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에 돈 풀지만 방법은 시장논리>
기사입력 2008-10-01 18:02 최종수정2008-10-02 00:25 / 경향신문 / 박병률 기자
기업 등급매겨 구조조정 유도 병행
참여은행 실적따라 인센티브 부여
◇정부가 1일 당정협의를 거쳐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방안’을 내놓은 것은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방치하면 흑자도산하는 업체들이 속출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날 마련한 대책은 예전의 정책자금 지원 방식과 차별화된다. 은행들이 회생가능한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면 정부와 금융당국이 인센티브를 주는 등 시장논리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중소기업 구조조정을 염두에 두고 우량 중소기업에 대한 선별적인 자금 지원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선의의 피해를 보는 중소기업이 속출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정책자금을 풀고=정부는 정책자금으로 4조3000억원, 신용보증지원 확대로 4조원을 중소기업에 공급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산업은행은 당초 2조5000억원에서 3조3000억원, 기업은행은 24조원에서 26조원, 수출입은행은 6조5000억원에서 7조원으로 정책자금 지원액을 늘렸다. 또 신용보증기금을 통해 1조원 규모의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을 발행해 중소기업의 회사채를 사주기로 했다.
신용보증 한도는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이 각각 1조5000억원씩, 지역신용보증재단이 1조원을 늘렸다.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특례보증도 1조원에서 1조5000억원으로 늘리고, 업체당 지원 한도는 1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높이기로 했다.
◇자금지원은 은행들의 몫=정부는 지원대상 중소기업을 A, B, C, D 등 4개 그룹으로 나누되 지원대상 분류는 은행에 맡기기로 했다. 금감원은 이들 기업에 대한 가이드라인만 제시한다. 우량기업인 A그룹(정상기업), B그룹(일시적 경영난에 직면한 기업)은 신규 자금을 집중 지원한다. 은행들이 경기가 어렵다고 무차별적으로 자금 회수에 나서 우량기업이 도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이들 기업에는 자금 지원이 신속하게 이뤄지는 ‘패스트 트랙(Fast Track)’ 방식이 적용된다.
중소기업 지원에 참여하는 은행에는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은행 경영실태 평가 때 높은 점수를 주고, 자금을 지원한 기업의 경영성과가 나쁘더라도 담당 임직원은 면책키로 한 것이다. 신보와 기보는 특별보증을 통해 은행의 신규대출을 최고 10억원까지 추가 보증한다. 이 같은 자금지원은 내년 6월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C그룹(부실 징후가 있으나 회생 가능한 기업)으로 분류된 기업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며, 회생 가능한 기업에만 중소기업진흥공단의 특례자금이 지원된다. D그룹(회생 불가능한 기업)으로 분류된 기업은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
◇키코 손실 기업도 지원=환헤지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해 손실을 입은 기업이 지원을 요청하면 비공개로 ‘키코 계약은행협의회’가 구성된다. 금감원이 중심이 되고 키코 계약을 맺은 은행들이 참여한다. 지원기준은 ‘회생 가능 여부’다. 회생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협의회가 지원방안을 내놓는다. 신규 대출을 해주거나 만기까지 환위험을 헤지하는 상품을 제공할 수도 있다.
은행과 기업이 협의를 거쳐 상환 일정을 연기하거나 손실 규모가 적으면, 수수료 감면과 이자율 할인을 할 수도 있다.
<'키코 부메랑' 거액 손실, 국민 돈으로 메워줄 판>
기사입력 2008-10-02 03:33 / 조선일보 / 정철환 기자
부실기업 살리는데 '신보'가 보증… '모럴 해저드' 논란
정부와 은행권이 결국 키코(KIKO·키워드) 사태 지원에 나섰다. 1조7000억원에 달하는 키코 손실액이 중소기업들의 줄도산과 은행들의 부실자산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이 정부측 설명이다.
은행·기업의 욕심이 만든 부실
하지만 환차손 회피(환헤지) 상품을 남용(濫用)해 '대박'을 잡으려 했던 일부 기업들의 투기 심리와, 이에 편승해 수수료 수입을 올리려고 한 은행들의 '욕심'이 빚어낸 부실을 메우는데 결국 국민세금(신보·기보의 보증)이 투입될 가능성이 높아져 논란이 일고 있다.
키코는 기본 구조상 환율하락이 예상될 때 환차손(換差損)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환헤지용 외환파생상품이다. 중소기업들이 키코에 집중 가입한 것도 상당수 기업들이 저(低)환율로 신음하던 지난해 하반기였다. 당시 원화 환율은 907~950원대에 불과했고, 환율이 더 떨어지리라는 불안감이 높았다.
정상적인 환헤지 목적이라면 실제 수출액의 50% 정도를 계약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키코 손실기업 중 12%는 실제 수출액의 평균 167%에 달하는 액수의 계약을 맺는 오버헤지를 한 것으로 금융감독원 조사결과 나타났다. 키코의 대표적 희생자로 거론되는 태산LCD도 160%가 넘는 오버헤지를 했다.
신보·기보 투입… 세금 이용?
위험천만한 투자를 방조한 은행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들이 키코 판매를 하면서 환율 급등시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렸는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시중은행들은 기업의 외환거래량이나 다른 은행과 이미 키코 거래가 있는지 기본적인 상황도 거의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정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이 금융상품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리는 등의 기본적 책무를 소홀히 했다면 불완전 판매의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키코 사태는 '중소기업 도산→은행 자산 부실화'라는 연쇄 고리를 통해 그 피해가 은행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이미 하나은행이 2800억원대의 평가손을 입었고, 1조7000억원대의 키코 손실 중 7000억~1조원이 은행권의 부실로 전이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사태가 확산되자 정부와 은행권은 1일 금융감독원을 중심으로 '키코계약은행협의회'을 구성하고, 키코 피해 기업을 A·B·C·D 4등급으로 구분해 지원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경영상태가 양호한 A·B 등급 기업에는 신규 대출로 자금을 지원하고, 부실 징후가 있으나 회생 가능한 C등급 기업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통해 출자전환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 D등급은 회생 불가능한 것으로 분류돼 지원을 받지 못한다.
키코 사태 대책과 관련, 금융위원회는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의 중소기업 대출 보증을 약 2조5000억원 가량 늘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은행이 키코 손실을 본 중소기업에 대출을 내줬다가 손해를 보더라도, 신보·기보가 사실상 이를 메워준다는 뜻이다. 결국 국민세금이 투입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이에 대해 금융위 임승태 사무처장은 "은행들이 시장원리를 적용해 지원대상을 엄격히 선별할 것"이라며 "지원 과정에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키코(KIKO·knock-in knock-out)
환율이 일정 범위 내에서 움직일 경우 기업이 미리 정한 환율로 일정액(계약금액)의 외화를 은행에 팔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외환파생상품이다. 예컨대 계약환율을 '1달러=980원'으로 하고 환율범위를 900~1000원으로 하는 계약을 맺은 경우를 보자. 환율이 900~980원 사이에서 하락하면 가입업체는 달러당 980원을 보장받기 때문에 이익을 본다. 반대로 환율이 급등해 1000원을 돌파하면 계약금액의 2배에 달하는 달러를 시중에서 구입해서 계약환율 980원에 팔아야한다. 여기서 큰 손실이 난다. 환율이 900원 아래로 내려가면 계약은 무효가 된다.
<'무조건' 지원보다 '시장주의' 해법 택해>
기사입력 2008-10-01 07:30 / 아시아경제 / 박수익 기자
정부가 발표한 중소기업 금융지원 대책은 정부차원의 대대적 자금 공급을 통한 무조건적인 직접구제보다는 시장주의적 해법을 택한 것이 기본원칙이다.
총 8조3000억원의 신규 유동성 공급을 단행하기로 했지만 은행과 중소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무게중심을 뒀다.
이러한 원칙에는 두가지 배경이 작용한다. 우선 그동안 정부의 자금 공급에도 불구하고 정작 민간금융기관들이 위험관리 차원에서 대출 축소에 우선순위를 둬 실제 기업들이 혜택을 받지 못했던 점이 감안됐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8월 3000억원 규모의 청년창업특례보증을 도입했지만 현재 집행된 금액이 20억원에 불과하다.
중소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선별적 지원방식을 해야된다는 점과 특히 키코(KIKO) 손실에 대한 책임 공방은 기본적으로 사적계약의 영역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임승태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기업들의 모럴해저드 우려가 일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기업-은행-국책기관 3자의 공동 책임부담으로 시장원칙에 맞게 해결하자는 것이 기본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中企 4등급으로 구분…2등급까지 집중 지원
정부가 내년 6월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키로 한 '중소기업 지원 패스트 트랙(Fast-Track)' 프로그램은 우선 채권은행들의 상시평가에 따라 중소기업을 A, B, C, D 4등급으로 나누는 작업부터 시작된다.
A등급은 '정상', B등급은 '정상적이지만 일시적 자금난에 봉착한' 기업을 의미한다. C등급은 '부실징후가 있지만 회생가능한' 곳, D등급은 '부실징후가 있고 회생이 불가능한 곳'이다.
B등급 이상은 신규 유동성 공급지원 등이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C등급은 구조조정협약, 채권은행협약, 대주단협약, 법정관리 등 중소기업 워크아웃 프로그램이 적용된다. 등급분류를 위해 금융감독원이 은행들에게 평가에 참고할 가이드라인을 이미 전달했고, 은행들은 상시평가를 통해 등급을 구별하게 된다.
▲은행에 평가우대·면책특권 부여
B등급 이상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주채권은행을 중심으로 '비공개' 자율지원 프로그램이 가동된다. 비공개를 원칙으로 한 이유는 지원 사실이 공개되는 것만으로 해당 기업이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주채권은행이 신규자금 지원을 심사할 경우 신·기보가 기존 지원금액 이상의 특별보증을 해주는 심사도 동시에 진행된다.
특히 은행들이 경기 위축기에서도 자율적으로 중소기업에 신규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도록 각종 인센티브를 주기로 한 것이 눈에 띈다.
먼저 은행 경영실태평가(CAMELS)시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실적을 우대해주기로 했다. 예를들어 현재 경영관리부분에서 12.5%를 차지하고 있는 중기대출비율 준수실적 비중을 높여주는 것이다.
불공정거래 소지가 없는 범위내에서 은행과 중소기업이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은행이 중소기업에 신규 대출을 해주면서 이자외에 3~5년뒤에 신주인수권(BW)를 받는 방안, 대출채권을 전환사채(CB)로 전환하는 방안 등이다. 은행과 기업간 협의를 통해 이같은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은행의 중소기업 담당 임직원들이 중소기업의 유동성 지원을 위해 신규여신을 취급했다가 충당금을 추가로 적립해야하는 등 여신 부실 사태가 발생했더라도, 경영성과평가(KPI) 대상에서 제외하는 일종의 '면책특권'도 부여된다. 은행 실무책임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에 나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취지다.
▲C등급 '워크아웃' 절차
C등급(부실징후가 있지만 회생가능한 기업)에 해당하는 곳은 기존의 공식적인 워크아웃 절차에 따라 지원방안이 모색된다.
신용공여액 500억원 이상에 해당되는 '기업구조조정협약', 50억~500억원 사이의 '채권은행협약', 신용공여액 제한이 없는 모든 건설기업에 해당하는 '대주단협약' 등을 활용할 수 있다.
단, 이경우에도 B등급 이상에 해당되는 '패스트 트랙'과 동일하게 지원에 적극 나서는 은행들에게는 평가우대 및 여신 부실에 대한 면책 등이 이뤄진다.
또 구조조정과정에서 회생 가능한 기업에 대해서는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회생특례자금을 지원한다. 이미 70% 이상 집행된 중소기업 회생특례자금은 비교적 여유가 있는 재해복구자금(500억원 규모)에서 일부를 빌려서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정부는 또 대주단 협약 참여가 상대적으로 미미한 증권사의 적극적인 참여도 유도키로 했다.
[사설] 중기 유동성 지원 효율 높이려면
기사입력 2008-10-02 12:45 / 아시아경제
중소기업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올 연말까지 4조3000억원의 정책자금을 추가 지원하고 환헤지 파생상품인 키코(KIKO)로 손실을 입은 중소기업에 대해 은행들이 선별해 신규 대출이나 출자 전환을 해주는 내용의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 방안이 마련됐다.
기업은행 등 3개 국책 은행의 중소기업 지원 금액이 당초 계획보다 3조3000억원 늘고 신용보증기금이 1조원 규모로 중소기업 회사채를 인수하는 한편 신보 등의 보증 규모도 4조원 늘어난다. 이와 함께 한국은행은 중소기업 지원 실적이 높은 기업에게 총액 대출 한도를 확대해주는 방안을 강구키로 했다.
어제 당정 협의를 거쳐 나온 이 같은 지원 규모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지만 그 효과에는 의문이 없지 않다. 우선 지원 방식이 종전과 달리 은행이 먼저 돈을 풀고 금융 당국이 뒤에서 정책 자금을 공급하고 보증을 해주는 형태로 바뀌었다.
은행 자율에 맡기는 시장주의적 방안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금융 지원 없이도 지탱이 가능한 우량 중소기업들이 선별적으로 지원되고 실제 일시적 자금난으로 고통을 받는 중소기업들이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기업들은 중소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은행에 경영 평가 가산점을 주고 일정 한도내에서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금융당국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시중은행들 자체의 자금 경색이 심각한 상황에서 지원이 제대로 될지 걱정이 크다.
또 지금껏 과잉 유동성을 우려하며 은행 건전성 관리에 통화 정책의 초점을 맞춰왔던 한국은행이 과연 총액대출 한도 확대에 얼마나 유연성을 발휘할 것인지도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경제 전반의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소기업 대책이 생색내기에 그쳐서는 결코 안 된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은행도 살 수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시론] 키코 사태가 던지는 교훈
기사입력 2008-10-01 18:02 / 경향신문 /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보험에 가입하는 소비자의 마음은 사실은 두 가지이다. 사고가 나면 보상을 받아 좋지만 사고가 안 나면 보험료가 아깝다. 그런데 고민하던 차에 이런 제안이 왔다. “보험료 없이 보상 받으시죠.” 솔깃한 제안이다. “그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사고가 나면 책임을 져주시죠.” 책임을 져주겠다고만 하면 보험은 공짜다. 솔깃할 수도 있다.
- 환위험 인식 못한 기업도 책임 -
최근 KIKO로 이름이 붙은 파생상품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총 1조5000억원가량의 손실 중 평가 손실은 1조원, 실현손실은 5000억원 정도이다. 이 상품은 환율과 관련된 장외파생상품이다. 그 구조가 매우 독특하다. 기본적인 것은 환율이 떨어지면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달러당 환율이 930원 이하로 하락할 경우 떨어진 만큼 보상해준다. 단 부대 조건이 있다. 환율이 오를 경우 책임져주라는 조건이다. 예를 들어 환율이 975원 이상으로 오를 경우 책임을 지되, 두 배로 책임을 진다.
그런데 떨어질 줄 알았던 환율이 급격히 올라버렸다. 결국 ‘환율 오르면 두 배 보상 해주기’ 조건이 작동한다. 환율이 1달러에 970원 이상으로 오르는 순간 ‘930원 대비 오른 만큼 보상’ 조건이 작동한다. ‘하락시 보상받기’를 위해 ‘상승시 보상해주기’ 조항을 첨부했는데 환율이 오르는 바람에 ‘보상 해주기’ 조건만이 작동한 것이 금번 KIKO 사태의 본질이다. ‘떨어지면 보상받기’는 풋옵션 매수이고, ‘오르면 보상해주기’는 콜옵션 매도이다. 그런데 ‘떨어지면 보상받기’의 경우 890원까지만 작동하고 환율이 890원을 건드리면 사라진다. (Knock-Out : KO) 반대로 ‘오르면 보상해주기’의 경우 975원을 건드리는 순간 ‘930원 대비 상승분만큼 보상해주기’가 작동한다. (Knock-In:KI)
이 계약은 주로 중소기업들이 은행의 권고를 받아 가입한 것으로 이 과정에서 여러 편의를 약속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계약에는 불완전 판매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그러나 1994년 이와 유사한 이유로 재판을 벌인 미국의 프록터갬블과 뱅커스트러스트 은행의 경우를 보면 상황이 일방적으로 기업에 유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일부는 기업이 잘못했고 일부는 은행이 잘못했다는 중간 판결 이후 두 주체는 1억달러의 손실 중에서 2000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하고 합의를 했다. 기업의 책임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 94년 美 ‘중간 판결’ 참조할 만 -
장외파생상품은 1 대 1 계약이라는 특성상 본의 아니게 사고가 나는 경우가 존재한다. KIKO도 마찬가지이다. 예상과 달리 환율이 급격히 오르면서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기업은 아우성이고 은행은 묵묵부답이다. 그러나 계약은 계약이다. 일단은 존중되어야 하며 문제가 있으면 법정에 호소해야 한다. 그리고 가슴은 아프다 해도 기업의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쉽게 해서는 안된다. 문제가 있기는 해도 계약서에 사인을 한 이상 계약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기업들의 환위험 관련 의식이 더욱 제고되고 피해를 본 기업에 대한 당국의 지원이 좀더 분명하게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해외기관과 연결되어 이 상품을 판매한 국내은행들에 대해서도 일정한 책임은 지우되 마녀사냥식의 공격을 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법정에서 가리는 것이 옳다. 그리고 미국의 예 등을 참조하여 합리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사전적으로 어느 일방의 편을 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것이 금번 사태가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이다.
기사입력 2008-10-01 18:02 최종수정2008-10-02 00:25 / 경향신문 / 박병률 기자
기업 등급매겨 구조조정 유도 병행
참여은행 실적따라 인센티브 부여
◇정부가 1일 당정협의를 거쳐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방안’을 내놓은 것은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방치하면 흑자도산하는 업체들이 속출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날 마련한 대책은 예전의 정책자금 지원 방식과 차별화된다. 은행들이 회생가능한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면 정부와 금융당국이 인센티브를 주는 등 시장논리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중소기업 구조조정을 염두에 두고 우량 중소기업에 대한 선별적인 자금 지원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선의의 피해를 보는 중소기업이 속출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정책자금을 풀고=정부는 정책자금으로 4조3000억원, 신용보증지원 확대로 4조원을 중소기업에 공급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산업은행은 당초 2조5000억원에서 3조3000억원, 기업은행은 24조원에서 26조원, 수출입은행은 6조5000억원에서 7조원으로 정책자금 지원액을 늘렸다. 또 신용보증기금을 통해 1조원 규모의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을 발행해 중소기업의 회사채를 사주기로 했다.
신용보증 한도는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이 각각 1조5000억원씩, 지역신용보증재단이 1조원을 늘렸다.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특례보증도 1조원에서 1조5000억원으로 늘리고, 업체당 지원 한도는 1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높이기로 했다.
◇자금지원은 은행들의 몫=정부는 지원대상 중소기업을 A, B, C, D 등 4개 그룹으로 나누되 지원대상 분류는 은행에 맡기기로 했다. 금감원은 이들 기업에 대한 가이드라인만 제시한다. 우량기업인 A그룹(정상기업), B그룹(일시적 경영난에 직면한 기업)은 신규 자금을 집중 지원한다. 은행들이 경기가 어렵다고 무차별적으로 자금 회수에 나서 우량기업이 도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이들 기업에는 자금 지원이 신속하게 이뤄지는 ‘패스트 트랙(Fast Track)’ 방식이 적용된다.
중소기업 지원에 참여하는 은행에는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은행 경영실태 평가 때 높은 점수를 주고, 자금을 지원한 기업의 경영성과가 나쁘더라도 담당 임직원은 면책키로 한 것이다. 신보와 기보는 특별보증을 통해 은행의 신규대출을 최고 10억원까지 추가 보증한다. 이 같은 자금지원은 내년 6월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C그룹(부실 징후가 있으나 회생 가능한 기업)으로 분류된 기업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며, 회생 가능한 기업에만 중소기업진흥공단의 특례자금이 지원된다. D그룹(회생 불가능한 기업)으로 분류된 기업은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
◇키코 손실 기업도 지원=환헤지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해 손실을 입은 기업이 지원을 요청하면 비공개로 ‘키코 계약은행협의회’가 구성된다. 금감원이 중심이 되고 키코 계약을 맺은 은행들이 참여한다. 지원기준은 ‘회생 가능 여부’다. 회생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협의회가 지원방안을 내놓는다. 신규 대출을 해주거나 만기까지 환위험을 헤지하는 상품을 제공할 수도 있다.
은행과 기업이 협의를 거쳐 상환 일정을 연기하거나 손실 규모가 적으면, 수수료 감면과 이자율 할인을 할 수도 있다.
<'키코 부메랑' 거액 손실, 국민 돈으로 메워줄 판>
기사입력 2008-10-02 03:33 / 조선일보 / 정철환 기자
부실기업 살리는데 '신보'가 보증… '모럴 해저드' 논란
정부와 은행권이 결국 키코(KIKO·키워드) 사태 지원에 나섰다. 1조7000억원에 달하는 키코 손실액이 중소기업들의 줄도산과 은행들의 부실자산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이 정부측 설명이다.
은행·기업의 욕심이 만든 부실
하지만 환차손 회피(환헤지) 상품을 남용(濫用)해 '대박'을 잡으려 했던 일부 기업들의 투기 심리와, 이에 편승해 수수료 수입을 올리려고 한 은행들의 '욕심'이 빚어낸 부실을 메우는데 결국 국민세금(신보·기보의 보증)이 투입될 가능성이 높아져 논란이 일고 있다.
키코는 기본 구조상 환율하락이 예상될 때 환차손(換差損)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환헤지용 외환파생상품이다. 중소기업들이 키코에 집중 가입한 것도 상당수 기업들이 저(低)환율로 신음하던 지난해 하반기였다. 당시 원화 환율은 907~950원대에 불과했고, 환율이 더 떨어지리라는 불안감이 높았다.
정상적인 환헤지 목적이라면 실제 수출액의 50% 정도를 계약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키코 손실기업 중 12%는 실제 수출액의 평균 167%에 달하는 액수의 계약을 맺는 오버헤지를 한 것으로 금융감독원 조사결과 나타났다. 키코의 대표적 희생자로 거론되는 태산LCD도 160%가 넘는 오버헤지를 했다.
신보·기보 투입… 세금 이용?
위험천만한 투자를 방조한 은행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들이 키코 판매를 하면서 환율 급등시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렸는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시중은행들은 기업의 외환거래량이나 다른 은행과 이미 키코 거래가 있는지 기본적인 상황도 거의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정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이 금융상품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리는 등의 기본적 책무를 소홀히 했다면 불완전 판매의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키코 사태는 '중소기업 도산→은행 자산 부실화'라는 연쇄 고리를 통해 그 피해가 은행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이미 하나은행이 2800억원대의 평가손을 입었고, 1조7000억원대의 키코 손실 중 7000억~1조원이 은행권의 부실로 전이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사태가 확산되자 정부와 은행권은 1일 금융감독원을 중심으로 '키코계약은행협의회'을 구성하고, 키코 피해 기업을 A·B·C·D 4등급으로 구분해 지원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경영상태가 양호한 A·B 등급 기업에는 신규 대출로 자금을 지원하고, 부실 징후가 있으나 회생 가능한 C등급 기업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통해 출자전환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 D등급은 회생 불가능한 것으로 분류돼 지원을 받지 못한다.
키코 사태 대책과 관련, 금융위원회는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의 중소기업 대출 보증을 약 2조5000억원 가량 늘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은행이 키코 손실을 본 중소기업에 대출을 내줬다가 손해를 보더라도, 신보·기보가 사실상 이를 메워준다는 뜻이다. 결국 국민세금이 투입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이에 대해 금융위 임승태 사무처장은 "은행들이 시장원리를 적용해 지원대상을 엄격히 선별할 것"이라며 "지원 과정에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키코(KIKO·knock-in knock-out)
환율이 일정 범위 내에서 움직일 경우 기업이 미리 정한 환율로 일정액(계약금액)의 외화를 은행에 팔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외환파생상품이다. 예컨대 계약환율을 '1달러=980원'으로 하고 환율범위를 900~1000원으로 하는 계약을 맺은 경우를 보자. 환율이 900~980원 사이에서 하락하면 가입업체는 달러당 980원을 보장받기 때문에 이익을 본다. 반대로 환율이 급등해 1000원을 돌파하면 계약금액의 2배에 달하는 달러를 시중에서 구입해서 계약환율 980원에 팔아야한다. 여기서 큰 손실이 난다. 환율이 900원 아래로 내려가면 계약은 무효가 된다.
<'무조건' 지원보다 '시장주의' 해법 택해>
기사입력 2008-10-01 07:30 / 아시아경제 / 박수익 기자
정부가 발표한 중소기업 금융지원 대책은 정부차원의 대대적 자금 공급을 통한 무조건적인 직접구제보다는 시장주의적 해법을 택한 것이 기본원칙이다.
총 8조3000억원의 신규 유동성 공급을 단행하기로 했지만 은행과 중소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무게중심을 뒀다.
이러한 원칙에는 두가지 배경이 작용한다. 우선 그동안 정부의 자금 공급에도 불구하고 정작 민간금융기관들이 위험관리 차원에서 대출 축소에 우선순위를 둬 실제 기업들이 혜택을 받지 못했던 점이 감안됐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8월 3000억원 규모의 청년창업특례보증을 도입했지만 현재 집행된 금액이 20억원에 불과하다.
중소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선별적 지원방식을 해야된다는 점과 특히 키코(KIKO) 손실에 대한 책임 공방은 기본적으로 사적계약의 영역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임승태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기업들의 모럴해저드 우려가 일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기업-은행-국책기관 3자의 공동 책임부담으로 시장원칙에 맞게 해결하자는 것이 기본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中企 4등급으로 구분…2등급까지 집중 지원
정부가 내년 6월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키로 한 '중소기업 지원 패스트 트랙(Fast-Track)' 프로그램은 우선 채권은행들의 상시평가에 따라 중소기업을 A, B, C, D 4등급으로 나누는 작업부터 시작된다.
A등급은 '정상', B등급은 '정상적이지만 일시적 자금난에 봉착한' 기업을 의미한다. C등급은 '부실징후가 있지만 회생가능한' 곳, D등급은 '부실징후가 있고 회생이 불가능한 곳'이다.
B등급 이상은 신규 유동성 공급지원 등이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C등급은 구조조정협약, 채권은행협약, 대주단협약, 법정관리 등 중소기업 워크아웃 프로그램이 적용된다. 등급분류를 위해 금융감독원이 은행들에게 평가에 참고할 가이드라인을 이미 전달했고, 은행들은 상시평가를 통해 등급을 구별하게 된다.
▲은행에 평가우대·면책특권 부여
B등급 이상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주채권은행을 중심으로 '비공개' 자율지원 프로그램이 가동된다. 비공개를 원칙으로 한 이유는 지원 사실이 공개되는 것만으로 해당 기업이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주채권은행이 신규자금 지원을 심사할 경우 신·기보가 기존 지원금액 이상의 특별보증을 해주는 심사도 동시에 진행된다.
특히 은행들이 경기 위축기에서도 자율적으로 중소기업에 신규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도록 각종 인센티브를 주기로 한 것이 눈에 띈다.
먼저 은행 경영실태평가(CAMELS)시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실적을 우대해주기로 했다. 예를들어 현재 경영관리부분에서 12.5%를 차지하고 있는 중기대출비율 준수실적 비중을 높여주는 것이다.
불공정거래 소지가 없는 범위내에서 은행과 중소기업이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은행이 중소기업에 신규 대출을 해주면서 이자외에 3~5년뒤에 신주인수권(BW)를 받는 방안, 대출채권을 전환사채(CB)로 전환하는 방안 등이다. 은행과 기업간 협의를 통해 이같은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은행의 중소기업 담당 임직원들이 중소기업의 유동성 지원을 위해 신규여신을 취급했다가 충당금을 추가로 적립해야하는 등 여신 부실 사태가 발생했더라도, 경영성과평가(KPI) 대상에서 제외하는 일종의 '면책특권'도 부여된다. 은행 실무책임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에 나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취지다.
▲C등급 '워크아웃' 절차
C등급(부실징후가 있지만 회생가능한 기업)에 해당하는 곳은 기존의 공식적인 워크아웃 절차에 따라 지원방안이 모색된다.
신용공여액 500억원 이상에 해당되는 '기업구조조정협약', 50억~500억원 사이의 '채권은행협약', 신용공여액 제한이 없는 모든 건설기업에 해당하는 '대주단협약' 등을 활용할 수 있다.
단, 이경우에도 B등급 이상에 해당되는 '패스트 트랙'과 동일하게 지원에 적극 나서는 은행들에게는 평가우대 및 여신 부실에 대한 면책 등이 이뤄진다.
또 구조조정과정에서 회생 가능한 기업에 대해서는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회생특례자금을 지원한다. 이미 70% 이상 집행된 중소기업 회생특례자금은 비교적 여유가 있는 재해복구자금(500억원 규모)에서 일부를 빌려서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정부는 또 대주단 협약 참여가 상대적으로 미미한 증권사의 적극적인 참여도 유도키로 했다.
[사설] 중기 유동성 지원 효율 높이려면
기사입력 2008-10-02 12:45 / 아시아경제
중소기업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올 연말까지 4조3000억원의 정책자금을 추가 지원하고 환헤지 파생상품인 키코(KIKO)로 손실을 입은 중소기업에 대해 은행들이 선별해 신규 대출이나 출자 전환을 해주는 내용의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 방안이 마련됐다.
기업은행 등 3개 국책 은행의 중소기업 지원 금액이 당초 계획보다 3조3000억원 늘고 신용보증기금이 1조원 규모로 중소기업 회사채를 인수하는 한편 신보 등의 보증 규모도 4조원 늘어난다. 이와 함께 한국은행은 중소기업 지원 실적이 높은 기업에게 총액 대출 한도를 확대해주는 방안을 강구키로 했다.
어제 당정 협의를 거쳐 나온 이 같은 지원 규모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지만 그 효과에는 의문이 없지 않다. 우선 지원 방식이 종전과 달리 은행이 먼저 돈을 풀고 금융 당국이 뒤에서 정책 자금을 공급하고 보증을 해주는 형태로 바뀌었다.
은행 자율에 맡기는 시장주의적 방안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금융 지원 없이도 지탱이 가능한 우량 중소기업들이 선별적으로 지원되고 실제 일시적 자금난으로 고통을 받는 중소기업들이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기업들은 중소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은행에 경영 평가 가산점을 주고 일정 한도내에서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금융당국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시중은행들 자체의 자금 경색이 심각한 상황에서 지원이 제대로 될지 걱정이 크다.
또 지금껏 과잉 유동성을 우려하며 은행 건전성 관리에 통화 정책의 초점을 맞춰왔던 한국은행이 과연 총액대출 한도 확대에 얼마나 유연성을 발휘할 것인지도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경제 전반의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소기업 대책이 생색내기에 그쳐서는 결코 안 된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은행도 살 수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시론] 키코 사태가 던지는 교훈
기사입력 2008-10-01 18:02 / 경향신문 /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보험에 가입하는 소비자의 마음은 사실은 두 가지이다. 사고가 나면 보상을 받아 좋지만 사고가 안 나면 보험료가 아깝다. 그런데 고민하던 차에 이런 제안이 왔다. “보험료 없이 보상 받으시죠.” 솔깃한 제안이다. “그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사고가 나면 책임을 져주시죠.” 책임을 져주겠다고만 하면 보험은 공짜다. 솔깃할 수도 있다.
- 환위험 인식 못한 기업도 책임 -
최근 KIKO로 이름이 붙은 파생상품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총 1조5000억원가량의 손실 중 평가 손실은 1조원, 실현손실은 5000억원 정도이다. 이 상품은 환율과 관련된 장외파생상품이다. 그 구조가 매우 독특하다. 기본적인 것은 환율이 떨어지면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달러당 환율이 930원 이하로 하락할 경우 떨어진 만큼 보상해준다. 단 부대 조건이 있다. 환율이 오를 경우 책임져주라는 조건이다. 예를 들어 환율이 975원 이상으로 오를 경우 책임을 지되, 두 배로 책임을 진다.
그런데 떨어질 줄 알았던 환율이 급격히 올라버렸다. 결국 ‘환율 오르면 두 배 보상 해주기’ 조건이 작동한다. 환율이 1달러에 970원 이상으로 오르는 순간 ‘930원 대비 오른 만큼 보상’ 조건이 작동한다. ‘하락시 보상받기’를 위해 ‘상승시 보상해주기’ 조항을 첨부했는데 환율이 오르는 바람에 ‘보상 해주기’ 조건만이 작동한 것이 금번 KIKO 사태의 본질이다. ‘떨어지면 보상받기’는 풋옵션 매수이고, ‘오르면 보상해주기’는 콜옵션 매도이다. 그런데 ‘떨어지면 보상받기’의 경우 890원까지만 작동하고 환율이 890원을 건드리면 사라진다. (Knock-Out : KO) 반대로 ‘오르면 보상해주기’의 경우 975원을 건드리는 순간 ‘930원 대비 상승분만큼 보상해주기’가 작동한다. (Knock-In:KI)
이 계약은 주로 중소기업들이 은행의 권고를 받아 가입한 것으로 이 과정에서 여러 편의를 약속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계약에는 불완전 판매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그러나 1994년 이와 유사한 이유로 재판을 벌인 미국의 프록터갬블과 뱅커스트러스트 은행의 경우를 보면 상황이 일방적으로 기업에 유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일부는 기업이 잘못했고 일부는 은행이 잘못했다는 중간 판결 이후 두 주체는 1억달러의 손실 중에서 2000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하고 합의를 했다. 기업의 책임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 94년 美 ‘중간 판결’ 참조할 만 -
장외파생상품은 1 대 1 계약이라는 특성상 본의 아니게 사고가 나는 경우가 존재한다. KIKO도 마찬가지이다. 예상과 달리 환율이 급격히 오르면서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기업은 아우성이고 은행은 묵묵부답이다. 그러나 계약은 계약이다. 일단은 존중되어야 하며 문제가 있으면 법정에 호소해야 한다. 그리고 가슴은 아프다 해도 기업의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쉽게 해서는 안된다. 문제가 있기는 해도 계약서에 사인을 한 이상 계약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기업들의 환위험 관련 의식이 더욱 제고되고 피해를 본 기업에 대한 당국의 지원이 좀더 분명하게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해외기관과 연결되어 이 상품을 판매한 국내은행들에 대해서도 일정한 책임은 지우되 마녀사냥식의 공격을 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법정에서 가리는 것이 옳다. 그리고 미국의 예 등을 참조하여 합리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사전적으로 어느 일방의 편을 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것이 금번 사태가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