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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Articles

전세계 금융위기 해법은 국유화?

<은행 국유화… '금융공황 탈출구' 찾았다>

기사입력 2008-10-15 02:55 | 최종수정2008-10-15 09:55 / 조선일보 / 강경희 기자

유럽에 이어 미국 정부도 국유화 모델 채택

美 경제권력 뉴욕 월街서 워싱턴으로 이동

글로벌 금융위기의 해법으로 영국이 처음 제시한 '은행 국유화' 모델이 각광받고 있다. 온갖 대책에도 꿈쩍 않던 금융시장 패닉(공황)이 미국·유럽 정부가 천문학적 재정자금을 동원해 대형 은행을 국유화한다는 해법을 동시다발적으로 내놓자 겨우 진정됐다.

자본주의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후의 카드'를 던진 셈인데,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붓는 바람에, 실물 경기 침체를 살려낼 총탄을 미리 써버린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 같은 국유화·정부개입 모델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경제권력이 뉴욕 월스트리트(금융가)에서 워싱턴(정부)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장 구한 '반(反)시장적' 해법

영국 정부는 13일 4대 은행 가운데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 HBOS, 로이즈TSB 등 3대 은행에 총 370억 파운드의 공적 자금을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영국 정부는 RBS의 지분 63%, HBOS와 로이즈TSB의 지분 43.5%를 소유하는 대주주가 된다.

대신 정부는 이들 은행에 '3년간 주택 보유자와 중소기업들에 2007년 수준으로 적극 대출해주라'고 조건을 달았다. 경영 실패의 책임도 따져 물었다. 공적 자금이 투입된 3대 은행의 고위 경영진은 올해 현금 보너스도 받을 수 없고, 내년 이후에는 보너스도 현금이 아닌 주식 형태로만 받게 된다.

미국 재무부도 14일 우선주를 인수하는 방식(국유화)으로 은행에 25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단골 긴급처방 '국유화'

이 같은 미국·유럽의 국유화 해법은 시장 기능을 중시하는 자본주의의 원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에선 '사회주의 처방'이라는 빈정거림도 나온다.

하지만 과거에도 자본주의는 시장의 실패가 있을 때마다 국유화 처방을 들고 나오곤 했다. 자유방임을 이상형으로 삼고 있는 미국도 국유화 사례가 적지 않다. 14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1차대전 당시인 1917년엔 미국 내 철도를 국유화했고, 2차대전 때는 철도·탄광을 국유화했다. 1952년 한국전쟁 당시 88개 철강회사를 국유화한 것은 미국 대법원이 '대통령 권한의 남용'이라고 판결할 정도로 고강도 시장 개입이었다.

또 1990년대 외환위기 당시 한국이 택한 고강도의 IMF 처방도 은행 국유화를 핵심으로 하고 있었다. 1990년 금융위기를 겪은 스웨덴도 비슷한 부실은행 국유화를 단행했다.

은행 국유화의 그늘

은행 국유화 조치는 시장 불신을 해소시키는 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임호열 한국은행 금융산업팀장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최후의 보루가 되어 대형 은행의 자본을 확충한 것은 '위기에 견딜 힘이 있다'는 걸 시장에 보여준 조치"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중병에 걸린 환자가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을 전기 충격으로 잠시 살려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영국 누미스 증권의 은행 담당 애널리스트 제임스 해밀튼(Hamilton)은 "공포 스토리의 2장이 끝난 데 불과하다. 불행히도 '경기 침체'라는 3장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금융산업 국유화’가 해법… ‘속도’에 성패달려>


기사입력 2008-10-14 18:40 | 최종수정2008-10-15 03:34 / 경향신문 / 구정은 기자


미국 정부가 2500억달러를 들여 은행들의 지분을 직접 사들이는 방법으로 구제하기로 했다. 신용경색을 뚫기 위해서는 은행 국유화 등 직접 개입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우선 투입 대상은 씨티그룹과 골드만삭스, 웰스파고, 모건스탠리 등 9개 대형 은행이다. 이외 수천개의 중소 규모 은행에도 자금이 투입된다. 지분 매입에 사용되는 액수는 전체 구제금융안 7000억달러의 3분의 1이 넘는 액수다. 이는 영국이 전체 구제금융액 5000억파운드의 10분의 1에 못 미치는 370억파운드를 투입하는 것에 비하면 많다. 그만큼 조치가 늦어 화급해졌다는 의미다.

방법은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를 먼저 매입하는 것이다. 미 정부는 애써 ‘국유화’라는 표현을 피하고 있고, 일부는 ‘부분 국유화’라고 하지만 지분의 50% 이상을 확보해 경영권을 인수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국유화’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두고 “경제권력이 월스트리트에서 워싱턴으로 넘어갔다”며 “대공황 이후 최대 규모의 정부 개입”이라고 논평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국유화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대국민연설을 통해 “자유시장을 인수하려는 게 아니라 시장을 보호하려는 조치”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관련, 미국 언론들과 경제전문가들은 1980~90년대 스웨덴·일본의 금융위기 해법과 현재 미국·유럽이 추진 중인 위기 대응모델을 비교하면서 “얼마나 빨리, 얼마나 적극적으로 조치하느냐가 경제의 운명을 가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웨덴과 일본은 모두 유동성을 투입하다 여의치 않자 금융산업 국유화로 나아갔다. 지금의 미국과 비슷하다. 문제는 국유화의 ‘속도’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스웨덴의 위기 대응법을 집중분석했다. 은행 부실채권 전체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12~1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자 스웨덴 정부는 규제·감독을 대폭 강화했다. 부실회사 경영진은 경영권을 제한하거나 퇴출시켰다. 당국의 가이드라인을 맞추지 못하는 기업은 주식을 강제매수했다. 금융회사들 간 통·폐합을 유도하고 구조조정을 강제했다. 92~94년 3년간 매년 GDP의 4.7%가량을 금융산업에 투입했다.

일본의 대응은 스웨덴보다 한 박자씩 늦었다. 유동성 위기가 나타나자 정부가 일단 시장에 돈을 풀고, 은행 간 공동기금을 만들어 부실채권을 사들이도록 했다. 당국은 문제를 회피하다가 위기가 심각해진 뒤에야 정리회수기구를 만들어 직접 부실채권 매입에 나섰다. 또 당국은 은행들의 이른바 ‘회계 마사지(조작)’ 관행을 잡지 못했다. 은행들은 잘못된 투자를 숨기고 부실채권 규모를 줄이기에 바빴다.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90년 8월 금리를 올렸다가 18개월 뒤 낮추는 등 갈팡질팡했다.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 ‘잃어버린 10년’이었다. 정부가 4400억달러를 쏟아붓고 국유화를 단행한 뒤에야 금융산업이 안정됐다.

미국 금융회사들은 과거의 일본 기업들보다 회계기준이 엄격해 경영실태를 숨기기도 어렵다. 하지만 미국의 낮은 저축률은 부정적인 요인으로 지적됐다. 큰 은행들이 쓰러지더라도 아래를 받쳐줄 중견 은행들이 탄탄히 서 있어야 하는데 현재 미국은 금융산업 ‘양극화’로 중견 은행들이 취약해진 상태다.

미국이 스웨덴처럼 적극 대응을 하더라도 경제 침체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스웨덴은 일본보다 회복이 빨랐다지만 그래도 90~93년 GDP가 5% 떨어지고 실업률이 치솟았다. 92년에는 금리를 다섯 배로 올리면서까지 환율 방어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일본은 2003년 이후 성장세로 돌아섰지만 아직도 부동산 가격은 90년의 4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일본은행 고위간부를 지낸 경제학자 와타나베 다카시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고개를 넘으면 히말라야(더 큰 위기)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미국인들이 알아야 한다”며 낙관론을 경계했다.

미국을 스웨덴이나 일본과 동일시하기는 어렵다. 경제 규모나 구조가 다르다. 또 스웨덴의 위기는 주변국들과 연동되지 않은 ‘국지적 위기’였다는 점에서도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다.


<유로 15개국(國), 부실은행 모두 국유화하기로>

기사입력 2008.10.14 03:06 / 조선일보 / 강경희 기자

전세계 '위기탈출' 동시다발 공세
유럽 정상들, 모처럼 '뭉치는 리더십'
세계각국 구제금융액 총 2조달러 달해
일부선 "막대한 재정투입 후유증 우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13일(이하 한국시각)부터 세계 주요국들이 동시 다발로 금융위기 대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전 세계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시에 끄기 위해 파상공세를 펴는 양상이다.

지난주말
미국 워싱턴에서 G7(선진 7개국)과 G20(G7+13개 신흥경제대국) 재무장관이 긴급 회동, 공동 해법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인 데 이어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유로존(EU에서 단일통화 유로를 채택한 지역) 15개 나라 정상들이 공동 대책을 발표했다. 이 같은 국제적 공동대응과 더불어 주요국들의 초강도 개별 대책이 잇따랐다. 최근 각국에서 발표한 구제금융 금액을 모두 합치면 약 2조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위기 속에 발휘된 공동 리더십

올 하반기 EU(유럽연합)의 순회 의장직을 맡은
니콜라 사르코지(Sarkozy) 프랑스 대통령의 제의로 12일 오후 엘리제궁(프랑스 대통령궁)에 유로존 정상들이 모였다. EU 국가이면서도 아직 유로를 도입하지 않은 고든 브라운(Brown) 영국 총리도 참석했다.

그동안 위기 대응책을 놓고 사분오열하던 유로존 정상들은 엘리제궁 회동에서 '영국식 해법'을 전격 수용하고 은행 간 대출 보증을 해주기로 합의했다는 회동결과를 13일 발표했다.
영국식 해법이란 최근 영국 정부가 재정 자금으로 부실 은행들의 지분을 취득해 사실상 국유화한 방식을 말한다.

엘리제궁 회동 이후 유럽 각국은 발빠르게 행동에 나섰다.
독일 정부는 4800억 유로(약 809조원)규모의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했고, 프랑스도 총3400억 유로 규모의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영국도 사상 최대 규모의 금융 구제안을 발표했다.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 등 대형 은행에 정부가 우선주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370억 파운드(한화 약 78조원)의 자본금을 수혈하는 대책이다.

EU 회원국이 아닌 북유럽 국가 노르웨이도 총 570억 달러 가량을 투입해 민간은행이 갖고 있는 부실 모기지 채권을 국채로 바꿔주는 대책을 내놓았다.

아시아 주요국과 호주도 대책 발표

아시아 국가들도 동참했다.
일본 재무당국은 "필요한 경우 모든 은행 예금의 안전을 보장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홍콩 재무부 당국자는 현지 라디오 인터뷰에서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필요하다면 모든 실탄(외환보유액)을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호주는 모든 은행 예금을 3년간 보증하고, 금융기관의 해외 차입에 대해 정부가 전면 보증을 서는 등의 대책을 내놨다. 중동 산유국들 역시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섰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최근 금리를 인하한 데 이어, "은행계좌 보호와 함께 국내 은행 간 대출도 정부가 보증한다"는 성명을 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중앙은행격인 사우디통화청(SAMA)의 모하메드 알-야세르 부총재는 다우존스와의 회견에서 "필요할 경우 400억 달러 규모를 은행에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 스위스국립은행(SNB)이 13일 발표한 성명에서 "상업은행에 고정금리로 1주와 4주, 12주짜리 단기 달러 대출을 무제한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들 지역 시중은행들의 자금경색이 해소될 때까지 무한정 달러를 공급하겠다는 초강경 조치다.

이번 조치로 충분할까

세계 주요국들은 이번 금융위기를 조기에 막지 못하면 공멸할 수 있다는 공감대 속에 총공세를 펴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반영돼 이날 금융시장은 안정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금융위기가 마무리될지는 불확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미국발 금융위기 와중에 급속히 나빠진 미국·유럽 등지의 수출, 고용 등 실물경제가 최대 불안요인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물경제 악화로 주요국들의 부동산 버블이 급격히 꺼지고 이것이 다시 금융불안을 일으키는 상황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금융위기를 잠재우기 위한 주요국들의 막대한 재정투입이 또 다른 후유증을 낳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번 대응으로 이들 나라의 재정사정이 나빠지고 국민들의 세금부담이 커질 경우 중장기적으로 세계 경제의 회복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미국의 부동산 경기 침체가 여전히 진행 중이어서 어느 정도 규모의 추가 금융부실이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김준기 SK투자증권 투자전략팀 부장은 "금융위기 대응방안에 이어 글로벌 실물경제 회복 방안도 연이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