게모니를 잡았다. 두 제국은 협상을 통한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통한 평화를 선택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컬런 머피 전 시사월간지 애틀랜틱 먼슬리 편집장은 “두 제국은 광대한 영토와 여러 인종으로 구성됐다는 점에서도 닮았다”면서 “두 제국은 모두 선과 악의 대결구도에서 자신을 ‘구세주’로 여기고, 국경 너머로 너무 뻗어나간 나머지 내부에서 여러 위기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